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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어나자 그리고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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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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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느 2:11-20

1994년 1월 17일 LA 북쪽에 위치한 Valley 지역을 중심으로 진도 6.9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저는 Pasadena에 있는 Fuller 신학교 아파트에 있었습니다. 새벽 4시 반쯤 되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나서 깨어났습니다. 책상에 있던 모니터가 집이 흔들리다보니 바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새벽 기도가 어떻게 될지 제일 궁금했기에 담임목사님 댁으로 전화를 했더니 목사님이 당황한 소리로 오늘 새벽기도는 없겠다고 말씀하시는 데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그 목사님이 살던 곳이 마침 Valley 지역에 있었기에 오후에 그 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가스폭발이 일어났던 Balboa Avenue는 적막하고 여전히 연기가 솟았습니다. 지나가면서 보니 벽돌로 세운 담이나 굴뚝이 많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한국 간호사 한 분이 목숨을 잃은 건물에 갔더니 한쪽이 무너져 내리고 건물 주변에는 노란 테이프로 둘러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댁에 들어가 보니 거실에 있던 큰 어항이 깨어져서 물이 쏟아졌고 그 안에 있던 물고기들이 다 죽고 카펫이 물에 젖어 악취가 났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왔다는 커다란 찬장이 쓰러지니까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찻잔들이 깨어지고 엉망이 되었습니다. LA downtown에 있는 교회에 들렀는데 단상에 있던 십자가가 떨어져 강대상 의자에 걸쳐 있었고, 교회 벽은 금이 갔습니다. 몇 분 동안 흔들렸을 뿐인데 그 피해는 너무 컸기에 자연의 위력에 놀랐고 교회당 안의 부서진 곳을 지켜보는 저의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타버린 성문을 지켜보는 느헤미야는 저보다 훨씬 더 착잡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긴 여정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가 어떠한 리더십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벽 중건 사업을 이끌어 가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고난이 있을지라도 느헤미야와 같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을 살피는 느헤미야(11-16절)
느헤미야는 왕이 붙여준 군대 장관과 마병의 호위 속에 예루살렘 성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땅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이번 방문은 그의 생애 최초의 고국 방문입니다. 단순히 여행이나 성지 답사가 아닌 예루살렘 성 중건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갖고 포로로 있던 유다인들을 인솔하고 왔습니다. 에스라가 귀환한 때와 다르게(스 8:1~31), 느헤미야는 귀환자들의 명단이나 규모나 과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온 것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도착한 후 삼일 동안 눈에 띨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총독으로 부임한 것을 기념하는 거창한 환영식을 하거나 자기가 왜 이곳에 왔는지 밝히는 공식 행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삼일 동안 무엇을 하였겠습니까? 그동안 느헤미야의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기도 없이 아무 일도 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잘 도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였겠고, 성의 중건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구하였겠고,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어서 이 역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내 마음에 주신 것을”에서 ‘주신’은 분사형으로 지속적인 진행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성령의 지혜와 열정을 계속해서 주고 계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프로젝트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확신했지만 그렇다고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계획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수행 가능한지를 무너진 성벽을 직접 돌아보면서 그 형편을 정확히 알 때까지 그 일을 함께 할 사람들에게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주위의 이방 민족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느헤미야의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삼 일째 되는 날에 느헤미야는 모든 사람들이 잠든 밤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몇 사람만 데리고 성을 돌아보았습니다. 그의 여정은 인적이 드물고 힌놈의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예루살렘 남서쪽의 골짜기 문에서 시작됩니다(대하 26:9). 느헤미야는 골짜기 문에서 힌놈의 골짜기와 기드론 계곡이 합류하는 용정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최남단으로 오물이나 쓰레기를 힌놈의 골짜기에 버리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분문(레 19:2)에 도착합니다. “이르는 동안에 보니”에서 ‘보니’는 ‘조사한다’는 뜻입니다. 골짜기 문에서부터 분문까지 살펴 본 이유는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골짜기 문에서 분문까지 약 500미터 거리를 이동하면서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이 파괴된 것을 목격합니다. 거기서 북쪽으로 약 120미터를 올라가서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샘문에 도착합니다. 샘문 근처에 있는 왕의 못은 히스기야의 수로 끝에 있는 실로암 못일 것입니다.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무너져 내린 성벽과 가옥들의 잔해들로 인해 느헤미야는 더 이상 짐승을 타고 지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짐승에서 내려 돌무더기 위로 조심조심 걸어가야 했습니다. 분문에서 성벽의 길이 아닌 시내, 곧 기드론 계곡으로 이어진 골짜기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골짜기 문으로 돌아옵니다. 은밀하게 다닌 점을 고려하면 느헤미야가 탔던 짐승은 말보다는 나귀나 노새를 탔을 가능성이 큽니다. ‘방백’으로 번역된 ‘세겐’은 유대의 지도자를 가리키며 이 관직은 포로 시대 이후에 나타납니다. 다른 곳에서 ‘민장’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4:14,19). ‘유다 사람들’은 제사장들이나 귀족들, 방백들, 그 외의 모든 사람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일 것입니다(4:1). 당시 제사장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이나 행정적인 일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하려는 일을 아직은 그들에게 알리지 않을 정도로 신중함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느헤미야(17-18절)
