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감사자의 자세

Author
hgchoi hgchoi
Date
2022-11-13 21:25
Views
106
성경구절 : 신명기 16:13-17



신 16:13-17 감사자의 자세

10여 년 전에 한국에 있는 포스코의 직원들이 감사라는 긍정적 언어에 대한 효과를 살피는 실험을 했습니다. 양파 두 개를 준비하고 직원들이 매일 한 양파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다른 양파에는 ‘미워, 나빠’등의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들은 양파는 싹이 잘 나왔는데 비해, 부정적인 말만을 들은 양파는 싹이 거의 나오지 않거나 썩어버렸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의 핵심 중의 하나가 감사인데 왜 감사하지 못할까요?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기보다 현재 없는 것,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을 헤아려보면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습니까? 분주한 삶이지만 우리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을 살펴보며 감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해를 돌아볼 때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어떤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까? 그 감사를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금주와 다음 주는 감사를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세 번의 큰 절기를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절기입니다. 이어 오는 절기가 유월절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무교절인데 그 기간에 있는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그해 추수한 보리를 인해 감사하는 맥추절입니다. 초막절은 추수가 끝난 후에 타작한 곡물과 새 포도주를 거두어들이며 하나님의 풍성하신 공급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히브리 종교력으로 7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지키되 마지막 날 곧 여덟째 날에는 절기를 마치는 제사를 드립니다(레 23:36). 태양력으로는 9~10월에 해당합니다. 초막절은 출애굽 후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 광야에서의 장막 생활을 기념하는 종교적 의미와 한 해 동안 토지의 소산물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농경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해의 모든 농산물을 거둬 타작한 후 창고에 저장을 마친 후 지켰기에 ‘수장절’이라고도 부르며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과 그 의미가 비슷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 동안 나뭇가지와 잎사귀로 지은 초막에서 지내면서 광야 생활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마침내 가나안에서 풍요롭게 평안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초막’은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동안의 장막 생활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초막절을 지키게 한 또 다른 이유는 가나안에 정착한 뒤에 나타난 새로운 세대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모세 이후 거의 천 년 동안 초막절을 지키지 않다가 느헤미야 시대에 가서야 초막절 지키는 것을 회복했습니다. 초막절의 신약적 의미는 우리가 과거에는 죄의 장막에 거하면서 소망 없이 지내던 자들이었으나 현재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자들이 된 것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주일마다 감사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한 주일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이요, 추수감사주일에 특별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 베푸신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깨달으며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 언급된 초막절 규례를 통해 어떠한 자세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온전히 즐거워하라(13-15절)
하나님은 초막절을 모든 백성과 함께 지키라고 말씀하시면서 잔치에 참여할 자를 명시해 주셨습니다. 가족 구성원(부부, 자녀, 노비)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레위인, 객, 고아, 과부)이 포함합니다. 아무런 기업이 없는 레위인이 절기에 참여하는 것은 생활과 사역에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객’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타국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전쟁 혹은 기근으로 종족을 떠나 이스라엘로 들어온 자들로, 토지와 소유와 결혼에 관한 법적인 관리가 없어 사회적인 약자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대표적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초막절에 그들을 언급하신 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모든 절기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일 뿐 아니라 동시에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15절은 어디에서, 어떻게 초막절을 지켜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초막절은 다른 절기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지켜야 합니다. 성소에서 절기를 지키는 것은 여호와 앞에서 그의 임재를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성소는 훗날 하나님이 정하신 중앙 성소, 곧 예루살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여호와로 인해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라고 고백했습니다. ‘온전히 즐거워하라’를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확실히 기뻐해야 한다’가 됩니다. 초막절은 한 해의 수확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절기이므로 당연히 큰 즐거움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초막절에 하나님이 주신 복을 인하여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복 주시는 주체인 여호와 하나님을 즐거워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세(16-17절)
이스라엘의 종교력은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 세 절기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이 세 절기는 각각 추수기와 관련이 있으며,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드리기 위해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들은 중앙 성소에서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물론 세 절기는 모두 출애굽의 구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남자가 참여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남녀 구분, 사회적 신분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기뻐하라는 15절 말씀과도 대조됩니다. 따라서 ‘남자’라는 언급은 남자에게 부여된 의무, 곧 가정을 대표해 공동체에 참여하는 언약적 의무를 강조합니다. 절기의 절정은 여호와가 택하신 성소에서 여호와를 뵙는 것입니다. ‘뵈옵다’는 동사는 보이지 않던 어떤 대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다’가 됩니다. 하나님이 장자로 택하신(출 4:22)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이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면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이웃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절기를 지킬 때는 각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힘이 닿는 대로 예물을 준비해서 나오라고 권면합니다. ‘빈손’에 대한 언급은 희년에 해방된 종에게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빈손’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중적 책임을 보여 줍니다. 곧 하나님이 주신 복을 인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드리고 수평적으로는 연약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예배자의 형편을 고려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이 절기들을 지키면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며 동시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셔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신 은혜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 힘대로”를 직역하면 ‘그 손의 선물을 따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은 복을 받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풍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 우리의 자세
본문은 절기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의 감사생활과 연결시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감사자가 되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1)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의 말씀이 모세를 통하여 모압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질 때에 출애굽을 경험했던 광야 제일 세대는 광야에서 거의 사라지고 출애굽 할 때 20세 이하였거나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이 세대가 이스라엘 백성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한 제 2세대가 가나안을 점령하여 정착할 때쯤 제삼 세대가 등장하게 됩니다. 따라서 첫 소산의 예물을 드리면서 의식을 행하는 것은 가나안에 정착하는 광야 제이 세대가 그 동안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기 위함이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의식을 통하여 가르침으로써 자손 대대로 조상들이 믿던 하나님을 믿고 그분과 더불어 지속적인 관계를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표현이 ‘네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바알이나 아세라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했으나 하나님은 끈질긴 사랑으로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기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소산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 된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는 그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감사하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은혜를 입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잊어버려서 제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나간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시편 136:24-25절을 보면,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사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정복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할 때 본인들뿐 아니라 그들의 자식들도 듣습니다. 가나안의 복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 세대의 땀 흘림 때문인 것을 자식들에게 들려줍니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에 대한 회상이 없다면 새로운 세대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조상들의 신앙 여정을 알 리가 없습니다. 자식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풍요가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여기며 교만에 빠질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추수한 열매로 감사의 예물을 드리면서 그 동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들을 되새기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회고하였습니다.

