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네가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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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3-27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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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계 10:1-11


만약 삶의 시간이 단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삭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를 마지막으로 실컷 먹어보려 하겠습니까? 자기에게 손해 끼친 자를 저주하겠습니까? 자기으ㅟ 재산을 어떻게 나누라고 자녀들에게 급하게 유언을 하시겠습니까? 9.11 테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남긴 문자와 마지막 통화를 보면 공통점은 가족을 사랑한다는 메시지였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큰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가지 못한 것을 자책하거나 더 황홀한 쾌락을 경험하고 살지 못한 것을 인해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해야 할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과, 사랑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좀 더 사랑해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니 환난과 박해의 위협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예언하라’다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고 여전히 실행해야 합니다.

여섯째 나팔 이야기가 끝났으니 일곱째 나팔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일곱째 나팔은 11:15에야 등장합니다. 10장은 소위 막간 혹은 삽입이라 불립니다. 계시록은 단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만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삽입 부분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신자의 미래와 운명을 말해줍니다. 세상이 재앙으로 끝나지 않고, 회복으로 끝나게 될 것을 알려줍니다. 고난 받는 주의 공동체에 대한 위로와 소망을 제시합니다. 교회가 사탄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주님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동안 살펴본 것을 한번 복습해 볼까요? 계시록 6장은 일곱 인 재앙의 시작으로 어린양이 인을 떼실 때마다 심판의 강도가 세집니다. 7장은 일곱 인 재앙 사이에 삽입된 장입니다. 144,400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언급하면서 하나님은 극심한 재앙 가운데서도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며 고난 받는 교회 공동체를 위로합니다. 8장에서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자 제단 불이 지상에 떨어져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나면서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됩니다. 첫째 나팔 재앙부터 넷째 나팔 재앙까지 주로 자연계를 향한 재앙입니다. 9장에서 황충이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2억의 마병대는 사람 3분의 1을 죽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우상에 절하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10~11:14, 12~14장은 일곱 나팔 재앙에 삽입된 부분입니다. 특히 10~11장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어두운 시대 가운데서 주님을 증거하고 드러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한 사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 구원을 얻은 자로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주시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는 차원의 사명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7재앙 시리즈(인-나팔-대접)의 초점은 세상에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재앙이 아니라, 재앙을 당하는 세상 속에 있는 교회입니다. 첫 번째 삽입인 7장에서 교회가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강조했다면 두 번째 삽입인 10~11장은 교회가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장은 여섯째 나팔 재앙 후에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사도 요한이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요한이 천사의 손에 들린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서 먹으니 입에는 꿀같이 달지만 배에는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세상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기에 우리 입에 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으로 인하여 소동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에 대적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며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힘센 천사의 등장(1-7절)
10장은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힘센 천사가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보니’라는 표현은 계시록에서 40회 이상 등장합니다.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최선을 다해 기술합니다. 1절의 ‘힘센 다른 천사’는 5:2이나 18:21에 등장하는 ‘힘센 천사’와 유사합니다. ‘다른’이란 말이 붙은 걸로 봐서는 천상에 힘센 천사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힘센 천사의 모습과 관련지어 언급된 구름, 무지개, 태양, 불기둥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천사에게 부여된 초월적 위엄과 권능을 나타냅니다. 천사는 구름을 입었다고 하는데, 구름(겔 1:7)은 구약에서 흔히 하나님의 나타나심(시 104:3)에 동반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1:7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언급됩니다. 그런데 구름을 천사의 옷으로 표현한 곳은 여기뿐입니다. 천사의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습니다. 4:3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할 때도 무지개가 나옵니다. 또한 힘센 천사의 얼굴을 ‘해 같다’고 묘사합니다. 천사의 얼굴에 반사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계시록 1장의 예수님에 대한 묘사와 일치합니다. 힘센 천사의 발은 ‘불 기둥’같습니다. 이것은 1:15에서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주석 같고’와 연결됩니다. 물론 이런 이미지를 보인다고 이 천사가 그리스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힘센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구속적 메시지를 드러내는 특별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표현이 쓰였다고 보는 게 더 좋습니다.

