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원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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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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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마지막 장인 3장을 다루면서 하박국서 강해를 마무리 짓습니다. 먼저 지난 3주간 살펴본 하박국서 1장과 2장을 간단하게 정리해봅니다. 하박국 당시에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게 이미 멸망을 당하였고, 남쪽의 유다 왕국은 부패, 폭력, 탐욕, 불의가 만연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까지리이까”“어찌하여”하며 하박국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계시가 하박국에게 임했습니다. 갈대아 사람들, 즉 바벨론을 도구로 삼아 유다를 징벌하겠다는 겁니다. 하박국은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가 놀란 것은 하나님의 심판 자체가 아니라 심판의 도구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사용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그들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되었기에 하박국이 이의를 제기하였지만 사실 하나님 앞에는 큰 죄나 작은 죄나 똑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처사에 안타까워하면서 하박국은 성루에 서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하박국에게 임했습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2:14).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 지니라”(2:20). 하박국은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박국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민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섭리를 이해할 수 없었을 때 “왜, 어찌하여”라고 하며 탄식을 했던 하박국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속에서 도리어 찬양을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 나아가면서 주님의 위로를 체험하며 승리의 찬송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표제(1절)
하박국서는 한 권의 책 속에 표제가 두 번 나오는 것이 특징입니다. 1:1에 ‘하박국이 본 신탁’이라는 표제가 나오고, 3:1에 다시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는 표제가 나옵니다. ‘시기오놋’은 음악 용어인데, 그 리듬이 급하고 높고 강한 소리를 내는 대단히 열정적인 노래라는 뜻입니다. 강렬한 느낌을 주기에 다가올 심판을 바라보는 하박국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한편으로는 엄청난 시련을 당할 것을 생각할 때 두려움으로 가슴이 뛰고, 다른 한편으로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흥분된 마음을 보여줍니다. 3절과 9절 그리고 13절에 ‘셀라’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하박국 3장은 공적인 예배 시에 다함께 불렀던 노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절 하반절에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박국의 시를 성전 예배 의식에 사용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이리하여 하박국의 신앙 고백은 믿음의 공동체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하박국의 간구(2절)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으니 이제 그가 할 일은 하나님의 계획이 속히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1인칭 화법을 사용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동시에 간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주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은 ‘명성’을 얻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대표적인 일이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출애굽 사건입니다. ‘놀랐나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완료형이기 때문에 ‘놀랍니다’로 번역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들으면서, 경건한 두려움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기도에 동사가 세 개 나옵니다. ‘부흥하게 하옵소서’, ‘나타내시옵소서’, ‘잊지 마옵소서.’먼저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일’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놀라운 일을 가리킵니다. ‘수년 내에’는 ‘우리 시대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그 놀라운 일을 ‘우리 시대에’다시 행하시라고 간구합니다. ‘부흥’하면 교회 부흥을 먼저 떠올리지만 여기서 ‘부흥하게 하옵소서’는 ‘살아나게 하옵소서(revive)’라는 뜻입니다. 같은 단어가 2:4에서는 ‘살리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지금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살아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타내시옵소서’에는 목적어가 없습니다. 이는 앞 절의 ‘주의 일’을 목적어로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이 동사는 ‘보여 주십시오’로 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래서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은 죄에 빠진 언약 공동체를 향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인정하지만, 진노 중에라도 의인들을 향한 긍휼을 잊지 마시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평안과 기쁨만을 의미하지 않고, 죄인들에게 재앙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피하려 하지 않고 속히 그 일을 이뤄달라고 기도한 것은 고통스러운 심판을 받아도 그 과정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을 것을 알기에, 맞아야 할 매라면 속히 맞고 죗값을 치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합니다. 하박국은 자신과 의인들의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 줍니다. 의인의 구원은 믿음 때문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권능으로 임하시는 하나님(3~7절)
하박국은 환상 가운데 본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데만과 바란 산에서부터 오신다고 합니다. 데만은 에돔의 수도였으며(암 1:12), 바란 산은 유다의 남쪽 아카바 만 부근에 위치한 산악 지대인데 하나님께서 전에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나신 곳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하늘을 덮고 그분의 찬송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주님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분의 손에서 나옵니다.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에서 ‘그 속’은 ‘주님의 손’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손에는 그의 권세가 있으며 그곳에서 능력이 나타납니다(삼하 24:14). 따라서 주님께서 손을 펴기만 하시면 무서운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밟고 서시니 땅이 진동하고, 그의 눈이 나라들을 살피시니 민족들이 떱니다. 큰 산들이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감당할 수 없어서 무너집니다. 큰 지진이 올 때 이 세상의 견고한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사라지는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 이 세상에서 영원하게 존재할 것 같았던 것들이 사라집니다(사 54:10; 미 1:4). 여호와께서 강림하시자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립니다.
