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Author
Myung Myung
Date
2022-07-31 16:44
Views
318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가 결국 생존한다’는 뜻이지 ‘강자가 결국 생존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7장을 보면 미디안이 강자였습니다. 그런데 미디안에게 7년간 압제를 당한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물리치고 살아남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싸움은 하나님이 사령관이 되어 싸우시는 거룩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나 신앙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합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야만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금수저보다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작아서, 교인들이 적어서, 교인들 중에 유력한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27). 우리는 비록 연약한 육신으로 인해 쉽게 죄에 빠져 살지만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주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능력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함께 살펴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며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군인의 수를 줄임(1-8절)


1-8절은 미디안의 진으로 시작해 미디안의 진으로 마침으로써 하나의 문단 단위임을 보여줍니다.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기드온이 싸우는 전쟁은 단순히 미디안 군대와의 전쟁이 아니라 바알과의 영적 전쟁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를 통해 여호와만이 참 신이시며 그분만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사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진을 칩니다. 곡창 지대인 이스르엘 평야(골짜기) 가운데를 흐르는 요단강 지류를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은 남쪽 하롯샘 곁에, 미디안은 북쪽 모레산 앞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두 진영 사이에는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었기에 이스라엘 군사들은 미디안 진영을 볼 수 있었고, 자기들의 수가 훨씬 적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미디안 연합군도 이스라엘 군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디안 군대는 지난 7년 동안 이스라엘을 약탈해 왔고 8년째인 이번에도 이스라엘을 상대로 쉽게 이기리라고 예견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대의 움직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 “너무 많은즉”(2절) 


전쟁에서 군인들이 적을 때는 문제가 되지만, 많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전쟁에서는 군사의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이 전쟁을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음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기드온은 숫적으로 훨씬 우세한 미디안의 군대와 대항하기 위하여 가능하면 많이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아비에셀 사람들을 모은 후에도 두 번에 걸쳐 추가로 군사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모여든 이스라엘 군사의 수가 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대군과 싸우자면 삼만 이천 명도 작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 하는 군사들이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두 번에 걸쳐 숫자를 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입니다. 여호와께서도 기드온이 사용한 ‘내 손’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표현은 신명기에서도 사용된 것으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하신 일들을 잊고 모든 것들을 자신들의 공로로 돌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경고하며 그럴 경우에 그들이 망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신 8:17-20). 기드온이 사용한 ‘내 손으로’이란 표현은 신명기의 율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관심은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에도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이 섬겨야 할 신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데 있습니다. 이런 여호와의 참 뜻을 기드온은 많은 군인들의 모집과 양털 시험 등으로 자꾸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 떠나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진 친 곳은 ‘하롯샘 곁’인데 하롯은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기드온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두려움의 샘’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냅니다. 이것은 신명기에서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신 20:8)라고 한 율법 정신을 반영한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들로 인해 남아있는 자들의 사기까지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칠년 동안 미디안에게 철저히 눌려 지내다 보니 그들과 대항하여 이긴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기드온이 모이라고 해서 오기는 왔지만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이때 두려운 사람은 돌아가도 좋다고 하자 이만 이천 명이 주저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신상에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절하다가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지게 될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왕 앞에서 담대히 자신들의 입장을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즉 우리가 불에 타죽는 다할지라도 우리는 우상들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담대히 선언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담대함’이란 단어에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람, 소극적인 사람, 현재의 상황을 이유로 핑계만 대는 사람을 기뻐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 “아직도 많으니”(4절)


그렇지 않아도 미디안의 군대에 비하여 수적 열세인데 삼분의 이가 돌아갔으니 기드온은 적지 않게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도 기드온은 남은 만 명을 데리고 싸우러 나가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아직도 많다고 하십니다. 만 명이라는 숫자는 누구의 힘에 의해 승리가 이루어지는지 판단하기 애매한 숫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 갈 사람들을 친히 추리시겠다고 하시며 기드온에게 백성을 데리고 물가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거기서 그들을 시험하신다고 합니다. 5절에 의하면 그들을 “혀로 물을 핥는 자들”과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로 구별합니다. 백성이 물을 마시는 실제 모습을 묘사한 6절은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로 표현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삼백 명이 선택되었습니다. 삼백 명이 선택된 기준이 무엇입니까? 혀로 물을 핥으니 좀 더 신중하게 싸울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물을 마신 자세로부터 선택된 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본문이 말하는 본질을 놓친 것입니다. 본문의 의도는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구별한 목적은 사람 수를 충분히 줄여서 이스라엘이 오직 여호와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명확히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자질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적은 쪽을 택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가 300명이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쪽을 택하셨을 것입니다. 졸지에 3만 2천명이 3백 명으로 줄었습니다. 8절에 언급된 ‘백성’은 남은 300명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야 자신의 능력을 분명하게 드러내실 수 있다고 생각하셨겠지만 기드온은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미디안 진영에 대한 언급은 3백 명의 군대가 느꼈을 긴장감과 불안감을 암시합니다.


