주일예배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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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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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느 3:1-32


새해를 맞이하면 각자 나름대로 새로운 꿈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세웁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어떤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이왕이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야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벌써 1월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계획대로 이미 진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라는 말은 하면서도 막상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계획대로 실천하려면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느헤미야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 둘레가 4마일, 두께가 1m, 높이가 5m 이상 되는 성벽을 불과 52일 만에 성공적으로 재건한 사역을 통하여 성경적 형통의 비결을 찾으며 우리의 삶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바벨론에 의해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한 후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중의 일부가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3차에 걸쳐 고향 땅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들이 돌아 와서 '여호와의 새 일'을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파괴된 성전을 다시 짓는 일과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수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스룹바벨 때 가까스로 성전은 지었지만, 성벽 공사는 진행하다가 중단되었습니다. 성이 무너지고 성문이 제대로 없으니 주민들은 대적들의 위협을 받으며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변 상황이 좋지 않으니 누가 선뜻 나서서 공사를 재개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의 필요성과 더불어 이 일은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확신을 불어넣으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성벽 재건은 단순히 무너진 성벽에 대한 개축 공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을 대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요, 예루살렘 성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페르시아 왕조차도 이 사역을 돕는다는 말을 들으면서 지도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며 성벽 재건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도 한 마음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성벽 재건의 비결
보통 성을 쌓으려면 왕이나 유력자가 많은 돈을 들이고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공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느헤미야가 귀환 했을 당시에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예산이나 행정조직이 별로 없었기에 성벽재건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성이 없던 곳에 성을 새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곳을 치우면서 새로 건축하거나 남아 있던 곳을 보수하면서 공사해야겠기에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성벽 재건 프로젝트를 어떻게 수행하였습니까?
1) 지도자들의 솔선수범
제사장 가문의 공사를 제일 먼저 기록한 것은 이 공사가 단순한 성 쌓기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거룩한 도성으로 구별하는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버림받고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무기력했던 유대인들이 개혁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남으로써 나라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때에”는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을 선두로 해서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의 공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엘리야십은 스룹바벨과 함께 1차로 귀환했던 대제사장 예수아의 손자입니다(12:10). 공사는 성벽 북쪽에 있는 ‘양문’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양문은 성전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문으로 베데스다 못(요 5:2) 부근에 있었습니다. 희생 제사에 사용되는 양들을 인접한 베데스다 못에서 깨끗이 씻은 후에 양문을 통하여 성전 구역으로 운반하였습니다. 엘리아십과 제사장들은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였고 문짝을 달고 또 함메아 망대와 하나넬 망대에 이르는 성벽을 건축하였습니다. 두 망대는 양문과 어문 사이로 있었습니다. ‘성별하다’를 직역하면 ‘그들이 바쳤다’가 됩니다. 다른 문이나 구간에는 ‘성별했다’는 말이 없는데 양문과 두 망대 사이를 건축하고 성별했다고 한 것은 다른 구간과는 달리 성전과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축하였다’는 것은 그 구간이 완전히 무너져 새로 지었다는 뜻입니다. 성벽 공사가 끝났을 때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면서 예루살렘 성 전체에 대한 봉헌식을 거행하였습니다(12:30). 제사장들 뿐 아니라 고위공직자의 아들들, 고급직종에 종사하는 사업가들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이 솔선수범하니 일반 백성들도 성벽 쌓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리더는 무슨 일을 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본을 보여줌으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동기를 제공해야 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에게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 3:17)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본받으라는 바울의 말은 그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려는 교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알려고 하는 열심, 예수님을 닮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열심, 복음의 진보를 위한 그의 열정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본이 되는 목회자, 본이 되는 제직, 본이 되는 목자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섬기는 사람들에게 덕이 되고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2) 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
성벽 재건은 양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3장은 성벽 재건 사업에 동참한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이 맡은 관할 구역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각 집안별로 장소를 할당하여 그 일을 감당하게 하였는데, 이는 일의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의 신앙적인 자세를 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참여
대제사장 가문으로부터 시작하여 평민에 이르기까지 공사에 참여한 75명의 리더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 공사에는 유다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일했습니다. 성전에서 가장 천한 일을 담당하는 느디님 사람들이 자기들이 거주하는 성전 망대 주변 지역을 재건했습니다. 각 지방의 통치자들 즉 예루살렘 뿐 아니라, 벧학게렘, 미스바, 벧술, 그일라 지방을 다스리는 자들의 아들들도 성벽 중건에 참여했습니다. ‘금 장색’, ‘향품장사’들은 힘든 육체노동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비교적 고급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자기의 일들은 잠시 접어둔 채 성벽 중건에 참여했습니다. 레위인들과 장사하는 사람들도 참여했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개인들도 참여했습니다. 관리의 아들 르바야는 부와 권력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일할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직접 수고하였습니다. 참여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자기들에게 할당된 직임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지위고하, 빈부귀천,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여성들의 참여
성벽 서쪽의 망대 부분을 건축한 살룸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릴 정도의 고위 관리였지만 아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딸들을 데리고 와 성벽을 보수했습니다. 여성들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여성들이 직접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눅 8장에 보면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물질적으로 도운 사람들도 주로 여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남녀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경건한 여성들의 수고가 주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합니다.
