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곱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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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Date
2023-03-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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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계 8:1-13



2020년 3월부터 COVID 19으로 인해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세계보건기구 통계를 보면 8억명의 확진자가 생겼습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 시작된 전쟁이 일 년이 지나도록 끝날 줄을 모르고 지금도 치열한 공방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금년 2월에 발생한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말세의 징조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연 재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 때문에 여전히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악을 외면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보여주신 확실한 승리와 미래에 임하게 될 최종적인 승리 사이에서 교회 공동체가 잠시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이 세상의 유혹과 핍박에 넘어지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하고, 더 나아가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아직 주님께로 돌아올 기회가 있음을 알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6장에서는 여섯 개의 인 재앙이 기록되었습니다. 7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8장에서 어린양이 드디어 마지막 일곱째 인을 떼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재앙의 끝이 아닙니다. 일곱 나팔의 재앙이 시작됩니다. 나팔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과 위험한 일에 대한 경고를 알리기 위한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나팔은 거룩한 절기, 안식일, 혹은 위대한 사람의 죽음을 알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나팔은 종말론적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선포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본문에서 이어지는 재앙들을 살펴보면서 마지막 때의 징조와 현상을 바로 알고 시대를 분별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곱째 인을 떼심(1-5절)
6장에서 여섯째 인의 재앙이 등장하고, 7장에서 십사만 사천과 승리한 큰 무리가 묘사된 후에, 8장에서 일곱째 인을 떼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시자, 다른 인을 떼실 때와 달리 하늘에 반 시간쯤 고요가 임합니다. 마지막 일곱째 인의 개봉으로 종말론적 재앙의 절정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을 텐데 뜻밖에 등장한 반 시간의 고요함에 의아해하면서 다음 장면을 숨죽이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고요하다’는 모든 소리가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릴 때 주로 사용됩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을 때의 반응이기도 합니다. 심판 전의 고요하고 적막한 상태를 드러냅니다. 고요함은 성도의 기도가 올려지는 맥락에서 순교당한 하나님의 종들이 구원과 정의를 위해 외치는 기도를 듣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기도와 증언은 천상의 예배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킬 만큼 강력하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고요함 이후에 등장한 것은 특정한 하나의 재앙이 아니라 일곱 나팔 재앙입니다. 뿐만 아니라 7번째 나팔 재앙은 7대접 재앙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7재앙 시리즈들은 독립된 실체라기보다는 서로 밀접한 연관성 가운데서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반 시간의 고요함은 일곱째 인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또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들고 많은 향을 받아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향연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향연’은 응답되는 성도의 기도를 가시적으로 나타냅니다. 레위기 16:11-13에 의하면, 속죄제를 드리는 과정에서 생겨난 향연이 증거궤 위에 있는 속죄소를 가려 죄인의 죽음을 면하게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향연 자체에 효력이 있다기보다 죄 사함 받으려는 자의 기도의 마음을 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 기도는 성도들이 자신을 박해하던 악한 사탄의 세력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속히 임하기를 간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6:10). ‘올라간다’는 망설임이나 치우침 없이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가 되어 하나님의 보좌로 지체 없이 올라갑니다.

단 위의 불을 향로에 담아 땅에 쏟는 행위는 에스겔 10:1~8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우상 숭배로 더러워지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분노가 숯불 재앙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심판의 주관자도 하나님이시고, 심판의 도구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숯불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5절에서 ‘제단의 불을 담다’는 표현은 ‘제단에 있는 불로부터 향로를 가득 채우다’는 뜻입니다. 천사가 땅에 쏟는 행위는 에스겔서에서 베옷 입은 사람이 그룹 사이에서 숯불을 가져다가 예루살렘 온 성읍 위에 뿌리는 것과 동일한 행동이므로 역시 심판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향로가 쏟아지자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도의 기도가 이 땅에서 발생하는 종말론적 심판에 영향을 미침을 암시합니다.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은 어린양을 증언하는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와 둘째 나팔 재앙(6-9절)
8장에는 처음 네 개의 나팔 재앙이 소개됩니다. 이 나팔 재앙의 대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토대이자 환경인 자연계입니다. 자연계에 선포되는 네 개의 나팔 재앙은 처음 네 개의 인 재앙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그 재앙이 땅, 바다, 강, 물, 샘, 하늘에 가해진다는 점에서 이후 나올 대접 재앙의 처음 네 개와도 유사합니다. 첫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셨듯이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구원하시기 위해 유사한 재앙을 이 땅에 내리십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져 땅과 수목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립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지는 첫째 나팔 재앙은 애굽에 우렛소리와 함께 우박과 불덩이가 내린 일곱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출 9:23-24). 첫째 나팔의 재앙에는 출애굽 시 일곱 번째 재앙에 없던 피가 더해졌는데, 이는 나팔 재앙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피’는 살육을, ‘우박과 불’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합니다(사 30:30, 겔 13:13). ‘삼분의 일’은 원래 세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에 해당하는 몫을 가리키는데, 그 외에 두 몫이 더 있음을 내포합니다. 땅의 삼분의 일, 수목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리는 등, 제한한 부분에 재앙이 임합니다. 이처럼 가혹한 재난이라도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한계 안에서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7-13절에 ‘삼분의 일’이란 말이 12번 나옵니다. ‘삼분의 일’만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 심판이 최종적인 심판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두 번째 나팔 재앙은 불붙은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은 ‘큰 산만한 불덩이’란 뜻입니다. 불붙는 큰 산이 우리의 경험으로는 화산일 수도 있고, 유성이나 운석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전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 결과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로 변하고 바다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 삼분의 일이 깨집니다. 둘째 나팔 재앙은 나일 강물이 모두 피로 변하고,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나서 애굽 사람들이 마시지 못했던 첫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출 7:20-21). 계시록을 쓸 당시에 바다는 지중해를 가리켰고, 로마 제국의 경계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언급된 ‘바다’는 온 세계의 대양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배가 파괴된다는 언급을 통해 처음으로 이 재앙이 인간의 희생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앙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 범위를 삼분의 일로 제한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보고 듣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가 기후 변화를 일으켜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경종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세상에 닥칠 종말을 앞두고 세상을 깨우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와 넷째 나팔 재앙(10-12절)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불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샘물에 떨어져서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으로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이 별의 이름은 ‘쑥’인데, 쑥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쓴 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에서 정의가 실종된 경우(암 6:12), 우상을 숭배한 결과(신 29:17-18), 하나님이 악을 징계하시는 경우(렘 9:15; 23:15) 등에 등장합니다. 두 번째 나팔 재앙이 바다에 피해를 준다면, 세 번째 나팔 재앙은 물 샘을 오염시킵니다. 이것은 출애굽 당시의 첫 번째 애굽 재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물이 쑥이 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렘 9:15)의 말씀이나,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렘 23:15)의 구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이 오염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생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넷째 나팔 재앙은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어두워지고, 이로 인해 낮과 밤의 삼분의 일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재앙은 사흘 동안 애굽 온 땅이 흑암 속에 있었던 아홉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출 10:22-23). ‘타격하다’는 어떤 사람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삼분의 일’이란 말 그자체가 보여주듯이 하나님이 오래 참으셔서 아직은 세상을 완전히 멸하지 아니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비록 죄인이라도 돌이켜 모두 구원을 얻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도 또한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구약 성경에서는 하늘의 어두워짐이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깊게 관련되어 있으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때 대낮에 어두움이 온 땅을 뒤덮었습니다. 우리 또한 영적 갈증과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그로 인한 막강한 피해는 우리에게 두려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재앙이 닥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전한 보호를 받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메마르며 어두워지지만, 주님이 우리의 생수가 되시고 빛이 되시기에 우리는 세상의 어떤 변화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셔서 어떤 재앙이 닥치더라도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참평안이 있습니다.

