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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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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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부터 시작한 다니엘서 강해가 오늘로 마무리 짓습니다. 다니엘서의 후반부에 올수록 요한계시록과 마찬가지로 설교 준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깨달음을 주시려는지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다니엘서 12장은 힛데겔 환상(10~12장)의 결론이자, 다니엘서 전체의 결론입니다. 또한 종말에 대한 예언적 결론입니다. 곧 마지막 날에 일어날 대환난과 성도의 궁극적인 구원, 최후의 승리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환상 속에서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선 이가 다니엘에게 그의 말을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라고 합니다. 마지막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훗날 주님 앞에 빛나는 존재로, 평강 가운데 서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배경
주전 7세기 말엽에 바벨론은 앗수르를 누르고 근동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갈그미스에서 애굽을 격파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 왕 여호야김이 통치하던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주전 605년 바벨론의 1차 침공 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다니엘서는 주전 586-536년 사이의 포로 시대 및 주전 538년에 시작된 포로 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다니엘서는 역사와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보여줌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환난을 믿음으로 견디게 합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유다 백성은 이국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 속에 살면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부정한 음식은 먹지 않는 등, 율법의 규정대로 사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꿈과 환상을 깨달아 아는 능력을 받아서, 꿈을 해석하고 장래의 일을 예언하였습니다. 다니엘서 전반부인 1~6장은 이야기식으로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후반부인 7~12장은 묵시 형태로 되어 있어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이나 받은 예언은 모두 미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환상’으로 번역된 ‘하존’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 즉 비전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비전의 사람들은 어려운 현실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을 받았고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 비전을 품고 나아갔습니다. 다니엘도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계시를 받은 후, 포로기에 낙심한 공동체에게 소망을 주어 포로시기를 견디게 하였고 미래를 향한 종말 신앙을 심어주었습니다. 7장에서 다니엘은 네 짐승, 하늘 보좌, 인자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 환상은 어느 특정한 나라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권력과 세상 나라의 최후에 대해 말해 준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8장에서 다니엘이 본 숫양과 숫염소와 그 짐승들의 뿔들에 관한 환상은 세상 끝에 일어날 일들을 말해줍니다. 숫염소의 큰 뿔과 그 후에 나온 네 뿔은 알렉산더와 그의 사후의 네 나라를 가리키고 그 네 뿔 가운데 나온 작은 뿔은 1차적으로 안티오쿠스 4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만 성경은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와 심판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떠한 왕국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다니엘 당시의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에게는 물론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환난과 어려움을 겪는 우리에게도 소망을 줍니다.
벨사살 왕의 죽음과 바벨론 왕국의 멸망을 목도한 다니엘은 9장에서 포로 기한 70년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13)을 깨닫고 유다 민족의 귀환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천사 가브리엘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의 해가 정하여졌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칠십 이레’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힘들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이스라엘을 위해 구원과 회복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10장과 11장에서 천사는 인자 환상을 보고 혼절했던 다니엘에게 앞으로 중동 지역에서 일어날 일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바사 제국으로부터 시작하여 알렉산더 대왕과 헬라 제국, 그리고 그 제국의 분열 그들 사이의 갈등을 상세히 예언함으로써 이런 일을 당하게 될 미래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믿음으로 행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다니엘서 전체를 통해 면면히 흐르고 있는 주된 주제는 세상 왕국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당혹케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일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어떠한 경우에도 소망을 버리지 말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다니엘의 메시지를 읽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또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가 됩니다.
역사의 종말(1~4절)
다니엘은 12장을 ‘그때에’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역사의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합니다. 종말에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나고, 지금까지 없던 환난이 닥칠 것이라고 합니다. ‘큰 군주’는 천사장 미가엘의 별명입니다. 유다서 1:9에서는 미가엘을 ‘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환난’은 미가엘과 그에게 속한 천사들과 사탄과 그의 세력이 벌이는 전쟁으로 볼 수 있는데, 역사상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종말 예언에도 언급됩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요한계시록에도 그 내용을 다룹니다.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 16:14,18). 그런데 환난이 있을지라도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책에 기록된 모든 자’입니다. 그 책은 아마도 ‘생명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출 32:33; 계 3:5; 20:12). 이 환난이 지난 다음,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여 어떤 자들은 영생을 얻고,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수치를 받게 됩니다. 구약에서 영생이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라는 뜻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깨어난다는 것은 육체적 부활을 가리킵니다.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를 직역하면 ‘어떤 자는 영원한 생명으로’이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가 있으리니’를 직역하면 ‘어떤 자는 영원히 수치와 부끄러움으로’가 됩니다. 육체적인 죽음에서 깨어날 때 믿음 여부에 따라 영생과 영원한 수치로 구분될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부활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 26:19).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두 부활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3절에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는 자’, 혹은 그들 자신이 의롭다는 의미로 ‘의가 많은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에 ‘배워서 남 주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많이 배워서 남에게 주어야 합니다. 즉,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들과 지혜를 나눌 책임이 있습니다. 그의 지혜에 의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생명 길을 가게 된다면 이것보다 더 큰 복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혜를 통하여 남을 구하는 자는 그의 업적이 별과 같이 영원히 기념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날부터 성도는 빛으로서 세상을 밝게 비추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봉함하라고 하십니다. ‘간수하다’는 ‘(우물) 뚜껑을 덮다’라는 뜻입니다. 흙, 먼지가 떨어지거나 쓰레기가 버려지지 않도록 우물 뚜껑이 잘 덮여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종말의 때까지 순수하게 잘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복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4절에서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라고 합니다. ‘왕래하다’라는 표현은 마지막 날에 교통량이 많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하다’라는 의미입니다(렘 5:1; 암 8:12).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말세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미래에 대한 일에 대하여 그들이 바라는 것만큼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알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단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미래에 대한 일들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미래에 대하여 너무 아는 체 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본문의 문맥상 ‘지식’이라는 단어를 ‘악’이라는 단어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는 이유는 토라 중심의 전통적 신앙과 헬레니즘에 타협한 배교주의 신앙 사이에서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악의 세력이 더욱 강성해 질 것이며, 자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지혜 있는 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활 신앙은 3장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과 연결되고 죽음 너머까지 확정된 하나님의 정의를 확신하며 순교까지 감수하겠다는 신앙입니다. 종말의 때는 진정 생명의 말씀이 갈급한 때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그러므로 말씀 사역자들은 올바른 말씀 연구와 올바른 가르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고, 성도들은 말씀을 사모하고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두 천사의 대화(5~7절)