- 원근각처에서 참여
성안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성 밖에 거주하는 자들도 참여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 밖에 사는 자들은 성벽 부근에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은 지역에 할당되었습니다. 여리고(2), 드고아(5, 27), 기브온(7), 미스바(7)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원래 여리고성은 여호수아에 의해 저주를 받은 성인데 이 성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쌓는데 참여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20km 쯤 떨어진 드고아에서 온 평민들도 동편 성벽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를 속여 조약을 맺었다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던 족속입니다. 그들도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동참했습니다.

성벽재건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은 이 성이 제사장들의 성도 느헤미야의 성도 아니요 하나님의 성이요, 우리의 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참여하였습니다. 이 성을 지으면 자신들이 대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주인 의식을 가질 때 자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나 어떤 특정인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요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며 섬겨야할 교회라 하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때도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출 35:21) 참여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진대 기쁨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2)라고 기도하면서 섬겨야 합니다.
3) 역할 분담과 협력
느헤미야는 한 구간의 공사를 마친 후에 그 다음 구간 공사를 한 것이 아니라 성벽 공사 구간을 42개로 나누고 이것을 38개 가문에 분담하여 단번에 공사를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공사가 빨리 진척되었습니다. 본문에는 양문, 어문, 옛문, 골짜기 문, 분문과 그 주변 성벽을 재건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느헤미야의 지시에 따라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성벽재건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두 가지 독특한 표현이 여러 번 언급됩니다.
- ‘그 다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작업 방식은 ‘그 다음은’이라는 표현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3장에 이 표현이 28번 나옵니다. 한 그룹이 자기에게 맡겨진 구역을 담당하고, 그 다음 그룹이 그 다음 부분을 담당하면서 전체가 이루어집니다. 역할을 분담함으로 일을 능률 있게 하고, 책임 의식을 고취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다시 세우는 것은 크고 힘든 일이지만 각 그룹이나 사람들이 자기의 몫을 제대로 감당하였습니다. 물론 내 할 일만 잘하면 될 뿐 남의 일에는 참견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가 담당한 부분은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공사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구간의 연결부분입니다. 성벽은 모든 구간에서 튼튼히 잘 지어져야 합니다. 만일 각자가 맡은 부분은 열심이 하는데 연결 부분이 부실하다면 대적들이 그 취약한 부분으로 공격해 올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공사한 부분들이 서로 잘 연결되게 하였습니다.
- ‘집 맞은 편’
아무리 잘 지으려는 열정이 있어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제대로 배치되지 않으면 노력이 낭비 될 수 있고 일이 재미없으면 그 열정도 시들기 마련입니다. 느헤미야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현장 답사를 통하여 사람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고려했습니다. “집 맞은 편,”“집 옆,”“마주 대한 곳”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해당 구간의 거주자들이 집 근처에서 일하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날마다 자기 집 근처에 있는 무너진 성벽이나 불타버린 성문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까요? 착잡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집 부근의 성벽을 쌓도록 함으로써 동기부여가 되어 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기에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적들이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공사하는 곳 근처에 사는 가족들을 보호하기가 쉬웠을 것이요 또 공사에 가족도 함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배치하였습니까? 그들은 성벽근처에 집이 없는 지역에 배치하여 일하게 하였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성벽의 북쪽 부분을 담당하였고 사노아 사람들은 힌놈 골짜기의 험난한 지형 위에 성벽을 쌓으며 골짜기 문을 세웠습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려면 모든 성도가 일을 분담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강조하면서 우리가 실제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성도의 능력이나 부서의 특징에 맞게 일을 분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성도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 일의 필요성과 목적, 나아가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그들의 마음을 돌아보고 격려해야 합니다. 엡 4:12에 의하면 목회자의 사역이 언급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목회자의 역할은 성도들을 잘 준비시켜서 성도들로 하여금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개개인의 능력은 미약할지라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나아갈 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간다고 (엡 2:21-22)에서 권면했습니다.
