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Author
명
Date
2023-11-19 22:17
Views
150
성경구절 : 신 26:1-11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제대로 감사하지 못합니까? 지금 있는 것과 누리는 것보다 지금 없는 것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생각하며 아쉬워하기 때문입니다. 공연히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가진 것이 형편없다고 여기며 불평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기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었다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 사업, 교회를 통하여 주신 것을 헤아려보면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습니까? 추수감사절 하면 으레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온 청교도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추운 겨울을 지내는 동안 함께 온 자들 중에 절반 정도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듬해 인디언들이 가르쳐준 대로 농사를 짓고 나서 청교도들은 거둔 수확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인디언들을 초청해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그때가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아닙니다. 구약에서 감사절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얻게 되는 토지소산의 맏물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것에 대한 규정인데, 그 예식 때 어떤 신앙고백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그 의식을 통하여 그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지속적이고도 올바른 관계를 갖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자세로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야 하는지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1-4절)
모세가 신명기의 말씀을 전할 때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대부분 죽었고 애굽을 나올 때 20세 이하였거나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대가 이스라엘 백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첫 소산의 예물을 드리면서 의식을 행하는 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2세대가 그 동안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하나님을 잘 모르는 그 이후의 세대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가르쳐 주어 그들로 하여금 조상들이 믿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이 9번이나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바알이나 아세라과 차원이 다른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시고 역사하신 주체가 하나님이시리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가나안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1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2절),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3절) “젖과 꿀이 흐르는 땅”(9절)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가나안 땅 문서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땅이지만 이스라엘이 점령해야 할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과 정복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물론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친 것은 이스라엘의 능력이나 군사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 다시 말하면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짓고 처음 추수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첫 열매를 여호와께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여호와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행위며,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 함은 앞으로 부활할 모든 성도들을 대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림은 단순히 양식을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 구원하신 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둔 맏물을 광주리에 담아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즉 구별된 장소로 나아가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는 힘들어도 분주해도 하나님의 전에 직접 나아가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잠 8:17). 오늘날은 성도들이 수고하여 거둔 소산 중에서 구별된 예물을 가지고 구별된 장소인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가지고 가서 제사장에게 드려야 했습니다. ‘오늘’은 바치는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간 시점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고 살 때는 미래이지만 모세의 설교에서 현재화되어 나옵니다. 예물을 바치는 사람이 제사장에게 가서 고백하는 말이 정해져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첫해에만 고백하는 말이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도 매년 이 고백을 하면서 제사장에게 토지소산의 맏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살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지금도 매년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의 절기를 지키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매년 기념하며 감사하고, 이를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해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신앙고백이 담긴 드림(5-9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는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는데 그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했습니다. 감사란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우리를 구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고백에는 창세기로부터 여호수아까지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에서 ‘방랑하다’는 ‘소멸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내 조상은 망해가는 아람 사람’이란 의미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요셉의 초청을 받아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창 45-46장). 야곱이 원래 아람 사람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의 친족이 아람에 속한 하란에 거주했고, 또 야곱이 20년 동안 밧단 아람에 머물렀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아내들과 11명의 아들들을 얻었기 때문에 아람 사람이란 이름을 얻은 것 같습니다. ‘소수’는 ‘소수의 남자’라는 뜻으로, 야곱이 이끌고 내려간 70명의 야곱의 가족을 지칭합니다(창 46:27). 70명이 400년 만에 20세 이상의 남자만 60만 명 이상으로 불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 열조들에게 약속하신 자손 번성의 복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6절은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시작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번성이 새로운 문제를 가져왔음을 말해 줍니다. 엄청나게 늘어난 인구에 위협을 느낀 바로가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가 세 개의 동사로 나타납니다. ‘학대하다’‘괴롭히다’“중노동을 시키다”이 세 동사는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려먹고 학대한 것을 보여 줍니다(출 1:11,14). 학대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침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고통’과 ‘신고’(괴로움)와 ‘압제’(억압)는 동의어로,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광야 생활 사십 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에 앞서 나가시며 가나안까지의 모든 여정을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광야 여정에서 하나님은 날마다 만나를 하늘에서 내리셔서 그들로 굶지 않게 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5~9절에 언급된 신앙고백에는 두 가지 사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땅에 대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학대로 고통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이듯이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의 핵심이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인 출애굽과 가나안 땅 정복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년 이 고백을 암송하며 제사장에게 예물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고백을 반복하면서 과거의 구원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겼습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10-11절)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나서야 