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곱 대접 재앙의 실행(2)

Author
명
Date
2023-06-25 20:57
Views
219
성경구절 : 계 16:10-21


6.25를 맞이하면서 가곡 ‘비목’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적은 글을 보았습니다. 휴전된 지 10년도 더 지났을 때 한명희라는 분이 학군 장교 2기로 임관하고 최전방에 배치되어 비무장 지대를 수색하면서 많은 무명용사들의 해골을 보았습니다. 7사단 백암산 지역을 순찰하던 중 수목으로 우거진 산비탈에 있는 이끼 낀 돌무더기 곁에 썩어 내려앉은 십자가 모양의 비목과 그 옆에 뒹구는 녹슨 철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느 무명용사의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하얗게 핀 산목련이 말없이 그것을 지키고 있던 그 현장을 그는 오랫동안 떠날 수 없었습니다. 죽어간 무명용사는 자기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고 그의 전우들은 조국을 지키다가 쓰러진 그곳에 장사 지낼 여유도 없어 돌무더기로 그의 시신을 덮었고 나뭇가지 꺾어 그곳에 비목을 세우고 철모를 걸어둔 후에 계속 전장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미처 피워보지도 못하고 조국을 위해 젊음을 내려놓은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며 헌시로 썼는데 후에 장일남씨가 그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25가 발발한 지 벌써 70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6월은 조국이 어떻게 지켜졌고, 어떻게 주어졌는가를 깊이 생각해보는 달입니다. 다시는 피를 흘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본문에도 보니 전쟁이 언급됩니다. 그 전쟁은 이전에 있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요 인류 역사에서 이뤄지는 최후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이 아마겟돈에서 벌어집니다. ‘아마겟돈’은 천년왕국이나 짐승의 수 666 등과 더불어 계시록에서 많은 관심을 끄는 단어들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아마겟돈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모든 나라가 모여 인류 최후의 전쟁을 일으킨다는 내용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의 핵심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한 영과 열방이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대항하다가 패해 영원한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19:19-21). 본문은 대접 재앙 가운데 마지막 세 개의 재앙을 다룹니다. 땅, 바다, 강과 물의 근원, 하늘을 대상으로 진노의 대접을 쏟았던 1~9절과 달리 10~21절은 자연계가 아니라, 짐승의 보좌, 유브라데스 강, 공중에 진노의 대접을 쏟습니다. 첫째 대접부터 넷째 대접의 재앙이 온 땅을 향한 보편적인 심판이라면, 이후의 세 대접 재앙은 세상의 악한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 그리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의 문명을 향한 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구체적으로 미래에 닥칠 종말적 정황을 ‘전쟁’과 ‘바벨론 멸망’이라는 주제를 따라 풀어가고 있습니다. 본문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다뤄진 내용들이 이후 17~20장의 골격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며 어린 양의 인침을 받은 자로서 주님의 날을 온전히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대접 재앙(10-11절)
처음 네 가지 대접 재앙이 자연계를 향한 심판이었다면, 다섯째 대접 재앙은 악의 중심부인 ‘짐승의 보좌’(13:2)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용(사탄)이 보좌를 허락하고 짐승이 사탄의 대행자로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 보좌에 진노의 대접이 부어졌다는 말은 하나님이 사탄을 직접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재앙으로 인한 흑암은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흑암이 임했던 아홉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출 10:22). 출애굽기 이후 ‘어둠’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현상이었습니다(욜 2:2, 10, 31; 암 5:20). 대접이 쏟아진 후 나타난 또 다른 현상은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무는 것입니다. 왜 혀를 깨뭅니까? 다섯 번째 심판인 어둠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하며, 이로 인해 영원한 지옥의 고통이 유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12에서 예수님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어두운데서 울며 이를 가는 것’과 ‘아파서 혀를 깨무는 것’은 모두 강한 고통으로 인한 괴로움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묵시적 용어로 땅의 나라를 멸하시고 우주적이고 영원한 통치를 확립하시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흑암 속의 공포와 고통이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와 회개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심판의 원인인 자신들의 악행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고통을 준 하나님을 미워하고 원망합니다. 끝내 돌이키지 않은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최종적인 두 대접 재앙입니다.