예루살렘 성벽 조사 후 어느 정도의 기간이 경과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느헤미야는 드디어 유다의 제사장들과 귀족들과 일하는 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재건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고 합니다. ‘곤경’곧 ‘환난과 능욕’을 받는 현재 상태를 언급합니다.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의 파괴로 말미암아 대적들로부터 당하는 어려움을 의미할 것입니다. “보고 있는 바라”에서 ‘보다’는 분사형으로 진행의 의미를 가집니다. 예루살렘 성안에 거주하면서 매일 보는 성벽과 불에 탄 성문의 황폐함이 바로 공동체가 당면한 현실임을 주지시킵니다. 게다가 ‘너희’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과 유다 사람들을 동일시합니다. 이는 그들과 공감대를 갖기 위함입니다. ‘수치’에 해당하는 단어는 ‘비방, 불명예’등의 뜻을 가집니다. 이스라엘이 ‘수치’에 특히 민감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열방의 조롱이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불명예를 씻는 길이 바로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성은 백성을 지키는 수단이요 국가 존립의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성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역사 자체를 다시 세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라를 세우자. 역사를 만들자.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의 당위성과 함께 이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확신을 불어넣어 줍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사명을 주시고 자기를 도우신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예루살렘 성에 오게 된 경위와 어떻게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 성벽 건축 허가와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느헤미야의 제안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러자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일어나 건축하자”라고 외칩니다. 그 말을 직역하면 ‘우리가 일어나자 그리고 세우자’입니다. 그 결과 모든 유다인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벽 재건의 ‘선한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느헤미야(19-20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 게셈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의 일에 위협을 느껴 근심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등장한 대적들의 명단에 게셈이 추가됩니다. 산발랏은 호론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사마리아 총독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유다의 대제사장 가문과 친척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13:28). 그의 종 암몬 사람 도비야 역시 유다의 귀족들과 결혼을 통해 관계를 맺었습니다(6:17-18). 그는 대제사장과도 친분이 있어서 성전 뜰에 그를 위한 방도 있었습니다(13:4,7). 게셈은 게달의 왕으로 알려진 자로, 아라비아 지역 곧 사해의 동쪽과 유다의 남쪽 지역 통치자로 보입니다. 이들은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시도를 조롱했을 뿐 아니라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페르시아 왕을 배반하는 일이라는 거짓된 주장을 펼쳤습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의 압력을 극복하기엔 아직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적자들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뢰를 나타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실 것이다. 그의 종인 우리는 건축을 시작할 것이다. 예루살렘에 대하여 너희는 아무런 지분도 없고 주장할 권리도 명분도 없다’고 하면서 대적자들에게 이 성전재건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자세
느헤미야가 어떻게 일을 추진하는지 관찰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Just do it. Nike의 구호였습니다. 요즘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감동도 없고 아직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먼저 action을 취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것 같은 조급한 마음에서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름길로 간다고 변칙적인 방법을 쓰다가 오히려 더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가운데 이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무슨 일을 착수하기 전에 기도하며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도도 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계획도 세우며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심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 상황 파악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임무가 중요할수록 차분하게 주위를 살피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계획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획은 현장을 살펴보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완전해집니다. 때로는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바로 보는 작업이 유쾌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현 주소, 사업의 현황, 교회의 영적 상태 등등. 시간이 흐른다고 문제가 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바로 보아야 바른 진단을 할 수 있고 효율적인 치유가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드러나는 아픔,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대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조정하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직접 현장을 둘러보며 성전 재건 추진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을 것입니다. 