대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8~15절)
8~15절에서 하박국은 여러 이미지를 사용하여 대적을 무찌르시는 용사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하박국은 말들과 구원의 전차를 타고 오시는 여호와께 묻습니다. ‘여호와여 강들에게 노하셨습니까? 주님의 진노가 바다에 있습니까?’강과 바다가 의인화되어 마치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으셔서 모든 대적에 대해 분히 여기시고 노여워하십니다. ‘강들로 땅을 쪼갠다’는 구절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사막에 갑자기 내려 땅이 여러 줄기로 갈라지는 이미지를 보여 줍니다. 강들로 땅을 쪼개듯이 대적들을 완전히 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심판을 시작하실 때, 산들이 요동하며 폭우가 쏟아지고 깊은 바다가 소리 지릅니다. 하나님이 쏘신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서 멈춥니다. 해와 달이 멈추는 장면은 여호수아 10:12~13을 연상시킵니다. 여호수아가 아모리인들의 연합군을 쳐부술 때,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셔서 적군들을 이스라엘인들의 손에 넘겼습니다. 그때 해와 달이 기브온과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렀습니다. 여호수아 때에는 해와 달이 그 달리던 길에 서버렸기 때문에 계속해서 낮이 지속되었는데, 여기에서는 해와 달이 그들의 처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방을 밟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왜 주님께서 강과 바다를 향하여 분노하셨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백성을 구원할 뿐 아니라 악인을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13절에 사용된 ‘기름 부음 받은 자’란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악인들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 집의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신다고 하면서 대적들을 철저하게 파괴하시는 것을 묘사합니다. 그런데도 악인들이 순순히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저항하며 회오리바람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흩으려 하고, 계속해서 은밀한 곳에서 가난한 자들을 삼키려 합니다. 여기에서 ‘가난한 자’는 경제적으로 빈약한 자가 아니라 주님의 백성이나 경건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15절은 3절에서 시작된 대적과의 전쟁의 환상을 마무리합니다. 주께서 말을 타고 나오셔서 모든 원수를 멸하시고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궁극적으로 이 환상은 예수님의 재림 때 심판을 통해 권능으로 대적들을 멸하시며 신자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16~19절)
16절은 문장 형식이 2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두 구절 모두 시인의 1인칭 관점으로 묘사합니다. 2절에서 하박국은‘내가 들었고 놀랐다’라고 말했는데 16절에서 다시 한 번 더 ‘내가 듣고 놀란다’라고 말합니다. 악인의 행위를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아니하시고, 주의 백성의 고통당하는 것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친히 나서시는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2절은 16절과 연결됩니다. 3~15절에서는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용사의 모습으로 악인들을 징벌하러 이 땅에 나타나심이 묘사되었습니다. 2절에서는 하박국이 ‘놀란다’는 말만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의 놀람에 대한 신체적인 묘사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그의 신체를 ‘내 창자’, ‘내 입술’, ‘내 뼈’로 표현합니다. 내 창자가 흔들리고 내 입술이 떨린다고 합니다.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는 ‘나의 뼈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는 ‘내가 선 자리에서 떨린다’가 됩니다. 새번역 성경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그 소리에 나의 입술이 떨린다. 나의 뼈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 나의 다리가 후들거린다.”하박국은 바벨론이 공격해 오는 환난의 날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 환난은 하나님이 유다 민족을 징계하시기 위해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보내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에서 ‘기다리다’라는 동사의 어근은 ‘쉬다’, ‘안식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침략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오시는 환난의 날에 나는 쉬리라’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공포에 떨면서 환난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쉬면서 기다릴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악인들이 하나님에 의해 징벌을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이 임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뼈가 썩고 몸을 떨리게 하는 두려운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오는 환난 날에 이스라엘에 임할 경제적 파탄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그 날을 상상하며 무화과, 포도, 올리브, 밀과 보리, 그리고 가축들이 모두 사라지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떠올립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올리브나무와 밭의 식물, 우리의 양과 외양간의 소가 접속사를 통하여 세 쌍의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이 잘 번역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절대적인 궁핍에 처하여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외적인 상황은 여전히 험악합니다. 불의와 불법이 여전히 횡행합니다. 이때 하박국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18절은‘그러나 나는’으로 시작합니다. 침략자들이 오면 처참한 파멸이 있고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니, 생각만 해도 두려울 수밖에 없지만, 하박국은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직역하면 ‘나는 여호와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것이다’입니다. 