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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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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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계 22:12-21


계시록하면 설교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란 인상이 있습니다. 그래도 은퇴하기 전에 계시록 전체를 설교하리라 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금년 1월 첫째 주일에 계시록 강해를 시작했는데 오늘 10월 셋째 주일에 22장 후반부를 다루면서 10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제가 받은 은혜를 부족하나마 교우들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은 계시록 전체가 잘 이해되어 머리에 잘 들어와 있습니까? 아마도 많이 잊어버리셨을 것입니다. 계시록을 떠받치는 3개의 핵심 기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말씀, 교회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 세 기둥을 중심으로 3주 동안 복습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금년에 교우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본문은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행위와 보응의 관계, 예언의 말씀으로써 계시록의 중요성. 예수님의 재림을 앞둔 성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이 듣고 보았던 모든 것을 기록한 이 책이 진실하다고 보증하십니다(18-19). 계시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생명의 선물을 받습니다. 반면에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이 책에 기록된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의인에게는 구원을, 악인에게는 심판을 가져옵니다. 이 구원과 심판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시작된 죄와 불순종의 역사를 회복시켜서 마무리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작업입니다. 본문을 통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바로 알고 실천하며 기쁨으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행위대로 상 주심(12-15절)
예수님께서 7절에 이어 속히 오리라고 재차 말씀하시면서 재림 후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대부분 강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내가 속히 오겠다’는 것은 ‘힘들지? 내가 금방 갈께. 그러니 기다려 ’라는 뜻입니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입니다. 이처럼 행위에 근거한 판단이나 심판은 성경 전체에서 자주 나타납니다(2:23, 잠 22:12, 렘 17:10, 롬 2:6, 벧전 1:17). 이것은 마지막 흰 보좌 심판을 묘사할 때에도(20:13)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상’의 일차적인 의미는 ‘대가’‘보상’입니다. 믿는 자의 상은 세상에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로운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은 많은 핍박과 고통 가운데서도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믿음을 인내로 지킨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입니다(13:10, 14:12). 반면에 짐승과 사탄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주어집니다. 어린양의 신부인 성도들이 입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상징합니다(19:8).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말씀은 성도들에게 박해와 미혹에 굴복하여 타협하지 않고, 어린양을 끝까지 따르는 믿음의 행실을 보일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줄 상을 가지고 오신다는 말씀은 짐승에게 박해를 받는 성도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계시록의 서두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소개하셨습니다(1:8). 그런데 13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으로 묘사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시며 심판주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또한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복이 일곱 번 선포되는데, 마지막으로 주님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두루마기’는 긴 겉옷을 가리키는데, 이 옷은 귀한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존귀한 자임을 상기시킵니다. ‘빠는’은 현재분사로 지속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날마다 어린양의 피로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을 뜻합니다. 7장에 등장하는 구원받은 큰 무리는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었습니다(7:14). 깨끗한 옷을 입은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의 생명나무를 통해 생명을 얻을 권리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겠다고 이미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2:7). 그들은 또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권리를 얻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럽고 복된 삶은 어린양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자들의 몫입니다. 어린양의 신부의 예복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19:8).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이고, 그 성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신부에게만 허락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구원을 받았는지를 알고 믿는 성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은 지금이나 그날에나 기쁨으로 자기의 옷을 빠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15절에서는 인간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자들과 성 밖에 있는 자들로 구분합니다. 이런 구분은 곧 교회 공동체에 속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개역성경에는 ‘성 밖에’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원어에서는 그냥 ‘밖에’로 되어 있습니다. 14절에 두루마리를 깨끗이 빠는 자들은 흰옷을 입고 새 예루살렘 안에 들어가지만 15절에 언급된 자들은 밖에 거합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입니다. 21:8에 언급된 악인들의 리스트와 비교할 때 15절에만 등장하는 것은 개들입니다. ‘개’는 유대 사회에서 ‘부정한 자’‘이방인’‘거룩하지 못한 것’을 상징합니다. 개들은 짐승을 따르며 불의한 짓을 하는 악인들을 가리킵니다. 빌립보서에서 개들은 행악하는 자들과 나란히 사용됩니다(빌 3:2). 이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결국 각 사람이 일한 대로 갚아 줄 상은 구원과 심판이라는 12절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증해 줍니다.

생명수로의 초대(16-17절)
지금까지 예수님은 천사를 보내어 계시를 교회들에게 증언하셨습니다.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라는 표현으로 시작되었습니다(1:1).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이 그분의 백성인 교회를 향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이고 자손이시라고 합니다. 5장에서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로 소개되셨습니다(5:5).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롬 1:3). 예수님은 또한 빛나는 새벽별이십니다.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실 때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28). 또한, 이 표현은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메시아 예언을 연상시킵니다(민 24:17). 새벽별은 밤이 가고 새벽이 옴을 알리는 별로서, 예수님은 환난의 긴 밤을 마치게 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다윗의 뿌리와 자손 및 새벽별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냅니다.

