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흔 이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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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7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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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단 9:20~27


말세는 특정한 한 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하면 예수님이 처음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세의 징조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7~14). 주님이 언제 다시 올지 하나님 아버지 밖에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구원의 문이 닫힙니다. 중요한 것은 재림의 시기를 정확히 아는 것보다 구원의 주님을 잘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잘 준비한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천국잔치에 참여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버림을 당하고 영원한 멸망에 빠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이 천국 입성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70년이 차면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될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은 다니엘이 민족의 사죄와 회복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가브리엘을 보내십니다. 가브리엘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70년의 기간을 일흔 이레로 바꾸며 그 의미를 해석해 줍니다. 일흔 이레는 하나님이 정하신 인류 구원의 시간표입니다. 일흔 이레 동안 죄 용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세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이레 동안 ‘황폐하게 하는 자’가 활동할 것이라고 합니다. 암울한 상황이 있을 것이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하신 바를 이루신다고 합니다. 말세를 살아가면서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성도로서 이 세대의 흐름을 잘 관찰할 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대로 살면서 평강 가운데 그분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등장(20-23절)
다니엘은 ‘말하며’, ‘기도하며’, ‘자복하고’, ‘간구한다’라는 네 가지 동사를 사용하며 그의 기도를 요약합니다. 자신의 죄뿐 아니라 백성의 죄까지 자백하면서 ‘거룩한 산’(시온산), 즉 백성의 회복을 위해 간구합니다. ‘간구하다’에는 ‘호의를 보여 달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이는 18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큰 긍휼과 연결됩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에 이전 환상에서도 나타났던 가브리엘 천사가 빨리 날아왔습니다. 성경은 천사에게 날개가 있다고 합니다(사 6:2, 겔 1:6). 가브리엘이 급히 온 이유는 다니엘이 오랜 기도로 힘들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뜻을 빨리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천사가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다니엘은 그를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나타난 ‘저녁 제사’시간은 대략 오후 3~4시 정도입니다. ‘간구할 때, 곧 내가 기도할 때에’라고 하면서 즉각적인 기도 응답을 강조합니다. ‘빨리 날아서’도 하나님이 다니엘의 간구에 즉시 반응하신 것을 보여 줍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위해 자비와 구원을 베푸실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응답이 바로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기도를 기뻐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러 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러 왔음을 재차 밝힙니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라는 표현은 다니엘이 회개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이미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백성과 나라, 온 우주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속의 큰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로 동참해야 합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부릅니다. ‘은총’으로 번역된 단어는 ‘귀중한 것, 보물’이라는 뜻인데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매우 귀중한 보물로 여기시며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여기서 ‘일’로 번역된 ‘다바르’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말씀’이라는 예언적 계시의 의미를 잘 깨달으라고 합니다.

계시의 해석(24~27절)
예레미야는 포로 기간을 70년이라고 했으나, 천사는 일흔 이레라고 합니다. 포로 기한이 일흔 이레로 정해진 이유는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이 거하던 예루살렘 성읍을 가리키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로 구성된 우주적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다니엘의 기도대로 이스라엘의 성과 성전이 중건될 것이라고 하며 이후에 있게 될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 간에 ‘일흔 이레’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흔 이레’가 지나면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때 이루어지게 될 일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 세 가지는 죄의 제거를 다루고 있으며 나머지 세 가지는 의의 회복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허물이 그치며’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가 끝나며’는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요, ‘죄악이 용서되며’는 백성의 죄가 용서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는 하나님의 의가 강물같이 흘러 온 세상을 적시게 된다는 것이요,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는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과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 세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예언은 메시아의 초림 때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고, 재림 때에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문자적 해석을 따르든 아니면 상징적 해석을 따르든 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일흔 이레’의 기간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마치고 귀환한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의 역사 전개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4절에서 언급한 ‘칠십 이레’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이 25~27절에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25절은 칠십 이레의 시작점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때로부터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 즉 육십구 이레가 지난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오리라 예언합니다. 이때에 성전에 중건되며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나 여전히 곤란의 때라고 합니다. 천사는 일곱 이레, 예순두 이레, 한 이레가 지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묘사합니다. 그 해석은 난해한데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흔 이레 후에 도래하는 종말을 안티오쿠스 4세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문자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일흔 이레 후에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종말이 올 것으로 보는 상징적이요 기독론적 해석입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레’를 7년으로 이해합니다. 하루를 한 해로 계산하는 것은 민수기 14:34에 근거합니다.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그러니까 예순두 이레는 434년, 일흔 이레를 490년으로 봅니다. 일곱 이레는 유다 왕국이 멸망한 주전 586년에서 주전 537년까지의 포로 귀환 때까지를 말합니다. 예순두 이레는 바벨론에 1차로 포로로 끌려간 주전 605년에서 434년이 지나 주전 171년에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가 등장할 때까지라고 합니다. 여기서 ‘기름 부음 받은 왕’은 오니아스 3세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나머지 한 이레는 주전 171년에서 주전 164년까지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 기간입니다. 따라서 27절의 ‘그’를 안티오쿠스 4세로 봅니다. 마카비의 성전 회복을 종말의 시작으로 이해합니다. 이 해석의 강점은 2세기 유다 사람들에게 위기의 근원을 알리고 3년 반(주전 167~164년)을 잘 견디도록 용기를 북돋는다는 것입니다. 