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소식

아프리카 선교 보고 - 김세곤 목사

일반
Author
관리자
Date
2007-12-2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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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0
처음은 ‘감동’이고 끝은 ‘행복’이었습니다



                                            

1. 선교지 탄자니아 다르살렘

비행기를 세 번 바꿔 타고 27시간을 날아가서 12월 4일 밤중에 탄자니아 다르살렘 공항에 내렸습니다. 이제 자비량 선교의 첫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여기까지 온 우리가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하니 더 대단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10여년이 넘도록 그곳에서 선교하고 계시는 김 용주 선교사님 내외분을 비롯하여 작정하고 가족을 이끌고 온 40대의 하 목사님, 평신도 선교사로 와 있는 최, 함 선교사 두 분, 무엇보다도 금년 6월에 결혼하고 8월말에 1년 예정으로 왔다는 신혼 부부 정 전도사 내외는 우리에게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선교사님 부부를 뵈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사람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격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철저히 쓰임 받는 선교사님의 일상을 직접 보게 된 것이 또한 큰 감동이었습니다.

병원과 교회, 부속 유치원 그리고 영성 훈련 센터까지 총괄하여 돌봐야 하고 그에 따른 현지인들을 관리해야 하는 일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김 선교사님은 마치 유능한 CEO처럼 잘도 해결해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밑에 수하 하나 없는 CEO. 오로지 아내 되는 최 경숙 선교사님이 유일한 비서요, 회계요, 운전기사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이고 교회고 선교사님의 설계 하에 지어지고,  물길을 찾아 우물을 뚫고, 관공서에 다니면서 허락을 받아내고....  도대체 할 수 없는 일이 없어 보이는 그 분은 이미 거인이셨습니다.

하나 안타까운 것은 두 분이 가끔씩 나지막하게 주고받는 이야기는 자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몸으로 해결하는 일만으로도 모자라서 돈 걱정까지 해야 하는 것이 직접 목격한 선교 현실이었습니다. 실제로 잠깐 들른 키바다(keybada)교회는 자금 부족으로 준공을 못한 채 허술하게 서 있었습니다.



2. 직접 부딪친 아프리카, 아프리카인들

아침에 눈을 뜨니 잘 생기고 키 큰 야자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가운데 둥그렇게 예쁜 망고나무에 망고들이 주렁주렁 달린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수탉들이 울어대고 나무로 아침을 준비하느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는 40여 년 전 우리네 농촌 마을과 어찌 그리 흡사한지요.

영성 훈련 센터 마당의 우물로 물을 길러 아낙네들이 물동이를 이고 오고, 아이들은 흙길을 걸어 학교로 갑니다.

새카만 피부에 가려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다들 눈 코 입이 잘 생겼습니다.

소박하고 욕심 없는 그들은 참으로 웃음이 많아서 걸핏하면 입을 벌리고 잘 웃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반해서 선교사님이 지금까지 오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최 경숙 선교사님! 잊지 못할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여기서 살다가 어쩌다 한국에 나가면 사람들이 참 이상하게 생겼어. 눈은 다들 쬐그만해 가지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애정을 가졌기에 이 척박하고 무더운 곳에서 그토록이나 평안한 얼굴로 지낼 수 있는 것이겠지요.

무더위 이야기를 하자니 온도뿐만 아니라 습도까지 높아서 아내는 오는 날부터 밤낮으로 쉬임없이 땀을 흘려댔습니다. 급기야 사나흘 뒤부터는 이마에 두드러기가 솟고 입술 주변은 다 일어나서 조이고 아프답니다. 심지어 손가락 사이사이가 벌겋게 짓무르기까지 합니다. 말라리아 모기도 무서운 존재입니다. 여기 온 사람들은 다 한, 두 차례씩 앓았고 선교사님도 약을 복용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침에 길어가는 한, 두 동이의 물로 하루를 견디는 현지인들은 변을 보고 손으로 닦는 습관으로 인해 더욱 질병에 취약한 듯합니다. 그들의 몸에서 나는 심한 냄새도 흙집에서 씻지 못하고 사는 열악한 환경 탓이 아닌가 합니다.



