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
Author
명
Date
2025-07-13 23:39
Views
353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순간이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하여 안타까워 한 적도 있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근심하고 불안해한 적도 있었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며 답답해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는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우리의 기도가 하나하나 이루어진 것을 봅니다. 때로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더욱 순종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무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워놓고 그 돌을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의미로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럇여아림에 머무른 여호와의 궤(1~2절)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3:1). 사무엘 이전의 사사였던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량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전에 자기들이 먼저 좋아 보이는 제물을 취하며 백성이 드린 제물에 탐욕을 부렸습니다. 회막문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을 건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는 아들들을 엄하게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2:24).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아버지 엘리의 충고를 들을 리 없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십계명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드리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간음하고 도적질하니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찾아와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2:30) 하며 사무엘을 높이고 엘리 집안에게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전했습니다.
블레셋군대와의 첫 번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패하여 4000명 가량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하나님의 궤를 진중에 두고 싸우면 이길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실로에 있던 법궤를 가져왔으나 결과는 이스라엘의 처참한 패배였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달리 법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삼만 명이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궤를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도 아니하면서 법궤만 있으면 형통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일 뿐이요 그 자체는 만나와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와 두 돌판을 담은 상자에 불과했습니다. 블레셋도 법궤를 빼앗아가기는 하였으나 그 법궤를 인하여 엄청난 재앙을 당했습니다. 신당에 있는 다곤 신상이 부서지고 하나님께서 심한 독종과 쥐를 보내니 블레셋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에 돌려보냈습니다. 결론적으로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다가 죽임을 당하였고, 엘리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기의 아들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아 죽었고,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를 자기들이 섬기는 신보다 못한 신으로 취급하다가 큰 재앙을 당했습니다.
블레셋에 있던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의 위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벧세메스 주민들은 여호와의 궤를 보관하며 큰 복을 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만홀히 여기고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려다 70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겁에 질린 벧세메스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갔습니다.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되고,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그 궤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는 벧세메스 사람들이 저지른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였습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진 지 20년이 지났을 때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했다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사모하니라’는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여호와께 슬퍼했다’가 됩니다. 3절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를 받고, 그로 인해 고통과 어려움을 겪어서 슬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타락은 나라의 존폐를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온 족속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슬피 울며 여호와를 찾았습니다.
백성의 회개와 사무엘의 중보기도(3~6절)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과 인접한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머물게 된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가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긴 이후에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되찾은 4:2~6:21의 내러티브에서 잠시 사라졌던 사무엘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등장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방법을 제안합니다. 먼저 이방신들, 특히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하라고 합니다. 바알은 폭풍의 신이요 가나안 땅의 풍요를 주관하는 신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스다롯은 풍요와 전쟁의 신으로 바알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여신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가나안 정착 이후 사사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신앙을 계속해서 위협했던 대표적인 이방신들입니다. 참고로 가나안의 최고신은 엘, 그 아내는 아세라이고 그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이 바알, 딸은 아스다롯으로 서로 음란하게 얽혀 있습니다. 풍년을 기약하며 드리는 음란한 제사의식은 이스라엘에게 도덕적 영적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모든 우상으로부터 멀리해야 하는 것이 여호와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이방신들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고 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만 블레셋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하는 블레셋의 압제는 이스라엘의 배교와 불순종을 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혼이 났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는 사무엘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진작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더라면 그런 일이 없을 터인데 제멋대로 살다가 실패하고 두드려 맞고 그제야 ‘빈손 들고 옵니다’하는 찬송가의 가사와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사무엘이 선포합니다.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리라.”미스바의 집회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대각성 집회였습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2km 쯤 떨어진 동네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모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모였다기보다 모든 지파의 대표자들을 포함해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모인 것을 말합니다. 사무엘이 그들을 모이라고 한 것은 그동안 이방 신들을 섬겨 온 잘못을 자복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중보자로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의 중재로 이스라엘 백성은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여 죄를 고백합니다. 미스바는 사사 시대부터 지파들이 함께 모임을 갖던 장소였습니다(삿 20:1). 미스바 집회는 죄를 자복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르면서 금식하며 죄를 자복합니다.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는 의식은 백성의 마음을 쏟는 회개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이는 이러한 철저한 회개를 사사 시대에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이방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살지 못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진실한 회개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이제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회복하게 됩니다. 미스바 집회는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여기에 ‘다스리다’(샤파트)라는 단어는‘재판하다’는 뜻도 있어서 사무엘의 사사로서의 기능을 암시합니다. 즉 사무엘이 사사, 선지자,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을 지도했음을 보여 줍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7~11절)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죄를 뉘우치고 자백하기 위해 미스바에 모였는데, 블레셋은 미스바 집회를 자기들을 향한 전쟁 준비 행동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이스라엘은 두려움 가운데 도망치거나, 그들을 불러 모은 사무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궤를 이용해 싸워 보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스바 성회 이후에 이들의 신앙은 한층 성숙해졌습니다. 백성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사무엘에게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백성의 요청을 받은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립니다. 그 어린 양은 율법에 따라 태어난 지 8일 이상 된 양이었을 것입니다(레 22:27).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습니다. ‘부르짖다’라는 동사는 사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청하는 기도에서 여러 번 사용되었습니다(삿 3:9, 6:6-7; 10:10).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블레셋 침략의 위기 앞에서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이 기사에서 사무엘은 기드온과 같은 영웅적인 사사로서보다는 거룩한 전쟁의 선지자적 중재자로 묘사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 가까이 왔을 때 사무엘은 어린 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위협은 언약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회개한 언약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서 구원을 행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의 침략에 맞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우레를 통해 블레셋 군대의 전열을 어지럽히십니다. 우렛소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은 전의를 잃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블레셋사람들을 블레셋 국경과 근접한 벧갈까지 뒤쫓아 가는 것뿐입니다. 죄를 회개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십니다.
