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주님의 식탁 (막 14:12-26)

Author
Myung
Date
2006-04-11 17:32
Views
5973
주님의 식탁 (마가복음 14:12-26)



개신교에서 드리는 성례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세례요 또 하나는 성찬입니다.  성찬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으면서 성찬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통하여 성찬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찢기시고 흘리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가슴 깊이 느끼면서 오늘 성찬식에 참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마가복음 14장에는 식탁이 두개 등장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밖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벌인 식탁입니다.  예수님이 손님이 되어 대접을 받고 마리아는 소중히 간직하였던 옥합을 깨뜨리며 값비싼 향유를 부어 드립니다.  여인의 행위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것이었기에 예수님을 감격시킵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것을 기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향기가 사라졌겠지만 여인의 행위는 아직도 전해집니다.  주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식탁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어떤 집 다락방에 차려집니다.  그 방은 ‘주님의 객실’이라고 불립니다.  그 식탁에는 유월절에 먹는 평범한 음식이 차려져있었지만 주님이 축사하시니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만찬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모든 성도들이 계속해서 기념해야 하는 성찬이 되었습니다.   시몬의 식탁에서는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이 기억되어지는데 다락방에 있는 식탁에서는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몸과 피가 기념됩니다.



오늘의 장면을 연극으로 꾸민다면 등장인물이 전부 몇 명입니까?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 물동이를 가지고 간 사람이 들어간 집 주인, 예수님과 열 두 제자 등  전부 15명입니다.

  

예루살렘 성안의 어떤 집 다락방에 차려진 주님의 식탁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  성도들의 순종과 헌신이 드려지는 곳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대제사장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고 있는데 주님은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셨다.  유월절 만찬은 유대인들이 출애굽 사건 이후로 지켜 오던 전통적인 관습이다.  그 당시 예루살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모여든 사람들로 인하여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당연히 방을 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어디서 유월절 식사를 해야 할지 전혀 대책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주님이 유월절 식사를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할까요?‘  그런데 주님은 이미 열두 제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유월절 식사를 들 수 있도록 준비하셨습니다.  왜 비밀히 준비하셨겠습니까?  지금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따라 다니기에 예수님이 혼자 계시는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주무시지 않고 저녁이면 베다니로 가신 것도 그들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 있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만찬은 반드시 예루살렘 성안에서 해야 하는 것이 유대인의 전통이기에 예수님은 성안에서 유월절 식사를 할 장소를 미리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안에 들어가 보니 과연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하면 물동이는 여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인데 남자가 가지고 가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주님과 미리 약속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접선을 위한 사인과도 같습니다.  두 제자가 그 사람을 따라가 보니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방은 이층에 있는 큼지막한 다락방이요 이미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고 유월절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입니다.  다락방은 주로 손님 접대를 위하여 사용되는 방으로 다락방까지 가진 것을 보면 집주인은 상당히 부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쓰시겠다 하니 그는 기꺼이 주님께 자기의 다락방을 사용되도록 내어놓았습니다.  복음서에는 열두 제자나 몇 명의 여인들 외에도 드러내지 않고 주님의 사역을 돕는 무리들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 이 집주인도 자기의 다락방을 예수님을 위하여 기꺼이 제공함으로써 그의 다락방은 주님의 식탁이 마지막으로 차려지는 장소요 주님의 재림 때까지 기념하라는 성만찬 예식이 시작되는 장소가 됩니다.  그 다락방은 분명히 그 주인의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예비 되었을 때 ‘주님의 객실’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것을 드리기 원하십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할 때 우리가 미처 생각지 않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2)  주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곳입니다.  

아직 제자들은 유월절의 영적인 의미를 예수님과 관련지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어디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아시고 제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직접 준비하셨습니다.  제자 둘에게 그 집에 들어가면 집주인에게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물으라 하였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말씀 중에 “내가 내 제자들과” “나의 객실” 하시면서 내가 강조됩니다.  “나의 객실”로 불리면서 예수님이 호스트가 되시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다락방에서 이루어질 유월절 만찬 예식의 주체는 주님 자신인 것을 강조합니다.  예루살렘 성 밖 베다니에서 베풀어진 식탁은 예수님이 손님이요 예수님을 위하여 베풀어진 식탁이요 여인이 예수님께 기름 부은 일이 기념되어지는 식탁이라면 예루살렘 성 안 다락방에서 베풀어진 식탁은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식탁이요, 제자들을 위하여 베푸신 식탁이요, 예수님의 몸과 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기념되어지는 식탁입니다.  이제 주님은 오늘밤에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히셔서 재판을 받으시고 내일이면 죽으십니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밤에 주님의 식탁을 주님이 직접 마련하시고 모든 과정을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십니다.  우리의 하는 모든 일들을 그것이 신앙생활이든 사업이든 학업이든 가정생활이든 주님이 주관하시도록 주님께 우리의 생의 운전대를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하시면 실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하시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택한 백성들만 참석하는 곳입니다.