성벽 재건 방법과 구체적인 일정 및 필요한 것들을 점검했기에 그의 제안은 합리적이었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백성은 그의 말을 신뢰했고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상황 파악과 더불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 열정으로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뜨거운 열정과 신중함이 균형을 이룰 때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 함께 일하는 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목아래 준비도 별로 없이, 무엇보다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동기 부여 없이 의욕만 앞세우고 일을 추진하다가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유다의 총독이라 하여 무작정 사람들에게 성벽 재건에 참여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제시하면서 성전 재건의 필요성과 더불어 이 일은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확신을 불어넣으며 무리들의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에 대해서도 말하자 유다 사람들은 마음이 뜨거워지며, 오랜 동안 잊어왔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고, 성벽 재건이라는 사명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느헤미야의 제안에 찬성했습니다. 고후 9:7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헌금하는 원리를 언급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헌금 원리는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한 마음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 대적의 방해를 예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만나 중도에 포기하고 좌절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는 그것을 막으려는 사탄의 방해가 항상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역이 이뤄지는 것을 교묘한 방법으로 방해합니다. 자신을 돌아봅시다. 안 돼, 해 봤자야 하는 부정적인 말, 비방하는 말을 주로 하며 사람들을 낙심시키고 분위기를 어둡게 합니까? 아니면 긍정적인 말,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며 사람들을 세웁니까?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부정적인 자, 낙심케 하는 자를 들어 당신의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언제나 대적들로부터 비난과 반대가 있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결코 호의적이 아닙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예수님에게도 다가와 유혹을 하던 마귀가 성도들이라고 내버려 둘 리가 없습니다. 반대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는 자세가 아니라 도리어 지혜로운 대응책을 가져야 합니다. 방해 세력의 거짓 주장에 결코 흔들리지 않고 대적했던 느헤미야의 담대함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믿음 위에 굳건히 서고 다른 사람들 역시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이나 국가 간의 이해관계조차도 당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십니다. 페르시아 왕의 입장에서 볼 때 충성스런 느헤미야를 총독으로 파송하면 유다인들이 반역하지 않을 것이요, 소요가 그치지 않는 강 서쪽에 믿을 만한 견고한 성읍이 세워진다는 것이 제국에게 굉장히 유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느헤미야가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왕궁을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성의 재건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느헤미야가 계속해서 고백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8절)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운 일과(18절)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리니(20절). 아닥사스다왕이 자기를 보냈으나 실제로 주관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추진하는 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느헤미야가 같이 일할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이나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일을 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나가면서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먼저 홍해를 가르신 것이 아니라 모세를 하여금 밤새도록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이었지만 땅문서를 그냥 주지 않으셨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의 중건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고 그 역사는 선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대적들의 방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대적들을 직접 멸하시기보다 느헤미야에게 기도를 통한 지혜와 용기와 신실함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삶의 지혜로 응답하신다는 성경의 일관된 메시지를 느헤미야서에서도 보여 주십니다. 1~10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 건축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살피며 왕에게 조심스럽게 나아가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본문에서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의 상태를 직접 살펴본 후에 함께 일할 사람들을 만나서 성벽 재건에 동참하라고 설득했습니다. 대적들의 반응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권능과 형통케 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대응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은 어떠한 반대 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어져야만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다시 중건해야 할 '무너진 곳'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세파에 시달리며 흐트러진 신앙이 다시금 다듬어지고 고쳐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경건한 생활 태도를 통해 무너진 마음의 성이 다시 수축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녕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분의 도우심을 얻는 것만이 가장 참된 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어나자 그리고 세우자.’온 교우들이 기도하며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개혁을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고 믿음으로 함께 전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기도하며 때를 기다리고, 지혜롭게 상황을 분석하며 구체적으로 실천할 준비를 하고, 함께 섬기기 위해 다른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대적들의 방해를 예상하며 지혜롭게 대처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 속에 참된 개혁을 이루며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때마다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