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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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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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단 4:23~37


지금은 각종 규제와 분규로 인해 이용할 수 없지만 20년전 만 해도 Warner Springs 온천에 자주 갔습니다. senior 교우들의 연말 총회도 매년 그곳에서 가질 정도였습니다. 온천이라고 해서 몇 사람이 즐기는 그런 정도의 크기가 아니라 정식 수영장 같이 굉장히 넓은 풀이 있었습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pool의 그 많은 물을 빼고 청소하고 다시 채웠기에 수요일에 가면 가장 맑은 물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유황 온천으로 유명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모여 들었는데 하루는 LA에서 오신 분이 제 곁에 앉았습니다. 서로 인사말을 나눈 후에 그분이 자기가 그동안 살아온 삶을 늘어놓았습니다. 미국에 오자마자 liquor store를 south central LA 지역에서 열었는데 장사가 잘 되어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일 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20년 이상을 그렇게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던 중 Warner Springs 온천이 좋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Warner Springs는 팔로마 산 뒤쪽에 있기에 공기가 맑아 밤에는 은하수가 보입니다. 온천이 야외에 위치한지라 풀장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돈을 세는 재미에 빠져 미국에 온지 20여 년 동안 한 번도 하늘을 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하늘을 보니 밤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은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며 느부갓네살 왕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말을 보면서 그분 생각이 났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늘을 바라본 것을 계기로 회복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어떠하십니까? 혹시 땅만 바라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내게 참 행복을 줄 것을 부지런히 찾기 위해서 아니면 낙심해서 고개를 숙인 것입니까?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환경의 어려움을 뚫고 임하는 하늘의 빛을 응시하는 사람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닫힌 현실 가운데서도 열린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진짜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니엘서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꾼 두 번째 꿈을 다룹니다. 2장에 소개된 꿈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큰 우상의 ‘금으로 된 머리’로 상징되나, 4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땅의 중앙에 높이 버티고 서 있는 ‘큰 나무’로 상징됩니다. 첫 번째 꿈이 초강대국의 역사를 다루었다면, 두 번째 꿈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개인의 운명을 다룹니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유다 민족의 하나님이 세상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가 포로로 잡혀가 고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혼돈과 악의 세력에 대하여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이 어두운 현실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갈 것을 권면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다니엘서는 신약의 요한계시록과 성격이 비슷합니다.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4장은 느부갓네살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온 나라에 내린 조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지속적으로 쓰임 받으려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왕의 꿈의 내용(10~18절)
왕이 두 번째 꿈을 꾼 때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할 때입니다. 그러다가 왕은 예상치 못한 불길한 꿈을 꾸고, 미지의 일에 대하여 두려움과 번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2장에서 꿈 때문에 번민하던 것과 다릅니다. 앞의 꿈은 그 내용을 잊어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으나(2:1), 이번에는 꿈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는데 다만 그 해석을 알지 못해 번민했습니다. 왕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은 그가 지극히 높은 하나님 앞에서 단지 한 연약한 피조물일 뿐임을 보여 줍니다. 2장과 달리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에게 꿈의 내용을 알리고 해석을 부탁했으나,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이 불려 왔습니다. 왕이 다니엘을 바벨론 신과 관련된 이름 벨드사살이라 부르고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로 묘사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이방 종교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거룩한 신들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도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 불렀습니다(창 41:38).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10~12절)은 낙관적이고, 뒷부분(13~17절)은 비관적입니다. 땅 중앙에 있는 한 큰 나무는 권세의 극치에 서있는 왕의 모습입니다. ‘하늘’과 ‘땅 끝’은 왕의 권세가 대단함을 의미합니다. 나무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땅 끝에서도 그 모양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마치 바벨탑을 연상시킵니다(창 11장).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많은 열매를 맺어 만민과 들짐승과 새들도 식물을 얻고 거기서 삽니다. 그러다가 왕의 꿈은 ‘순찰자’의 출현과 더불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ㅜ순찰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보냄을 받아 하나님과 계시의 대상인 ‘인간’사이에서 중개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는 이 큰 나무의 멸망과 그 비참한 결과를 소상하게 말해줍니다. 14절은 심판의 선언으로서, 여섯 개의 단어(베고, 자르고, 떨고, 헤치고, 떠나게 하고, 쫓아내라)에 따라 심판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풍성한 나무의 특징인 가지, 잎사귀, 열매가 사라지고, 나무에 깃들인 짐승과 새들도 떠납니다. 그런데 나무는 심판으로 아주 사라지지 않고 그루터기가 남아 회복의 소망을 보여줍니다. ‘짐승의 마음을 받는 것’은 자기를 짐승으로 생각하는 ‘수화광’이라는 정신질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곱 때’는 7년 또는 일곱 계절을 뜻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정한 기간의 완성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꿈의 목적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자기 뜻대로 자기 나라를 다스리심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왕은 바벨론 지혜자들이 꿈을 해석하지 못하자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해 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니엘의 꿈 해석(19~27절)