 


적병의 꿈 이야기(9-14절)  


군사를 300명으로 줄이신 바로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그런데 기드온은 미디안을 자신에게 넘겨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부하인 부라를 데리고 미디안 진영에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너의 손이 강해져서 너는 그 진으로 내려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에게 용기를 줄 방안을 이미 준비하신 것입니다.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는데도, 기드온은 ‘진영 근처’까지만 내려갑니다.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군사들이 골짜기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이 무수한 메뚜기 떼처럼 많고, 그들이 타고 온 낙타 역시 해변의 모래같이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보고 겁에 질렸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기드온은 미디안 병사가 자신이 꾼 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의 한 장막을 무너뜨리는 꿈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번역하면 ‘(보리떡이) 장막에 이르러 치니 (장막이) 무너지고 (보리떡이 장막을) 뒤집으니 장막이 무너졌다’가 됩니다. 13절이 개역개정에서는 다 번역되지 않았지만 히브리어 본문에 ‘보라’라는 단어가 두 번 사용되어 독자의 주의를 끌고 있습니다. ‘보라’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에 대하여 말한다. ‘보라’내가 한 꿈을 꾸었다. 옆에서 꿈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그 꿈의 의미가 하나님이 미디안과 모든 진영을 기드온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라고 해몽합니다. 그들의 대화는 미디안 군사들이 기드온과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으신 것입니다.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들으면서 기드온은 비로소 이스라엘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넓은 골짜기를 다니는데 하필이면 미디안 군사가 꿈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고 그 이야기가 마침 미디안을 물리치는 기드온 군대에 관한 것입니다. 우연인 것 같지만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미디안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기드온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어야하기에 하나님은 먼저 미디안의 진을 정탐하게 한 뒤 꿈과 해몽에 대해 듣게 하시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셨습니다. 


 


꿈의 내용과 해석을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점이 드러납니다. 첫째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쳤다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이미 기드온에게 약속하신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6:16)는 말씀과 일치합니다. 둘째, 미디안의 병사가 말한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는 해석은 신학적으로 정확합니다. 이 전쟁에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기드온과 이스라엘의 군대는 그것을 수행할 대리인입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과 미디안 모두에게 하나님만이 참 신이요, 하나님만이 진정한 예배의 대상임을 알리려고 하십니다. 기드온의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반영합니다. 여호와께서 승리를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여전히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던 기드온은 사람의 말, 그것도 적군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부족함을 아시고 그가 원하는 방식을 통해 그에게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확신을 갖는 기드온(15-18절) 


기드온은 미디안 병사들의 꿈과 해몽을 듣고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디안을 기드온에게 넘겨주셨다는 말을 듣고 큰 용기와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를 세 대로 나눕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고, 그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숨기도록 지시합니다. 당시의 나팔은 뿔로 된 것이었기 때문에 어깨에 메고, 빈 항아리와 횃불은 두 손에 들고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팔과 항아리, 그리고 횃불은 공격용 무기가 아닙니다. 이 싸움은 군사적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의 작전에 미묘한 균열이 감지됩니다. 그것은 기드온이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라면서 자신의 행동에 집중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는 전쟁인데 기드온의 행동이 중요하게 대두됩니다. 또한 기드온은 미디안 진영으로 돌격할 때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라고 외칠 것을 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싶으셨는데 이 상황에서 여호와의 이름과 함께 기드온이 언급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자신의 신을 위하라’는 구호와 함께 왕의 이름을 언급하는 가나안의 관습을 생각할 때 기드온이 자신을 왕의 위치에 놓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비결


-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구약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과 이방의 전쟁은 모두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거룩한 용사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대신해 싸우시고 승리를 가져다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의 압제를 받았던 것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진 결과입니다. 영적 전투의 원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후에 나타난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목동 다윗의 싸움입니다. 다윗은 칼과 창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서 승리를 거둡니다(삼상 17:45). 모든 면에서 골리앗과 다윗은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그분을 신뢰할 수 있도록 분명한 증거를 주십니다. 대적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미디안을 기드온에게 넘겨주셨다는 꿈과 해몽을 듣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 분명히 증거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증거인 성경에 집중할 때 하나님을 신뢰하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는 강한 자가 아니라 믿는 자가 이깁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을 이끄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300명으로 13만 5천명(8:10)의 미디안 군대와 싸우는 것은 상식적으로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는 곧 그들이 그 싸움이 여호와의 영적 전쟁임을 알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싸우는 자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얼마나 잘 순종하고 따르는 가이지 우리의 수나 능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속적 시각과 가치관을 제거하시고, 당신의 크신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성도와 교회는 악한 영들과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엡 6:12). 성도는 이미 전신 갑주를 입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싸워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령의 검인 말씀을 날마다 묵상해 죄와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고 주님의 다스리심과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워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서는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싸워야 합니다. 기드온은 300명과 전쟁에 임하면서 한 손엔 나팔, 다른 한 손엔 횃불을 들게 했습니다. 드디어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한 것입니다. 악한 세력과의 전쟁에 임해야 하는 성도 역시 이러한 주님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이 명하신 사랑과 섬김을 통해 싸우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런 방법으로 이길 수 없다고 조롱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승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악한 세력과 영적 전쟁을 하며 맞서며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가면서


본문은 잘 알려진 기드온과 300 용사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어디에도 3백 명을 ‘용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3백 명이라는 적은 숫자는 원래 모인 백성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숫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기드온의 군사 수를 줄이시고 전쟁을 치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을 구원했다고 말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드온 스토리는 숫자가 많을 때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자칫하면 큰 숫자를 믿고 헛된 자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에 직면합니다. 눈에 보이는 지금의 상황들로 인해 승리를 확신하기 어렵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 역시 하나님의 가장 큰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가장 큰 구원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 십자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영광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주님이 주신 승리를 빼앗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기 위해 그의 요구에 응답하시며 끊임없이 공을 들이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큰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과 영적으로 싸우는 성도에게도 승리를 위한 유일한 무기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성도는 승리의 확신을 주시고 대신 싸워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과 승리의 원리를 깨달아,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 날마다 승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