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두 번째 약속의 성취(1)

Author
hgchoi hgchoi
Date
2022-10-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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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삿 14:1-20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니 부모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반대합니다. 부모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응입니다. 그럼에도 삼손은 자기가 그 여자를 좋아하니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우깁니다. 결혼과 같은 큰일을 부모와 의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는 삼손과 같은 자녀가 있다면 그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때로는 우리도 알게 모르게 삼손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생각만을 통보하듯이 말한 적은 없습니까?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황은 최악입니다. 이 난국을 타개하려면 강력한 사사가 세워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택함 받은 삼손이 과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자입니까?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삼손은 사사들 중에 가장 흠이 많은 자입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스라엘과 같이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했고, 술과 사체를 멀리해야 하는 나실인의 규칙도 깨뜨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여호와께서 하신 세 가지 약속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보여 줍니다.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는 첫째 약속은 마노아의 아내가 삼손을 낳으면서 13장에서 성취됩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하리라는 두 번째 약속은 14-15장을 통해 성취됩니다. 그리고 삼손이 평생 동안 나실인으로 있으리라는 약속은 16장에서 성취됩니다. 결국 삼손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으로 인해 삼손이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본문을 통해 삼손을 다루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삼손의 결혼 요청(1-4절)

삼손이 딤나로 내려갔습니다. 딤나는 본래 유다 지파의 땅이었으나 단 지파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단 지파 사람들이 그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니 블레셋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딤나는 삼손의 고향 소라에서 서쪽으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소라보다 고도가 낮은 곳입니다. 따라서 딤나로 ‘내려가다’라고 묘사됩니다. 삼손 이야기에는 ‘내려가다’라는 동사가 많이 나옵니다. 이 동사는 물리적인 의미뿐 아니라 삼손의 영적인 상황을 아울러 보여 줍니다. 삼손이 블레셋 지역으로 내려가고 이스라엘 지역으로 올라오는 여정을 반복하며 영적인 면에서 점점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블레셋 땅에서 시체가 되어 이스라엘 땅에 올라옵니다(16:31).

삼손이 딤나에서 한 블레셋 여인을 보고 부모에게 그녀를 당장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에 삼손의 부모는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하며 반대의사를 밝힙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증표였습니다(창 17장). 따라서 ‘할례’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삼손의 부모는 삼손에게 이스라엘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결혼은 여호와께서 금지하신 것이며(신 7:1-5), 여호와께서 그를 나실인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주어야 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계획이 그를 통해 블레셋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말도 해야 했습니다. 삼손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에서 ‘~을 좋아하다’라고 번역된 표현은 문자적으로 ‘내 눈에 좋다’라는 뜻으로, 사사기의 다른 곳에서 ‘자신의 소견에 옳다’라고 번역된 구문과 동일한 표현입니다(17:6; 21:25). 사사기의 시대정신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행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하는 사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셈입니다.

삼손의 잘못된 욕망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은밀히 진행됩니다.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다는 표현은 오역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3인칭 대명사가 문장의 주어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4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것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기회를 찾고 있었고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었던 주체는 ‘그’인데, 본문의 흐름과 문법적 구조로 볼 때 ‘그’는 ‘여호와’입니다. 삼손은 그저 자신의 욕망 때문에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란 말씀은 삼손의 개인적인 생각이 하나님의 섭리와 일치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삼손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삼손은 딤나에 내려가서 자기 눈에 좋은 여자를 찾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삼손을 통해 블레셋을 칠 기회를 찾고 계십니다. 삼손의 무모한 행동마저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니, 삼손은 앞으로 하는 일마다 꼬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삼손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도 때로 삼손과 같이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자보다 강한 삼손(5-9절)

이번에는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갑니다. 부모는 삼손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결혼을 허락한 것 같습니다. 삼손이 딤나에 이르러서 홀로 포도원이 있는 쪽으로 갔습니다.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삼손 앞에 젊은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젊은 사자가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삼손은 사자를 만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한 번 살펴야 했습니다. 그때 그에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했고, 그는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같이 찢어 버렸습니다. 사자를 찢듯이 블레셋을 찢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삼손의 경솔함이 다시 드러납니다. 시체를 만지게 되면 부정해지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정결 의식을 행해야 했습니다(민 6:9-12). 그러나 삼손은 이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적절한 정결 의식도 행하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삼손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딤나에 내려갔고, 그 여자와 만나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삼손은 그녀를 그저 ‘보았을’뿐입니다. 아마 삼손은 그저 외모에 끌려 그녀와 결혼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녀와 대화를 나눈 삼손은 그녀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라는 표현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여자가 삼손의 소견에 옳았더라’라고도 번역될 수 있으며, 사사 시대의 영적 상태를 반영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판단의 기준입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을 맞이하려고 다시 길을 갑니다. ‘가다가 돌이켜 ... 본즉’이라는 표현은 ‘그가 보려고 돌이켰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삼손은 자신이 죽인 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의도적으로 보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자의 주검에 벌떼와 꿀이 있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꿀을 어디서 얻었는지 밝히지 않은 채 그것을 부모에게도 드려 먹게 했습니다. 삼손은 자신만이 아니라 부모까지 부정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나실인은 포도와 관련된 어떤 것도 가까이해서는 안 되고 사체와 접촉해서도 안 됩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구별된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합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초인적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그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동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꿀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삼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언급된 꿀은 단지 먹는 꿀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꿀은 이방 여인을 상징합니다. 이방 문화, 이방의 삶의 방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부터 구원을 얻지만 그것은 삼손의 탁월함 때문이 아닙니다. 삼손은 계속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처럼 죄인이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계획을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가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삼손의 수수께끼(10-18)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갔다’는 표현은 결혼 예식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은 혼인 잔치를 일주일 동안 벌였는데, 이 기간에 신랑은 신부 측의 풍습과 의식을 따라야 했습니다. 잔치에서 술은 빠질 수 없습니다. 실제로 ‘잔치’로 번역된 ‘미쉬테’라는 말은 ‘마시다’라는 뜻의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고, 죽은 사자를 만지고, 부정한 꿀을 먹었던 삼손이 결혼 잔치에서 술을 마다했을 리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실인이라는 사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이 문장의 히브리어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들이 그를 보았을 때, 그들이 동료들 가운데 삼십 명을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가 됩니다. ‘친구를 삼았다’라는 개역성경의 번역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애썼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진짜 목적은 삼손을 경계하는 것이었습니다.

