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종말론적 신앙관

Author
Myung Myung
Date
2021-12-12 16:27
Views
309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이전보다 기상 이변이 많이 발생합니다. super storm, super hurricane. AIDS 뿐 아니라 에볼라, 사스, 나일 바이러스 등등, 예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무서운 바이러스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평균 잡아 일 년에 하나씩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새롭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작년에는 COVID-19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각종 변종이 나오면서 언제 팬데믹이 끝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데 지구촌은 더욱 분열되고 있습니다. 민족 간, 종교 간, 부족 간의 분쟁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농업 기술은 발달했는데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세계 인구의 65%가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20%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심각한 기아 현상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의 기간을 성경에서 말세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지금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말세를 살고 있고 주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있습니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말세를 사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3장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로 시작합니다. 유대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성전과 완전히 결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한 모습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성전을 떠날 때에, 제자 중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이 돌들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건물들이 얼마나 웅장합니까?’제자들은 헤롯대왕이 46년간에 걸쳐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화려한 외양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완전한 파괴를 예언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을 인하여 이미 강도의 소굴로 전락해버린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성전에서 날마다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은 있으면서도 그 중심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참 신앙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이스라엘에 경고하기 위해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오시기 전에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 무화과나무의 운명은 장차 예루살렘과 성전에 일어날 심판을 예시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후 70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의 아들인 디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성전은 파괴되고 성전 제사는 그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도 인간의 위선과 가증한 종교 형식만 담고 있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됨을 보여주었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성전 파괴가 세상의 종말에 있을 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도 성전의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리스도의 재림, 세상의 종말이 같은 때에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 밖으로 나와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보고 앉아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13:4) 첫째 질문에서 ‘이런 일’이란 문맥상 성전 파괴를 가리킵니다. 복수형으로 된 이유는 성전 파괴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 예를 들어 정치적 폭동과 군대의 진압 등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질문에서 ‘이 모든 일’이란 성전 파괴를 넘어 세상의 종말에 관한 내용들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성전 파괴와 세상의 종말을 연결시켜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에는 당대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과 미래에 일어날 예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 파괴가 세상의 끝은 아니라며 종말에 있을 징조들을 말씀해주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 종말의 예표라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이라면, 세상의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대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징조는 자신들을 그리스도라 하는 거짓 메시아들의 출현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의 왕국을 만들려고 합니다. 두 번째 징조는 전쟁, 지진, 기근의 소문입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여기서 난리는 국제전이 아니라 국내전을 가리킵니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것은 국가 간의 전쟁을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 앞서 일어날 또 다른 징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박해입니다. 박해와 관련된 또 다른 징조는 가족 간의 불화와 다툼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핍박이 궁극적으로는 예수님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믿는 자들을 통해 증거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고, 어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를 보호하시고 구원을 책임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자의 오심(24-27절)


본문은 주로 ‘때’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세상의 종말에는 우주적인 대변화가 일어납니다.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라는 표현은 이사야 13:10과 34:4의 복합 인용입니다. 이 두 구절은 바벨론과 에돔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한 것입니다. 메시아를 배척한 유대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연결시킵니다. 환난이 지나간 후에 해, 달, 별이 빛을 잃는다는 것이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며, 종말론적으로는 악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하늘과 바다에 있을 심판의 징조로 인하여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넷째 날에 만들어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셨는데 그 광명체들이 빛을 잃고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첫째 창조가 끝이 나고 새 창조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더 이상 밤이 없고 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 


   


이 세상의 빛을 주관하던 해, 달, 별은 빛을 잃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인자는 흔들림 없는 큰 권능과 찬란한 영광으로 오실 것입니다. ‘인자’로 번역된‘son of man’은 히브리 숙어로 ‘man’, 즉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 그냥 ‘son of man’이라 하지 않고 언제나‘the son of man’이라 하십니다.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구약 어디에 ‘인자’라는 표현이 나옵니까? 단 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다니엘의 예언은 인자가 영광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가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다니엘이 환상 중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았는데 다니엘이 말한 그 ‘인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실 때에는 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오십니다. 옛날 같으면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가 됩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주님이 오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임할 심판을 인하여 가슴을 치며 울게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이 구절은 성전 파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성전을 세워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십니다. 새로운 왕권과 통치는 이스라엘의 종교 시스템이 종결을 고하는 시점에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불러 모음으로 시작됩니다. 인자는 천사들을 보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택함 받은 자들’, 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셨고, 또한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13:1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도 구원에 참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들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주께서 택하신 자들을 모아 예루살렘 성전을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 새 백성을 이루실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28-29절) 


무화과나무는 보통 봄에 잎이 나기 시작하는데, 팔레스타인의 봄은 아주 짧습니다. 따라서 잎사귀가 보이기 시작하면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사인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런 일들’이란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를 말합니다.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전쟁, 기근, 지진 등 각종 재해가 계속 일어날 것이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징조들이 나타나면 성전 파괴 뿐 아니라 인자의 통치가 가까이 왔음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6-18). 시대를 분별하는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의 증인의 역할을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날과 그때(30-33절)


