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세상 끝 날의 두 추수

Author
hgchoi hgchoi
Date
2023-06-0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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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성경구절 : 계시록 14:14-20


추수하니까 제 장인어른인 최거원 장로님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제게 육신의 장인일 뿐 아니라 신앙의 아버지셨습니다. 평화시장에서 오랫동안 광목 장사를 하시다가, 뜻이 있어서 50대 후반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당시 농장을 경영하시던 정용진 장로님이 공항에서 픽업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Fallbrook에 위치한 Rainbow Valley에 정착하셔서 87년부터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평북 영변에서 농업학교를 나오셨지만 미국에 오시기까지 농사라고는 해 본적이 없으셨지만, 타고난 근면과 성실함으로 30년 가까이 채소 농사를 하셨습니다. Rainbow Valley에서 Choi하면 해뜨기 전부터 일하기 시작하고 해가 져서야 일을 마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덕분에 저희 교우들도 수요일 저녁에 나오면서 신선한 채소들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농사는 참 성경적이야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지 않니? 그야말로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이지’오이, 호박, 부추, 깻잎 등을 재배하셔서 LA에 있는 큰 한인마켓들에 이십여 년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직접 납품을 하셨습니다. 우리 농장에서는 깻잎이 제일 효자라고 하셨습니다. 일 년 내내 큰 기복 없이 꾸준히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뮤리에타 한인장로교회를 우리 교회보다 일 년 먼저 개척하시고 장로로서 잘 섬기셨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벌써 일 년이 되어갑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 영적 추수장면을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견디는 자와 불신자의 극명한 삶을 대조하기 위함입니다. 13장에서 요한은 삼위 하나님을 모방하는 사탄의 세력, 즉 붉은 용과 바다 짐승, 땅 짐승이 합세하여 믿는 자와 교회를 박해하는 환상을 언급했습니다. 14장 1-5절에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을 상징하는 144,000명을 통한 교회의 정체성을 언급하고, 6-20절에서 추수에 초점을 맞춥니다. 본문은 6~13절을 발전시킴으로써 최종적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이 메시지는 짐승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려는 1세기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신앙의 순결을 더욱 힘써 지키려는 결단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세상 끝 날에 어린 양의 표를 받은 자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택함 받은 백성답게 살면서 훗날 주님 앞에 평강 가운데 서시기를 바랍니다.

땅의 곡식 추수(14-16절)
요한은 1:13에서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신 승리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14절에서 언급한 “흰 구름 위에 앉아계신 인자와 같은 이”는 다니엘서 7:13의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 같은 이’를 배경으로 합니다. 구름은 영광과 위엄을 상징하는데(출 16:10; 24:15-16), 여기서 ‘흰 구름’은 수송 수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것을 강조합니다. 통치자의 주권을 상징하는 ‘금 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세계를 심판하실 왕적 권세와 신적 영광을 가지신 주권자임을 나타냅니다. 이 모습은 인자 같은 이가 권세와 영광으로 통치하심을 묘사한 다니엘 7:14을 반영합니다. ‘예리한 낫’은 믿는 자를 확실히 구원하시고 불신자를 확실히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옵니다. 여기에서 ‘성전’은 하늘 성전을 가리키므로 성전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 천사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대행자임을 시사합니다. 그가 ‘인자와 같은 이’에게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라고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휘둘러 거두소서’는 직역하면 ‘보내어 추수하소서’입니다. ‘보내다’와 ‘추수하다’는 문법적으로 종말에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심판행위를 의미합니다.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는 직역하면 ‘왜냐하면 땅의 수확물이 익었기 때문이다’입니다. 심판 수행의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이에 인자 같은 이가 낫을 휘두르자 땅의 곡식이 거두어집니다. 이는 곡식 추수가 하나님이 택하신 성도들을 모으는 것, 즉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3:12에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고 고난 가운데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공생애 기간의 예수님의 모습과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천하만국을 통치하시다가 마지막 때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확연히 대비됩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인자는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불신자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때가 무르익으면,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구원과 심판으로 완성됩니다.

