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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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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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눅 1:18~25, 67~68


지난 금요일은 Black Friday였습니다. '검다'는 표현은 상점들이 이날 회계 장부에 적자(red ink) 대신 흑자(black ink)로 기재한다는 데서 연유되었습니다. 그날부터 본격적인 연말 shopping 시즌이 시작된다 하여 National Shopping Day라고도 불립니다. 금년도 어김없이 꼭두새벽부터 파격적인 세일을 하는 Carlsbad Outlet과 같은 shopping center에 몰려들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 때문에 생긴 절기이고 예수님만이 주목을 받아야 할 절기인데도 세속화의 물결 속에 예수님이 없는 성탄절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교회력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진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전 네 주일을 포함한 기간을 가리킵니다. 또한 대강절(Advent)로도 불리는데 도착(Arrival)혹은 오심(Coming)을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을 준비를 시작하면서 오늘 대강절 첫째 주일의 촛불을 밝힙니다. 온 세상이 죄로 인해 소망을 잃어버렸을 때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시대적인 상황
‘유대 왕 헤롯 때에’(5절)라는 말은 혹독했던 그 시대의 배경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헤롯은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라 불리는 자로서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로마 정부의 비호 하에 유다 왕으로 재위하였습니다. 헤롯은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족도 제거한 잔인한 인물이었습니다. 헤롯은 아기 예수가 난 때를 즈음하여 베들레헴 주변 지방에서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의 왕권에 대한 야욕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이두매 출신이었기에 유대인들은 그를 멸시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는 헤롯의 제스추어였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세리들의 과도한 세금 징수를 인하여 경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속국인지라 군병들의 압제에도 시달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도 로마의 통치자들에 의하여 임명되거나 면직될 정도로 종교적인 자유도 상실했습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망 없는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은 선택된 백성을 아직도 사랑하시는가?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는 언제 나타나실 것인가?’하는 것이 당시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던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던 영적인 암흑시대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가랴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구속 사역을 준비하셨고, 때가 되니 메시아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할 메신저를 먼저 이 땅에 보내시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선택받은 사가랴 부부(6~11절)
사가랴 부부를 가리켜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합니다. ‘의인’이라 함은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들은 있지만 주의 뜻이면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앞으로 120년 후에 있을 하나님의 경고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에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가 된 할아버지로서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민 길에 올랐습니다. 하나님이 그로 더불어 언약을 맺으실 때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욥은 진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의인이라 불렸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하나님 앞에 주의 계명과 규례대로 성실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그들에게 나이 늙도록 자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세습적인 제사장 제도에서 자기의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것은 큰 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벳도 자식이 없음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물론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신체적인 결함이 있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8절은 '마침'으로 시작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우연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우연이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엘리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을 24 반열로 나누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한 것은 다윗 왕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제사장의 수효가 2만 명 정도였으므로 이들을 24반열로 나누면 각 반열에는 1천 명 내외의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24 반열 가운데 사가랴가 속한 아비야 반열은 여덟 번째 반열이었습니다.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과 같이 특별한 절기를 제외하고 제사장들은 일 년에 두 차례씩 한 주간 동안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할당했습니다. 그들의 수가 많았기에 제비를 뽑아 임무를 배당하였습니다. 분향의 직무가 거룩한 것이기에 이 직무를 맡았던 제사장에게 가문의 영광이 되었으며 한번 분향을 했던 제사장은 다시는 그 임무를 맡을 수 없었습니다. 사가랴가 속한 아비야 반열이 분향을 드릴 차례가 된 것이나 성전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제비에 뽑힌 것은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어난 것입니다. 사가랴가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합니다. 사가랴는 성전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기도하고 백성들은 성전 밖에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12~17절)
하나님께만 초점이 맞추어진 그 경건한 시간에 하나님이 보낸 사자가 향단 우편에 섭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성전 안에 갑자기 나타난 천사를 보고 사가랴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무서워 말라”하며 천사는 떨고 있는 사가랴를 진정시킵니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요한의 출생은 단지 아이를 오랫동안 갖지 못하던 한 가정을 위로하신다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이름입니다. 늙은 사가랴 부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요한의 출생은 사가랴 부부에게만 기쁨이 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기쁨이 된다고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simple life를 산 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삶이었지 그의 인격과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누구보다도 위대했습니다. 요한은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않는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깊이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광야의 예언자로 나타났을 때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를 연상하였습니다.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메시아의 사역을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자기 백성에 대한 상한 마음과 죄악에 대한 분노, 그리고 어찌하든지 이들을 하나님께 돌이키려는 강한 도전 정신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세례자 요한도 엘리야와 똑같은 심령과 능력으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담대히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하며 사정없이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담대하게 외치면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영적인 기갈을 느끼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은 죄로 물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였습니다.