여섯째 대접 재앙(12-16절)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자 강물이 마릅니다. 여섯째 재앙은 종말의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아마겟돈 전쟁을 중동에서 일어난 3차 세계대전으로 문자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계시록의 묵시적인 성격과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다는 내용은 전쟁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동방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자들의 거처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을 상징합니다. 유브라데 강은 당시 로마제국과 파르티아 사이에 있던 국경선이었습니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1세기 독자들에게 동쪽에서 로마 제국을 끊임없이 위협하던 파르티아인들을 연상케 했을 것입니다. 요한은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을 보았다고 합니다. 개구리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기 때문에(레 11:10-11) ‘개구리 같다’는 정결하지 못하고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 더러운 영이 악한 존재의 삼위일체인 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옵니다. 아마겟돈 전쟁을 부추기는 실제적인 존재가 용(사탄), 짐승(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의 영’은 이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갖 거짓말과 유혹하는 말로 ‘온 천하 왕들’을 부추겨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을 모을 것입니다. 곧 악한 정치권력과 거짓된 종교 권력이 결탁하여 세상의 왕들을 모두 결집시켜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려 합니다. 온 천하 왕들이 한곳에 모였으니, 그들은 세상의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해 하지만, 결국은 일곱째 대접 재앙을 한꺼번에 당하기 위해 한곳에 모인 꼴이 되고 맙니다. 그들이 아마겟돈에 모인 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악을 단번에 제거하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선지자 에스겔 또한 환상 중에 이러한 광경을 목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악의 상징인 곡이 세상의 군왕들을 불러 보아 이스라엘을 치러 왔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치셔서 악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겔 38~39장).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힘을 의지해서도, 그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15절은 영적 전쟁을 벌이면서 하나님 백성이 가져야 할 자세를 권면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영적 나태 및 그에 따른 위험과 관련하여 사데(3:2-3) 교회와 라오디게아(3:17-18)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인용해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종말이 가까운 상황에서는 용과 짐승의 가혹한 박해로 인해 성도들이 순간적으로 배교하거나 짐승의 우상에게 절해서 흰옷을 더럽힐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인자가 도둑처럼 생각지 않은 날에 올 것이니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42-44). 바울 사도 역시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살전 5:2). 그러나 어둠에 속하지 않고 빛에 속한 성도들에게 주의 날은 도둑같이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살전 5:4-5). 라오디게아 교회가 흰옷을 사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야 하듯이(3:18), 종말론적 전쟁에 직면한 성도들은 옷을 입어 부끄러움을 가려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자기 옷을 지키며,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깨어 자기 옷을 지킨다’라는 표현에서 두 개의 동사가 현재분사로 쓰였습니다. ‘지속적으로 깨어 있어 지킨다’는 뜻입니다. 깨어서 지켜야 하는 것은 ‘자기 옷’입니다. ‘옷’을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마 22:12; 갈 3:27).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 기도하고 준비를 하면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우리를 악하고 더러운 것에서 구별하게 합니다. “복이 있도다.”신실한 신자들을 향한 세 번째 복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재림의 주를 기다리며 영적 순결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의 영들이 아마겟돈으로 세력을 모으고 싸우려 하는 결전의 날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입니다. 이제 옛 시대가 지나가고 하나님의 두려운 날이 임하면 이스라엘의 영광이 드러나는 새 시대가 열립니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 ‘하르 므깃도’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므깃도 산’을 의미합니다. 므깃도 골짜기(대하 35:22)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솔로몬이 요새화한 고대 도시입니다(왕상 9:15).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야에서 애굽-시리아에 이르는 주요 도로를 따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스라엘 북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샤론 평야와 이스르엘 평원 사이에 있는 길목으로 주요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를 물리친 곳이며(삿 5:19). 예후가 아하시야를 죽이고 혁명에 성공한 곳이며(왕하 9:27), 요시야 왕이 애굽 왕 바로느고와 맞서 싸우다 전사한 곳(왕하 23:29)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슥 12:11)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통하는 모습을 므깃도 골짜기에 있던 애통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므깃도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영적 전쟁을 일으키려는 용, 짐승,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의 장소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전쟁은 주님의 재림으로 종결됩니다. 오늘날도 불신자들과 이단들은 바른 신앙을 가진 자들과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들은 거대한 세력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두 패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겟돈은 악한 세력들이 멸망당할 큰 무덤, 영원한 불 못, 무저갱이 될 것입니다.

일곱째 대접 재앙(17-21절)
일곱째 대접 재앙은 지상에서 일어날 모든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입니다. 일곱 대접이 공중에 쏟아지는데, 여기서 ‘공중’은 단순히 대기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영역을 가리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모든 심판은 끝나고 무력화된 악의 세력은 완전히 궤멸됩니다. 그때 성전 보좌에서 ‘되었다’라는 큰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시고(10:7),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고(11:15), 그분의 진노를 다 쏟아 부으신다(15:1,8)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루어지는 강력한 천재지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던 것처럼, 그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전례가 없는 대재앙이 일어납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함께 무너집니다. 세 갈래 파괴는 완전한 파멸을 의미합니다. 자연 세계와 인간이 쌓아 올린 장엄한 업적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큰 성 바벨론’은 하나님께 맞서 우상을 숭배하는 교만한 인간 문명을 상징하며, 계시록의 첫 독자들은 로마가 바로 그런 문명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17:18; 18:21). ‘만국의 성들이 무너진다’로 표현하는데 이는 바벨론과 함께 바벨론을 추종하는 만국도 함께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 심판은 바벨론의 우상숭배가 타락하게 만든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중심지들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라는 말씀에서 ‘기억하다’라는 동사가 하나님을 주어로 하면 구원과 심판을 전제합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신 것을 잊지 않으시기에 심판은 필연적입니다. 음행의 포도주를 열국에게 마시게 하던 그들의 죄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철저히 보응하십니다. 심판의 경고(14:8)가 현실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피할 수 있는 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참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던 하나님의 진노가 다 쏟아지고 적그리스도의 중심지였던 바벨론이 무너지고 세상이 망하게 됩니다. 큰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받게 됩니다.

