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Author
Myung Myung
Date
2022-08-14 14:03
Views
309

호사다마는 좋은 일에 탈이 많다는 뜻입니다. 좋은 일에 방해가 많이 따른다든지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하는데 주도권 다툼을 할 수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건축을 하거나 특별한 행사를 추진하는 과정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니 기드온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미디안 연합군과 싸우는 데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렇다면 그 승리를 인해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 분야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기드온은 권력을 사유화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파 간의 갈등이 드러납니다. 우리도 날마다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 전쟁을 치르면서 힘들어 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습니까? 지속적인 승리를 거두려면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까? 본문에 언급된 전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기드온의 전쟁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고 여호와를 높이는 전쟁입니다. 기드온의 전쟁은 기드온을 위한 전쟁이고 기드온에게 주목하게 하는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두 전쟁의 성격을 살펴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 어떻게 영적 전쟁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전쟁(7:19-23) 


기드온이 믿음과 신뢰를 갖고 여호와께 의존해 미디안 연합군을 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기드온이 자발적으로 나서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니 그 전쟁은 여리고 성의 무너짐(수 6:20)처럼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납니다. 꿈과 해몽을 듣고 용기를 얻은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100명이 미디안 진영 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이경 초로 파수꾼을 교대할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밤은 4시간씩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이경’은 두 번째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이경 초’는 대략 10시경이 됩니다. 파수꾼을 교대할 때가 보통 경계가 제일 허술합니다. 기드온이 계획적으로 이 시점을 선택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마침 그때에 미디안 진영 근처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자 미디안 진영을 둘러싼 세 부대 모두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외칩니다. 이 외침에서 ‘의’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전치사는 ‘~을 위한’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 전치사의 이중적인 의미는 이 전쟁의 목적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외치게 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전쟁은 하나님을 위한 전쟁에서 기드온을 위한 전쟁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삼백 명이 할 일은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고 시청각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려 감추었던 횃불을 흔들고, 일제히 함성을 질러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갑자기 울려 퍼진 나팔소리와 항아리 깨지는 소리에 300명의 외침이 더해지자 당황한 미디안 군사들이 일제히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칩니다. 세 동사가 당시 상황을 잘 보여 줍니다. ‘뛰다’는 특정한 목표 지점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부르짖다’는 겁에 질려 아무렇게나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묘사합니다. ‘도망치다’는 안전한 곳을 찾아 허겁지겁 달아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한마디로 미디안 진영은 극심한 혼란에 빠집니다. 잠시 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친구끼리’라는 표현은 ‘서로’라는 의미의 숙어입니다. 한 밤중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니 미디안 군대가 혼란에 빠질 수는 있지만 어떻게 동료끼리 서로 칼로 칠 수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여호와가 주도하시는 전쟁입니다. 메뚜기와 같이 많던 미디안 군사들 중에 살아남은 일부가 스레라의 벧 싯다와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까지 도망을 칩니다. 그 지역은 이스르엘 평지와 요단 강 사이의 지역으로 보입니다. 


 


기드온의 전쟁(7:23-8:9)


- 요단 서부 지파들의 추격(7:23-29)