불신한 사가랴(18~23절)
사가랴는 자기 앞에 나타난 존재가 천사임을 알았고, 그가 전해 준 메시지가 자신의 오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사의 말에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라는 반문은 천사에게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말입니다. 그 질문은 ‘무엇에 근거해서 내가 이것을 알겠습니까?’라는 것입니다. 헬라어 본문에는 강조를 위해 ‘내가’가 추가되었고, 개역성경에는 생략된 접속사 ‘왜냐하면’을 사용했습니다. 그가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와 그 아내가 모두 나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가랴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했습니다. 사가랴가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자 천사는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브리엘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 8~9장과 여기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로 등장합니다. 이 일이 되는 날까지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불신앙을 인하여 사가랴는 잠시 벙어리가 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것과 동시에 사람들 앞에 불신앙을 내보이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 상식과 경험으로 제한한 것이 불신앙입니다. 믿음은 기적을 낳지만, 불신앙은 고통을 낳습니다. 20절에서 주목할 두 단어는 ‘이루어지다’와 ‘때’입니다. 이 둘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와 관련해 빈번하게 사용됩니다. 이는 요한의 탄생 예언의 성취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성취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분향이 끝나면 밖으로 나와 대제사장의 축복 기도문(민 6:24~26)을 읽으며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예정된 시간보다 지체되자 백성들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제사장의 옷에는 방울을 달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움직일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가 나게 함으로 제사장이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밖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죽은 줄 알고 그를 끄집어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성소 안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갈고리가 달린 기다란 막대기로 성소 안으로 집어넣어 제사장을 끌어냈습니다. 백성들은 나답과 아비후처럼 성소 안에서 죽임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추측을 했을 것입니다(레 10:1~2). 마침내 사가랴가 나왔을 때 백성들은 안도하면서도 그가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말을 못하니”로 번역된 헬라어는 미완료 시제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말을 하려고 계속해서 시도했음을 말해 줍니다. 천사의 말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은 다른 두 가지 예언, 즉 요한의 탄생에 대한 예언과 그날에 다시 말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도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믿게 합니다. 그가 말을 하지 못하자 백성들은 사가랴가 성전에서 환상을 보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왜 이 장면에서 백성들이 등장했을까요? 백성들로 하여금 사가랴에게 나타난 모든 일과 태어날 아이의 특별함을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가랴는 말 대신에 몸짓으로 그의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주요 동사가 미완료 현재분사로 사용된 것은 그가 몸짓으로 의사를 표현한 것이 한동안 지속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제사장들이 각 반열에 따라 성전에서 섬기는 기간은 일주일이었습니다. 그가 말을 못하는 상태에서 성전 임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 못하는 것을 백성들이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가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의 잉태와 고백(24~25절)
모든 직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 사가랴는, 가브리엘의 예언대로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임신은 나이 들어 사라진 생식 능력이 회복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기적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5개월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다섯 달’이라는 기간은 임신한 것이 외적으로 표시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숨어 있었다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을 숨겨 왔다는 말입니다. 이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일반적인 동사 ‘숨기다’앞에 ‘두르다’또는 ‘감싸다’라는 의미를 가진 전치사를 사용했습니다. 모두가 기뻐하는 임신 소식을 이처럼 철저하게 은폐한 이유는 본문에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엘리사벳이 임신 사실을 5개월 동안 철저하게 숨겨 왔기에 한 달 후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났을 때 예언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엘리사벳의 임신 사실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자기의 부끄러움을 제거하시려고 아이를 잉태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벳에게 아이를 가지게 함으로 엘리사벳 개인의 수치를 벗겨주셨을 뿐 아니라 메시아의 길을 준비할 자로 요한을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죄 사함의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으로 이스라엘의 수치를 벗겨주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돌아보시고 우리의 수치도 벗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결핍과 아픔을 아시고 부끄러움을 씻어 주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가랴의 찬양(67~68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엘리사벳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한나처럼(삼상 2:1)처럼 불임의 여인이던 그녀의 수치와 고통을 기쁨과 찬양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오래 수치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을 돌아보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기도 했습니다. 사가랴는 이 일을 계기로 이스라엘을 속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압제 아래 있는 자기 백성을 돌아보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서곡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지배라는 가혹한 현실은 ‘아직’바뀌지 않았지만 새 출애굽의 역사가 ‘이미’시작되었음을 알았기에 믿음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뿔’이신 그리스도를 일으켜 자기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건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죄인을 건지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 ‘구원’을 아들을 내어주심으로(속량)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
강림절에 어떤 자세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까?
-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유대인들에게 불임은 흔히 하나님의 저주나 형벌로 간주되었고, 불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렸습니다. 그런데 사가랴 부부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갈망하며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가랴가 계속 기도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동사의 시제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가랴가 지금 성전 안에서 자기 차례가 되어 잠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전부터 계속해서 기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왔습니까? 물론 자식이 없음을 인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위로 베푸시기를 사모하며 오랫동안 기도해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와 구속을 이루실 메시아의 오심을 갈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고 갈등하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며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기다려야 합니다. 온 교우들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각 가정을 위하여,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사가랴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임합니다.
-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사가랴는 반열의 순서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셔서 그의 부족함을 채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십니다. 고난 속에서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조바심 내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충성스러운 사명자는 자신에게 시련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응답되지 않더라도 묵묵히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바울과 같이 사명을 생명보다 귀하며 여기며 섬길 때 사가랴와 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
- 찬양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말 못하는 사가랴와 숨어 지내는 엘리사벳은 잠시 세상의 언어를 잊고, 세상과 떨어진 채, 그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사벳이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라고 찬양했습니다. 사가랴도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결과로 이루신 구원의 역사에 대해 감사하며 찬송하였습니다. 찬양은 ‘현실’을 넘어 하나님의 역사라는 ‘진실’을 보는 영적 안목이 있는 자들의 몫입니다. 사가랴와 같이 놀라운 구원의 은총과 신비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찬양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고난과 재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성령 충만함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의 닫힌 입, 쓴 입을 열어 찬송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이번 성탄절에 무슨 선물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기를 원합니까?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 마음과 능력을 가지고 섬길 때 우리 가운데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는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 손에 붙들리게 된 것, 주님의 일을 하도록 선택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충성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위로를 주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삶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이번 대림절에 먼저 우리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신앙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악한 본성을 깨뜨려 주시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랑을 적극 실천하여 흠 없고 거룩한 성도로 주님을 맞이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개인생활을 경건하게, 가정생활을 화목하게, 교회생활을 충실하게,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함으로써 금년을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새해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사명을 감당하며, 찬양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