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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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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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단 10:1~21


다니엘서 10~12장은 다니엘이 경험한 4개의 환상 중 마지막으로 받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환상은 바사 제국의 초대 왕 고레스 3년인 주전 536년경에 다니엘이 받은 것으로, 바사 시대부터 세상의 종말까지의 역사 전개 과정을 보여 줍니다. 힛데겔 강가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한 사람을 환상으로 본 다니엘은 죽은 사람처럼 되어 깊이 잠듭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바사를 조종하는 악한 영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천사 미가엘의 도움을 얻어 다니엘에게 와서 정신을 잃은 다니엘을 일으켜서 계시를 받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하여 일하시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영적 싸움을 잘 싸우며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의 변함없는 헌신(1~3절)
다니엘이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받은 때는 9장에 기록된 환상을 본지 2년이 지난 후입니다. 또한 고레스왕 3년이라면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구성된 첫 귀향민 행렬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고레스의 포로 귀환 칙령 선포와 함께 537년 역사적인 1차 귀환이 이루어졌지만, 막상 귀환한 유대인들은 5만 명(스 2:64-67)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귀환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80세가 넘은 그의 나이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이 바벨론에 남아 있는 것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더 유익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던 것도 이때쯤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1절). 다니엘이 ‘벨드사살’이라는 바벨론식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비록 바벨론은 멸망했지만, 바벨론의 포로 시대를 경험한 인물인 다니엘이 이 책의 저자라는 동일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씀’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한 말씀이 다니엘에게 나타났다’라고 함으로써 다니엘을 선지자처럼 표현합니다. 다니엘은 그 말씀이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바’는 포로의 기간을 뜻하기도 합니다(사 40:2). 그러므로 다니엘이 받은 환상은 큰 전쟁 또는 큰 포로 기간과 관련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에 슬퍼하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더라도 그 의미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고레스 왕 밑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상황에서도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형식적 기도를 넘어 하나님께 깊은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 이레’는 ‘세 번의 일곱 날들’이라는 뜻으로 21일에 해당되는 기간입니다. 성경에서 ‘슬퍼하다’라는 단어는 죽은 사람 때문에(창 37:34), 죄에 대하여(스 10:6), 재앙 때문에(겔 7:12)하는 행동으로 묘사됩니다. 다니엘은 소년 때 뜻을 정하여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하고 채식과 물로 정결을 유지했습니다. 노년이 된 지금도 다니엘의 경건 생활은 변함없습니다. 민족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을 생각하며 세상의 즐거움을 절제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범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이 ‘좋은 떡을 먹지 않았다’는 것은 완전히 금식한 것이 아니라 부분 금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기간에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기본적인 빵과 물 정도만 먹었을 것입니다. 당시 근동의 고대인들은 강한 햇빛에 피부가 상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기름을 발랐는데,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밖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지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힛데겔 강가에서의 환상(4~9절)
기도를 시작한 지 3주 후인 첫째 달 24일에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서 환상을 봅니다. ‘첫째 달’은 페르시아 달력으로 니산월(3~4월)을 의미합니다. 첫째 달 14일은 유월절이고 15일부터 21일까지 무교절이 이어집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하는 뜻 깊은 절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3주라는 기간은 다니엘이 처음부터 정한 기간이라기보다는 환상에 대한 천사의 응답을 받기까지 지속된 기간입니다. 다니엘이 있던 장소는 ‘힛데겔’입니다.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은 ‘큰 강 티그리스’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내가 큰 강가에 있었다’는 표현은 다니엘이 현실에서 직접 겪은 사건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은 환상 중에 한 사람을 만납니다. ‘한 사람’앞에 ‘그리고 보라’는 뜻의 ‘히네’라는 단어가 있는데, 개역개정에는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표현으로, 말하는 사람의 놀라운 경험을 소개하는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보라. 한 사람’이 됩니다. 그는 세마포 옷을 입고 우바스 순금 띠를 띠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을 연상하게 하는 복장입니다(레 16:4). 몸이 황옥 같다는 것은 거룩하고 신비스런 모습을 의미합니다. 얼굴이 번갯빛 같다는 것은 위엄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고, 눈이 횃불과 같다는 것은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는 전지성을 의미합니다. 놋 같은 팔과 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적을 제압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는 거대하고 강렬한 소리를 뜻하며 권세와 위엄으로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요한계시록 1:13-16의 사도 요한이 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유사하므로, 그는 구약에 계시된 그리스도로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 또한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결박한 채 풀무 불에 던졌는데, 결박되지 않은 네 사람이 보이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면서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3:25)과 같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 인물을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다수 복음주의 성경학자들의 견해입니다. 다니엘은 사람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하신 분이 구름을 타고 하나님께로 인도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7:13).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묘사를 할 때 구름이 많이 사용됩니다(막 13:26; 14:62).