‘감사하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야다’는 문맥에 따라 ‘찬양하다’혹은 ‘고백하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구약에 나타난 감사는 찬양과 신앙의 고백 혹은 죄의 고백인 동시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셨는지 믿음의 눈으로 보고 고백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물질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께 드리는 진실한 믿음의 고백 위에 참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미국에 와서 이민자로서 뿌리를 내린 것이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님을 자식들에게 들려줌으로 그들도 부모들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신앙 간증은 그들의 마음 밭에 뿌려지는 믿음의 씨앗이 됩니다. 또한 씨만 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삶을 통해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예배자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를 책임지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설교에 이어 성찬식이 행해집니다. 성찬식을 eucharist라고 하는데 ‘thanksgiving’의 뜻을 가집니다. 누구에게 감사합니까?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인 치시고 능력을 주신 성령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성만찬의 자리가 이루어지도록 주선하신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성만찬을 직접 시행하신 분은 성자 하나님이시고 성만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깊은 의미를 느끼도록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농사지어 거둔 수확물 중에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거둔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감사가 됩니까?
- 각 사람이 감사에 참여합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회상함으로써,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추상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고 우리의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 구별된 장소로 나아갑니다
감사절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신 소득과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만 의미가 두어서는 안 됩니다. 소득과 물질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별된 예물을 가지고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즉 구별된 장소로 나아가 드렸습니다. 오늘도 성도들은 구별된 예물을 가지고 구별된 장소인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눕니다
감사 절기의 특징은 이웃과 더불어 감사 절기의 풍요와 기쁨을 함께 나누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회의 가난하거나 소외된 계층과 더불어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셨습니다.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레위인, 자기의 소유가 없는 나그네, 농사지은 것 없는 과부와 고아와 즐거움과 물질을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같으면 나이가 드셨거나 혼자 계셔서 외로우신 분들, 건강이 안 좋으신 분들, 집을 떠나 있는 학생들이 해당됩니다. 이번 감사절에는 연약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성찬이 주님의 몸을 먹고 마시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성찬을 통하여 주님을 기념한다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함께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제’를 의미하는 koinonia에는 ‘구제’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인한 즐거움이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교회를 넘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쳐야 합니다.
-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립니다
초막절의 제물은 특히 소산에 대한 감사 제물이기에 하나님께서 받은 복을 따라 드려야 했습니다. “그 힘대로”라 함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함을 일컫습니다. 자원하는 심정, 기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찾으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과부가 자원하여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을 칭찬하셨는데 그것은 그 여인이 돈의 양보다 그 마음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봉헌을 할 때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고후 8:2)를 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얻는 기쁨만 누리는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내 삶의 것을 드리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절기임음을 기억하고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나가면서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게 되고 나 자신과 가정과 이웃과 교회 내가 속한 공동체에 기쁨을 낳게 합니다. 2022년도도 이제 한 달 여 남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금년에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된 것, 건강을 지켜주신 것, 가족을 지켜주신 것, 직장을 지켜주신 것, 좋은 이웃과 교우를 만나게 해주신 것, 등등. 더욱이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살다 보면 건강이 이상이 있거나 상처를 받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구약에서는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선포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감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범사에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지소산으로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의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풍성하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들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 속에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한다는 청지기 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감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해 드릴 수 있는 신앙의 응답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의 반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가족이나 친지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더욱 체험하시고 영육 간에 더욱더 윤택하게 되고 더 많은 감사의 열매를 거두시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