힘센 다른 천사는 손에 ‘펴 놓은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와 5장에 등장한 두루마리가 같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5장의 두루마리와 달리 10장의 두루마리는 작습니다. 5장의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지만, 10장의 두루마리는 펼쳐져 있습니다. 5장의 두루마리는 어린양이 받지만, 10장의 두루마리는 천사의 손에 있습니다. 5장에 등장한 봉인된 두루마리가 계시의 은밀성을 나타낸다면, 10장에 등장하는 열린 두루마리는 계시의 공개성을 암시합니다. 계시록의 마지막 장에는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22:10). 즉 종말론적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계시가 점점 더 공개성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는 오른발로 바다를, 왼발로 땅을 밟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다’와 ‘땅’은 세상을 말합니다. 밟는다는 말은 통치한다,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 걸쳐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의 영향과 실행이 온 세상에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힘센 천사가 ‘사자가 부르짖는 것같이’큰 소리로 외칩니다. 계시록에서는 중요한 내용이 선포될 때마다 ‘큰 소리’가 납니다. ‘큰 소리’는 예레미야 25:30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포효하시고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며 그의 초장을 향하여 크게 부르시고 세상 모든 주민에 대하여 포도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시리라”그 본문에는 하나님의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습니다. 호세아 11:10과 아모스 3:8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사자의 용맹스런 부르짖음으로 나타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대신해 힘센 천사가 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힘센 천사가 외치자, 일곱 우레가 응답합니다. 이 부분은 시편 29:3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우레는 6:1에는 네 생물의 소리, 14:2에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 19:6에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사자 같은 일곱 우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리는 소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를 직역하면, ‘일곱 우레가 각기 제 소리를 발하다’가 됩니다. 요한이 일곱 우레가 말한 내용을 기록하려 하자,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라는 말이 하늘에서 들립니다.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이 인봉되었다는 것은 그 내용을 시행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4:22에는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종말론적 환난의 날들을 감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는 창조주를 향하여 지체하지 아니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이 말은 일곱 우레가 말한 재앙을 취소함으로써 종말론적 사건들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천사의 맹세(5-7절)
천사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듭니다. 오른손을 드는 것은 맹세할 때의 몸짓입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께 지체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므로 종말의 완성은 그만큼 가까워진 셈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영원하신 분입니다. 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종말을 완성하는 심판주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연관됩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로마서에 따르면,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선지자들의 글을 통해 지금 드러난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입니다(롬 16:25-26).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복음은, 복음을 거부한 자들에게 심판을 의미합니다. 일곱째 나팔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완성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예정되어 있고, 지체되지 않으며,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곧 일곱째 나팔이 불 것이고, 자비가 사라진 최종적인 파괴와 심판만이 세상 가운데 주어질 것입니다. 지체하지 않고 무서운 심판이 세상에 임한다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긴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증인으로 서라(8-11절)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은 하나님, 즉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그 내용은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는 명령입니다. 그 두루마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 어린양 예수님과 힘센 천사를 거쳐 요한에게 전달됩니다. 이런 전달 과정과 그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를 선포할 사명이 요한에게 위임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사의 손에 있던 책은 5장에 기록된 일곱 인이 찍힌 두루마리와는 달리 펴 놓여 있어서 그 책의 내용이 숨겨져 있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요한에게 전해진 그 계시의 말씀은 온 세상을 향해 선포되어야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요한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계시를 바라보는 관찰자였습니다. 요한에게 두 가지 명령이 주어집니다. 먼저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는 말씀은 에스겔 3:1-3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것은 요한이 에스겔처럼 예언적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왜 입에서는 꿀같이 달지만 배에서는 씁니까? 두루마리가 입에서 꿀같이 달다고 한 것은 시편 119:103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읽고 묵상할 때 영혼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시 119:107). 그러나 본문은 이러한 시편 말씀을 더욱 확장시킵니다. 말씀을 먹자 배에서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을 선포하고 행하려 할 때, 핍박과 심적인 고통이 말씀을 먹은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요한이 그 두루마리를 먹었더니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게 되었습니다. 이는 말씀을 깨달을 때의 즐거움과 말씀을 실천하려고 할 때 생기는 고달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의 길은 달콤함과 쓰라림, 기쁨과 부담이 연속되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명령은 10장의 핵심 메시지로, ‘네가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사명의 선언입니다. 요한에게 결연한 의지를 보이시면서, 아무리 고난이 있어도 다시 불경건한 세상, 회개를 거절하는 세상에 주의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계시록은 극심한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쓰였습니다. 누구도 이 세상 권력의 힘으로부터 교회를 구원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고난 받는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는 유배되는 아픔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로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주님은 밧모 섬의 요한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결과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열려진 하늘에서 본 광경은 무서운 진노의 그림, 재앙의 메타포, 심판과 죽음의 처절한 영상들로 가득했습니다. 