식사를 하는 분위기가 어떠할까요?

이미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병자들이 일어나고 귀신이 쫓겨나고 군중들이 환호하며 몰려들던 때는 아득한 옛날 같습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들을 누릅니다.  출애굽을 준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날밤에 느꼈던 불안과 긴장이 지금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느껴집니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 줄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누가 이런 일을 했어 하면 공연히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을 서로 보았을 것입니다.  누가 도대체 선생님을 배반한다는 말인가?  "나는 아니지요?" 하고 저마다 근심하면서 하나씩 물어옵니다.  

유다는 이미 대제사장 무리에게 예수를 넘겨주면 얼마를 받겠다고 이미 모의를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태연스럽게 예수님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식사를 듭니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인데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만  당사자인 가룟 유다 외에는 아무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은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을 아셨지만 드러내 놓고 유다를 지목하지는 않았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옆에 앉은 유다를 암시하셨지만 다른 제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요 13:26,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음식을 직접 찍어 주는 행위는 유대인들에게는 자기 손님에 대한 각별한 우정을 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님은 유다에게 대하여 호의를 베풀고 사랑을 표시하시지만 유다는 그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은 유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즈음 일부 카톨릭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가룟 유다 복권운동이 일고 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각본에 따라 예수를 배반할 자로 정해졌기에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천국에 갔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가롯 유다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의 배반은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요 그 때문에 그는 자기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주님은 일부러 그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으면서 마지막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유다는 끝내 거부하였기에 하나님의 심판밖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유다가 저지른 행동은 자기 뜻대로 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구약의 예언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붓던 마리아에게 허비한다고 꾸짖던 가롯 유다는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향유보다 값진 자기의 인생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죽음이 이미 구약에 예언된 것이며 하나님의 정하신 뜻임을 알고 이에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순종하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십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거기에 순종하는 마음, 고난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부터 얻게 됩니다.



가룟 유다가 나가자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성찬식을 제정하십니다.  이제 주님의 식탁에는 택함을 받은 주의 제자들만이 참여합니다.  삼년을 열심히 쫓아다니던 유다는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성찬식은 누구나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만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익이나 정욕등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가룟 유다같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또한 주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같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 우리가 믿음에 서 있는지 항상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계속해서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4) 주님만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다락방에는 열한 사람의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제자들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유월절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들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치하에서 구원하셨는지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원래 유월절 만찬은 구운 양고기와 무교병 (Matzoh)과 쓴 나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은 애굽을 나오기 전 문설주에 발랐던 양의 피를 생각나게 합니다.  무교병은 미처 반죽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애굽에서 급히 나오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쓴 나물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때의 고난을 생각나게 합니다.  거기에다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마시는 전통을 추가했습니다.  유월절 만찬이 끝나고 나면 집의 가장은 남은 무교병을 떼어 식구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성찬 예식은 바로 유월절 만찬이 끝나고 난 후 그 집의 주인이 하는 예식을 연상케 합니다.  특히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는 모습은 앞으로 교회가 성찬식을 통하여 어떻게 주님과 교제할 것인지 본을 보여주신다. 예수께서 떡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받으라는 말의 의미는 구원이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 가능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떼어주신 빵을 들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위해 유월절 빵이 되시는구나.  



예수님이 집어든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또한 잔을 가지고 감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니 그들이 다 마시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제자들은 잔을 마시면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유월절 포도주가 되시는 구나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떼어 주시는 빵과 돌리는 포도주를 들면서 숙연한 분위기 속에 젖었을 것입니다.  성찬이 영어로 Eucharist인데 그 의미는 give thanks,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 먹고 마시던 평범한 떡과 평범한 포도주인데 주님이 축복하시니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거룩한 떡, 거룩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것일지라도 주님의 손길이 닿으면 거룩해집니다.  우리가 있는 곳마다 우리가 하는 일마다 거룩해지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합니다.  



예수님은 성찬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새 언약을 선포합니다.  언약은 쌍방간에 맺는 약속입니다.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맺을 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언약서를 낭독하니 온 백성이 한 목소리로 주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지키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짐승의 피의 절반은 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리며. "이것은 주께서 이 모든 말씀을 따라 너희에게 세우신 언약의 피다."  (출 24:8)  즉 첫 언약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을 전제로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우상을 섬기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면서 하나님에게서 떠났습니다.  그 결과 주전 722년에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남쪽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하신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렘 31:31)“내가 이스라엘 집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렘 31:33)  새 언약은 하나님께 대한 예수님의 순종 즉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을 전제로 하며 예수님의 피가 흘려져야 합니다.  시내 산의 언약은 육신적인 이스라엘과 맺었으나 예수님을 통한 새 언약은 새로운 이스라엘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예언을 한 지 600년 만에 등장하신 예수님이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막 14:24)  하셨고 사도 바울도 고전 11:25,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하시면서 예수님의 피가 새 언약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일부는 하나님의 단에 나머지는 우리에게 뿌려집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을 이루시고 새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줄여서 구약이라고 합니다.  약자는 약속할 약자입니다.  구약은 옛날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약속대로 인행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새 약속을 제시하셨기에 신약이 등장하였습니다.