다른 사사들의 경우에는 여호와의 전쟁에서 이기면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경우에는 아직도 할 이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 그동안 사용된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짐을 암시합니다. 7:23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표현은 7:8에서 돌려보낸 ‘이스라엘 사람’과 동일한 단어로서 하나님께서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은 자들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납달리, 아셀, 므낫세’는 기드온이 더 많은 군대를 모집하기 위해 불렀던 지파들이었습니다(6:35). 게다가 24절을 보면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라는 표현도 앞장에서 많은 군대를 모집하는 문맥에서 사용된 것입니다(6:35). 이런 언급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을 했다는 것을 뜻하며 하나님의 전쟁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에 사자를 보내 후퇴하는 미디안보다 앞서 요단강의 수로를 점령하게 합니다. ‘수로’는 나루터를 말합니다. 에브라임은 요단 나루를 잘 지켰을 뿐 아니라 미디안의 방백도 잡아 죽였습니다. 오렙(까마귀라는 의미)은 ‘오렙 바위’에서 스엡(늑대라는 의미)은 ‘스엡 포도주틀’에서, 즉 그들의 이름이 붙여진 곳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름들은 이들을 죽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중에 붙인 이름일 것입니다. 스엡이 죽은 곳이 포도주 틀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포도주 틀의 기능은 포도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처음 나타났을 때 그는 포도주 틀에서 밀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주 틀은 미디안 때문에 어려웠던 이스라엘의 상황을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포도주 틀은 상황이 역전되었음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장소가 됩니다.  


 


- 에브라임과의 갈등(8:1-3)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 안에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열두 지파가 하나 되지 못한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특징 중 하나는 항상 리더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주도한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에브라임은 가나안의 중앙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이방 민족과 직접 국경과 맞대고 있지 않다 보니 주위의 이방 민족의 침입으로부터 덜 위협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사 시대의 중요한 성소가 있던 벧엘과 실로가 모두 에브라임 접경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을 시기한 배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드온과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다툼의 이슈는 ‘누가 전쟁의 승리에 더 많은 영예를 차지하느냐’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자신들이 전쟁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나타냅니다. 이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전쟁인가’로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황은 기드온이 이미 ‘여호와께서 의도하신 전쟁’을 떠나 ‘자신을 위한 전쟁’으로 방향을 잘못 잡아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기드온은 분노한 에브라임 지파를 향해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8:2-3)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노를 풀어줍니다.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였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춘 발언이라기보다 아직 힘이 부족한 기드온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발언으로 표현으로 봐야 합니다. 나중에 그가 요단 동편 지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요단 동편 지파들의 거부(8:4-9)


미디안을 추격하는 300명의 용사들은 상당히 지쳐 있습니다. 여호와께 의존했을 때는 300명의 군사로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군대와 싸워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 기드온을 의존했을 때는 미디안의 두 왕을 쫓는 데도 피곤합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계속 추격하는 것은 과도한 군사 행동입니다. 이미 미디안과의 전쟁은 승리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미디안을 끝까지 추격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아닌 기드온 자신의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8:18-19를 보면 기드온은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신의 복수를 정당화합니다.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기드온은 개인적 보복을 위해 미디안의 왕들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기드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감사를 표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지친 병사들을 위해 가까운 곳에 있는 숙곳 사람들에게 식량을 요청하면서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는 중이라고 설명합니다.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8:5) 백성에게 기드온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군호와 더불어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해 죽이는 이야기는 기드온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먼저 기드온이 3백 명의 군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습니다. 7:2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너와 함께 하는 백성(개역개정에서는 ‘너를 따르는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을 추리는 중에도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기드온과 함께 가는 자들이라 하십니다(7:4). 이 표현은 8:4에서 사사기 저자가 사용한 ‘그와 함께 한 자’와 비슷합니다. 이런 표현들에는 기드온과 3백 명 군사들 사이의 위계질서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숙곳 사람들과 말할 때 그와 함께하던 3백 명을 ‘나를 따르는 백성’이라 칭합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내 발에 있는 백성’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3백 명을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 동역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의 발에 있는 부하들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숙곳의 방백들은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숙곳은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돌아오다가 형 에서와 만나 화해한 후 정착한 장소로서(창 33:17), 장소 자체가 이스라엘이 한 조상으로부터 나온 동족임을 보여줍니다. 숙곳의 방백들이 기드온의 협조 요청을 거절한 것은 자기들이 기드온을 도왔다는 이유로 후일에 혹시라도 미디안의 두 왕에게 보복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말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기드온이 숙곳에서 브누엘로 이동합니다. 브누엘은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씨름하다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곳으로(창 32:30), 숙곳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한 조상의 후손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브누엘 사람들도 도움 요청에 숙곳 사람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자 기드온은 복수를 다짐합니다. 승리 후 돌아오는 길에 브누엘의 망대를 헐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처럼 강자에게는 저자세로 대하면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과 같이 상대적 약자에게는 무례하게 행동합니다. 기드온이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화를 낸 것은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해 인정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임을 기드온이 잊고 있습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기드온이 미디안을 이길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을 때 기드온은 그들에게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해주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위한 전쟁에 참여하는 우리의 자세


