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네 부모를 공경하라

Author
Myung Myung
Date
2022-05-08 16:15
Views
286

여행을 갔다 오면 ‘역시 내 집이 최고야’라는 말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집처럼 자유롭고 평안하고 안식하기에 더 좋은 곳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녀입니다. 자녀가 없는 가정은 쓸쓸하고 외로우며 자녀가 있는 가정보다 온전하게 유지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고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자녀를 낳아 기르려고 합니다. 물론 가정에 자녀가 있다고 해서 모두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자녀가 성실하고 신앙 안에서 복되게 자라 가지 않고 불량하고 사고를 치기만 한다면 오히려 부모에게 큰 근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만드신 제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는 것입니다. 무너져 가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데 성경이 어떤 도움이 됩니까? 오늘은 십계명 중 5계명을 통해 부모와 자녀 관계의 회복을 위한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물론 이 말씀이 나온 배경은 오늘날의 상황과 다릅니다. 그 당시 농사나 목축을 하면서 가족들이 서로 의지하고 함께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식 심지어 일가친척들까지 모여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자연 가족 간의 위계질서가 필요했고, 윗사람에 대한 절대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뿐 아니라 할아버지와 손자, 친척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정서적인 안정감, 소속감과 정체성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 시대의 히브리 가정은 종교적 공동체로서 자녀의 신앙을 책임지는 살아 있는 교육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산업화, 도시화의 과정에서 전통적인 확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가르침은 21세기에는 별로 쓸모없는, 시대와 동떨어진 낡은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히 4:12).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상황에 그 변하지 않는 진리를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십계명에서 5계명의 위치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구약성경에서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5계명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중고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survey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숙제해라, 네 방 좀 치워라, 피아노 쳐라’등등. 엄마로부터 그런 잔소리 한 번도 안 들어 본 학생은 없을 것입니다.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나에게 자꾸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 나도 안다구요’하며  간섭받기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5계명이 권위와 질서에 관한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는 규정과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는 규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십계명 중에서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5-10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으로 취급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모 공경의 계명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과 사람 사이의 계명의 연결 역할을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5계명이 하나님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습니까? 첫째, 십계명 가운데 서론과 1,2,3,4,5계명에만 ‘엘로힘’이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둘째, 하나님이나 부모 모두 생명의 수여자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 생명을 잉태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경외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 부모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다른 신을 경외하면 그 결과는 징계와 멸망입니다. 열왕기하 17:7-12에 의하면 북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다른 신들을 경배한 결과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모에 대해서도 경외하라고 합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레 19:3) 부모가 왜 경외의 대상입니까? 부모를 통해 자녀에게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죄는 하나님에 대한 죄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형벌로 다스려졌습니다.


 


부모 공경의 의미


개역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 성경을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 여자는 인구 조사할 때 수에 들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등하게 공경하고 경외해야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 공경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 부모를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공경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카베드’는 ‘무겁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부모의 명령, 소원 등을 가볍게 흘려듣지 말고 신중히 귀를 기울이고, 부모의 필요한 것을 채우고, 나아가 부모의 결점까지도 존경으로 감싸는 것을 가리킵니다. ‘카베드’의 반대말은 ‘칼랄’인데 ‘가볍게 하다’는 뜻이 있지만 ‘저주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존중받아야 할 위치에 서 있는 다른 사람을 가볍게 취급하고 경홀히 여김을 받는 위치로 전락시키는 것이 바로 ‘저주’입니다. 생명을 주신 부모를 존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장수의 복을 주시나 생명을 주신 부모를 가볍게 여기고 저주하는 자는 죽음의 형벌이 뒤따릅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21:17을 보면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2-3).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공경하는 것에 포함이 됩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약속 있는 첫 계명”(엡 6:2)이라고 합니다. 십계명 중 2계명에도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는 약속은 있지만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약속인데 반해 5계명은 부모에게 순종한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약속이란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option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누리게 되는 복이 두 가지가 있는데 잘되는 것과 장수의 복입니다. 이 말은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은 언제나 하는 일마다 잘되고 반드시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 안에서 착실하게 살며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니 그만큼 죄를 짓지 않으며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지 일찍 죽는 자들이 언제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성경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녀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신 21:18-21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완고하고 불순종하는 아들이 있어서 부모가 아무리 교훈하고 징계해도 듣지 않을 때, 부모는 그 아들을 데리고 성읍의 장로들에게 찾아가서 그의 방탕함을 고발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읍의 모든 남자가 그 아들을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 아들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사회에서 악을 제거하고, 그 소식을 듣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도록 했습니다. 


  


둘째, 부모의 말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 라고 권면합니다. ‘순종하다’라는 헬라 단어는 ‘밑에서’라는 단어와 ‘듣다’라는 두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겸허한 경청의 자세가 바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경청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주 안에서’라는 제한이 있습니다. 부모가 주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요청할 때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거하여 거절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이란 주께서 부모에게 주신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기에 마음의 소원이나 감정과 무관하게 행해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그분들을 세워주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것을 하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로마서 1:28-30절에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죄들이 나열되는데 그중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라는 언급이 나옵니다. 디모데 후서 3:2에서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언급되는데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합니다. 누가복음 2:51을 보면 “예수께서 ...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라고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부모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가 인정되는 가정이 건전한 가정이요 그런 가정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건전한 사회입니다. 