이스라엘은 비로소 그 땅의 산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임을 확인하는 것이 맏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첫 소산물을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놓고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에는 과거 비참했던 애굽 생활에 대한 회고, 애굽 왕 바로의 권세를 꺾으시고 이스라엘을 그 손으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찬양,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허락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토지소산의 맏물을 예물로 바친 후에 레위인과 객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레위인과 객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토지소산으로 감사하는 절기에 토지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그 소산을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토지소산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가난한 이웃들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토지소산의 맏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식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계승하고, 사회적 연합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자세
예배의 의미는 ‘가치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리는 자가 중심이 되면 안 되고, 받으시는 분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예배자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입니까?
- 예물을 드림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추수했을 때 첫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서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첫 열매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이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과 광야 40년의 세월을 거쳐 가나안 땅 정복까지의 과정에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의 첫 수확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열매였습니다. 이는 청교도들이 온갖 고난을 겪으며 얻은 그 땅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고 추수감사절로 지키게 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고자 하는 성도는 마땅히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마 6:21). 이는 입술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약 2:17~18). 우리가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14:22).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그저 노동의 대가, 마땅한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구원받은 성도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물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물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물을 통해 드리는 우리의 헌신, 감사, 믿음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예배자가 첫 열매를 드릴 때 제사장에게 가서 이렇게 고백해야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그 고백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야곱의 가족 70명으로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당시에는 장정만 60만 명으로 번성했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하셨으며 광야 여정에도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마침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들을 그들의 입으로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기억했습니다. 그 고백을 하는 자들도 듣고 자식들도 들었습니다. 가나안에서 얻은 복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 세대의 땀 흘림이 있었음을 자식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에 대한 회상이 없다면 새로운 세대들은 조상들의 고통을 알 리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들이 누리는 풍요를 당연하게 여기며 교만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어떻게 미국까지 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삶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물질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드리는 신앙고백의 토대 위에 참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예배자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 이웃과 함께 나눔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첫 소산으로 감사할 때 레위인과 객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찍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단지 아브라함에게만 복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실 뿐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얻기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전하는 통로였습니다. 이 원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셔서 농사를 지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26:13을 보면 받은 복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주시는 복이 온 세상에 나누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물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뿐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복음의 능력과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약 1:27).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함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증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신 열매를 소외된 자들이나 약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인한 즐거움은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교회를 넘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쳐야 합니다. 그들도 구원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유초등부에서 San Diego Rescue Mission을 통해 홈리스들을 도우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교우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나가면서
추수감사절의 본질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와 온전한 신앙고백이 있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구체적인 이유들을 우리의 삶에서 찾아보고 우리의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 고백이 담긴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지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도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풍성하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들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 속에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한다는 청지기 의식이 필요합니다. 진실한 감사, 찬미와 거룩한 헌신 그리고 전도의 생활로 맺힌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게 되고 우리의 가정과 이웃과 교회에 기쁨을 낳게 합니다. 주일마다 봉헌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한 주일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 베푸신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깨달으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감사절에 특별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 베푸신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깨달으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은 후에 그 첫 소산을 손에 들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감격스러운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감격스러운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첫 소산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교우들이 팔로마한인교회 첫 소산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에 우리 자신을 드리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롬 12:1). 지금 우리가 받아 누리는 모든 삶의 열매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 교우들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기뻐 사용하시는 신실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