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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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3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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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단 11:1~45



입시 문제를 정확히 예측해서 알려주는 학원선생을 소위 ‘일타 강사’라고 부르며 많은 학생들이 그 강의를 들으려고 합니다. 미래를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주식을 투자하거나 복권을 사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래는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니엘서 11장은 10장, 12장과 함께 다니엘이 네 번째 받은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전하는 계시를 통해 다니엘은 바사부터 헬라에 이르기까지 왕국의 흥망성쇠를 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1장의 예언이 너무 구체적이고 정확해서 주전 6세기에 다니엘이 쓴 것이 아니라 주전 2세기에 누군가 ‘성취된 후의 예언’으로 쓴 것이 아닌가라는 비평을 들을 정도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따라 오늘도 역사를 이끌어 가실 뿐 아니라 개인의 삶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성경을 오늘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사의 멸망과 헬라 제국의 발흥(1~4절)
1절은 바벨론 제국에서 바사 제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존재한 메대를 언급함으로써 뒤이어 바사 왕들이 자연스럽게 소개됩니다. 지난주일 10장을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눈에 보이는 전쟁 이면에는 영적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리오 원년인 주전 538년에 미가엘을 도와 역사의 무대가 바벨론에서 메대로 넘어가게끔 했고, 이어서 바사 왕국의 멸망에도 관여했습니다. 미가엘 천사가 가브리엘 천사로 하여금 다니엘에게 가도록 도운 것처럼, 이제 가브리엘 천사가 미가엘 천사를 돕고 지원합니다. 즉 ‘나’는 꿈을 해석하는 가브리엘을 가리키고, ‘그’는 미가엘을 가리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참된 것을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참된 것’이라는 표현은 10:21에 나오는 ‘진리의 책’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해 다니엘은 메대 바사의 패망, 헬라 제국의 강성함과 분열, 로마의 득세, 최후의 종말까지 알게 됩니다. 2절은 바사의 왕들을 언급합니다. 고레스 왕 당시 예언한 내용이기 때문에 ‘세 왕’은 고레스 이후의 왕들인 캄비세스, 세메르디스, 다리오를 가리킵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넷째’는 아하수에로 왕(주전 486~465)인데, 그의 부인이 에스더입니다. 그는 앞의 세 왕보다 심히 부요하고 강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라고 합니다.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 왕은 알렉산더 대왕(주전 336~323)을 가리킵니다. 그는 아버지 필립을 이어 주전 336년 20세의 나이로 마게도냐의 왕이 됩니다. 바사 제국을 주전 331년에 정복하고 통치 10년 만에 인도 국경까지 영토를 확장합니다.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인다고 하는데, 이는 알렉산더 왕에 대한 평가이면서 동시에 그가 세운 왕국의 운명입니다. 왕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다가 전성기에 나라가 갈라지고 천사 사방에 나누이는 것은 왕들을 폐하시는(2:21)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더 왕은 주전 334년에 정복을 시작해 33세인 주전 323년에 열병으로 죽습니다. 그런데 그는 왕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못합니다. 주전 311년에 그의 부하인 카산더는 마케도냐를, 리시마쿠스는 트라케와 소아시아를, 셀류쿠스는 시리아를, 톨레미는 애굽과 팔레스타인을 각각 다스리게 됩니다.

남방 왕국과 북방 왕국의 갈등(5~20절)
5~20절은 안티오쿠스 4세가 등장하기 직전까지의 중근동 역사의 흐름을 보여 줍니다. 7~8장의 환상에 나타난 역사를 보다 세밀하게 설명합니다. 당대의 최고 권력들의 충돌과 갈등을 보여 줍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힘을 동원하여 권력을 지키고 과시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미리 아신다는 것입니다. ‘남방의 왕들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다’고 예언합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나라는 네 왕국으로 나누어졌지만, 남방 왕들, 즉 애굽을 지배하는 톨레미 왕조와 북방 왕들, 즉 시리아를 지배하는 셀류쿠스 왕조가 크게 세력을 형성하여 힘겨루기를 합니다.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남방 왕 톨레미 2세는 자신의 딸을 북방 왕 안티오쿠스 2세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화친을 이루려고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북방으로 시집간 남방 공주가 살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화친의 관계가 순식간에 원수의 관계로 전락합니다. 그러자 남방 왕은 군대를 이끌고 북방 왕국으로 진격해 많은 금은과 각종 우상을 노략해 본국으로 가져갑니다. 이번에는 북방 왕이 남방 왕국으로 쳐들어갔는데 패배를 당합니다. 10절에 안티오쿠스 3세가 등장해 그의 활동이 19절까지 묘사됩니다. 안티오쿠스 3세는 큰 군대를 일으켜 애굽을 치려다가 남방왕인 톨레미 4세에게 패배를 당합니다. 남방 왕국이 승리한 이유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계획일 뿐인데 그는 힘으로 된 줄 알고 교만해집니다. 안티오쿠스 3세는 돌아가서 전보다 더 많은 군대를 준비하여 남방 왕국을 재공격합니다. 14절에서 남방 왕을 치려는 ‘여러 사람’은 애굽에서 일어난 반역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는 하나님보다 지상의 권력을 더 의지하려 한 어리석은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마침내 북방 왕이 남방 왕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 결과 영화로운 땅, 즉 팔레스타인은 북방 왕의 소유가 됩니다. 북방 왕 안티오쿠스 3세는 자신의 딸을 남방 왕 톨레미 5세에게 주어 남방 왕국과 화친을 성사한 다음 남방 왕국을 멸망시키려는 전략을 세웁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3세가 지중해에 있는 섬나라들을 치는데 예기치 않게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의 공격을 받아 치명타를 입습니다. 안티오쿠스 3세는 톨레미 왕조와 반복하여 치른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애굽을 정복하기도 하지만 더 강력한 로마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안티오쿠스 4세의 등장(21~35절)