다니엘이 왕으로부터 꿈의 내용을 들은 후에 놀라고 번민한 것은 그 의미를 즉각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이 느부갓네살 왕의 전성기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가 받을 심판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민했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씀으로써 다니엘이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가를 강조합니다. 다니엘이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느부갓네살에게 선고된 사실 때문입니다. 왕도 다니엘의 얼굴빛을 보고 불길한 내용임을 눈치 챕니다. 그렇지만 왕은 다니엘이 꿈 해석 가운데 일부를 숨기고 좋은 말만 해주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번민하지 말고 해석하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주저하면서 말을 꺼냅니다.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면서 왕을 위로합니다. 다니엘은 비록 자기가 섬기는 왕이 독재자요, 우상숭배자라 할지라도, 왕 자신의 죗값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을 생각하며 선지자로서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다니엘이 꿈에 대한 해석을 시작합니다. 이 나무는 느부갓네살 왕을 뜻합니다. 다니엘은 네 개의 동사를 사용해 왕의 외적 성장을 설명합니다. ‘자라서’‘견고하여지고’‘하늘에 닿았으니’이어서 왕의 권세가 땅 끝까지 미친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이 왕에게 세상을 다스리고 우주를 통치하는 큰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아름다운 잎사귀’는 제국의 부강함, ‘만민의 먹을 것인 많은 열매’는 왕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생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왕에게 성취될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자신의 생명과 지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왕 앞에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 권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성취되는 내용은 심판, 일곱 때의 연단 기간, 회복 후 나라가 견고해짐으로 이루어집니다. 심판의 내용은 네 단계입니다. 사람에게서 쫓겨나고, 들짐승과 함께 살고, 소처럼 풀을 먹고, 하늘 이슬에 젖습니다. ‘일곱 때’란 회복되기까지 지내야 할 기간으로, 왕이 통치권을 잃어버리고 짐승처럼 지내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때에’라는 말은 정해진 일곱 때를 보낸 후 회복의 때를 말합니다. 그때가 되면 왕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고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 알게 됩니다.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는 말은 회복의 여지를 암시합니다. 그루터기를 ‘쇠와 놋줄로 동여맨 것’은 보호의 상징입니다. 그루터기가 안전히 보존되어야 일곱 때 후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앞으로 일어날 역사를 알려준 후에 느부갓네살이 심판을 피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알려 줍니다. 임박한 형벌을 피하기 위해 회개의 표시로 공의를 행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다니엘은 왕에게 올바른 왕의 통치 의무를 행할 것을 간청합니다. ‘평안함이 장구하다’는 말은 심판이 임하지 않고 무사하게 지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사하고’는 죄를 ‘없애고’로 번역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왕으로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지 못한 죄를 없애고 바른 왕으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의 교만(28~33절)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의와 자비를 행하여 죄를 없애고 임박한 징계를 피하기를 기대했지만, 불행하게도 예언된 모든 일이 그대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예언과 성취까지의 기간이 1년 대신 ‘열두 달’로 표현한 이유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고되었던 재앙은 왕이 바벨론 왕궁 지붕을 거닐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여기서 ‘나’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나옵니다. 곧 ‘내가 지었다’, ‘내가’‘나의 위엄’, ‘나의 영광’이라는 표현은 자아중심적인 태도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는 교만함을 드러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참으로 자랑할 만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은 자신의 업적이라며 스스로 대견스러워하고 중얼거릴 때 하나님이 듣고 계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간곡한 부탁한 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한 말이 끝나기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여기서 ‘떠났다’의 시제는 완료형입니다. 왕위가 그에게서 떠난 일을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25절에서 예언되었던 세 단계의 심판이 반복됩니다. 첫째, 사람에게서 쫓겨납니다. 둘째, 들짐승과 함께 삽니다. 셋째, 소처럼 풀을 먹습니다. 25절에는 없었던 ‘하늘 이슬에 젖는다’는 묘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예고된 심판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사람에게 쫓겨났습니다. 소처럼 풀을 먹게 되었습니다.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습니다.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습니다. 손톱이 새 발톱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는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정해진 기간 동안 동물과 같이 살면서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지내는 것을 묘사합니다.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던 대제국의 왕이 하루아침에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가 소처럼 생활해야 할 기간은 ‘일곱 때’였습니다. 만일 일곱 때는 7년으로 본다면 이 구절은 하나님이 지극히 교만한 자를 꺾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시련을 주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시련의 목적은 느부갓네살이 모든 우주의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을 알고, 모든 권세도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회복과 감사고백(34~37절)