주님께서 한편으로는 악을 심판해 가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백성들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 주심으로써 요한과 교회를 위로와 소망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첫 번째 삽입 부분인 계시록 7장은 그 위로의 절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침 받은 자들이 어린양의 진노를 피하고 마침내 승리하는 은혜로운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난을 지나 주님의 백성이 누릴 그 충만한 쉼을 하나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는 모습으로 보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목 메이는 감동으로 숨죽이며 종말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었던 요한과 초대 교회 공동체에게 ‘다시 예언해야 하리라’는 명령은 다소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위로는 값싼 위로나 무책임한 현실 도피적인 위로가 아니라 현실 참여를 위한 근거가 됩니다. 이전과는 달리 10장에서는 주님은 요한에게 단순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참여자의 위치로 바뀔 것을 명령하십니다. “너는 ...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아마도 그 말에 대한 첫 반응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시 그 무서운 세상에 들어가라니요? 주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을 알지 않으십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또 많은 사람이 박해를 당하고 고난에 처하여 통곡하는데 어찌 다시 그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십니까?’이에 대한 해답을 두루마리를 먹는 요한의 모습 가운데서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은 무조건 가라고만 하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통째로 삼켜서 소화시켜서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그 삶 안에 녹아내린 경험을 가지는 사람만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 만족, 감격, 그리고 충만으로 나아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
힘센 천사가 작은 두루마리를 요한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 말씀을 달게 먹어야 합니다
요한은 천사의 말대로 작은 두루마리를 먹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상과 인생의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영접하는 자는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이 바뀌고,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요한이 작은 두루마리를 먹자 그 책의 맛이 꿀같이 달았습니다. ‘꿀같이 달다’는 것은 기쁨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의 말씀을 먹었을 때 그 말씀이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고 영혼을 살리는 생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는 생명의 말씀이요, 모든 인생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에 꿀같이 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합니다.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말씀대로 사는 고통을 감당해야 합니다
요한이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 입에는 달았지만 배에서는 썼습니다. ‘배에서 쓰다’는 표현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려고 할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핍박을 당하기도 하며, 세상의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포기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쓰디쓴 고통을 감당해 내는 자가 진정으로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의 말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받은 자는 말씀이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쓰디쓴 고통과 아픔도 감당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할 때 쓰디쓴 고난이 따르지만, 복음의 단맛을 아는 자는 고난의 쓴맛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천사는 요한에게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예언하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새롭게 각인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을 전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의 단맛을 아는 자가 되도록 먼저 먹여 주십니다. 그래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충만한 은혜의 삶을 누리는 자로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감당하게 될 사명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말씀을 먹은 자만이 펼칠 수 있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단맛을 경험함으로써 감당케 하시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경험된 단맛이 쓴맛을 이기게 하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파될 때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고,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받은 자는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의 쓴맛과 단맛을 체험하고,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가면서
계시록 7장이 7인 재앙에 대한 하나의 삽입이었다면, 계시록 10-11장은 7나팔 재앙에 대한 또 하나의 삽입입니다. 10장은 교회의 사명이 악이 번성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요한계시록의 세 주제는 그리스도, 말씀, 교회입니다. 계시록을 말씀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1:1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합니다. 2-3장에 나온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는 귀담아 들어야할 예수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5장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소개합니다. 10장에서는 작은 두루마리를 언급하면서 말씀을 먹어 버리라, 다시 예언해야 하리라 합니다. 요한과 초대 교회 공동체가 다시 예언해야 되리라는 말씀을 실천하려면 자신들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준 상처 때문에 문을 걸어 잠그고 더 이상 그들과 접촉하는 일을 피하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대로 망가져 버릴 것이고, 죽음 앞에서 이 명령을 실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예언하라’는 메시지는 ‘다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후회할 것이 없도록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부어야 합니다. 말씀은 분명 달지만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은 쓰디쓴 고난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이기고 나면 하나님의 위로와 상급이 주어집니다. 요한은 심판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이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뜻에 순종해 말씀을 살아내고 전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선지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여전히 사랑하며 여전히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