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권세 있는 두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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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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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계 11:1-14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 중에 모태신앙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겁니다. 또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전도를 받을 때 쉽게 예수님을 영접한 분들도 있겠지만, 철없음과 무지로 인해 전도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다가 가까스로 믿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 아픔을 묵묵히 견뎌 준 성숙한 사람들로 인해 믿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그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먼저 믿은 자로서 아직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인내로서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영혼 구원임을 본문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1장은 여섯 째 나팔 재앙과 일곱 째 나팔 재앙 사이에 존재하는 삽입의 두 번째 부분으로서 성전 측량과 두 증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1장의 핵심 주제는 10장과 동일한 맥락에서 재앙의 시대 가운데 교회가 담당해야 하는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본문에 보면 두 증인이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하지만 이어서 부활 승천하게 됩니다. 두 증인 이야기는 환난의 때에 교회가 당할 핍박과 고난이 무엇이며, 그 와중에서도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난과 핍박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권능(1-6절)
요한은 성전, 제단, 그리고 성전 밖 마당이 있는 한 거룩한 성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요한은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고 그것으로 성전을 측량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거룩한 성’을 문자적으로 보아 주후 70년에 무너진 예루살렘으로 보기도 하고 상징적으로 보아 교회로 보기도 합니다. 이 성의 의미를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성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1장에서 어린양의 신부로 상징되는 거룩한 성이 등장합니다. 21장과 11장은 동일한 성을 말하고 있지만 성의 상태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21장의 거룩한 성은 이미 영화롭게 되고 완성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에 비해 11장의 거룩한 성은 아직 영화롭게 되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 즉 이 땅에서 순례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측량 행위는 에스겔 40-48장의 ‘성전 측량’을 배경으로 합니다. ‘성전 측량’은 하나님이 특별히 성전을 보호하셔서 우상숭배와 각종 배교로부터 안전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 측량되는 것은 신자들이 영적으로 보호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말은 하나님이 교회를 보호하시겠지만, 교회가 세상의 침공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상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마흔두 달 동안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마흔두 달’이란 표현은 동일한 기간의 다른 표현인 3년 반, 1260일과 함께 11장뿐 아니라 12-13장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 기간은 특정한 시기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시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기간 또한 다니엘 7:25와 12:7에서 기인한 것으로, 거기에서 언급된 '한 때 두 때 반 때'는 하나님이 한정하신 종말론적 환난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 기간은 또한 엘리야의 심판적 사역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왕상 17:1). 따라서 ‘마흔두 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가 당하는 박해와 고통의 기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는 초림 이후 생겨났고, 재림이 올 때까지 세상 권세에게 고난 받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지만, 그 환난으로 망하지는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사방에 우겨 쌈을 받을지라도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보존되고 견인될 것입니다. 바울은 위협하는 세력 가운데서도 누리게 될 신자의 승리에 대해 언급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5, 38-39). 세상은 우리의 몸은 죽일 수 있겠지만, 우리의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마 10:28).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에 직면해야 하는 기간 동안 세상에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3-13절은 일종의 비유적 표현으로 두 증인 이야기를 다룹니다. 두 증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두 증인을 마지막 때에 복음 증거를 위해 미래에 출현하게 될 두 사람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복음주의 계열의 학자들은 이 두 증인을 증거 하는 사명을 가지는 교회로 이해합니다. ‘둘’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증거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된 최소 단위를 의미합니다. 신명기에 따르면, 증언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증인 혹은 세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신 17:7; 19:15). 두 증인은 슬픔과 애곡의 상징인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다는 것은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1260일 동안 예언 사역을 합니다. 1260일이라는 언급은 두 증인과 성전 혹은 성전 밖 마당의 관계를 연결시킵니다. 성전 밖 마당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마흔두 달이 1260일이기 때문입니다. 깬일’은 교회의 핍박기인 동시에 회개를 촉구하는 기간, 즉 교회의 복음 증거 기간입니다. 그렇다면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은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사역이 분명합니다.

두 감람나무는 스가랴 4:3의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라는 말씀을 배경으로 합니다. 또 스가랴 4:14에서는 두 감람나무가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라고 합니다. 스가랴 당시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총독이었던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였습니다. 결국 두 감람나무는 왕과 제사장을 일컫습니다. 계시록 1:20에서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합니다. 두 촛대는 교회를 증인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증인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님의 교회 공동체이며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두 증인’이라고 부르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말해줍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사탄이 해할 수 없으며 오직 주님의 권능과 돌봄을 받습니다. 주님의 자녀 된 우리 또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증인이 외치지 않으며, 감람나무가 기름을 내지 않으며, 촛대가 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주님이 주신 특권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5-6절에서 두 증인은 구약에서 위대한 두 선지자였던 모세와 엘리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세상의 세력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가 필연적으로 세상과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권세를 받은 두 증인이 예언하는 동안 누구도 그들을 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리는 것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예언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엘리야의 사역을 연상시킵니다(왕상 17:1; 왕하 1:10,12). 불은 말씀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것과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는 것은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사역을 연상시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없이는 주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주님이 제자들로 하여금 오순절 성경 강림을 기다리게 하신 누가복음 24:49와 그 결과로 주어진 사도행전 2장의 메시지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3년 동안 훈련을 받았고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의 사명이 복음을 지식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 위로부터 능력을 입혀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증인이 되려면 성령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고난(7-10절)