5~13절은 10장에서 시작된 환상뿐만 아니라 다니엘서 전체의 결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티그리스 강변에서 두 명의 천사 같은 인물들이 서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한 천사는 강 언덕 이편에 있고 다른 천사는 강 언덕 저편에 있습니다. 두 천사가 등장하는 것은 증인 역할을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신 19:15). 두 천사 중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인지 묻습니다. ‘세마포 옷을 입은 자’라는 단어에 정관사가 붙어 있기에 그를 앞에 나타난 동일 인물로 봐야 합니다. 10:5-6에 나타나는 ‘세마포 입은 자’를 구약 성경에서 등장하는 그리스도와 연관해서 해석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의 오른손과 왼손을 하늘로 쳐들고, 영원히 살아 계신 분에게 맹세하면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나야 한다. 거룩한 백성이 받는 핍박이 끝날 때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기간은 숫자상의 3년 반이라기보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를 가리킵니다. 이 기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종말이 온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향한 축복(8~13절)
다니엘은 너무 놀랍고 혼란스러워서 이때가 언제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그러자 그리스도는 ‘다니엘아 가거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종말의 때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종말이 온다고 해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비문에 새겨진 글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내야 합니다. ‘갈지어다’는 ‘너의 의무를 다하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을 감내하는 자는 연단 과정을 통해 정결하고 희게 되는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영생의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악한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에게 세 개의 날짜가 주어집니다. 이미 언급된 ‘한 때 두 때와 반 때’(7:25; 12:7)는 백성이 당하게 될 고통의 기간을 뜻합니다. 또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이 지난다고 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1,260일인 3년 반에 한 달이 넘는 기간입니다.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라는 구절에서 1,335일은 11절의 1,290일보다 45일이 많은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환난이 완전히 끝난 시점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들의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숫자들을 가지고 인류역사 종말을 구체적으로 알아내려고 했지만, 어느 하나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미래에 대한 기본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려다 보면 문제가 되고, 억지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에게 권면합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주는 적절한 권고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의 실체의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계획대로 진행해 나가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환난과 연단을 인내로써 기다려야 합니다. 활기차게, 적극적으로, 소망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붙드는 자들만이 그렇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다림은 믿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이제 종말에 대해 알려주었으니, 비록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미래를 생각하며 - 특히 부활의 소망을 마음에 간직하고 - 진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다니엘은 마지막 날에 그가 받은 ‘안식’과 ‘몫’에 대해서 약속받습니다. 이것은 다니엘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기대하는 마지막에 일어날 사건입니다.
우리의 자세
본문을 통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세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역사상 가장 큰 환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장 미가엘을 앞세워 천군천사를 보내셔서 원수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종말의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심판주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는 영원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별과 같이 빛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이고,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 분투했던 모든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성도는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핍박을 당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질병과 싸우면서 고통을 견뎌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환난의 시기를 통과하는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와 인내입니다. 환난과 시험은 성도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는 도구임을 기억해야합니다.
-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다니엘에게 계시의 말씀을 ‘간수하고 봉하라’는 말은 명령이 주어집니다. 비밀에 붙이라는 뜻이 아니라 조그만 오류나 부패에도 말씀이 섞이지 않도록 철저하고 확실하게 보관하라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는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참된 말씀이 가리어지는 마지막 때에 온전히 말씀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교만한 세상과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믿지도 않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훗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됩니다.
-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은 다니엘에게 “너는 갈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세상 풍조와 거짓 신을 따라가는 불신자들을 옳은 데로 이끄는 것입니다. 영원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할 사람들에게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의 빚진 자’(롬 1:14)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간절함이 종말의 때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주신 귀한 기회를 우리의 무관심과 게으름으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오래 참으셔서 구원해 주신 것처럼 지금도 오래 참으시며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재물과 달란트를 사명을 감당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마지막 날을 기다리라 명하시며 평안히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끝 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에 맞게 ‘몫’을 나누어 주십니다. 특히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헌신된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해와 별같이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합니다.
나가면서
본문은 10장에서 시작된 환상에 대한 결론일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 전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구원과 심판의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 있다는 것을 믿는 신앙을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셔서 모든 역사와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과 상급이 주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죽음과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환상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예고된 환난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이 끝나는 날, 성도들은 예수님과 같이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나라를 잃고 이방인들 속에서 살았을지라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가 최선을 다한 이유는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인 것과 같이 우리는 디아스포라 한국인으로 미국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거룩하고 신실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다니엘과 같이 기도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감사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지금 힘든 때를 지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시선을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께 고정하고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상급은 섬기는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1)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환난과 배교의 때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믿음을 지킬 때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비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삶은 미래 삶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성도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소망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