상징적 해석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일곱 이레는 고레스부터 그리스도의 초림까지며, 예순두 이레는 그리스도의 고난부터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출현까지고, 한 이레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래하는 종말의 때라고 이해합니다. 곧 일흔 이레는 고레스 칙령부터 재림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상징적 해석은 다니엘 당대의 유다 사람들이 아니라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기 위함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라는 표현은 이사야 53:8과 비슷합니다.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따라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끊어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에서 ‘한 왕’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신약 성도들을 박해할 로마 황제로 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종말의 때에 일어난 적그리스도(계 13:1-18)로 보아야 합니다. ‘성소가 무너지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이후 주후 70년에 로마 Titus 장군과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말세에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하고 우상숭배를 강요하며 성도들을 박해하면서 하나님과 대적할 적그리스도의 활동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정되었느니라”는 악의 세력이 일어나 성소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며 끝까지 하나님과 대적하다가 멸망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한 이레 동안 ‘한 왕’은 많은 사람과 더불어 언약을 굳게 정하고, 그 이레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포악하고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서지만 정한 끝 날에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왕’, ‘많은 사람들’및 ‘가증한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본문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27절의 ‘그’를 로마제국의 왕으로 보기도 하지만 적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는 일흔 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 동안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언약을 강제로 맺게 하고, 사람들이 자기를 신으로 섬기며 따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레의 절반”은 메시아 재림 직전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백성이 환난 받는 기간을 말합니다.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에서 ‘날개’는 힘을 상징하며, ‘날개를 의지하여 선다’는 것은 세력을 근거로 하여 우상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로마에 의한 성전 파괴를, 궁극적으로는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는 가운데 우상을 그리스도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말합니다(마 24:15). 이는 말세에 거짓 선지자가 적그리스도를 숭배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인다는 계 13:11~17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가증한 것이 선다’는 표현을 다니엘은 네 번이나 거론합니다(8:13, 9:27, 11:31, 12:11). ‘이미 정한 종말까지’라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운명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과 그가 가질 세상 권세가 한시적임을 나타냅니다.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는 표현은 말세에 일어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할 적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그가 멸망할 것을 말하는데 계시록에서도 이것을 언급합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계 19:2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우리의 자세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본문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 구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백성이 회복되기를 기도할 즈음에 하나님은 이미 다니엘의 기도를 아시고 가브리엘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 줌으로써 다니엘을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응답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사정을 모르기에 알려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깨달음의 통로이며 은총을 얻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다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인해 염려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 바라볼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일흔 이레라는 기간을 선포합니다. 일흔 이레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마치고 귀환한 때부터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까지의 역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도 다 하나님의 계획 이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멸망할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만 주실 뿐 아니라 능히 피할 길도 주십니다(고전 10:13). 고난이 있을지라도, 아무리 위협하는 세력이 우겨 쌀지라도 우리는 망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볼 것을 바라보는 성도는 고난이 있을지라도 인내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 땅의 삶은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종말이 가까이 옴을 알려 주는 징조는 지진, 기근, 전염병, 테러, 전쟁의 발생,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 대규모 배도 등입니다(마 24장). 사도 바울은 종말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표징이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의 등장(살후 2:3)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며(마 24:14), 이스라엘 가운데 충만한 수가 주님께 돌아오면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온 땅의 악을 멸하시고 최후 심판을 주관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종말의 표징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오는 것을 알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가브리엘이 알려 준 일흔 이레는 이스라엘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기간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와 억눌림 가운데 있을 때에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를 완전히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최후 승리가 있음을 확신하고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해 종말을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가면서
일흔 이레에 대한 해석은 문자적으로 볼 것인가 상징적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나뉘지만, 어떤 해석도 100% 만족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칠십 이레’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이해는 다니엘 자신에게도 또한 지금 우리에게도 분명하지 않고 여전히 모호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성도들을 위한 구원과 회복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일흔 이레 예언의 핵심은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는 극심한 위기가 올 것이나, 그 위기는 끝이 있음을 알리고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종말에 주어질 위기와 그 끝이 있음을 알리며 깨어 있어서 주의 재림을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아주 귀한 존재입니다. 이 땅의 교회가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교회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능력으로 교회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도는 새 예루살렘에 거할 그날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자신과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썩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은 훗날 귀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성숙한 기도자는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서 공동체와 나라를 위한 기도로 영역을 넓혀 갑니다. 나를 위한 기도가 응답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더 소원합니다. 그러려면 구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바라볼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며 궁극적인 승리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