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부활 그 이후 (막 16:9-20)

Author
Myung Myung
Date
2006-04-17 22:3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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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6:9-20  부활 그 이후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최대의 절기로 지키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신 부활절을 최대의 절기로 지킵니다. 오늘 새벽에는 샌디에고교역자 협의회 주관으로 연합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지난 주간에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참석하느라 수고 많이 하셨는데 주일 새벽까지 참석하려니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찬양대가 특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학생들도 어제 Calvary Chapel of Escondido에서 귀한 집회를 가졌습니다. 찬양, 드라마, 말씀이 있는 뜨겁고도 풍성한 잔치였습니다. 200명 이상 되는 학생들이 참석하였고 예수 믿기로 작정한 학생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수고하신 전도사님과 학생들, 그리고 여러 모로 후원해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행사를 치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감동을 주셔야 합니다. 자원하여 기쁨으로 참여하는 교우들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잔치를 잘 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부활절 예배를 잘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활절 이후 우리의 삶이 또한 중요하기에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삼년은 제자들이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듣고 배웠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떠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데 아직도 주님 보시기에 불안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전파에 힘쓸 것을 강조하십니다.  



* 제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습니다.

부활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지라 부활 소식을 전해주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마가는 다른 복음서보다 더 강조합니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니라” 는 말이 반복하여 나옵니다.  



1) 막달라 마리아가 전해주어도 믿지 않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아침 일찍 다른 여인들과 함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갔습니다. 마리아는 전에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으나 주님에 의하여 고침을 받고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의 사역을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십자가 수난을 처음부터 지켜보았고, 누구보다도 일찍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 있던 무덤에 가서 향유를 바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 보니 막고 있던 큰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않는다 ...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뛰쳐나와 무덤에서 도망하였습니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습니다. 너무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여인들은 사도들에게 가서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살아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셨다는 사실만 간단히 적고 있는데,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빈 무덤에 들어가 당황해 하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묻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마리아는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분이 예수님인 줄은 알지 못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주여, 당신이 그분을 옮겨 갔거든 어디에다 두셨는지를 말해 주십시오. 내가 그분을 모시겠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마리아야!"라고 부르시니 마리아의 눈이 열리며 부활하신 주님을 봅니다. 감격 속에 선생님하고 부르며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주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가진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처음 들었고, 주님의 모습을 처음 본 목격자가 되었고,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과 자기가 그 주님을 보았다는 것을 슬퍼하며 울고 있던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마리아가 전하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2) 두 제자들이 전해주어도 믿지 않습니다.

같은 날 오후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두 제자가 걸어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갈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두 사람이 예수님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도중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들과 함께 걸어갑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으니 그 중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당신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최근에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합니까?”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실상 답답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서 있는 두 사람. 예수님께서 다시 사셔서 그들 눈앞에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죽은 예수를 붙들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어도 믿지 않기에 두 사람은 영안이 어두웠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에 있으니 예수님이 곁에 계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해줍니다. 그분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인데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그의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서기관들이 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권세 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분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심지어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장정만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에 남는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빌라도에게 반역죄로 고소했더니 그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했지 뭡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이스라엘을 구속할 메시야 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너무 안타까워요. 그가 죽은 지 벌써 삼일이나 지났어요. 이제 모든 게 끝났어요.  끝났어.  



그런데 오늘 아침에 우리 중에 있는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오더니만 예수의 시신은 간 곳 없고 대신 천사들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예수님은 다시 사셨다나요. 기가 막혀서.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베드로와 요한도 무덤에 달려갔는데 그들도 예수의 시신은 보지 못하고 돌아왔대요. ‘예수님이 다시 사시다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말도 안 돼요. 이들의 말을 듣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면서 구약성경에서 메시야에 대한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십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날이 저물자 두 사람은 한사코 예수님에게 함께 머물고 가자고 강권합니다. 음식이 나오자 예수님이 빵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난 후 떡을 떼어 저희에게 나누어 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졌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들과 더불어 길을 가며 메시야에 관한 성경을 풀어주었던 분이 바로 다시 사신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그들이 예수님을 붙들려는 순간 예수님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예수님을 잃은 슬픔 때문이었는데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더 이상 엠마오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열 한 제자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 두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들과 함께 길을 가던 것과 구약에서 메시야에 관련된 말씀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 것과 엠마오에 있는 집에 들어가 식사를 나누면서 예수께서 빵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자기들에게 주었을 때 갑자기 자기들의 눈이 열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된 것 등을 흥분하여 다른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어느 새 두 사람은 갈릴리 여인들처럼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두 사람의 말도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십니다.

