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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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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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요 20:26-31


성탄절은 거룩한 분이 태어난 절기라는 뜻입니다. 아담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사건보다 더 위대한 탄생은 없습니다. 성육신 사건은 전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독생자, 즉 독특하신 분이라 부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시선은 온통 주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빠진 우리만의 행사를 치르고 있습니까? 성탄절은 주님만이 주목을 받으셔야 하는 절기입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절기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금년 성탄절에는 유다서, 히브리서, 요한복음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오셨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그분을 바로 믿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한 작품의 기록 목적은 저자가 왜, 그리고 어떻게 저작을 했는지를 드러내는 지침이 됩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의 기록 목적이 1:4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누가는 예수님에 대한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피고 차례대로 써서 보냈습니다. 그 결과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로마서 15:24을 보면 바울의 로마서 서술 목적을 짐작케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사도 바울의 최종 목적지는 로마가 아니라 스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로마 교회를 방문해서 성도들과 교제한 후에 로마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스페인으로 떠나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13을 보면 그 편지를 쓴 목적이 나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요한일서를 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을 가장 잘 이해하려면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을 알아야 하는데 20:30-31에 담겨 있습니다. 거기서 요한은 두 가지 사항을 전달합니다. 첫째, 요한복음 저술 목적에 맞도록 하기 위해 선별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즉 기록되지 않은 ‘다른 표적’이 많이 있지만, 그들 중에 일부 표적을 선별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렇게 저술된 요한복음을 읽는 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도마의 의심과 신앙고백(24-29)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식을 제자들에게 듣고도 도마는 자신이 직접 예수님 손의 못 자국과 옆 자리의 창 자국을 확인해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던 부활의 약속도 믿지 못하고, 동료들의 간증도 믿지 못했던 도마의 마음은 철저히 닫혀 있었습니다. 8일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인 집에 다시 찾아오셨는데 이번에는 도마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분명히 문이 잠겨 있었지만 부활체를 입은 주님이신지라 아무 문제없이 방안에 들어서시면서 전과 같이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도마의 마음에는 당연히 평강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경험을 더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마가 말했던 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손을 보이시고 자신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믿음 없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믿지 않는 상태를 중단하고 믿는 자가 되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에서 이 이야기의 핵심은 ‘믿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서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주님’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이어지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유대인들이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칭호인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인 예수님께 적용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두려움과 의심 가운데 있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애냐하면 부활하신 주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토대가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29절)
주님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종류의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보고 믿는 믿음과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입니다. 보고나서 믿는 믿음은 눈에 보이는 증거와 현상에 근거를 둡니다. 이러한 믿음은 제한적이며 잘못되기 쉬운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고 자신의 인식 범위 밖의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와 이유를 추구하지 말고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보고 믿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믿는 것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지 않고 믿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도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보지 않고 믿어야 할 후대의 독자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경험과 이성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위에 두어야만 의심의 빗장을 풀고 더 넓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도마와 달리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그 부활의 현장을 직접 우리의 눈과 손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보이는 대로 믿지 않고, 느끼는 대로 믿지 않고, 믿고 싶은 대로 믿지 않는 것이 복된 믿음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은총이며,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예수님이 구세주이고 하나님이라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주님과 하나님으로 믿고 사랑하는 우리는 이미 하늘의 엄청난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선별된 표적(30절)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을 언제나 표적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그 어떤 기적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분리되면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자신이 요한복음서에 기록한 표적들은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행한 많은 일들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앞에서’라는 전치사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직접 눈으로 보았음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21:25에서 만일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일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 가운데 일곱 개만을 선택해서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선별된 표적들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 믿음을 갖게 하려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2:1-11), 성전 청결 사건(2:13-25), 신하의 아들을 살리심(4:46-54), 38년 된 중풍 병자를 고치심(5:1-18), 오병이어(6:1-15), 시각 장애인을 고치심(9:1-41), 나사로를 살리심(11:1-57)입니다. 표적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성품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일곱 개의 표적 후에 표적 중의 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부활이 마지막으로 소개됩니다.

