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부르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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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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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뽑아 잘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은 혼자 말씀을 전하시고 치유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 오신 것은 복음을 전하다 우연히 들르신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의 뒤를 이어 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을 부르기 위함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기사의 내용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사와는 약간 다릅니다. 마태와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베드로는 형제 안드레와 함께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즉시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다음에 부름 받은 자들은 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씻고 수선하고 있던 요한과 야고보 형제입니다. 누가복음의 소명 기사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간단하게 소개된 소명 사건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주님이 어떻게 제자들을 부르시는지 부름 받은 자들은 어떻게 응답하는지 살펴보며 우리 또한 주님이 부르실 때 순종하며 주님을 따르는 참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무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1~3절)
개역성경의 번역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본문은 ‘~일이 일어났다’라는 누가 특유의 어법으로 시작합니다. 누가는 이 표현을 새로운 시작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모여든 무리에게 아침 일찍부터 가르치십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하는 말씀을 가리킵니다(4:31; 8:12,14). 그러므로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말씀도 하나님 나라와 메시아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리는 예수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나아가 말씀을 들으려고 서로 밀쳐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배 두 척이 있는 것과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고기를 잡는 작업은 보통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다음 조업을 위해 그물을 손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씻는다’는 것은 그들이 이 일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단계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두 배 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10절에 의하면 다른 배는 예수님과 인척 관계에 있는 야고보와 요한의 배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자매였습니다(마 27:56; 막 15:40).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가신 것이나 시몬의 배에 오르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나시려고 일부러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라고 요청하신 것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왔기에 무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청중을 보시면서 가르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시몬을 비롯한 어부들은 밤새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렇다고 베드로 일행이 배에서 내린 후에 화를 내며 그물을 내팽개치거나 술이나 한잔 걸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피곤하다고 자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라면 그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고,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로 불림을 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일할 기분이 나지 않고, 밤새 그물을 던지느라 육신도 피곤했지만 그 아침에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물을 제대로 펴서 씻어 말리지 않으면 그물이 썩거나 엉켜서 다음 조업에 지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몬은 배를 조금 떼라는 예수님의 요청이 귀찮게 느껴졌을 수 있지만 그 요청을 묵묵히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는 시몬(4~7절)
시몬은 배에서 예수님이 무리에게 전하는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을 듣는 동안 시몬의 마음에 진한 감동이 밀려 왔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다가오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깊은 데로 가라”는 단수 명령형이고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복수 명령형입니다. 베드로가 배를 몰고 가서 여럿이 그물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배에 여러 어부들이 함께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주로 밤에 고기를 잡습니다. 왜냐하면 밤에 고기떼가 먹이를 찾아 얕은 물가로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려고 했으나 헛탕을 쳤는데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니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결과는 뻔합니다. 지금 고기를 잡으러 나간다면 아침 내내 깨끗이 씻어 놓은 그물을 나중에 또 씻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만약 고기를 잡지 못한다면 이중으로 허탕 치는 것입니다. 나가야할 것인가 말아야할 것인가 시몬은 잠시 생각에 잠겼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시몬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한 궁극적인 목적은 고기를 잡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라는 ‘고기’를 잡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깊은 곳으로 가야하는지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사용한 호칭인 ‘선생님’이 누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르는 경우에만 쓰였습니다. 이 단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권위 있는 분으로 보았음을 잘 표현합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지시에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째,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밤에도 못 잡은 고기를 아침에 잡는 것이 어부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내리겠다고 응답했습니다. 그가 순종하게 된 이유는 회당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장모를 치유해 주신 사건, 그리고 그의 배에서 무리에게 하신 말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때와 상식, 경험에 맞지 않은 요구였고, 실패와 허탈, 낙심에 찬 시몬에게 거북한 요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무리에서 제자로, 무지에서 자각으로, 불신에서 믿음으로의 초대였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하여”그물을 내렸습니다. 갑자기 그물이 팽팽해졌습니다.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그물에 걸린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이 투둑투둑 찢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다급해진 베드로가 요한과 야고보가 타고 있던 배에 손짓을 했습니다. 그들이 급히 노를 저어 왔습니다. 두 배에 탄 어부들이 그물을 함께 잡아당기니 이제는 두 배가 물에 거의 잠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평생에 이렇게 많은 고기를 한 번에 잡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엄청난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8~11절)
시몬은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은 것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 일인지 어부로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잘 알았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무릎 아래 엎드림’은 신적 존재 앞에서 행하는 종교적 행위입니다. 깜짝 놀란 시몬이 자신의 삶 한 복판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에 대해 그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그분을 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예수님의 신적 거룩함 앞에서 시몬은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고 그 앞에 있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두려움, 곧 경외감을 갖습니다. 경외감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거나 엄청난 사건을 접할 때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감정입니다. 시몬의 반응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이사야의 반응과 유사합니다. 이사야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탄식했습니다(사 6:5). 시몬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불렀는데, 기적을 체험한 후에는 예수님을 구약의 여호와와 같은‘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예수님이 그저 가르침에 능한 선생이요 병 고치는 능력자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런 신분과 능력을 넘어서는 신적인 존재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개역성경에는 9절에서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어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본문에는 목적어로 되어 있습니다. 즉 놀라움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놀라움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이 권위 있는 말씀으로 귀신을 축출하실 때 회당의 모든 사람이 보인 반응보다 훨씬 강렬한 것이었습니다(4:36). 