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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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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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참 빨리 흐릅니다. 2025년도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연말연시 분주한 때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묵상을 하며, 회개를 하며, 때로는 금식을 하면서 각자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은 촛불 1개를 켜는데 ‘기다림과 소망’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한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주일은 촛불 2개를 켜는데 ‘회개와 평화’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온전히 살지 못했던 우리의 죄악 된 모습을 회개하며 평화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평화’가 히브리어로‘샬롬’인데, 이는 찌그러지고, 갈라지고, 깨진 것이 없이 온전하게 회복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단순히 갈등이 없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온전함, 조화, 건강, 번영, 행복 등 포괄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이는 개인 내면의 평안과 이웃과의 화목뿐 아니라, 깨어진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완벽하게 채우는 것을 포함합니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오늘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오심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과 같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는 음성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처녀들처럼 깨어 기다리며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받은 세례자 요한(눅 3:1~2)
세례자 요한이 활약할 당시의 정치적인 배경은 누가복음에만 언급됩니다. 이것은 누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역사를 세계사와 연결해 제시하기 원했음을 보여 줍니다. 로마 황제 디베로의 통치 15년은 주후 27~29년 사이에 해당합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총독으로 26년부터 36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4년부터 39년까지 통치했고, 그의 배다른 동생 빌립은 3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또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었는데, 안나스는 전직 대제사장이었고(15년에 은퇴), 그의 사위 가야바가 현직 대제사장이었습니다(18~36년). 안나스는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함께 언급된 것으로 보입니다(요 18:13).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하나님의 말씀이 ~의 아들 ~에게 임했다’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선지자의 신분을 밝힐 때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구약 선지자의 전통을 계승하는 자임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이 문구가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은 그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통치자나 권력가,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빈 들에 있는’요한에게 임했습니다. ‘빈 들의 사람’을 통해 불의와 탐욕에 눈 먼 세상을 깨우려 하신 것입니다. ‘빈 들’즉 광야는 선지자의 부르심을 위한 특별한 장소입니다. 무엇보다 광야라는 장소가 요한이 종말론적 회개 사역과 관련된 인물임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0을 보면 요한이 상당 기간 동안 광야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평범하게 살아가던 요한을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빈 들로 불러내신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 그를 빈 들에서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셨습니다. 다른 세 복음서와는 달리 누가는 요한의 음식이나 복장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요한을 엘리야에 비기는 묘사도 누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서, 그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소명을 받고 말씀을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계속되었습니다.
회개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눅 3:3)
역사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때가 되면 이루십니다. 예수님이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라면 세례자 요한은 약속된 메신저라 할 수 있습니다. ‘요단 강 부근’은 요한복음 1:28에 따르면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의 집에 있던 베다니와 다른 곳)로서 요단강 동편 지역입니다. 요한이 활동한 지역은 요단강 부근 각처였으므로 그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순회하며 사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단강 주변은 엘리사 시대에 선지자들이 모인 곳이며(왕하 6:2,4),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한 곳이기도 했습니다(수 3~4장). 따라서 요단강 주변은 새로운 출애굽을 준비하는 선지자의 사역 장소로 적합했습니다. 요한의 사역의 핵심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회개는 단순한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가치를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전인적 행동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죄를 자복한 사람들에게 회개의 징표로 물 세례를 시행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이름 앞에 ‘세례자’라는 호칭을 붙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유대교의 정결 의식과 비교하면 세 가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유대교 정결 의식에서는 제물로 짐승이 사용되지만, 요한의 세례는 회개가 요청됩니다. 둘째, 유대교에서는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정결해지지만, 요한의 세례는 ‘물’이란 매개체를 사용합니다. 셋째, 유대교는 짐승을 통해 반복적으로 정결 의식을 행하지만, 요한의 세례는 일회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거쳐서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처럼 요한이 베푼 세례는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구원을 대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세례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받는 세례와 유사합니다. 이방인을 죄인으로 간주하던 유대인들이 자신들도 죄인이라고 인정하며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 사함을 예비하는 길이 회개의 세례라는 뜻입니다.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요한은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사 40:1~5)
누가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세례자 요한의 사역의 정당성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습니다. 비록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저지른 죄악으로 그들을 징계의 채찍으로 때리셨지만 때가 되어 그들을 회복시키려고 하셨습니다.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출애굽의 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이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포로가 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위로하라’고 하시면서 이제 고난의 때가 끝났음을 알립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위로하라’는 명령형의 반복은 이 메시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있을 때에는 그들을 위로할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멀리 쫓아내실 때 ‘이 백성’(6:9,10)이라 부르셨는데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면서 ‘내 백성’이라 부르셨습니다. 호칭의 변화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고 언약 백성으로서의 회복을 보여 줍니다. 1~2절이 ‘예루살렘을 위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담고 있다면 3~5절은 선포된 위로가 확실히 성취될 것임을 강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예루살렘에 영광으로 임재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 여기서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대로’는 예루살렘의 보좌로 귀환하시는 하나님을 위한 길을 의미합니다. ‘예비하라’와 ‘평탄하게 하라’라는 명령은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곧고 평탄한 도로를 만들어 여호와의 귀환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강원도에 우리 교회와 자매결연을 한 도계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는 고속버스가 없기에 일반 버스를 타고 국도로 갔습니다. 