-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참 믿음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임 받으시기를 기뻐하는 믿음입니다. 기드온은 전쟁에 임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외치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전쟁은 기드온을 높이는 전쟁으로 퇴색되고 맙니다. 에브라임,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도 300명이 미디안 군대를 격파할 수 있었던 비결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우신 그 전투를 그들은 보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영광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교만과 무지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의 주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기신 싸움에 동참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를 거두심으로 성도가 그 승리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과 담대하게 싸워 이겨야 합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담대한 믿음과 영적 무기로 무장해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해야 합니다(엡 6:17-1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기드온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약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는 겸손히 하나님을 잘 따르고 섬기다가, 일이 계속 잘 풀리면 하나님을 잊고 목에 힘을 줍니다. 하나님이 일관되게 당신의 자녀를 사랑으로 인도하시듯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일관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동기와 과정이 중요합니다


참믿음은 동기와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전쟁의 승패를 주님이 쥐고 계시며, 어떤 강력한 세력이 공격해 올지라도 주님의 뜻이면 넉넉히 이기게 하심을 믿습니다. 기드온의 전략은 결과 면에서 보면 큰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300명으로 싸우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기에 참믿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외치면서 자기의 이름을 외치게 함으로 은연중에 자기가 큰 역할을 한 것 같은 인상을 심었습니다. 처음에는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욕심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신앙은 참믿음을 위협합니다. 결과에 속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 덕분이라고 고백한 뒤에 자신이 기여한 작은 부분을 덧붙일 때, 그 전체 고백이 퇴색됩니다. 그 덧붙인 말이 실제로 하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스스로 취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장 수고하고 헌신한 후에도 자신은 무익한 종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 하나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자신들이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자신들 없이 전쟁을 시작한 것에 분노했습니다. 기드온에게 전쟁에서 승리한 영광이 돌아가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단 서편 북쪽 지파들이 자신들을 압제하는 미디안을 제거하기 위해 기드온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것과 대조적으로 요단 동쪽 지파들은 기드온의 군사 행동에 협조하기는커녕 냉소적으로 응답했습니다. 이렇게 혈통이나 지역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나 차별이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죄인들은 이기심과 두려움, 차별로 인해 늘 분열하고 다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안에서는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 복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엡 4:1-6). 신앙공동체 안에도 가끔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구성원들이 있습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보다 자신만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성도는 이런 자들을 경계하고 겸손함으로 사역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도와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나가면서


여호사밧 왕 때에도 하나님은 주변 모든 나라들에게 두려움을 주셔서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심으로 유다는 싸우지도 않고 이기게 하셨습니다(대하 17:10-11). 그 전쟁의 주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리품을 거두기만 하면 됐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차려놓으신 밥상에 숟가락을 얻은 것뿐입니다.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도 하나님의 전쟁이기에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전쟁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기드온은 삼백 명을 자기 부하 정도로 여겼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지파 간의 갈등이 나타났습니다. 에브라임은 기드온과 심히 다투었습니다.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기드온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싸움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결과만 보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위한 방식으로 했는지 자신의 동기와 과정을 점검해야 합니다. 공동체 간의 하나됨을 계속해서 추구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언제나 힘을 주시고 역경에서 우리를 언제나 건지십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훗날 주님 앞에 신실한 주님의 백성으로 서서 칭찬과 존귀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