10절도 헬라어 본문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목적어로 등장합니다. ‘놀라움’이 베드로를 사로잡은 것과 같이 그들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이 잡힌 물고기를 잡은 사건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시몬에게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부들이 고기 잡는 활동과 제자들이 사람을 사로잡는 활동은 한편으로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편으로는 대조를 이룹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산 고기를 잡아서 죽이는 일이 아니라 죽어 가는 사람들을 잡아 살리는 일에 부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들은 ‘만선의 기쁨’에 머물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그들이 아버지, 배, 고용된 일꾼들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누가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라고 하면서 제자들의 헌신이 온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후에 예수님은 제자도에 관해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소중한 분이 없었고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없었습니다. ‘제자’는 나를 찾아오신 그분과의 만남 때문에 다 버려두고 떠나도 그것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얻는(사람 낚는 어부)일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보여준 제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 자기의 삶에 충실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그들을 만나셨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허탕을 쳤습니다. 낙심은 되었지만 다음 조업을 위해 그물을 수리하고 씻는 일을 했습니다. 주님은 당장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여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자를 부르십니다. 자기가 맡은 일이 작든 크든 주어진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부르시고 주님의 일을 맡기십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마 25:21)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눅 16:10). 맡은 자에게 바랄 것은 충성이라 하였는데 지금 자기의 삶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경험보다 주의 말씀을 더 의지하며 순종합니다
평생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인 베드로가 보기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어부의 상식을 벗어난 말씀이었습니다. 밤새 헛고생을 하며 피곤한 상태에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퉁명스럽게 짜증스럽게 반응할 수도 있었지만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기적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뿐 아니라 현장에 있던 세배대의 두 아들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름으로 예수님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으로 여기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의지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서 사용하십니다. 순종의 대가는 우리의 경험이나 생각을 넘어섭니다. 주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믿음을 보면서 내 상식과 내 지식 안에 예수님의 말씀을 제한해 그것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자기들의 죄를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똑같은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네 앞에 그저 있으리니”(렘 2:22) 물론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우리가 죄인임을 주님 앞에 고백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함을 받습니다. 시몬은 기적을 체험한 이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에 주목하지 않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하신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하는 시몬의 요청은 실은 예수님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요청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죄인임을 자각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이끌림과 두려움을 시몬도 경험한 것입니다. 시몬과 그의 동업자들은 그토록 바라던 고기가 가득한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주님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듣기 원하는 고백입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를 들어 쓰십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이 깨달아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이 우리에게 더욱 강하게 부딪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주이시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요, 위로의 하나님이요,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는 겸손한 자들만이 주님의 용서를 체험한 자들만이 주님의 제자들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기적을 통한 혜택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합니다.
-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하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시몬에게 주님은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전에는 어떻게 하면 물고기를 많이 잡을 것인지에 관해 관심을 가진 어부였으나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증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영접하게 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시몬이 스스로 인격적인 결단을 내리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여정에 만선을 꿈꿉니다. 공부 잘 하고, 결혼을 잘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자녀들이 출세하고 등등, 이러한 바람들이 다 만선입니다. 그러나 막상 만선을 이루고 보면 사실 그것이 본질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큰 선물을 주신 주님이 인생의 전부이심을 깨닫는 순간, 물고기가 가득 찬 배가 아닌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을 동업자로 만들려 하지 말고, 주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께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물고기를 낚는 인생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뿐더러 잃은 영혼들의 관심을 가지는 교인들이 많은 교회가 주님이 기뻐하시며 쓰시는 교회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은 부족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버릴 것은 버릴 줄 아는 결단을 합니다
전에 시몬이 고기를 잡은 이유는 자기와 자기 가족과 동역자들의 생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새롭게 만난 베드로는 이제 잡은 생선을 가지고 어떻게 먹고 즐길 것인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잡은 많은 고기 대신에 주님만 보였습니다. 이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전에 그들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던 것을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사명을 받고나니 이제 과감히 버릴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4:7-8). 주님과의 신실한 관계를 가지게 될 때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거나 지장을 주는 것들은 과감히 버릴 줄 아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내가 버린 것, 포기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이후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나가면서
본문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신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합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수고했지만 허탕을 친 채 일을 마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가르치는 사역을 위해 오셨고, 베드로의 배를 강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피곤했지만 무리와 함께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청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기를 마치시고 그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하셨고, 그는 순종했습니다. 그는 이때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시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경험적 지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물고기를 잡았는데, 그 양이 너무 많이 그물이 찢어지고 배들이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감히 그분 앞에 있을 수 없으니 죄인인 자신에게서 떠나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앞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살리는 사역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는 생계 수단인 배와 방금 잡은 많은 물고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는 주님을 제대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요청했던 베드로가 도리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것입니다. 베드로와 더불어 야고보, 요한도 사람 낚는 어부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제자 삼으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도 찾아오십니다. 그분 앞에 드리는 우리의 고백과 헌신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고, 주님 앞에 온전히 헌신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쓰시는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자기들의 삶에 충실한 자들입니다. 자신들의 경험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자기들의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겸손한 자들입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하려는 사명감이 있는 자들입니다. 버릴 것은 버릴 줄 아는 결단을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와 항상 동행하며 감당할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