4) 열정
느헤미야와 더불어 일한 사람들은 포로에서 귀환하여 아직 안정된 삶을 살지 못했고 여전히 사방의 대적들로부터 안전을 위협받았습니다. 공사 참여에 일부 미온적인 사람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자기들이 맡은 일들을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성벽 서쪽의 망대 부분을 건축한 살룸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릴 정도의 고위 관리였지만 아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접 딸들을 데리고 와 성벽을 쌓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20절에는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한 부분’이라고 번역된 말은 ‘둘째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바룩은 제사장으로서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먼저 한 공사를 끝내고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까지 또 다른 부분을 맡아 일했습니다. 많은 그룹 중 바룩에게만 ‘힘써’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일했지만 바룩이 남들보다 더욱 열심을 내었다는 뜻입니다. 드고아 사람들도 자기들의 귀족은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자기들에게 배당된 공사를 먼저 마치고 다른 부분의 공사에도 참여했습니다(27). 므레못(4, 21)과 하나냐(8, 30)와 므술람(4, 30)도 성벽 두 군데를 쌓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남들보다 더 많이 일했다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자기의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열과 성을 다하여 참여해야 합니다. 자신의 일을 감당하고 남을 도움으로 공동체에 열정을 불어넣었을 것입니다. 한 마음으로 공동체가 가진 달란트와 자원을 합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협동의 유익입니다.

* 하나님의 일의 특징
- 하나님의 일은 다 귀합니다
예루살렘 성 남쪽에 위치한 분문은 오물을 버리는 곳이 선뜻 나서서 일하기가 꺼려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와 아들이 그쪽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일, 해도 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심지어 더럽고 하찮게 보이는 일도 있습니다. 누군가 예배 안내를 해야 하고 주보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바닥을 청소하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어지럽혀진 방을 정돈해야 하고 음식을 먹은 후에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갖다버려야 합니다. 물론 일을 하고 싶어도 육신의 연약함을 인하여 할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큰 것, 작은 것, 더러운 것, 천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동전 두 잎을 기뻐하신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는 성도들에게 상급을 주십니다.
-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사람을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느헤미야가 3장을 기록하면서 대제사장 엘리야십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성벽재건 공사에 참여했다고 간단히 쓰지 않고 그 이름들을 일일이 기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것이기에 느헤미야가 그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여한 사람들을 다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후손들이 그들의 이름을 볼 때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반면에 드고아 귀족의 자손들은 자기의 조상들이 성벽 재건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빠진 것을 보면서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 교회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겼다는 것을 알 때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얼마나 거창한 일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기쁨으로 주님의 일에 참여했는지 주님은 기억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라고 말했습니다.
- 하나님의 일에도 비협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벽 재건 공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드고아 사람들 중 어떤 귀족들은 협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협조하다'라는 말은 ‘어깨를 들이대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이 일에 참여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 자기들은 귀족이니 성벽을 짓는 힘든 일을 직접 하기를 꺼리고 뒷짐만 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또는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도비야와 정치적으로 결탁했기 때문에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6:17-19).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들은 귀족으로서 남들보다 잘 섬길 수 있는 여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구경꾼으로 남았습니다. 성벽 재건 사역은 느헤미야 개인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은 계속 진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드고아 귀족 같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더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정죄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묵묵히 충성스럽게 해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모습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나가면서
비록 포로에서 귀환한 상태에서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그들이었지만 기도와 말씀으로 얻어진 느헤미야의 영력,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세워진 계획, 낙심한 백성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역사 세우기에 동참하자는 느헤미야의 호소,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성을 다시 지음으로써 선민으로서의 정체성 회복을 원하는 백성들의 결단과 헌신 등이 합쳐져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형통하게 하기 위한 성경적인 원리는 지도자들의 솔선수범, 자발적 참여, 역할 분담과 협력, 그리고 열정입니다. 이 원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합니다. 2024년도 팔로마한인교회에서 벌이는 귀한 사역에 한 마음이 되어 참여합시다. 그러려면 성벽을 재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어깨를 서로 들이대고 참여해야 합니다. 전부터 있는 교인이나 최근에 참여한 교인이든지, EM에 속해 있거나 KM에 속해 있든지, 어른들이나 학생들이든지, 중직자이거나 신임 제직이든지 함께 참여하여 하나됨의 위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역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기도로 참여하는 사람들, 물질로 참여하는 사람들, 손과 발을 움직여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 필요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자원하여 그리고 헌신적으로 드리는 모든 수고를 주님께서 기억하십니다. 온 교우들이 ‘팔로마한인교회를 짓는 사람들’이 되어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면서 때를 따라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