안티오쿠스 4세(주전 175~164)는 셀류코스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정치적으로 큰 권세를 떨친 인물입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엄청나게 핍박합니다. 외경에 속해 있는 마카비 1서가 당시 이스라엘이 겪은 참상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비천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왕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비열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의 부친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셋째 아들을 로마에 볼모로 보냅니다. 그래서 14년간 로마에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안티오쿠스 4세입니다. 그는 형인 셀류쿠스 4세가 중신의 반역으로 살해당하자 반역자를 재빨리 처단하고 속임수로 조카로부터 왕위를 찬탈합니다. 그는 거짓으로 시리아와 백성을 미혹하여 다스렸고, 속임수로 애굽과 여러 나라를 정복합니다. 셀류쿠스 왕들이 그러했듯이 안티오쿠스 4세도 첫 번째 애굽 원정을 떠납니다.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라는 말은 제1차 시리아-애굽 전쟁에서 승리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안티오쿠스 4세가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다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과하면서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고 자기 마음대로 행합니다. 이는 주전 169년에 일어난 성전 약탈 사건을 가리킵니다. 28,30절에 ‘거룩한 언약’이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거룩한 언약’이란 유다 백성이 지키는 성경과 유다의 관습을 뜻합니다. 그가 두 번째 애굽 원정을 떠나는데,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라고 하는 이유는 ‘깃딤의 배들’때문입니다. 원래 깃딤은 지중해의 섬들과 해변을 말하는데(민 24:24) 여기서는 로마를 가리킵니다. 로마 함대가 남방 왕 톨레미의 요청으로 알렉산드리아 지역으로 출정합니다. 애굽을 떠나지 않으면 로마와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로마 장군의 말을 듣고 안티오쿠스 4세는 낙심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다가 예루살렘에 들러 분풀이합니다. 그는 조공을 담당하던 아폴니우스를 예루살렘에 보내 화친하는 체 하다가 안식일에 갑자기 공격해 도시를 약탈합니다. 무려 8만 명을 죽이고(마카비 2서 5:12-14), 악한 제사장 메넬라우스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합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거룩한 언약을 따르며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지만, 핍박을 피하기 위해 안티오쿠스의 헬라화 정책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들을 가리켜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이라 부릅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인의 종교적 전통을 말살하려고 배교자들과 함께 유대의 헬라화를 추진하면서 성소를 더럽히고 제사를 폐하며 성소에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웁니다(9:27). 많은 유대인이 안티오쿠스 4세의 만행에 신앙을 포기하고 그들과 결속했지만 끝까지 저항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배교의 유혹 속에서도 백성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길에 서서 때를 기다립니다. 안티오쿠스의 박해는 유대인들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했고, 결국 마카비 혁명이라는 유대 독립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백성인 마카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주전 167년부터 164년까지 독립 운동을 벌여 마침내 헬라 군대를 쫓아냅니다. 주전 164년 12월 14일에 성전을 다시 정결게 하고 재봉헌합니다. 이것이 하누카의 기원입니다.

안티오쿠스 4세/적그리스도의 종말 예언(36~45절)
36~45절에서 ‘그 왕’은 누구인지에 관해 학자들의 의견이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한쪽은 안티오쿠스 4세를 가리킨다고 하고, 다른 쪽은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 왕’이 자신을 높여 신과 같은 위치에 두었고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섬겼다고 하는데 안티오쿠스 4세는 도리어 제우스 신을 섬겼습니다. ‘그 왕’이 42절에 애굽 땅을 정복하고 45절에 바다와 거룩한 산 사이에 장목 궁전을 세운다고 했는데 안티오쿠스 4세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45절에 ‘그 왕’이 팔레스타인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안티오쿠스 4세는 바사의 테베에서 죽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나타난 ‘그 왕’은 적그리스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6세기에 이 글을 기록했던 다니엘의 관점에서 안티오쿠스 4세와 적그리스도가 섞여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이 예언을 역사의 종말 때 있을 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일차적으로 안티오쿠스 4세 때를 염두에 두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바로 직전인 말세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왕’이 행하는 일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자기를 높이며’, ‘크다 하며’, ‘신들의 신에 대적하며’, ‘형통’합니다. 다섯 동사가 설명하듯이 이러한 행동은 사탄의 행동으로 교만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를 높입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이용해 크고 견고한 성들을 점령하고 자신에게 협조한 사람들에게는 권세와 땅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그의 교만과 허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기까지 합니다.