에벤에셀(12절)
엘리 시대 이후 블레셋 군대와 치른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으로 이겼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것에 감사해서 큰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 기념비의 이름은 ‘에벤에셀’로 그 뜻은 ‘도움의 돌’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을 기념할 뿐 아니라 후세에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궤에 대한 미신적인 신앙으로 궤를 빼앗기는 수치를 겪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겼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중요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 일은 여러 번 있습니다.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중 꿈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자신에게 말씀하신 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창 28:19).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에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이를 때 요단 강 가운데에 돌 열둘을 세웠고(수 4:9),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에는 큰 돌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기념물로 세웠습니다(수 24:26). 이처럼 사무엘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해서 도움의 돌을 세운 것입니다. 전쟁에 패한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고 합니다(13절). 신앙의 회복이 정치적인 회복과 군사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군대의 힘에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이 승리의 관건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제거하고 죄를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
사무엘의 시대에 이스라엘에 찾아온 회복과 부흥은 회개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모든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 우상 숭배는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죄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면서 동시에 가나안의 풍요와 복의 신인 바알을 함께 섬겼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는 한 분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을 신으로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참된 부흥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무엇보다도 교회 안의 모든 우상 숭배의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만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사고와 가치관이 바알 신앙처럼 신앙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누룩들을 내어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불신앙도 죄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도 죄입니다. 이러한 죄에서 사함을 받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기쁨을 주십니다. 능력을 입혀주시고 참된 사랑을 누리게 하십니다.
-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소극적인 차원의 관계 회복을 위한 준비라면, 여호와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하는 것은 적극적인 차원의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상한 마음을 원하십니다(시 51:17). 사무엘상 7장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거룩한 전쟁’의 이야기입니다. 거룩한 전쟁에서 승리의 관건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방 민족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엘 시대의 블레셋은 배교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우상 숭배로 인해 여호와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싸우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여호와만을 섬기고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 기도해야 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을 때에 사무엘은 그들을 미스바에 모아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지라도 살아가는 방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나 능력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블레셋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빌기를 다 하매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행 4:31). 사도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기도할 때 옥 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매인 것이 풀어졌습니다(행 16:26).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필요할 때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이루어졌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달라고 하는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드리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은 삼천년 전에 한번 있고 마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을 때 블레셋의 계속적인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상을 제거하고 금식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도움의 돌을 세웠습니다. 에벤에셀이란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군대에게 두 번씩이나 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지며 하나님만을 높였더니 그곳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가져다준 복된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30년 동안 한결같은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신 곳이 바로 팔로마한인교회입니다. 여기가 에벤에셀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어떤 형편과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에벤에셀에서 자기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념하였듯이 여러 가지 시련과 역경 속에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진짜 도움의 돌인 예수 그리스도, 믿음의 주시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 모두 결산하시는 하나님 앞에 점도 없이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서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힘은 군대의 강함에 있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었습니다(시 20:7). 우리 또한 구약 시대 이스라엘처럼 거룩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딤후 2:3-4). 우리의 싸움은 악한 마귀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력들에 대한 것입니다(계 12:9). 우리가 싸우는 영적인 전투에서의 승리의 관건은 십자가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거룩한 전쟁에서 우리의 자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회개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분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는데 앞장을 서며 진리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온 교우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명한 증거들을 보여주며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