기록 목적(31)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단지 예수님의 생애를 기술하는 데 있지 않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증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게 하고, 그 결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성경 전체의 기록 목적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그리스도 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딤후 3:15-16). 생명을 얻는 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들이 그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입술로 증언하고 고백했는지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을‘하나님의 어린 양’(1:29),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3:2), ‘그리스도’(4:29), ‘영생의 말씀’(6:69), ‘하나님의 거룩한 자’(6:69)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기 계시의 어법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나는 ~이다”라는 표현이 7번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떡’(6:35,48,51), ‘나는 세상의 빛’(8:12; 9:5), ‘나는 양의 문’(10:7,9), ‘나는 선한 목자’(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 ‘내가 참 포도나무’(15:1).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분이시고,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명, 즉 세상 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냄 받은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배경에서 이해해야 하는 개념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특정한 직분의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이 세 가지 직분의 원형이 되시는 분, 하나님께 직접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세우심을 입은 메시아이심을 깨닫도록 인도해 주는 표지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너희로 믿고”라는 표현에서 ‘믿고’는 2인칭 현재분사입니다. 현재 분사는 동사가 나타내는 활동이나 상태, 움직임 등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요한은 현재 분사를 사용해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한 순간의 일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번역된 부분은 현재 가정법인데 이것 역시 활동이나 상태, 움직임 등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즉, 요한복음은 현재 믿고 있는 자들이 계속 믿도록 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요한복음의 문학적 구성으로 볼 때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 아니라 신자들을 대상으로 쓴 복음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다’는 것은 회심보다는 이미 믿는 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믿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표적을 경험한 이들 중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2:11). 가버나움의 신하의 아들이 죽을병에 걸렸던 사건에서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4:52-53) 오병이어 표적 이후에 시몬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68-69)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 시각 장애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9:35-38).

표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갈등, 의심, 거절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베데스다 환자를 고치신 후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습니다(5:15-16). 오병이어 표적을 경험한 무리는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자기를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하며 비방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6:14-15, 26, 41-42, 66). 초막절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9:40-41) 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계속해서 믿음을 지니고 그 안에서 자라나서 예수님의 이름에 힘입어 생명을 얻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10:10에 의하면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 나라가 개인의 삶에 풍성하게 역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라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은 죽은 다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생명의 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도 눈에 보이는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주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두려움 가운데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을 선포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누려야 합니다.

도마와 달리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없는 우리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 말씀으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예수님이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두 고백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는 점입니다. 도마는 비록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최후의, 그리고 최고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1장에서 이미 하나님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1:18). 도마가 이것을 신앙고백으로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이라는 말에서 시작하여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란 말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구세주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을 직접 보거나 만난 경험에 기초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신앙적 회의와 의심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며, 더 확실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생깁니다. 따라서 성도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기초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 말씀을 실천하는 삶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또한 말씀 사랑과 예수님 사랑은 비례합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면 알수록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날마다 말씀을 먹고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며 주님을 더욱 깊이 알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며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과거에 고백했다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 순간 새롭게 고백해야 하고 삶을 통해 늘 확인되어야 됩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나서 신앙고백을 했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듣는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엡 2:8).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생을 누리는 것은 결국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을 주인으로 매 순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생각은 긍정적이 되고 우리의 마음에는 소망이 솟아나며 우리의 행동에는 언제나 활력이 넘쳐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서 사명자로 사셨다면,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바통을 이어받아 영혼구원의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삶 속에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할 뿐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마음에는 평강이요 삶 속에서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며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어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가면서
요한복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를 감당케 하심으로 구원 계획을 완성하려고 하셨음을 전해줍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 ‘영생’곧 구원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고, 복음의 초대를 받는 사람은 물론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라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이신 인격과 사역을 정확히 알아 구원받은 자들로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대가 악할수록 종말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때를 분별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명에 충실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면서 영광중에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나심을 기념하는 성탄절에 충성스런 예수님의 종, 아름다운 경배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