 


셋째, 부모로 하여금 인생의 안식을 즐기게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 대하여 존경을 가지는 태도 뿐 아니라 나이가 든 부모를 육신적으로 돌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아직 부모의 집에서 사는 자녀들은 계속하여 부모의 말에 순종할 것이요 집을 떠난 자녀는 부모를 계속하여 존경할 뿐 아니라 연로한 부모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녀에게 도움을 주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연로하여 육체적으로 약하고 활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부모, 또한 심신이 극도로 노쇠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부모를 공경하기란 실제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대신에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점차로 퍼져 가는 이때에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건전한 가정에서의 질서를 회복하며 세상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오늘날 5계명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생의 안식년을 맞고 있는 부모가 그 기간을 잘 지낼 수 있도록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보살펴 드려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부모의 책임


5계명을 다루면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자식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역시 공경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명령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 세상에 부모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책임은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느끼게 하며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양육과 관련지어 부모의 책임에 대해 언급하는 구약 성경의 대표적인 구절이 신명기 6장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신 6:4) 히브리어 원문은 명령형 ‘쉐마’로 시작합니다. 신명기 6장에 언급된 계명은 아이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으로 키우라고 부모들에게 주는 명령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아이들이 환경에 따라서 신앙인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비신앙인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란 후에 잠시 이탈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후에 다시 돌아옵니다. 완전히 넘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렇지만 비신앙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탈을 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습니다. 신명기 6:7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그 목적은 자녀들을 경건한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을 감동시키고 교훈하기에 충분합니다. 부모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누구 앞에서든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 가운데서 늘 말씀에 유의하며 이를 지켜 행하는 삶을 살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교훈이라 번역된 단어는 ‘교육, 훈련’이란 의미도 있고 ‘체벌’의 의미도 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 12:6). 올바른 징계와 교훈은 성경적이요 참다운 사랑의 표현이요 자녀들을 바로 세웁니다. 둘째가 훈계인데 주로 말로 타이르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잠 4:20). 이러한 양육은 교회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신앙적인 본을 말이나 행실이나 경건의 훈련하는 모습들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자녀교육의 예 


- 엘리의 경우


자식을 훈계하는 일에 실패한 대표적인 아버지가 엘리였습니다. 엘리는 자식을 낳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한나의 진실 된 기도를 술 마신 것으로 책망함으로써 기도와 술 취함도 분별하지 못하는 무능한 제사장으로 묘사됩니다. 그는 자녀 양육에서도 무능했습니다. 사무엘상 2장에는 엘리의 아들들을 ‘벨리알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라고 합니다. ‘벨리알’은 ‘무가치한’이란 의미로 행실이 나쁜 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을 건드리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을 통하여 그 소문을 듣고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삼상 2:23)라고 미적지근하게 말합니다. ‘듣노라’는 분사로 되어 있으니 아들들의 악행이 지속적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이런 아들들의 죄악을 막기 위한 어떤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들들의 죄악을 올바로 지적하고 지도하지 못한 자녀 양육의 실패가 하나님께서 엘리 집안을 징계하시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 다윗의 경우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인해 초래된 하나님의 징벌 가운데 하나로 다윗 집안에는 칼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한 암논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다윗이 크게 노했습니다(삼하 13:21). 그러나 그 후 다윗이 암논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 성경은 언급이 없습니다. 결국 이 일이 있은 지 2년이 지났을 때 자기 여동생의 복수를 계획한 압살롬은 암논을 죽였습니다. 만약 암논의 범죄에 대해 다윗이 분명하고도 확실한 징계를 했다면 압살롬의 계획은 바뀌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엘리 집안과 마찬가지로 다윗 집안에서 일어난 비극은 다윗의 범죄와 함께 죄를 범한 자녀에 대한 잘못된 조치로 인해 유발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남편은 아내에 대하여,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습니다. 후자는 전자에 대하여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전통적인 가치 체계에 도전을 했습니다. 당시 바울의 제안은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권면이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파괴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역할은 감당하되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방의 유익을 세워줄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을 삶의 기초로 삼아 서로 섬길 것을 촉구합니다. 바울의 권면의 핵심은 에베소서 5:18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믿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관계가 제대로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피차 복종하라”는 원리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이어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적용시켰습니다. 주님을 대하듯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부모와 자녀가 바른 관계를 맺을 것을 권면합니다. 가정이 신앙훈련의 훌륭한 연습장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가면서


성경은 자녀들이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부모들은 부모의 권위로 자녀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효도와 가정교육을 강조하나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되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등 삶의 모든 관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과 연결됩니다. 사랑함으로 서로 복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 동시에 제자들에게도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닮아가며 그분께 복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주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주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갖는 사람들로 이루어집니다. 서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작정한 성도들이기에 믿는 자들을 우리의 어머니요 형제, 자매로 여겨야 합니다. 육신의 가족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 가족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가정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과 이 친밀한 ‘혈육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입니다. 귀한 부모를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어버이 공경은 감사로 나타나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동안 자녀들을 사랑으로 양육해 주심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귀한 자녀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악이 관영한 시대에도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돌보는 사명을 받은 청지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보다 우리의 자녀가 가야 할 길을 더 잘 알고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먼저 자녀들을 향한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구원뿐만 아니라 그들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부모가 기도해야 합니다. 외할머니 로이스의 믿음이 어머니 유니게에게,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이 아들 디모데에게 이어진 것처럼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부모로 인하여 자녀들 가운데 요셉과 사무엘, 드보라와 에스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되기 바랍니다. 자녀들도 주께 하듯 부모를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며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가운데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영광이요 기쁨과 평강의 열매를 거두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