힛데겔 강가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직 다니엘만 환상을 보았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습니다. ‘그들이 크게 떨며’직역하면 ‘큰 떨림이 그들 위에 임했다’가 됩니다. 이는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두려움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환상은 보지 못했지만 징후만으로도 크게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을 피하고 도망합니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도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요 12:28~29). 하나님의 깊으신 계시는 받는 자밖에는 모르는 법입니다(계 2:17). 다니엘은 환상을 보면서 몸에 힘이 빠졌고,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해졌으며, 힘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들었을 때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혹은 예수님과 만난 사람들의 반응이 언급됩니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두려워 떨었습니다(겔 2:15).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한동안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행 9:8). 사도 요한도 유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계 1:17).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설 때, 인간은 자기 존재의 무가치함과 죄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5)라고 말했고,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말했습니다. 죄인 된 우리는 거룩하신 주님 앞에 겸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사의 등장과 환상 해석(10~21절)
의식을 잃은 다니엘을 누군가 손으로 어루만져 주는데 앞의 두 환상과는 다르게 그의 이름이 소개돼 있지 않습니다. 주석가들은 그를 천사 가브리엘로 해석합니다. 이유는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로 자주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를 직역하면 ‘그리고 보라, 한 손이 나를 만졌다’가 됩니다. 이는 위로를 위한 동작이라기보다는 의식을 잃은 다니엘을 깨우기 위한 동작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로뎀 나무 그늘 아래서 잠든 엘리야를 천사가 어루만지며 일어나게 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왕상 19:5,7). 천사가 다니엘을 무릎과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게 하지만 다니엘은 여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떨고 있습니다. 천사는 다니엘을 향해서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은 이제 11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예언에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그는 자신을 보냄 받은 자로 소개합니다. 다니엘이 계속 떨고 있자 천사는 두려워 말라고 권면을 하며 자신이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첫날부터 응답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이라는 말은 ‘네가 깨닫게 위해 ... 겸비하기로 네 마음을 정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슬퍼하고 좋은 떡을 먹지 않으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기름을 바르지 않기로 작정하며 기도하기 시작한 첫날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다고 합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바로 다니엘에게 오기를 원했지만 21일 동안 바사 왕국의 군주가 자기를 막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군주’로 번역된 히브리어 ‘사르’는 ‘사령관’이라는 뜻입니다. ‘바사 왕국의 군주’란 당시 왕인 고레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사 제국에서 활동하는 악한 천사 혹은 수호천사를 가리킵니다. 그때 미가엘의 도움으로 그가 다니엘에게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가엘은 ‘하나님과 같은 자가 어디 있는가’라는 뜻이며, 유다서 9절에서 그를 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12:1). 본문은 천사의 존재는 물론이고 선하고 악한 천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천사가 인간의 일에 끼어들어 하나님의 심부름꾼 역할을 감당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가브리엘이 온 이유는 마지막 일들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마지막 날’이라는 표현은 종말론적인 최후를 언급할 때 구약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를 직역하면 ‘그 환상은 아직 많은 날이 있다’가 됩니다. 환상이 현재나 임박한 날에 관한 것이 아니라 먼 미래의 일에 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하며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것을 보여 주십니다.