삼손은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는데, 7일 안에 알아맞히면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줄 것이지만, 알아맞히지 못하면 자신에게 그만큼의 옷을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삼손은 수수께끼를 냅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이 수수께끼는 삼손이 포도원에서 사자를 찢어 죽인 후에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얻은 체험에 근거한 것이기에 블레셋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블레셋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애를 썼으나 사흘이 지나도록 풀지 못합니다.

이에 초조해진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아내지 않으면 그녀와 친정집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블레셋 여인은 ‘삼손의 아내’로 불렸지만 그녀는 블레셋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17절에도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백성’(히브리어로는 ‘그녀의 백성’)이라고 불립니다. 그녀는 삼손의 아내가 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블레셋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랑을 구실 삼아 수수께끼의 뜻을 알려달라고 삼손에게 매달렸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던 것을 그녀에게 알려 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그의 아내’의 울음과 강요에 못 이겨 잔치 마지막 날에 결국 알려 주고 맙니다. 사자보다 강한 삼손이 이방 여인에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자기가 알아낸 것을 바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일곱째 날 해가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가지고 나아옵니다.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수수께끼에 직접 대답하는 대신 두 가지 수사의문문으로 답변을 제시함으로써 삼손을 조롱합니다. 삼손은 자기를 통해 블레셋을 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내기에 진 것이 분하여 화를 주체하지 못할 뿐입니다. 격노한 삼손은 또 다른 두 행의 시로 그들에게 응수합니다.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삼손은 블레셋 사람들과 아내 사이에 있었던 모종의 계략을 눈치 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하게 되지만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삼손의 첫 공격(19-20절)

이 단락은 14장의 전체 줄거리 중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게 된 근거를 보여 줍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의 아내를 통해 수수께끼를 푼 것에 대해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블레셋을 칠 빌미를 찾고 계시던 여호와께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십니다. ‘갑자기 임하다’라고 번역된 동사가 6절에서 ‘강하게 임하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에 삼손이 블레셋의 해안도시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그곳 남자 30명을 죽이고 겉옷을 빼앗아 수수께끼를 푼 블레셋 사람들에게 줍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수수께끼에서 이겼지만, 사실 동족 30명을 잃었기에 실제로 삼손과의 내기에서 진 것입니다. 이것이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친 첫 번째 사건입니다. 블레셋을 크게 쳤음에도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삼손은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갑니다. 그러자 그의 장인은 삼손과 함께 있던 블레셋 사람에게 자신의 딸을 줘 버립니다.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을 친 것이 아니라 개인적 분노 때문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자세

삼손이 딤나 여인과 한 결혼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삼손이 실패했다고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결혼 잔치를 블레셋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요 심판의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한 번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떤 자세로 섬겨야 합니까?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삼손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했다든지, 나실인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블레셋을 쳤다든지 하는 진술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욕망에 이끌려 블레셋 여인과 결혼했다가 내기에 져서 분노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수수께끼에서 진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삼손이 아스글론의 사람들을 30명이나 쳐 죽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수수께끼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기 위함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 블레셋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물론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했다는 사실이 삼손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삼손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삼손이 욕망 때문에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여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되었다 하더라도 선택한 것을 인해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섭리로 일어난 것이라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손은 회개하지 않고 죄악을 거듭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결국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진행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삼손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으려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보기에 좋은 대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으로서 구별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보이는 것에 이끌려 행동했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고 합니다(창 3:6). 우리는 보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게 되면 탐심이 생기고, 탐심에 의지가 더해지면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삼손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세상과 타협하며 어리석게 살아갈 때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의 스토리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의 욕망에 이끌려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요 행복이라고 가르치지만, 참된 평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삶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롬 12:2).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된 자들이라는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에녹처럼 날마다 주님의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인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고 부릅니다. 본문도 표면상으로 삼손이 결혼에 실패한 이야기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저마다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삼손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결정적인 떄에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을 부으셔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분을 신뢰한다면 약속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부족한 자도 사용하시는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한 번 하신 약속은 꼭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이 시대의 나실인입니다. 세속화의 영향을 받으면 우리도 알게 모르게 삼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은 식어집니다. 사자보다 강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무력한 삶을 살게 됩니다. 각자 삶의 모습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꿀이 나를 유혹합니까? 나의 가장 큰 약점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기억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