남은 재앙들(13절)
13절은 첫 네 나팔과 다음 세 나팔 사이에 위치하여 구분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네 가지 재앙이 있은 후에 독수리가 등장합니다. 앞의 재앙들이 자연계를 통하여 인간에게 경고하는 것이라면, 나머지 세 재앙은 인간에게 직접 고통을 주는 재앙입니다. 경고에서 화로 발전한 것입니다. 독수리는 그 신속함과 힘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자 역할을 하는 새로 나타납니다. 독수리가 날아가면서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라고 외칩니다. ‘화’로 번역된 ‘우아이’는 극한 재난과 고통을 의미하고, 동시에 ‘독수리가 우는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이기도 합니다. 땅에 사는 자들에게 앞으로 임할 화가 세 번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 재앙을 가리킵니다. 계시록에서 땅에 사는 자들은 부정적으로 등장합니다. 땅에 사는 자들은 성도들을 죽이고(6:10), 짐승에게 경배하고(13:12) 큰 음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자들입니다(17:2). 땅에 속한 사람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세상이 무너지는 날에 심판을 받습니다.

* 우리의 자세
- 충성된 기도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성도의 기도가 향으로 하나님께 상달되고 그것이 땅에 쏟아지니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발생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 줍니다. 주목할 것은 구원이나 심판 같은 인간의 역사가 성도들이 하나님에게 올리는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문구와 맥을 같이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혼자서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성도들과 함께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의 사역이 되게 하시고, 그 사역에 우리를 참여시켜서 우리에게 존귀와 영광을 받아 누리게 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충성의 표현입니다. 이 사실은 로마의 박해 속에서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초대 교회 공동체에게 큰 용기를 제공해 주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 메시지는 암담한 현실 가운데서 위로를 얻게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만날지라도 중요한 것은 하늘 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향연이 되어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도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성도들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영광을 위해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해야 합니다.
- 환난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올 심판의 날을 준비시키기 위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째 봉인이 열리자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땅과 바다, 강과 하늘이 철저하게 파괴되며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 세상의 질서가 붕괴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말세의 현상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회개와 구원을 위한 외침의 소리는 마지막까지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계시록은 세상에 끝이 있으며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떠서 심판의 실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등불을 준비한 열 처녀처럼 다가오는 환난의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의미는 “오실 주님을 항상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언제 오시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을 기다리며 주인이 맡기신 권세를 가지고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점도 없이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다가올 심판의 날을 미리 준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베푸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점점 더 강도가 심해지는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을 보면서, 우리가 예수님 밖에 있을 때에 바로 이 진노와 화의 대상자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과 관계없는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기세등등한 세상의 세력들이 우리를 위협하게 될 때 우리는 그들 앞에서 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세상 앞에서 패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그러나 본문은 세상이 결국 우리 때문에 무너져 버린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역사에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위기의 세상 가운데서 성도들이 갖게 되는 담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두 눈으로 악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목도케 하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소망 없는 자처럼 탄식하며 주저하지 말고 대장부처럼 일어나 세상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합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의 위협과 공격 때문에 망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삼분의 일’이란 말 그자체가 보여주듯이 아직 하나님의 심판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셔서 아직은 세상을 완전히 멸하지 아니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비록 죄인이라도 돌이켜 회개함으로 모두 구원을 얻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베푸신 은혜 감사하면서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예기치 못한 환난이 닥칠 때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환난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의 반응은 다릅니다. 미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신자들에게 종말에 있을 심판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들은 성도는 깨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열 처녀와 같이 다가올 심판의 날을 지혜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청지기로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을 섬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산위의 도성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의지하여 주눅 들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 이김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장차 있을 천국의 혼인잔치에 다 참여하여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