다니엘이 천사로부터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말문이 막혔다”는 것은 혀가 굳어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환상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장차 일어날 놀라운 일을 듣고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때 인자 같은 이가 와서 그의 입술을 만집니다. 16절의 ‘인자와 같은 이’는 문맥으로 볼 때 가브리엘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의 입술을 만지는 장면은 주로 선지자의 소명 장면에서 나옵니다(사 6:7; 렘 1:9). 하나님은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의 직책을 주시기 위해 다니엘의 입술에 말씀을 담으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니엘이 곧 입을 열어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를 직역하면 ‘고통이 엄습했다’가 됩니다. 다니엘은 환상의 무게가 더해지자 마음의 고통이 몸으로 퍼져 모든 힘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힘이 빠지고 호흡이 남지 않아 주와 더불어 말할 수 없다고 고백하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고 격려합니다. ‘사람 모양 같은 이’도 천사 가브리엘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다니엘이 다시 힘을 얻자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라고 요청합니다.

가브리엘은 바사의 군주와 싸우러 돌아가고, 또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다는 표현이 나타납니다(민 10:35~36; 삿 5:19~20; 합 3:12~13). 그리고 나라들마다 각자의 수호신이 있다는 언급이 자주 나타납니다(신 32:8~9; 수 5:13; 왕하 18:35). 이 영적 전쟁의 결과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수호천사는 바사 제국 군주와 싸웠습니다. 가브리엘은 바사가 멸망한 후에는 헬라가 등장할 것을 예언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알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습니다. 지나온 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해줍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매순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서 부탁하신 사명을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진리의 글’은 이스라엘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헬라 제국을 대항해서 도울 자는 미가엘 천사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즉 미가엘 천사는 영적인 싸움을 담당하며 이스라엘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우리의 자세
날마다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하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 우리는 주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입니다
본문에서 다니엘은 두 번이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실제로 다니엘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총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다가 멸망하는 중에도 살아남았으며, 포로 신분으로 끌려왔음에도 인재로 선발되어 왕궁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채식만 했음에도 그의 얼굴이 누구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수많은 인재 중에서도 왕의 측근에서 일하도록 발탁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을 알 수 있는 영감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는 왕이 바뀌고 왕조가 바뀌어도 자신의 직위를 보존하였습니다. 심지어 사자 굴에 던져져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고 장차 일어날 일들을 알게 하셨습니다.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은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대상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된 것 또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자인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을 기억하며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주님은 다니엘이 말하지도 못할 정도로 두려워할 때 그 입술을 만지셔서 입을 열게 하셨고, 근심에 쌓이고 힘이 없어 쓰러져 있을 때에 손을 내밀어 만지셔서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심으로써 다니엘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다가오시고 어루만져 주십니다. 주님의 음성과 손길이 닿는 곳에 창조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령님의 운행하심에 민감할 때 참된 위로를 받으며 회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 주님과 더불어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거대한 영적 전투가 현재도 세상 도처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싸움이 혈과 육이 아닌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와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엡 6:12). 악한 영의 세력이 다니엘 시대에 천사를 방해할 수 있었다면, 오늘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영적 싸움의 실재를 믿고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사탄의 궤계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엡 6:11-18). 우리는 날마다 영적 전쟁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악한 영들은 교인들 간에 서로 미워하게 만들고 성도의 연합을 방해합니다. 악한 영의 역사를 물리치려면 다니엘과 같이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나가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계시를 준비하십니다. 특히 고난 속에서 울부짖는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계시를 준비하십니다. 10~12장은 종말에 관한 계시의 절정입니다. 다니엘은 계시를 받은 후에 3주간 슬퍼하고, 좋은 떡을 먹지 않으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기름을 바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포로 상황에 있는 백성에게 이 시기가 끝나기를 간구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슬퍼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자신을 절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다가오셔서 황홀한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을 목격했습니다. 그분의 임재를 경험한 다니엘은 입신 상태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환상과 예언을 포로로 끌려와 있는 다니엘과 그의 백성들에게 주심으로, 이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미래를 통찰하시고, 그분의 계획대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니, 그분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이 미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의식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이 더 많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장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함으로써 이런 일을 당하게 될 미래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당혹케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일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에게 그분의 주권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신실하게 살아갈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소망을 버리지 말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이 말씀을 붙들면서 각자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을 인하여 참된 안식을 누리며 받은 사랑과 은혜를 인하여 주안에 있는 평강을 보여주며 나누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