40~45절과 바로 연결되는 12:1~3을 감안하면 이 단락은 세상의 마지막 날에 일어날 사건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에서 남방 왕은 더 이상 애굽의 톨레미 왕조를 가리키지 않고 북방 왕은 셀류쿠스 왕조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북방 왕을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남방 왕이 선제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북방 왕은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반격합니다.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어지며, 북방 왕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납니다. 종말의 때에 적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권력을 제압할 것입니다. 역사상 이전에 어떤 영웅이나 왕이 거두었던 승리보다 더 큰 승리를 이룰 것입니다. 그렇다고 적그리스도가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적그리스도를 제압할 그리스도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종말의 때에 사탄의 세력이 왕성해 지는 것을 보고 낙심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세력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의해 제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북방 왕은 영화로운 땅(유다)으로 진입해 많은 살상을 저지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들인 에돔, 모압, 암몬의 지도자들은 그의 손에서 벗어날 것인데, 아마도 북방 왕의 군대에게 협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굽은 정복되고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이 북방 왕의 차지가 될 것이며, 애굽 주변의 여러 나라도 그의 손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엄청난 살상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권세와 영토 확장의 절정에 선 북방 왕이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향인 동북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문은 반란에 관한 것입니다. 이에 번민하고 분노한 북방 왕은 돌아가서 많은 무리를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둔 북방 왕은 동북 지역에서 일어난 작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그때 그는 바다(지중해)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시온산, 예루살렘) 사이 지역에 장막 궁전을 세우는데 그곳이 그에게 마지막 장소가 됩니다.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그때에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북방 왕의 종말은 2장에서 예언된 ‘손대지 아니한 돌’의 이미지와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8:25)는 구절을 연상시킵니다. 적그리스도가 세상의 권세를 장악하고 승리자가 된 것 같지만은 모든 왕 중의 왕이시며 전능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한순간에 적그리스도를 제압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종말은 사망이요, 멸망이며 심판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
- 평화와 연합을 추구해야 합니다
가브리엘이 전해주는 계시에는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제국이 등장합니다. 특히 시리아 셀류쿠스 왕조와 애굽의 톨레미 왕조가 끊임없이 갈등하며 전쟁을 벌입니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웃 나라를 침략하고 억압합니다.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맺어 화평을 꾀하기도 하고 그것이 실패하여 또 다른 갈등을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세상 왕국의 실상입니다. 하나님은 참 평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다툼과 전쟁을 끝내실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본받는다면 갈등과 경쟁이 아닌 평화와 연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역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안에 평화를 누리며 이웃에게 평화를 전하고 연합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전령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때를 잘 기다려야 합니다
출애굽 제1세대는 과거지향적인 세대였습니다. 조금만 힘들면 참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반면에 출애굽 제2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불신앙을 본받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서 마침내 가나안을 정복하였습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일시적으로는 열심을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합니다. 그러나 시련을 잘 통과한 성도들은 놀라운 인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성도의 믿음을 연단하시려고 성도에게 때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이 연단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인생을 바라보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믿음으로 인내하는 가운데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우리는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의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믿고 기도하며 끝까지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 끝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로마 제국의 공통점은 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박해에도 끝이 있습니다. 고난에도 끝이 있습니다. 악인에게 끝 날이 있다는 것은 성도에게 환난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 개인의 생애도 끝 날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베드로의 권면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예수님의 초림이 끝날, 곧 종말의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의 날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과 장차 임할 도성을 믿음으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로 알고, 환난 속에서도 믿음에 굳게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그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가면서
천사는 다니엘에게 앞으로 근동 지역에서 일어날 일들을 말해주었습니다. 실제 근동의 역사는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넷으로 나뉜 헬라 제국 중에서 특히 남방 왕국과 북방 왕국의 갈등과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안티오쿠스 4세가 나타나 비열한 방법으로 왕이 되었고 비열한 방법으로 세력을 점차 확장했습니다. 1차 애굽 원정에서 승리하여 많은 전리품을 챙긴 후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을 침공해 성전 기물을 탈취하고 마음대로 대제사장을 바꾸었으며 성안에 이방인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그러다가 2차 애굽 원정에서 패한 후에는 유다 백성에게 분풀이를 했습니다. 지성소를 더럽혔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폐지했고 성전에 우상을 세웠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의 스토리는 역사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반복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장차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당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박해는 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승리한 후에 주어질 영광스러운 상급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고난의 십자가를 감당해야 합니다. 역사가 영어로 history 인데 그것을 His story, 즉 그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생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현재의 삶에 고난이 있고 힘든 때를 지난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주님의 제자, 십자가의 군병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