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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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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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눅 12:22~34



우리는 고향인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이민 온 지 50년 이상 된 분들도 있고 최근에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살아오면서 한국에 있었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해 본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영어도 서툴고 환경도 낯선 상황에 적응하면서 다양한 인생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기뻐하거나 감사할 일들이 많았겠지만, 우리를 염려하게 하는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자 문제로 조바심을 내고, 사업이 힘들어져 어려움을 겪고, 자녀들을 맡길 데가 없어 사업장까지 데려오고, 갑작스런 질병에 시달리고, 사랑하는 자와 이별을 하고, 때로는 인종 차별을 당하고, 심지어 강도의 위험을 겪은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새벽부터 늦게까지 일하고, 자녀들을 키우고, 가정을 지키고,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말라.”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탐심을 배척하고, 실생활의 필요에 초연하라는 율법적 청빈에 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에 대한 믿음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언급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육신적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공존하기에, 우리 마음속에는 늘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이 일어납니다. 특히 의식주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눈에 보이는 유혹에 넘어졌듯이, 이삭의 아들 에서가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듯이, 예상치 않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로 인해 염려를 하게 되고, 혹 잘못 선택을 하게 되면 후회 섞인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여기까지 오게 하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재물에 대한 염려의 헛됨을 넘어 하나님의 돌보심이라는 거대한 사랑의 품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분을 위하여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런 자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시는지 말씀하십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며 훗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상급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말라 (22~30절)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 아래 경제적으로 몹시 쪼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기본적 필요를 채우는 문제라면 사람들은 절실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음식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의복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는데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음식과, 몸을 의복과 각각 연결시키십니다. 주목할 것은 여기에서 ‘목숨’으로 번역된 단어가 19절에서 ‘영혼’으로 두 번 나오는 단어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추구하던 것은 그의 육신적인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단어를 사용해 제자들에게 어리석은 부자가 추구하는 육신적인 삶을 피하라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숨(영혼)과 몸이라는 가장 귀한 것을 주셨으니 그 생명을 유지할 먹을거리와 입을 것을 책임지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도 때로 염려합니다. 염려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문제는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입니다. 그런데 염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염려가 미래를 바꾸지 못하고 우리의 삶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염려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마음이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현실의 문제로 인해 흔들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염려에 사로잡히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세상 백성들’의 태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현재 명령형 동사는 계속해서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do not'을 붙이면 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stop worrying. 그동안 염려하던 것을 당장 중단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아야 할 근거를 자연에서 흔히 보는 것들 중에서 찾으십니다. 먼저 까마귀를 예로 드십니다. 까마귀는 구약에 등장하는 부정한 짐승 중 하나이며(레 11:15; 신 14:14), 욥기와 시편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부르짖는 까마귀 새끼의 모습이 나옵니다(욥 38:41; 시 147:9). 까마귀는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것은 물론 물건을 쌓아두는 작은 공간인 골방이나 창고도 없습니다. 이는 앞 단락에서 어리석은 부자가 밭에서 거둔 곡식을 쌓아 두기 위해 더 큰 창고를 지었던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부자와 달리 까마귀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르시고 그의 필요를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여기서 ‘키’는 ‘수명’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수명을 한 시간인들 늘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로 백합화를 예로 드십니다. ‘백합화’로 번역된 복수 명사 ‘크리나’는 우리가 아는 lily가 아니라 갈릴리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네모네와 같은 들꽃을 가리킵니다. 백합화가 실도 만들지 않고 옷도 짜지 않으나 솔로몬의 영광보다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고 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이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들풀보다 훨씬 더 존귀한 자들을 하나님이 입히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작은 자’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기를 주저하면서 물질 때문에 염려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의존하는 데서 오는 염려를 더 이상 하지 말고, 인생과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염려를 극복하는 길입니다.