30절을 직역하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다 일어나리라’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란 제자들이 성전 파괴와 관련해 질문한 것(13:4)에 대해 예수님이 대답하신 내용을 지칭합니다. 즉 14-23절의 징조와 24-27절의 성전 파괴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이 세대’는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당시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관련된 징후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 인한 새로운 성전이 세워져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은 천지의 없어짐에 강조가 있지 않고 말씀의 신실함에 강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지 않고 헛되이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성전 파괴에 대하여 말하다가 32절에서 재림으로 주제를 바꿉니다. 여기서 ‘그날과 그때’라는 표현은 재림의 때를 말하는데 마가복음에서 처음으로 재림의 주제가 등장합니다. 사실 17,19,20,24절에서는 성전 파괴와 관련된 징조들이 나타나는 때를 ‘그날들’이라는 복수형으로 표현했는데, 이 구절에서 ‘그날’이라는 단수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 파괴와 관련된 징조의 날들과 분명히 구분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재림의 시기는 하늘에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합니다. “아들도 모르고”라는 표현은 성자의 능력을 제한하기보다 신성의 질서 면에서 하는 말입니다. 재림의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비밀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을 알려고 나름대로 지식을 동원하여 계산해보려고 합니다. 학생이 시험을 보는 날짜와 장소와 시험범위를 잘 안다고 해서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아무리 시대의 징조를 관찰하고, 종말론 세미나를 많이 참석한다할지라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시간, 물질,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와 같이 자기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땅에 묻어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는 사실과 그에 따른 준비입니다. 재림의 날을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말세를 사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긴장해야 합니다. ‘언제’재림이 있을 것인가 보다 ‘어떻게’재림을 준비하느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각자가 맺은 열매를 주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타국으로 떠난 주인의 비유(34-37절)


이어서 예수님은 종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타국으로 떠난 주인의 비유를 통해 제자들이 말세에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를 가르치십니다. 주인이 타국으로 떠난다는 설정은 이 비유의 주제가 성전 파괴가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전 파괴는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던 때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일어날 것이라고 언급되었지만, 재림의 시기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주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주인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재를 뜻합니다. 주인이 집을 떠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합니다. 종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갑자기 오더라도, 종들이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비유에 언급된 시간들, 즉 저물 때, 밤중, 닭 울 때, 새벽은 밤을 넷으로 나누는 로마식 시간 구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언급된 네 시점을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신 때와 연결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물 때 자기를 팔 자와 함께 저녁을 드시고, 밤중에 악인들에게 체포되시며, 닭이 울 때 공회에서 서서 재판 받으시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당하시며, 새벽에 빌라도에게 넘겨지십니다. 이 시간대들은 통상적으로 여행하는 자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인자의 재림의 때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재림을 맞이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5절에 ‘주의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시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비유에서 ‘깨어 있어야 함’과 더불어 강조되는 것은 맡은 자들의 책임입니다. 집주인이 멀리 타국으로 갈 때 종들에게 권한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권한’이라는 말은 마가복음 6:7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고 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용어입니다. 종들은 주인이 맡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35절과 36절은 주인이 언제든지 그 집에 돌아와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발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주인이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각의 임무와 그에 따른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에 종들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제자들은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고,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재림 신앙을 가진 자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섬김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만족과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말세를 사는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순종하며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의와 평강으로 다스릴 날을 소망 중에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성도들에게는 단순히 끝이 아니요 영원한 세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말세를 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징조’란 어떤 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 발생을 미리 알려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병에도 증상이 있습니다. 증상이 나타날 때 빨리 병원에 가서 전문의의 진단을 받고 치료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증상이 없는 경우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병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 이미 늦은 경우도 있습니다. 병이 상당히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예수님은 당신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재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기에 재림의 약속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처럼, 징조들이 나타나면 종말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 일들은 지체되지 않으며,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분별하는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때를 분별하고 준비할 수 있는 지혜를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깨어 있어야 합니다


때를 분별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언급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대의 징조를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것을 깨닫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국으로 떠난 주인의 비유”를 통해 깨어 있을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주인이 언제 오겠다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의 종들에게 할일을 주었고 그들이 그 일들을 잘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주인이 불시에 찾아올 수 있음을 명심하고 종들이 잠들지 말아야 하듯이 성도들은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잠을 자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야망, 안전, 행복만을 추구하며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이라도 예수님이 오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날은 천사들도 모르며, 심지어 예수님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기에 합당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성적으로 악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교만해지기 쉽고, 자신의 위치를 벗어날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말세의 징조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종말의 때가 가까이 이르렀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 휩쓸려 정신없이 살다보면 시대의 흐름이나 이루어지는 징조, 장래에 대하여 별로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삶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을 종말론적인 삶입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방탕과 영적인 무감각에 빠지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가 된 것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과 지어져 가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가면서 종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맡겼다는 비유는 우리 모두가 청지기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는 임무가 주어졌고,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시간과 물질과 건강과 재능이 주어졌습니다. 그것들은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자기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땅에 묻어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활용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사명은 이 땅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에게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행 1:11)고 질책했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신 후 순교하기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임무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예수님이 오셔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말세가 다가올수록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어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말세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단들이 성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지진이나 기근 같은 재앙이 일어나고 신앙의 핍박이 일어나는 것이 말세의 징조들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영광중에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성도들은 그때까지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Corona virus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 각국 정부는 더불어 살자고 하며‘With Corona’즉 ‘코로나와 함께’를 외치고 있습니다. ‘With Corona’시대에 진정한 해결책은 'With Christ'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대가 악할수록 종말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때를 분별하며, 항상 깨어 있으며, 사명에 충실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면서 영광중에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