땅의 포도 추수(17-20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 성전으로부터 나옵니다. 15절의 천사를 6절에서 영원한 복음을 전한 천사로 본다면, ‘또 다른’천사는 8절에 언급된 둘째 다른 천사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천사도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습니다. 18절에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라고 불립니다. 그는 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은 천사를 생각나게 합니다(8:5). 하늘 불은 심판의 수단입니다(눅 9:54; 히 10:27). 10절에서 셋째 다른 천사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천사들이 8~13절에 언급된 천사들과 동일하다고 한다면, 불을 다스리는 세 번째 다른 천사가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첫째와 둘째 다른 천사가 하늘 성전에서 나오는 반면 세 번째 다른 천사는 성전 안에 있는 제단에서 나옵니다. ‘그 제단’은 보좌 앞의 분향단을 가리킵니다. 이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가지고 나온 불이 제단 불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단에서 나온 천사는 성전에서 나온 천사를 향해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말합니다. 직역하면 ‘땅의 포도나무의 포도송이들을 모으라’입니다. 곡식과 마찬가지로 포도송이도 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포도가 익었다는 것은 악한 자들의 불신과 죄악이 절정에 달하였고 성도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최후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시사합니다. 구약에서 포도 수확과 포도주 술틀은 심판을 상징합니다(사 63:1-6; 욜 3:13; 애 1:15). 둘째 다른 천사가 낫을 휘둘러 죄로 얼룩진 포도송이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지는 것으로 보아, 포도 추수는 땅의 곡식 추수와 달리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비슷한 표현이 계시록 19:15에도 언급됩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을 것입니다. 틀에 던져진 포도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삶을 자기만족과 악으로 채우며 제멋대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진한 만큼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역시 진하고 혹독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로 인간의 배은망덕한 행위와 악독을 참아 오시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폭발하는 날, 마치 농부가 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듯이 악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결과 포도가 틀에서 으깨지듯 하나님을 모욕하며 살던 죄인들이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순교한 영혼들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6:9-10). 천사가 성도의 기도를 금 제단에 드렸습니다(8:3). 이를 종합해 보면 순교한 영혼들의 기도가 어떤 식으로든 이 심판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거하는 ‘성 안’과 달리, ‘성 밖’은 심판의 장소입니다. 백성을 속량하려고 ‘성 밖에서’죽임을 당한 어린양 예수(히 13:13)를 거절한 이들은 ‘성 밖에서’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20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맹렬하게 집행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먼저 포도주가 포도 틀에 들어가 밟혔는데 그 틀에서 나오는 것은 포도즙이 아니라 피였습니다. 악인들은 그 피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말의 굴레, 즉 말의 목까지 올라갔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까지 넓게 퍼졌습니다. 포도송이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땅에서 피를 흘리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큰 전쟁으로 인한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림을 암시합니다. 1 스다디온은 약 600ft이니까 1600 스다디온은 약 300km로서, 팔레스타인 땅의 남북의 길이에 해당합니다. 십사만 사천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듯이, 이 숫자도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천육백은 땅의 네 모퉁이를 떠올리는(7:1) 4와 4를 곱한 수에 100을 곱한 값입니다.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의 양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심판의 대상이 그만큼 많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심판의 강도가 그만큼 세다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은 준엄하며 철저할 것입니다. 종말론적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반영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악을 영원히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악이 관영해질 때 그 악을 제거하십니다.

우리의 자세
- 심판의 날이 다가옴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끝이 존재합니다. 마지막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추수의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추수의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심판의 날은 반드시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히 9:27). 때가 이르기 전에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에 보이는 세상 것만을 따라 살 것인가 보이지 않는 믿음을 따라 살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구원의 복을 받든지, 심판의 저주를 받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장차 갈 곳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한 믿음의 선진들이 열거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고난과 핍박과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당해도 믿음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살면서 심판 날 주님 앞에 평강 가운데 맞이하도록 믿음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추수의 주권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 때, 우리를 바로 알고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은 흰 구름이 있는데,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구원과 심판이 있을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와 같은 이는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금 면류관을 쓰신 것은 예수님이 영원한 왕, 통치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손에 예리한 낫’을 가지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마지막 때의 추수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추수하시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십자가 보혈로 구속하신 자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거두어들이십니다. 곡식을 추수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가라지에 대해 심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곡식을 거둬들이고 난 후에는 거라지를 모아서 묶어다가 불사르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을 무참히 짓밟고 순교의 피를 흘리게 했던 악인들은 최후의 심판 날에 혹독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비록 이 땅위의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인내하며 주께서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이루시고 기도에 응답하실 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추수는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심판을 의미합니다. 심판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성도들에게 심판의 때는 구원의 날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천국 창고에 들어갈 알곡을 한 톨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거두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틀 속에서 으깨져버리는 포도송이처럼 멸망의 길을 향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스스로를 믿음으로 평가하고 심판의 날이 오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포도 비유를 사용하시는 경우 대부분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사 5:2; 눅 6:44). 하나님은 당신이 베푸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때 분노하십니다(사 5:5; 63:3). 죄와 불의가 관영하고 악인들이 번영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잠시뿐이며 그들에게 영원한 고통과 형벌이 예비 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빛 가운데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내와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성도의 특권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겪는 희생에 대한 대가가 하늘의 상급입니다. 성도는 잠깐 동안의 쾌락을 위해 타협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고 힘써야 합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만을 누리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할 때, 하나님 앞에서 면목이 없게 될 것입니다.

나가면서
이단들이 성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지진이나 기근 같은 재앙이 일어나고 신앙의 핍박이 있는 것이 말세의 징조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말세는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영광중에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본문은 세상 끝 날에 있을 두 추수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땅의 곡식’, 즉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추수되어 구원을 얻는 반면에, ‘땅의 포도’즉 짐승에게 속한 자들이 추수되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고난 받는 하나님 백성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만, 사탄의 세력은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종말론적 구원과 종말론적 심판은 같이 진행됩니다. 종말에는 두 세계로 나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양과 염소(마 25:32),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마 25:1-13),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마 25:14-30), 데려감을 당할 자와 버려둠을 당할 자(마 24:40-41), 알곡과 가라지(마 13:30),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마 13:48), 충성된 종과 악한 종(마 24:45-51)으로 나뉩니다. 특이한 것은 중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상급의 대상인가 아니면 심판의 대상인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1-12). 다윗 계보의 메시아이자 역사의 주권자이신 예수님께서 곧 오셔서 신실한 신자들에게 상을 베푸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의인들은 창세로부터 준비된 나라를 상속받고, 악인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히 타는 불에 들어갈 것입니다(마 25:31-46). 진노의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가 온 땅에 퍼질 만큼 철저하고 맹렬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토록 견고한 터가 되시는 주님을 믿고 그분만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내일 두려움의 통곡을 막을 수 없습니다.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요한, 그리고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만이 믿고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을 보여 주는 목적은 단지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지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있을 구원과 심판을 염두에 두고 지금 어떻게 살지를 지혜롭게 결정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그때까지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악할수록 종말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주님 앞에 서시는 귀한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