여인들이나 두 제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으니 갈릴리에 가시기 전에 예수님이 직접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직접 보면서도 그들은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눅 24:37)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증인들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주님의 부활을 믿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기에 증거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으로만 믿으려는 완고함,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것을 믿지 않으려는 닫힌 마음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의 말씀을 직접 듣고서야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도마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 가운데 오셨을 때 무슨 이유에선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때 있던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이야기 하는데 나중에 나타난 도마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도마는 제자들이 처음 모인 자리에 없었다.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나타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어지지 않아 그랬을 것입니다. 그때 같이 있지 않는 것도 억울한데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이야기만 하니 오기가 생깁니다.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25절) 예수님의 말씀이나 제자들의 증거보다 자신의 눈과 손을 더 의지하겠다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도 확신을 주고자 다시 오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자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도마의 태도가 괘씸하여 그를 나무랄 수도 있었지만 주님은 도마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마가 말하던 그대로 다 해볼 것을 말하신다.“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면서 자신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도마에게 내어 보여주십니다. 도마는 주님의 임재에 완전히 압도되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감격으로 그에게 임하자 그의 자아가 깨어지며, 불신앙이 신앙으로 바뀌며, 의심이 확신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도마는 다른 어느 제자도 해보지 않은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8)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듣는 것, 자기의 경험만을 의지하며 그 잣대로 판단하면서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믿음은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 믿는 자들은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듣고 믿을 것을 강조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함과 닫힌 마음을 책망하신 이유는 다른 사람이 전한 말을 믿지 않는다면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백합니다.  롬 3:23,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이 진노와 심판 아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한 존재이기에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 밖에서 오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의 대표로 오셔서 죄 많은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도 아끼지 않으시면서 희생의 대가로 마련하신 구원을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합니까?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고 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십니다. 인간의 말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인지라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얻어집니다.  

  

예수님은 사역 초기부터 복음 전파에 힘을 쓰셨습니다. 막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제 예수님은 승천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시작하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복음을 받고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표적들이 따를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표적들이 사도행전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1)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사울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감옥에 갇힙니다. 이를 피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갔는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8:7)



2) 새 방언으로 말합니다.

(행 2:4) 오순절에 마가의 어머니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행 19:6)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 믿는 자들에게 안수하니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면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3) 손으로 뱀을 집어 들며,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입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 의하면 로마로 호송되던 바울이 탄 배가 파선된 뒤 배에 있던 사람들이 몰타 섬에 상륙하였습니다. 비가 내린 뒤라서 날씨가 추웠으므로, 섬사람들이 불을 피워서 바울 일행을 맞아 주었습니다.  바울이 나뭇가지를 한 아름 모아다가 불에 넣으니 뜨거운 기운 때문에 독사가 한 마리 튀어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섬사람들은 그 뱀이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틀림없이 살인자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한다 생각했는데 바울은 태연히 그 뱀을 불 속에 떨어 버리고,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섬사람들은 그가 살이 부어오르거나, 당장 쓰러져 죽으려니 하고 기다렸는데 바울에게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자 도리어 그를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몰타 지역을 복음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낫습니다.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라고 베드로가 담대히 기도하니 모인 곳이 진동하고 사람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28:8) 몰타 섬에서 그곳 추장인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을 때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표적들은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하여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능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언급하신 표적이 교회사를 보면 많이 나타났고 지금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런 표적이 전도 현장이나 선교지에서 필수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표적들은 제자들이 선포한 말씀들을 확증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결코 주체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로 믿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어떤 교회가 러시아 선교에 많은 지원을 하였기에 선교의 열매를 많이 거두었습니다. 문제는 표적을 많이 나타내는 능력전도에 치우치다 보니 평범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능력 없는 사람들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표적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하시다 할 때 나타남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함께 하시며 능력을 주십니다.

*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하면서 시작한 마가복음이 주 예수께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 쪽에 앉으셨다는 것을 마무리를 짓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롬 8:34,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나가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여러 가지 표적이 따르게 하셔서,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해왔고 현재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저희 교회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교회에서 이미 믿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목회도 물론 필요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금년 말이면 건축이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다른 교회에서 우리 교회로 신자들이 수평 이동하여 교인수가 증가한다면 하나님 편에 보실 때 별로 기뻐하실 것이 없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나 명목상 신자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만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초청할 수 있는 곳이 목장입니다. 목장이 반드시 집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장소가 카페가 될 수도 있고 공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제대로 믿지 않던 사람들을 다가가서 목장으로 초청해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분가할 줄 모르고 항상 모이는 사람들끼리 시간이 나면 가끔 모이는 친교위주의 목장들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변하여 새사람 될 때 교회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밝아집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이 교회에 충만해집니다. 예배 시간에 간증이 날마다 있어야합니다. 지난 3월말에 가정교회 컨퍼런스를 참석하였습니다. 4월 둘째 토요일에 경배팀과 함께 새들백 교회 찬양과 예배 세미나를 참석하였습니다.  이번 주와 다음주에 Oceanside에 있는 St. Mary Church에서 Lifeshapes Series 강의가 있습니다. 이 세미나들의 공통점은 성경적 교회론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21세기 교회들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교회들이 본질적이 아닌 것에 에너지를 써왔습니다. 기존 신자에 우선순위를 둔 전통 목회에서 벗어나 성경적인 본질을 회복하면서 불신자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옮겨야 합니다.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이 초청하십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이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전에 무슨 일을 했던지 어떤 사람이었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것으로 요약이 되며 더 줄이면 십자가와 부활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구약을 통하여 계시된 것이고 또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이 복음이 우리에게 효력을 발생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을 알뿐 아니라 우리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직접 보고 그가 하는 이야기도 직접 듣고 또 부활하신 후에 직접 만나기도 하였지만 그 후로는 그와 같은 직접적인 경험 대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을 영접을 합니다. 우리가 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주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데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시간과 재능과 물질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혜롭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영원을 위한 투자요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우리에게 상급이 있게 됩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기념하는데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지금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헌신하는 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기쁨입니다. 평강입니다. 주님을 전하고 싶은 열정입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은 다 주님께 맡깁시다. 잃어버린 양을 찾기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럴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뿐더러 이 교회를 축복하시고 각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이 축복에 동참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