3. 현지 의료 사역

첫날은 선교사 몇 분을 치료하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의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에바다(Efata)교회 안에다 의자를 두 개씩 붙여 침상을 만들고 보조 간호사 ‘트위시’의 도움을 받고 신학생인 ‘아놀드’가 접수를 받아 환자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음과 치유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서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침을 처음 접해보는 이들이기에 처음엔 다소 긴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보고는  어린 아이처럼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치료 효과도 놀라웠습니다. 머리, 팔, 다리, 허리 아픈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좌골 신경통,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까지 많은 부위에서 신속한 치료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얼굴 한쪽이 엄청나게 부었는데 선교사님 소견으로는 속에서 염증이 생겨 고름이 잡힌듯한데 이 곳 의료진 수준으로는 수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겁먹고 우는 아이를 어렵게 달래가며 침을 몇 군데 놓았는데 편히 잘 잤다고 다음날 또 왔습니다. 침을 맞고 장난감 차를 선물로 받고 돌아가는 아이를 보며 모두 참 마음 아파했습니다.



주일을 지내고서는 선교사님이 개척한 또 다른 교회- 킴비지(Kimbiji)교회에서 진료를 했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마을이었습니다.  

사실 이 지역은 모슬렘 지역이어서 선교사님이 처음 발을 디딜 때는 경찰서장의 허가증을 가지고서야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치료받으러 오는 것일망정 교회에 그들이 발을 디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지금 저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져 하나님께 나아가는 축복의 발걸음이 되기를 진료 시간 내내 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분담하였습니다. 그들의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 내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이기에 입구에서 아놀드가 10~15명씩 앉혀놓고 ‘사영리’를 전하고서야 안으로 들여보내도록 했습니다. 첫날부터 50여명 가까이 오더니 사흘째 마지막 날에는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으러 몰려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허리 한번 펼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빴지만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둘째날 모슬렘 지도자가 치료를 받았는데 그때부터 눈에 띄게 모슬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침 빼는 시간을 체크하여 알려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흰 빵”, “갈 빵”하며 신이 났습니다. 흰 색 빵모자 쓴 사람, 갈색 빵모자 쓴 사람의 약자랍니다.

(머리에 테 없는 둥근 모자를 쓰는 것이 모슬렘들의 관습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특별히 정성 들여 치료한 환자는 중풍병자였습니다. 30대 여자 환자이고 교인인데 3일간 계속 치료 받고는 눈에 띄게 좋아져서 마치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쁨의 선물을 주시는 듯했습니다. 치료받은 사람은 총 400여명에 달하였습니다.



4. 다음 선교 방문을 기약하며

어느 덧 열 이틀이 지나 돌아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와서 고생만 하다 간다고 말씀하시는데 아내의 입에서 저절로 나온 말은 “행복했어요”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난 기쁨, 날마다 최 선교사님이 차려주었던 그 귀한 한국 음식, 빠짐없이 맛보게 해 준 진기한 열대 과일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 큰 기쁨이요 보람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빚어낸 말이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AMMI AFRICA, GOD OF PEOPLE' (아프리카의 내 백성,  하나님의 사람들)

영성 훈련 센터 예배실 앞 벽에 써 있는 글귀입니다.

그들을 알고 만났으니 보람된 여행입니다.

진료 마지막 날, 우리가 내일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안 트위시가 서툰 영어로 아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 울고 싶다. 내년에 와? ”

“아니, 내년에 못 와” 아내 역시 서툰 영어로 대답했습니다.

“그럼 언제 와?”  “아마.... 5년 내에 올 거야”

말의 씨가 뿌려졌으니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고 또 다시 자비량 선교로 이 땅에 돌아오게 해 주실 것입니다. 와서 보게 하신 하나님이 힘있게 저들과 동역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 일과 비전을 주실 약속의 땅, 샌디에고를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가 아프리카로 떠날 때 건강을 염려해 주시고 따뜻한 정성과 기도로 후원해 주신 팔로마 교회와 교우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