20절은 자연계의 현상을 소개합니다. 구약이나 묵시문학에서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섬들이나 산들, 그리고 하늘이 사라지는 것은 ‘주의 날’과 관련된 종말적 주제입니다(시 97:5; 사 2:12-18; 40:4; 45:2). 따라서 요한은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는 종말론적 묵시적 주제를 최종적 심판에 적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립니다. 달란트는 무게를 재는 단위로 1 달란트는 약 34kg입니다. 얼마 전 콜로라도에 골프 공 만한 우박이 떨어졌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나게 큰 우박이 내리는 것은 애굽에 내린 우박 재앙을 떠올리게 하고, 하나님이 이 악한 군대와 친히 싸우심을 알려 줍니다. 최후의 결전에서 패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 비방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마저 얻지 못합니다.

우리의 자세
-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더러운 세 영이 등장합니다. 이 영들의 특징은 ‘거짓’과 ‘미혹’입니다. 거짓은 우리를 쉽게 혼란에 빠뜨리고,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말세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막 13:5)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어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가 거짓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우리 안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를 속이고 유혹해서 진리와 거룩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우리를 어떻게 하든지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진리와 거룩과 영광 앞에서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며(살전 5:17), 성령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준비는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심판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심판관이신 하나님이 알려 주신 방법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믿는 것만이 심판을 면하는 방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길은 결코 없습니다. 본문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권면이 등장합니다. 깨어 옷을 입고 있으라는 권면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사건들에 대한 정보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건들보다는 그것들을 이겨야하는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계시록에 담긴 계시의 주된 목적은 종말의 때에 대한 힌트를 제시해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의 시간표를 작성하도록 돕는 것이 아닙니다. 도둑처럼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항상 준비하며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준비된 성도는 종말의 시기보다 자신의 상태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오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22:7,12,20) 성도들에게 종말론적 기대감뿐 아니라 종말론적 긴장감도 유발합니다. 사탄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은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이런 종말론적인 역사관을 가질 때, 우리는 항상 깨어 마지막 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몸의 수치를 가리는 옷처럼, 거룩함과 의의 옷을 입어 부끄러움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영향력, 돈과 권력과 음란한 문화의 힘 앞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버텨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며 예배할 때마다 영적 싸움을 감당한 십자가의 군병으로서 함께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기셨으므로 우리도 이길 것입니다.
-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기쁨으로 담대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9-13절에서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권면합니다. 사랑 가운데 거하며 사랑을 행하라고 합니다. 성도는 거짓 없는 사랑에 거하며 악을 미워하고 선을 좇으라고 합니다. 서로 친밀히 대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고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며, 소망을 가진 것을 기뻐하며,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에 동참하며, 나그네 대접하는 일에 힘을 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맞이하는 준비는 우리의 몸을 주님의 뜻대로 쓰면 됩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의 몸을 많이 쓰면 쓸수록 나중 몸이 영광스러워집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 봉사, 친교, 구제, 전도에 부지런히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능력을 주실 때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과 물질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혜롭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영원을 위한 투자요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우리에게 상급이 있게 됩니다.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나가면서
다섯째 천사가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은 고통에 신음합니다.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으니 강물이 마릅니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더러운 영을 보내 온 천하의 왕들을 꾀어 세력을 규합하고, 격전지인 아마겟돈에 집결하여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하나님과의 최후 일전을 준비합니다. 마지막 큰 영적 전쟁이 사탄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 공동체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이것은 악의 권세와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무대입니다. 이 전쟁은 주님의 재림으로 종결되고,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던 자리는 그들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쏟으니 성전 보좌에서 ‘되었다’고 큰 음성이 나오면서 삶의 터전인 땅이 무너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큰 성들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본문은 구체적으로 미래에 닥칠 종말적 정황을 ‘전쟁’과 ‘바벨론 종말’이라는 주제를 따라 풀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철저히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한계를 깨닫고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죄악됨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시대가 악할수록 종말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아야 합니다. 미혹되지 않고, 항상 깨어 있으며,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 가운데 주님의 뜻과 구원 그리고 심판에 대해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주님 앞에 담대하게 서시는 귀한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