새 언약의 피를 말씀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때가 오기 전에는 다시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십니다.  원래 유월절 만찬에는 잔을 네 번 듭니다.  이 네 번의 잔은 출애굽기 6:6-7에 나오는 네 가지 약속을 상징합니다.  출 6:6-7,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1)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2)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3)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4)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예수께서 24절에 하신 언약의 피에 대한 언급은 ‘구속’의 개념이 들어가 있는 세 번째 잔을 들 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인 네 번째 잔은 들지 않으셨습니다.  그 마지막 잔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에 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다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 메시야의 잔치에서 포도주를 들기 전에는 다시 잔을 들지 않겠다고 하시며 마지막 잔은 미래를 위하여 남겨 두십니다.



* 성찬의 의미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3-26절)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 외에는 교회 안에서 큰 소리를 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주장들이 우리를 주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만이 우리를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성찬을 나누면서 우리 모두는 주님의 죽으심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또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새 언약의 표시.  피의 언약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언약입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기에 우리도 목숨을 걸고 이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떡을 떼며 주님의 잔을 마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그분만이 우리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은 주의 몸 된 교회의 각 성도들이 함께 떡을 먹고 잔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속하였다는 것을 기념합니다.  성찬에 사용되는 떡과 피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가리킵니다.  요 6:53, “누구든지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므리바 물가에서 물을 먹으며 출애굽의 구원을 체험하였으나 그들은 광야에서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초월하는 하늘나라의 영생을 가져다주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가리켜 생명의 떡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그 떡이라.  예수님의 살과 피가 바로 영생을 주는 하늘로부터 온 떡이라는 의미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날 있을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떡을 떼어주고 붉은 포도주를 부어주는 행동을 통하여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속의 제사요 새 언약을 세우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대속의 제사는 우리의 죄가 용서되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언약을 세웠으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즉 새 언약의 제사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되게 합니다.  



성찬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가져다주는 구원이다. 성찬에 기억해야할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가 기념하라 (24, 25), 선포하라 (27), 참예하라 (10:16)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그의 죽으심의 의의를 기억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그의 구원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교회에서 성찬을 일년에 두 번 하든지 네 번 하든지 성찬이 단순히 교회의 의례적인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없이 참여하는 성찬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 없이 성찬식에서 포도주와 떡을 먹는다면 그것은 예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주가 죽으신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그의 죽으심을 전하기를 다짐해야 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 성찬을 만드신 이유

성찬이 중요한 이유는 주님이 직접 만드신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전통이나 의식들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짐승을 바치는 제사나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들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 안식일의 의미를 새롭게 하시고 나의 모친과 형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시면서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의식을 예전이라 합니다.  예전은 눈에 보이는 설교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를 받지만 예전을 통하여 눈으로 볼게 함으로 은혜를 끼칩니다.  주님의 몸을 나타내는 떡을 먹고 주님이 흘리신 피를 나타내는 포도주를 마심으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구약의 대부분의 의식들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언약으로 성찬만 지키게 하셨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하늘나라의 포도주로 주님과 교제할 것을 기다리는 준비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었고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생각해보면 꿈만 같고 기적과 같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하신 것을 보면 우리는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블레셋을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물리치고 나서 에벤에셀, 도움의 돌을 세우며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서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동편의 창문을 열고 기도하며 감사하였던 다니엘처럼 조국을 떠나 낯선 미국 땅에 이민 와서 비록 언어의 장벽이 있고 문화적 이질감이 있는 곳에 살지만 인도하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서로 사랑하며 형제나 자매들을 믿음으로 섬기면서 주님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합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이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니라 모세 때부터 지켜오던 유월절 의식에 새롭고도 깊은 영적인 의미를 주신다.  예수님이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5절)  예수님은 제자들과 이러한 친교 나누기를 간절히 바라셨다는 말이다.  무슨 고난입니까?  심문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창에 찔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입니다.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Exodus 시킨 것을 기념하는 절기에 주님은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쳐 인류 역사상 아무도 하지 못했던 제2의 Exodus를 준비하고 계셨다.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영적인 이스라엘이 참여하여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떡과 잔을 함께 나눔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 자매됨을 깨달으며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임하는 체험을 하며 주신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