두 증인이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때쯤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전쟁을 일으켜 두 증인을 죽입니다.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은 교회를 대적하는 악한 영적 세력을 가리킵니다.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 치열해지는 영적 전쟁의 양상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죽음이 모든 교회 공동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죽음에 직면할 정도로 큰 고난을 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성전 측량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영혼이 보호된다고 해서 육신의 고통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증인의 시체는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라 불리는 큰 성 길에 방치될 것입니다. 소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죄악의 도시고,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여 재앙을 받은 나라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는 표현에 근거해 큰 성을 예루살렘으로 볼 수 있지만, 계시록 17:18에서 큰 성은 로마를 가리킵니다. 대적들은 두 증인을 너무나 증오한 나머지 두 증인의 시체를 사흘 동안 보면서 무덤에 장사하지도 못하게 막습니다. 사흘 반이라는 기간은 3년 반이라는 박해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두 증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두 증인이 죽어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합니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그들이 두 증인의 죽음을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교회의 영광(11-14절)
3일 반 후 두 증인의 시신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자 그들이 일어섭니다. 11절은 에스겔의 환상을 반영한 구절로(겔 37:5,10), ‘생기’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입니다(창 2:7; 6:17; 7:15,22). 사탄과 그 무리는 두 증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을 당하던 삼일 반 동안만 즐거워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기를 통해서 두 증인이 부활함으로 조롱하던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가 사탄의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일지라도 그 생명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다시 부활하여 일어서게 됨을 암시합니다. 주목할 것은 두 증인의 부활이 오직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주님 때문에 주어지게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그분의 승리가 우리 승리의 전제 조건이 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눈에 보기에 패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분이 패하지 않으셨기에 우리도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하늘에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두 증인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교회의 증언 사역을 인정하셨음을 암시합니다. 두 증인의 시체 옆에서 모욕과 조롱과 멸시를 하던 원수들이 그 광경을 목도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셔서 영광을 얻도록 역사하셨습니다(빌 2:9-11). 십자가 죽음이 끝이 아니고, 후에 부활과 승천과 보좌 통치와 심판과 영광스런 천국이 있습니다. 고난도 모욕도 조롱도 멸시도 잠깐입니다. 그 후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환영이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 힘들어서 희망과 소망을 잃기도 하고, 세상의 힘에 눌려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권세도 죽음을 이기신 그 사랑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두 증인이 하늘로 올라갈 때에 그 악한 성에 지진이 일어나 1/10이 파괴되고 7,000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교회를 핍박했던 자들은 자기들이 핍박했던 자들이 이처럼 영광을 얻고, 자기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며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14:6-7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표현은 회개를 의미하므로, 여기에서도 회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증인의 죽음을 각오한 사역은 회개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것은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어 엎드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빌 2:10-11) 때가 머지않아 성취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둘째 화가 지나갔으나 셋째 화가 속히 올 것이라는 진술은 여섯째 나팔 재앙이 끝났고 일곱째 나팔 재앙이 곧 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두 증인의 고난과 순교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핑계치 못할 근거가 되게 합니다. 교회의 핍박과 환난은 교회가 필연적으로 거쳐 가야 하는 정거장일 뿐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이르게 될 최종 목적지는 부활과 그 이후의 세계 안에서 영광을 누리는 지위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
두 증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정리해 봅니다.
-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두 증인이 가진 능력은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위해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그 능력으로 고난과 순교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성경어디에도 자기 힘을 과시하거나 자신을 입증하는 차원의 능력을 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능력은 세상을 압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을 끌어안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대적에게조차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진정한 희생을 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고 대적을 많이 만납니다. 그러나 두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적들은 강하나 더 강하신 우리 주님이 함께하시고 이길 권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사탄을 무너뜨리고 승리하신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담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밀알의 원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두 증인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고 미련해 보이는 것입니다(고전 1:23). 그러나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 됩니다.
-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고난을 많이 당했고, 예수님처럼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도가 사명을 다할 때까지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게 하십니다. 두 증인, 곧 교회가 세상의 권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증언을 마칠 때입니다. 그들의 죽음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도 같은 영광스러운 죽음입니다. 세상은 진리를 싫어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교회를 핍박하게 마련입니다. 십자가와 죽음이 끝이라면 기독교는 1세기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부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고전 1:23-24). 하나님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수행할 때 핍박과 고난이 오지만 성전 측량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하나님의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피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6:33). 마지막 때가 되고 시대가 악해질수록 세상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겠지만,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기억하고 도우신다는 사실로 인해 고난 받는 성도들은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를 승리의 자리로 이끌 것입니다.
- 최후 승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갔을 때 두 증인은 죽은 지 3일 반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구름을 타고 승천했습니다. 이것을 구경하는 모든 자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두 증인을 핍박하고 죽임으로써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지만, 하나님이 두 증인을 부활시킴으로써 최후의 승리를 주셨습니다. 세상의 권력자와 악한 세력들은 교회를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교회는 비록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합니다(고후 6:9).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교회가 얻을 영광은 곧 주님이 받으신 영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기를 얻어 부활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처럼 교회 역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그들의 원수들의 눈앞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비록 죽일지라도 다시 살리시고 최후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지금까지 임한 재앙 스토리를 정리해보면, 인 재앙을 목도한 교회를 향하여 주는 메시지는 승리를 확신하라는 것이었고, 나팔 재앙을 확인한 교회를 향한 메시지는 불타는 세상 가운데서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11장에서 다루는 두 증인의 사명이야기가 예수님의 걸어가신 사역의 삶의 여정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입니다. 요한은 두 증인이 예수님의 고난, 죽음, 부활, 승천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걸어가신 길을 그대로 따르는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럴 때 교회는 예수님처럼 궁극적으로 승리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이 같은 궁극적 이김은 이 땅위에서의 고난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장차 일어날 일들을 마음으로 준비하고, 그 일이 일어날 때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탄의 승리는 잠시뿐이고 성도들은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그 승리는 영원하다는 점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어떤 영광을 받으셨던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광야와도 같은 인생길을 기쁨의 찬송을 부르며 걸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고 생명보다 사명을 귀하게 여기는 열정으로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훗날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