한국을 방문하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대부분의 길이 터널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태백산맥을 지나면서도 오르막이나 내리막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한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고대에는 왕이 행차할 계획이 세워지면 선발대가 먼저 출발해 골짜기는 돋우고, 산이나 언덕을 깎아 내리고, 고르지 않은 곳은 평탄하게, 울퉁불퉁한 곳은 평지가 되게 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여기서 ‘광야’는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유다 광야를 염두에 두고 외친 듯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 동편으로 떠나가는데(겔 10~11장), 훗날 그 영광이 떠나가셨던 동편으로부터 다시 임하게 될 것(겔 43장)을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의 상황에서 주어진 이 명령은 하나님이 주권과 능력으로 반드시 회복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성취하는 세례자 요한(눅 3:4~6)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지 700년 후에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등장하여 이사야의 예언대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요한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죄악 된 마음을 회개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요한의 사역은 백성이 자신의 악한 행실을 뉘우치게 하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구원의 예비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마태나 마가 역시 같은 이사야서의 구절을 인용하지만, 누가만이 마지막에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라는 부분을 추가합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하는 메시아의 구원 역사에 요한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려는 누가의 의도가 보입니다. 4~6절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종말에 하나님이 광야를 거쳐 시온에 임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지상 사역을 마무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을 미리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것, 즉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이 낮아지며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해지는 모습은 메시아가 이끌고 오실 평화의 시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땅에 진정한 샬롬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자세
- 주님의 길을 준비합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길을 준비한다는 것은 길을 새롭게 포장하고 정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영적인 의미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는 회개와 연결이 됩니다. 회개란 중심이 바뀌는 것, 즉 자기 삶의 중심이었던 기준과 동기, 목표, 삶의 습관과 태도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이 전파한 회개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낮아지고, 굽은 길은 곧아지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지리적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골짜기는 메워지고’는 낮아진 자존감, 무너진 마음, 빈 자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과 언덕은 낮아지고’는 교만, 자존심, 자기 확신으로 쌓아놓은 마음의 산을 낮추는 것입니다. ‘굽은 길은 곧아지고’는 왜곡된 관계, 잘못된 습관, 뒤틀린 욕망을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험한 길은 평탄하게’는 삶의 거칠음, 분노, 조급함이 치유되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잘못으로 고통이나 악한 결과를 가져올까 두려워서 후회합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했지만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백했을 뿐입니다. 그는 결국 그 해결되지 못한 죄의 짐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죄를 포기하고 버리지 않으면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0-12). 이것이 진정으로 회개한 다윗의 고백입니다.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의 첫 단계가 회개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참된 회개를 하고 나면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럴 때 광야같이 적막했던 우리 영혼에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된 왕이신 주님을 맞을 준비를 잘하는 것입니다.
- 주님의 백성을 위로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종종 우리 삶이 무기력과 고통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언제나 죄인을 파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정결케 하고 죄인을 용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마음 안에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영혼이 고통 속에서 마음이 낮아지고, 자신의 죄를 각성하고 죄의 자리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지체 없이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을 통해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교만하여 높아졌던 영혼의 언덕은 평탄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우리를 넘어 이 땅을 어루만지고 변화시킵니다.
- 주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선포한 메시지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대 땅 시골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왔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요한에게 몰려든 것은 그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인정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렸다는 증거도 됩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400년 동안 하나님의 음성이 이스라엘에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신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쉬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간절하게 기다리던 차에 요한이 나타나서 회개의 메시지를 증거하니 백성들은 그를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심령을 괴롭히던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었습니다. 바짝 마른 스펀지가 물을 잘 흡수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를 달게 받아 들였습니다. 황량한 광야로 나아가 요한 앞에 자기 죄를 고하고 세례를 받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움을 받기 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감격하여 아멘으로 화답합니까?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는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고, 약속의 말씀은 영원히 서기에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위로와 기대는 어떠한 상황에도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언제나 가까이 해야 합니다.
-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준비한 사역은 죄사함에 이르게 하는 세례였습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개하고,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주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막 1:7)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하면서 예수님만을 높이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사명과 본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세례자 요한처럼 죄악으로 물든 시대에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길이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 자신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특히 우리 가정과 사회, 국가와 민족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입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전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성전을 잃고, 다윗 왕조의 멸망으로 왕도 잃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과의 언약이 파기되어 여호와 하나님은 더 이상 자기들을 지켜주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망과 고통을 지켜보시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하시며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회복의 선포는 승리한 왕으로 예루살렘에 귀환하시는 여호와를 위해 대로를 건설하라는 명령으로 주어졌습니다. 대로를 통해 자신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모든 육체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 당시의 시대도 혼란했습니다. 외세의 지배, 무거운 세금, 백성의 절망,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 등등. 빛보다 어둠이 짙은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곳은 놀랍게도 성전이나 궁궐이 아니라 요한이 머물던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텅 빈 곳, 기대가 끊어진 곳,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런 광야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기대와 계산을 넘어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서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혼란과 어둠이 깊은 순간에 시작됩니다. 세상의 불안, 우리의 삶의 무거움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요한의 메시지의 마지막은 심판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그 구원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대림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그리스도가 언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는 것은 항상 깨어 있어 준비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세속적이며 불신앙적인 생활로 빠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세는 거룩함과 경건함입니다. 우리 모두는 훗날 결산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기억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거두며 이 땅에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진정한 샬롬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 귀한 성탄의 계절에 영원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 깊이 모셔 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가정과 교회와 삶의 현장에서 세례자 요한과 같이 겸손하고도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능력 있는 종들, 하나됨을 이루는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