하나님이 예정하신 기한이 되자 느부갓네살 왕이 비로소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왕의 총명이 돌아오고, 왕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영원하며 하나님의 나라는 대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는 땅의 사람이나 하늘의 군대를 모두 당신 뜻대로 하시는 분이시며, 아무도 하나님의 행하는 것을 막거나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자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언급합니다. 36절은 왕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서술합니다. 왕의 총명이 돌아오고, 나라의 영광에 대한 왕의 위엄과 광명이 돌아오고, 모사와 관원들이 찾아와 왕이 자신의 나라에서 다시 왕으로 세움 받고 지극한 위세가 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곱 때 동안 왕위에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살던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이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하늘의 왕’이라는 고백은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요,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통치자는 오직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한 분 뿐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그가 확실히 깨달았음을 보여 줍니다. 나아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찬양합니다.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라는 그의 고백은 과거 스스로 신적 존재로 여겼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였는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곱 때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체험하고 인간의 연약함과 미천함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존재가 겸손해야 함을 교훈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자세
- 교만을 멀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공에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칫하면 교만이라는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됩니다. 성공 그 자체가 복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도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느부갓네살의 이야기는 성공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큰 경고가 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권세가 땅 끝까지 이를 때에 하나님이 그의 왕위를 빼앗고 일곱 때 동안 비참하게 지내도록 하실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니 죄를 멀리 하며 공의와 자비를 시행하라고 조언했습니다. 1년 후 왕은 꿈의 경고와 다니엘의 조언을 잊고, 자신의 능력으로 바벨론을 세웠다고 과시하며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다가 순식간에 왕위에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일곱 때의 연단 후에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모든 나라와 왕을 세우시는 분임을 그가 깨닫자, 하나님은 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비로소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이 진실하고 의로우시며, 교만한 사람을 겸손하게 하시는 분임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보다 다른 것들을 더 즐거워한다면 그것들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한계, 부족함, 죄악됨을 고백하며 하나님만을 높여야 합니다.
- 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죄의 쓴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했던 느부갓네살은 심판을 받아 짐승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기한이 차 돌아온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회개는 무엇보다 마음이 열려야 할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회개했을 때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이나 행위로 회개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진실한 마음이 담긴 회개(욜 2:13)를 원하십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딤전 1:15). 위선과 거짓, 교만을 버리고 하늘을 우러러 열린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한순간에 왕좌에서 쫓겨나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한순간에 왕이 되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개인의 인생과 제국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신앙도 인생도 ‘누구를 주인으로 여기는가?’에 의해 판가름 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추구하던 세상의 목표, 동기, 방법을 깨뜨리시고,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 삼는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다니엘은 왕의 꿈을 통해 주신 계시가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번민했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절대 권력을 소유한 왕에게 지위를 박탈당하고 쫓겨나 미치광이가 되어 들짐승과 같이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안위보다 느부갓네살이 받게 될 징계를 염려했습니다. 다니엘의 행동을 통해 참된 선지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니엘은 항상 옳은 행동을 하고자 했고, 누구에게나 진실 되게 행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이방의 왕들에게 계속해서 인정받은 이유입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총명함을 더하시고 위엄과 광명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다시 왕으로 세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다니엘서 4장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가집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강조입니다. 이는 4장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우주적인 주권자로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실 것입니다. 이와 밀접한 또 다른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잘 자란 나무는 왕의 전성시대를 의미하고, 나무의 무너짐은 왕이 겪게 될 비극을 의미합니다. 나무가 아무리 크고 보기 좋아도 하나님이 권세를 허용하지 않으시면 무력합니다. 온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일으키십니다. 느부갓네살이 결국 여호와 앞에서 낮아져서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압제 당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소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운명과 역사까지도 주관하시는 주권자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근심, 걱정, 염려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교만을 멀리하고, 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