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끝이 아름다운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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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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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신 34:1-12


다사다난했던 2023년도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오늘이 지나면 2023년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한해를 돌아보니 어떤 감회가 있으십니까? 금년이 힘들었다고 하지만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십시오, 과거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답답하거나 밤잠을 이루지 못할 고민들이 전에는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살면서 염려, 슬픔, 아픔, 위기를 경험하지만 그럼에도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통치하심 가운데 있음을 언제나 고백해야 합니다.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매순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오늘은 신명기에 나타난 모세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신명기는 모세오경의 절정인 동시에 역사서, 특히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의 서론 역할을 합니다. 헬라어 번역자들은 신명기의 제목을 ‘두 번째 법’이라는 뜻의 ‘듀테로노미온’이라 붙였습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두 번째 율법이 아닙니다. 신명기는 호렙 산에서 주어진 첫 번째 율법의 의미에 대한 설명입니다. 신명기 =신(申) + 명기(命記). 申: 되풀이하다. 예를 들어 申申當付 하면 ‘단단히 부탁하다’는 뜻입니다. 명기는 계명의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명기는 처음 주신 율법을 되풀이하여 기록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시내 산에서 출애굽 1세대에게 처음으로 주셨습니다(출 19-24장). 그런데 1세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신 2:12-15)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대한 반역 사건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38년간의 긴 방랑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세렛 시내를 건널 때쯤 출애굽 1세대는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2세대에게 1세대에 주셨던 율법을 다시 주셨습니다.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신 30:8). 2세대들은 광야에서 아버지 세대가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징벌을 받는 모습을 잘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기에 2세대는 아버지 세대와 달리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믿음으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34장은 신명기의 마지막 장인 동시에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와 축복까지 다 마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느보산에 올라가 약속의 땅을 둘러본 후 최후를 맞이합니다.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생을 마감할 때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모세(1-4절)
모세가 하나님께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출 3:10).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요단 동편에 위치한 ‘모압 평지’에 이르렀습니다. 모세는 느보산, 그중에서도 높은 곳인 비스가 봉우리에 올라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최후를 맞이합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 북쪽 지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북서쪽, 그리고 남쪽의 영토까지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시력에 권능을 더하셔서 약속의 땅을 모두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 ‘단’은 가나안 땅 북쪽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 ‘온 납달리’는 갈릴리 호수 위쪽 지역입니다. ‘에브라임’은 가나안 땅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므낫세 지파의 반은 가나안 땅에서, 나머지 반은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받았습니다. 유다는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서부터 애굽 강까지 이르는 넓은 네게브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서해’의 원어는 ‘뒤에 있는 바다’라는 뜻으로, 지중해를 의미합니다. ‘네겝’은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지역입니다. ‘여리고 골짜기 평지’는 여리고성 주변 지역을 가리킵니다. 요단 계곡(아라바)의 평지(창 13:10; 왕상 7:46)와 예루살렘 지역(느 3:22; 12:18)이 이에 해당합니다. ‘소알’은 사해의 남동쪽 끝에 있는 도시로, 소돔과 고모라 성 옆에 위치합니다(창 13:10; 14:2,8).

모세는 요단강만 건너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직접적 이유는 모세가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민 20:10-13).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40년을 전부 쏟았음에도 그 결과를 보지 못해 아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된 모세의 사역은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심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는 구절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처음 밟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첫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창 12:7). 가나안이 약속의 땅임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하셨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셔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죽음(5-8절)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호와의 종’으로 불렸습니다. 이 표현은 모세의 신실함을 나타냅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의 원어는 ‘여호와의 입을 따라’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그에 대해 말씀하신 대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32:50). ‘벳브올’은 느보 산 부근 지역입니다.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는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모세는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모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 1:9)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천사장 미가엘을 시켜 직접 모세를 장사 지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직접 모세의 장례를 치른 것은 그 무덤을 숨겨서 백성이 미신이나 우상처럼 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모세의 무덤을 알았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와 신앙이 모세 신앙으로 변질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예배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 미가엘이 모세의 시신을 숨겼을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120세에 죽은 것은 단순히 노쇠해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합니다.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의 원어는 ‘그의 눈들은 침침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육체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노쇠 현상이 시력의 약화(창 27ㅣ:1; 48:10; 삼상 3:2; 4:15)인데 모세는 시력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의 원어는 ‘그의 생생함은 도망가지 않았다’입니다. 모세는 노쇠 현상이 전혀 없을 만큼 기력이 왕성했습니다. 모세가 죽은 것은 그의 수명이 다해서가 아니라 여호수아를 세우셔서 가나안 정복을 이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표면적으로는 므리바 사건 당시 실수 때문이지만, 더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이제 준비가 되었기에 하나님이 모세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슬픔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7일 동안 애곡하지만 모세와 아론의 경우에 백성은 30일 동안 애곡했습니다.