개역성경의 번역은 히브리어 원문에 비하면 기쁨의 표현이 다소 밋밋합니다. ‘기뻐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여러 개 있는데, 하박국은 그중 가장 큰 기쁨을 표현하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즐거워하다’는 ‘기뻐서 펄쩍 뛰다, 미칠 듯이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기뻐하다’는 ‘흥겨워하다, 기뻐서 맴돌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하박국이 너무 ‘기뻐서 실신할 정도’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하박국은 ‘하나님의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오지만 주님에 대한 믿음을 확실히 고백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나의 힘’은 ‘내 힘의 원천’이란 뜻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속적으로 힘을 주셔서 강건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겠지만, 이제 그는 힘차게 헤쳐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사슴과 같이’는 ‘사슴의 발과 같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사슴은 문법적으로 ‘암사슴’입니다. 암사슴은 아주 부드럽게 산악 지역에서 뛰어다닙니다. ‘높은 곳’은 ‘높고 험준한 산’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발을 사슴의 발처럼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가 그 처참한 현실을 딛고 높은 곳으로, 하나님을 향해 뛰어 오르게 하십니다. ‘어찌하여?’와 ‘언제까지?’하며 하나님께 묻던 하박국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을 향해 노래하며 뛰어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 내가 얼마나 부자인데, 내가 얼마나 권력을 가졌는데, 내가 얼마나 한 일이 많은데 하면서 하나님께 자기의 의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그런 자랑을 한다고 하나님께서 감명 받지 않으십니다.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부족, 자기의 한계, 자기의 죄악됨을 인정하고 그저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자기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과 달리, 세리는 멀리 서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만 보고 가슴을 치며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도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하시며 자신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문제와 함께 연약한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기도를 드릴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입니다. 주여 저를 회복시켜 주소서. 주님을 향하여 가졌던 첫 사랑을 회복하게 하소서, 저의 가정을 회복시켜 주소서.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관계를 회복시켜 주소서. 우리 교회를 회복시켜 주소서. 미국 사회가 다시 한 번 청교도 정신으로 회복하게 하소서. 우리는 하박국과 같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절하게 구해야 합니다.
-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환난을 당하면 슬퍼하고, 좋은 일을 만나면 기뻐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재앙을 만나 극심한 고통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기쁨과 감격은 전적으로 신실하신 여호와를 향한 믿음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박국이 바라본 것은 현재의 고난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 역사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궁극적으로 바벨론을 멸하실 것이며, 신실한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려서 즐거워지는 감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43:4).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2). 진정한 기쁨의 근원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때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여호와를 힘, 구원, 기쁨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박국처럼 기쁨의 노래가 샘솟습니다.
-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음을 하박국은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박국과 같이 감사의 이유를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404년 전인 1620년 청교도들이 종교를 찾아 미국 땅에 이주한 첫해에 102명 중 절반이나 되는 46명이 첫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죽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도저히 감사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 가을이 되었을 때 청교도들은 옥수수, 콩 등 추수한 것과 들에서 잡은 칠면조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환경을 넘어선 수준 높은 감사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가족, 교회, 이웃을 둘러보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항상 지속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감사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 더 많은 감사의 열매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인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인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힘입어 살아가며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고난은 있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고난이 임할 때 하박국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박국은 기도한 결과 기쁨을 회복하였고, 모든 시련을 뚫고 지나갈 만한 힘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체험한 다윗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9).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험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여전히 붙들면서 기도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