성령은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이시며(19:10), 신부는 어린양의 아내인 교회를 가리킵니다(19:7). 성령은 교회에게 예수님에 대해 증언할 수 있도록 영감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설교나 전도의 과정 속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사람들의 양심에 직접적으로 증언하십니다(요 16:8-11). 그러기에 성령과 교회의 증거는 한 가지이며, 둘이 연합하여 오직 예수님에 대하여 세상에 선포하며 증거하게 됩니다. 계시록의 시작에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계시록을 마감하면서 성령과 신부가 예수님 앞에서 ‘오라’고 말씀합니다. 듣는 자도, 목마른 자도, 원하는 자도 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초대는 목마른 자는 돈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이사야서의 초대를 연상시킵니다(사 55:1).

절대적 예언의 말씀(18-21절)
“내가 ... 증언하노니”는 1인칭 화자의 강조어법으로 강력한 법적 의미인 맹세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주의 선언은 이 증언을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경고’로 간주하게 합니다. 이러한 경고는 구약시대의 율법의 불순종에 대한 저주 선언과 병행을 이룹니다(신 4:2; 12:32).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책에서부터 강조되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이제 요한은 말씀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누구든지 계시된 말씀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모든 재앙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말씀을 빼면 생명책에서 제하여 버리시리라는 경고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주신 말씀 그대로 믿고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생각으로 제하거나 더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로, 사탄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셈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에서 무엇이든 없애 버리면,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도 없고 거룩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계시록의 경고는 신약성경 및 성경 전체에 대한 경고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자체로 충분하고 완벽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무엇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들음’이 기도가 되고, 말씀을 ‘앎’이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또 말씀의 참됨을 전하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7절과 12절에 이어, 20절에서 모든 계시를 증언하신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온다’가 현재시제이므로 주의 오심이 현재 진행되고 있음을 선언합니다. 22장에는 ‘속히’가 네 번 나옵니다. ‘곧’‘속히’‘머지않아’라는 뜻으로 긴박성을 드러냅니다. 깨어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지금 오고 계시고 ‘속히’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읽는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태도는 종말론적 긴장감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속히 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합니다. ‘아멘’은 ‘진실하다’라는 의미로, 계시록의 모든 말씀이 참되며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오시옵소서’는 2인칭 명령형으로 탄원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를 마무리 지으면서 ‘marana tha’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고전 16:22). 이는 아람어 마라나 아타(우리 주님이 오셨다 또는 오실 것이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영어로 'Our Lord, Come'입니다. 개역성경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는 초대교회의 종말론적 기도의 한 대목으로, 주의 재림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모든 문제의 해결이 인간의 능력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오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요 4:25). 그때 교회는 구원의 완성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이 세상의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벗어 버리고 ‘마라나싸’를 고백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계시록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로서(1:4),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비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1:4-5). 요한은 이제 계시록을 마무리 지으면서 축복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여기서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을 지칭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교회가 계시록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순종하게 되기를 바라는 요한의 마음을 표현합니다(1:4).

우리의 자세
사도 요한은 지금까지 어린양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사람들이 받게 될 영원한 소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원한 소망을 마음에 품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하늘의 상급을 사모해야 합니다
인자가 오실 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7). 바울 사도 역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롬 2:6). 베드로 사도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합니다(벧전 1:17).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가 계신 것과 그분이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 물론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당연한 순종의 행위조차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상주겠다고 하십니다. 섬긴 대로 갚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과 수치를 우리는 넉넉히 견딜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은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농부가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가을에 거두어들일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듯이 우리는 주님의 상을 바라보며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수고와 인내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상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한 것보다 더한 복으로 채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한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믿음의 열매인 행위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계시록 22장의 핵심단어가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에덴을 완전히 회복하여 새 예루살렘이 신적인 생명으로 가득 찬 곳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생명으로 성숙하게 되는 장소, 생명으로 생명을 낳는 장소, 생명으로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가장 분명한 방식은 이 세상에서 생명 운동을 힘 있게 펼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전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전 사역을 지칭합니다. 전도를 시작으로 하여 초대된 인생들에게 예수 생명을 이식하고 성숙의 길로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믿는 자들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생명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생명을 전달하여 또 다른 생명을 낳고 성화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주님의 생명으로 섬기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사역이요, 주님이 분부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음녀가 지배하는 세상 가운데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요한은 성령과 교회가 세상을 생명수로 초대하는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목이 마른 자나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아 마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계시의 주체자인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도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은 성도의 말과 행동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초대장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해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주님의 재림을 고대해야 합니다
속히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며 요한은 간구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의 기도는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재림 신앙은 세상을 이기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천국보다 이 세상의 삶을 더 사모합니까? 성도는 예수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어린양을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딤후 4: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기가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려왔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또한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나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중요한 다섯 가지 사건들이 있습니다. 동정녀 탄생,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재림입니다. 네 가지는 이미 이루어진 과거의 사건이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은 재림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분이 오시는 때와 장소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주님이 오실 그날까지 이 세상에서 인내하며 끝까지 말씀을 믿고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약속대로 오셔서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우리를 영원하고 복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상을 주시되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자기 행위를 회개하며 예수님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는 자가 복됩니다. 이런 사람은 성안에 들어갈 권세를 받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값없이 생명수를 마십니다. 그러나 불의를 행하는 자, 음행과 살인과 우상 숭배와 같은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을 당합니다. 계시록의 모든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며, 절대로 가감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로, 거룩한 신부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닮아가야 합니다.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칭찬과 존귀로 상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하는 역사가 우리의 삶에서 이뤄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주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