지도권을 위임하는 모세(9절)
모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후계자를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우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공식적인 후계자를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31:14-15; 민 27:15-23).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는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최고 통치자인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 지도자들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뤄 가십니다. 그리고 능력을 주셔서 지도자가 맡은 대리적 통치 임무를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런 사실은 모세가 안수하자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했다는 말씀을 통해 확인됩니다. “충만하다”의 원어는 ‘가득 차다’, ‘채우다’라는 뜻으로 차고 넘치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지혜의 영’으로 충만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지혜로운 지도자가 백성을 재판하며 선악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의 원어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에게 들었고 행했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명령을 듣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것과 같이’그대로 수행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세의 업적 회상(10-12절)
모세 오경은 모세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후세에 누군가가 기록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죽음을 기록한 저자는 이스라엘 역사에 일어났던 다른 선지자들과 모세를 비교하면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그 후에는 일어나지 못했다고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의 원어는 ‘여호와께서 그를 얼굴과 얼굴로 아셨다’을 뜻합니다. ‘얼굴과 얼굴로’,‘마주 보고’라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모세와 회막에서 말씀하실 때 사용되었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이 임했고, 모세는 여호와와 친구처럼 대면해 말했습니다(출 33:11). 그러했기 때문에 모세는 선지자로서 탁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중근동 최대의 권력자인 바로 왕 앞에서, 그리고 그 신하들과 애굽 백성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엄청난 이적과 기사를 행했습니다. ‘이적과 기사’는 출애굽을 말할 때 계속 등장했던 단어들입니다(4:34; 6:22; 7:19; 26:8).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행하신 열 가지 재앙과 출애굽의 기사를 말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받아 선포하고 가르침으로써 백성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세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하는 대신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시라고 기도했습니다(출 32:31-32). 이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의 원어는 ‘온 강한 손과 온 큰 두려움’이라는 뜻입니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직접 목격한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모세가 행한 이적의 증인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려고 강한 손으로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과 함께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비길 데 없는 권위에 대해 묘사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선지자에 대한 기다림, 곧 언젠가 새로운 모세가 나타나리라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새로운 모세는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할 것이며, 한 민족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해방을 가져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모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3:1-6에서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인 모세와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신 예수님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를 능가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셨고(행 3:22-26; 7:27; 히 1:3; 3:1-6), 큰 표적과 기사를 통해 자기 백성을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하여 더 위대한 출애굽을 이루셨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 모세
히 11:25에 의하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하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망명하게 된 사건이 믿음의 행위였다고 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그가 누릴 수 있는 높은 지위를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죄가 주는 즐거움을 잠시 동안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더불어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세를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는 영적 지도자로 삼으시고, 크고 놀라운 일들을 그와 함께 행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그대로 순종하며 능력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즉 모세의 능력과 리더십은 기도, 말씀, 순종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모세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 평지까지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아쉬웠겠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겸손히 순종했습니다. 무디는 모세의 생애를 삼등분하여 처음 40년은 “자기가 무엇인 된 줄 알고 산 40년이요”, 다음 40년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산 40년이요”, 마지막 40년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들어 하나님의 대역사를 이룬 40년”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역사의 무대에서는 사라졌지만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서는 길이 남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라는 탁월한 후계자를 세워 비전을 물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따라 계속해서 가나안 정복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작보다 마지막이,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중요합니다. 모세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은 비전의 사람입니다.

우리의 자세
모세는 그의 사후에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평가까지는 바라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의 생을 마감한 후에 사람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늘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던 사람으로 기억한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모세처럼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노예로부터의 해방’과 ‘약속의 땅 정복’이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비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하고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켰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언약 백성으로 만들었고 율법을 그들에게 전함으로써 사회 질서와 정의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비스가 산꼭대기에 데리고 가신 후 동서남북 온 땅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 주기만 하실 뿐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고 요단 강 동편, 약속의 땅 건너편까지 인도하는 일까지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12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하나님의 비전이 모세를 거쳐 여호수아에 이르러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 사명은 우리로 하여금 열정을 품게 하고 집중하게 만들며 행동하게 합니다. 그 사명이 있는 사람은 절제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또한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신명기의 핵심구절은 6:4-9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듣는다는 것은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주신 말씀을 지켜 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이 우리의 가정이나 대인 관계에서도 또한 나타나야 합니다. 신명기 6:2-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어떤 약속이 따릅니까? 첫째, 네 날이 장구하여 진다. 단지 90세, 100세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주님과 더불어 지내는 기간이 긴 것이 복입니다. 아무리 건강식을 먹고 운동하며 조심하여 오래 산다 하여도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둘째, 복을 얻습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셋째, 젖과 꿀이 흐르는 날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한다. 즉 자손의 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과 은사에 맞게 사명을 주시고 꿈을 경영하십니다. 성공은 내가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가나안 땅을 앞두고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모세는 아쉬웠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는 죽음의 자리에 겸손히 순종했습니다.
-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모세는 12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평가하기를 여호와를 대면하던 사람, 가장 뛰어난 예언자,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큰 권능과 두려움을 보여 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도 인간입니다. 모세가 위대해진 것은 그의 능력이나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를 들어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른 막대기와 같은 우리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니 우리가 귀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잡혀 있는 동안만 아름답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죽을 때까지 눈이 흐려지지 않았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죽음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임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이 정하신 만큼 사역하다가 하나님이 그만하라고 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인의 뜻에 따라 온전히 충성을 다하는 것이 사역자의 바른 자세입니다(고전 4:2). 모세처럼 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위해 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상에 유산으로 남기고, 모든 사람에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평가받는 인생을 꿈꾸며 오늘도 주님께 충성하기를 바랍니다.

나가면서
모세는 므리바 사건(민 20:24)의 실수로 끝내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느보 산상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임종 시에도 기력이 왕성했다고 언급함으로써, 그의 죽음이 노쇠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소명을 다한 종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종들을 세우시고 그 종들과 함께하셔서 종말론적 구속 사역을 이뤄 가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종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처럼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으려면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성공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과정에 역경도 있지만 때를 따라 필요한 사람도 붙여 주십니다. 팔로마 교우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 임마누엘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