29~30절은 앞 부분(22~28절)의 내용에 대한 요약이자 결론입니다. 먹고 마실 것을 ‘구하거나’‘근심하지’말라고 합니다. ‘구하다’로 번역된 동사는 ‘추구하다’, ‘찾아다니다’라는 뜻입니다. ‘근심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앞서 사용된 ‘염려하다’와는 구별되는데, 신약에서 이곳에만 등장하며, ‘방황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주체를 재물과 하나님 사이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0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되어 구하거나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와 근거를 제시합니다. 재물과 관련된 일체의 걱정과 염려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생활에 대한 염려는 ‘세상 백성들’이 당연시하는 본능적 태도입니다. ‘세상 백성들’을 직역하면 ‘세상의 민족들’입니다. 즉 이방 민족들이고,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세상에 속한, 세상의 가치관을 좇는 민족들’입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도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극도로 악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립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아버지께서 아신다는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아시고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기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이 어찌 우리의 삶을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염려하지 않고 도리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31~32절)
예수님은 하지 말아야 할 것(염려)을 넘어, 반드시 해야 할 것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30절의 ‘너희 아버지’를 가리키므로, 그의 나라는 자녀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시는 아버지가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구하라’는 말은 단순히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삶의 중심에 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중심에 두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중심에 둡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을 중심에 둡니다. 어떤 사람은 안정된 삶을 중심에 둡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중심에 두라.”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이 말씀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세상은 남들보다 ‘먼저 준비하라, 먼저 쌓아라, 먼저 확보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삶의 우선순위에 둘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더하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적은 무리’에서‘무리’로 번역한 ‘포임니온’은 양 무리를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적은 양 무리인 셈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의 아버지이시면서 적은 양 무리를 돌보시는 목자이십니다. 양 무리는 약하기에 위험이 닥치면 희생되기 쉽습니다. 세상에 비해 우리는 ‘적은 양 무리’처럼 작고 연약해 보입니다. 맹수 같은 세상 권력 앞에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구약에도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신 28:12). 불의한 사회는 아무리 의식주 문제를 걱정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8:16~17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다는 표현과 구원받는다는 표현을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온 세상에 당신의 종말론적 통치를 베푸실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33~34절)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은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것입니다. 물질은 멀리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구제하면서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배낭’으로 번역된‘발란티온’은 보화가 들어 있는 보물 가방을 뜻합니다. 그 배낭을 만들어 물질의 부족으로 인하여 생계를 걱정하거나, 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거나, 받은 상처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이웃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땅에서 구제한 것만큼 하늘의 상급이 쌓인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제에 참여한 사람은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을 받게 됩니다. 이 보물은 32절이 언급하는 것처럼 종말론적 구원을 받음을 가리킵니다. 구제를 통해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할 이유를 34절이 알려 줍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이 말씀은 단순하지만 아주 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돈이 보물이면 마음은 돈을 향합니다. 안정이 보물이면 마음은 안정을 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물이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합니다. 마음이 하늘에 있으면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며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재물이나 권력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신자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마음은 세상에 가 있고 신앙생활은 형식적인 ‘무늬만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언제 구제합니까? 예수님의 명령은 신자의 형편이 나아지거나 재산이 많아질 때 구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팔라, 구제하라, 배낭을 만들라.’전부 과거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시행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곧바로 구제를 실천해야 합니다. 구제에 대한 하늘의 보상은 14:14에도 언급됩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의인들의 부활은 역사의 끝에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때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고 이 땅에서 수고한 것을 인해 하나님께서 보상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
-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의식주 문제는 현실적인 것입니다. 관세 여파로 물가가 올랐습니다. 이란 사태로 개스값이 더 올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집니다. 집값이 너무 오르다 보니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도움이 없이 집을 마련하는 것이 힘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살아가면서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근거로 까마귀는 농사도 짓지 않고 저장도 안 하지만 하나님이 친히 기르신다고 하셨습니다. 백합화는 스스로 옷감을 짜는 것도 아닌데 솔로몬의 영광보다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염려에 빠진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우리는 자연 미물과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한 존재이므로, 염려는 가당치않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아무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연 만물을 돌보시듯, 그분의 백성을 친히 지키시고 돌보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의심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는 염려하며 살기에 부요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과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다 아시기에 그분의 돌보심을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확언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먹고 입는 문제를 추구하는 수준에 그치지 말고 개인의 궁극적 구원과 온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였음을 인하여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분별하고 그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라고 고백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받은 바 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음식과 옷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음식과 옷이 없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돌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할 정도로 그들을 적극적으로 돌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늘에 영원한 보물이 쌓인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영적 구원을 베푸실 뿐 아니라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그들이 세상에서 이웃을 구제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지면서도 세상의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의 보상만을 기대하며 마음을 하늘에 두는 사람들입니다. 정성된 마음으로 우리의 것을 드릴 때만이 그것들이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인 하늘에 쌓일 것입니다. 하늘의 금고는 도둑이나 좀으로 상징되는 못된 무리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쌓은 우리의 보화는 그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가 쓰게 될 그날까지 변함없이 거기에 보존되어 있을 것이며, 소멸되지도 줄어들지도 않을 것이요, 상하지도 썩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거둔 열매를 자기만을 위하여 쌓아두려는 어리석은 부자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라 하시며 그의 생명을 거두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섬길 때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과 소유의 주가 되신다는 고백이 재물의 실제적인 사용에 분명히 영향을 미칩니다. 가진 것으로 남을 돕는 일은 단순히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넘어, 소유에 대해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가면서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성도의 삶에 관한 매우 실제적인 가르침을 주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이냐, 아니면 세상의 의식주를 추구하는 삶이냐’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모든 탐심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삶과 신앙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은 재물에 대한 염려를 경계하시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우주만물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할 때 염려와 근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성도는 소유의 적음을 근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재물에 대한 태도와 올바른 사용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확신하며, 염려를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늘의 시선으로 재물을 바라보며, 우리 소유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내어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연약해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염려의 짐을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며, 주신 복을 나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