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두번째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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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1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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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난이 면제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불평을 하고 염려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완화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불평과 무례함까지도 받아들이시고 그를 영광스러운 진리의 품으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너그러움을 하박국만이 아니라 하박국서를 읽는 우리 모두에게 베푸십니다.
하박국은 바벨론 사람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나님께 탄원을 올렸습니다. 본문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하박국에게 하나님은 장차 행하실 일들을 알리십니다.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고 망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그러나 의인은 그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특히 6~20절은 바벨론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섯 가지 저주 예언의 형태로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 하박국은 더 이상 공의의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에 따라 만민을 다스리신다는 점을 깨달으며 곧 다가올 바벨론의 침입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이겨 내겠다는 확신을 보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3장에 나오는 하박국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서 전체의 구조 속에서 볼 때 2장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방법과 섭리를 직접 계시하시면서 하박국의 좁은 신앙관을 바로 잡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각자의 삶에 비추어보고 주신 교훈을 각자의 삶에 적용하며 주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응답(1~5절)
하박국은 파수꾼처럼 성루에 서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며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공의롭게 다스리시는 방법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린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자신의 질문에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겠다고’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귀로 듣는 수준이 아니라 눈에 볼 수 있도록 분명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응답을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응답은 첫 번째 응답과 달리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셨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응답이 임했음을 알립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보여 주신 묵시를 ‘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명령하십니다. ‘묵시’라는 말은 ‘환상, 이상’이란 뜻으로 바벨론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뜻합니다. 십계명을 돌비에 새김같이 계시의 말씀을 판에 새기고 달려가면서라도 그 내용을 읽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새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환상이 이루어질 때가 정해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가 ‘종말’이라고 명시하는데, 환상이 선포되는 즉시 그들의 눈앞에서 이루어질 것이 아니고 시간차를 두고 더디게 일어날 사건임을 말해 줍니다. ‘더딤-기다림-지체치 않음’의 구조는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의 말씀이 잘 설명해줍니다. 그러므로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날은 반드시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정해진 때가 있기 때문에 세상의 역사는 그때를 향해 진행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박국에게 이런 말씀을 주신 이유는 그가 환상을 보고 나서 더 이상 마음에 의문을 품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그때를 기다려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4절은 ‘보라’라는 단어로 시작하면서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이 답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여기서 교만한 자는 바벨론을 지칭하며, 의인은 여호와를 신뢰하며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살리라’는 미완료형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롬 1:7; 갈 3:11). 하지만 하박국서에서는 의인의 삶의 방식인 믿음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깨달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신앙 고백이나 지식적 이해를 넘어서서 고난과 핍박이 있는 매일의 삶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삶을 사는 믿음의 실천적 적용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백성 된 자들이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5절에 바벨론의 쾌락적이고 탐욕적인 모습이 언급됩니다. 그들은 술을 즐깁니다. 사실 바벨론이 멸망하는 순간에도 벨사살 왕은 신하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연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단 5:1). 또한 그들은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이 한마디로 제국주의 근성을 지니고 있어서 아주 거만하며, 세상을 정복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죽음을 갈망하는 스올과도 같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행에도 마음이 차지 않아서 만족하지 못하고 주변의 여러 민족을 점령해 들어갈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그들의 이러한 탐욕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을 향한 다섯 가지 ‘화 예언들’(6~20절)
본문에는 다섯 개의 저주 예언이 나옵니다. 첫째 예언부터 넷째 예언은 각 예언 서두에 탄식을 나타내는 ‘화 있을진저’와 함께 저주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밝히고 난 후, 그들이 이 땅 위에서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섯째 예언은 먼저 저주를 받아야 할 이유를 밝힌 후에 저주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첫째 화 예언(6~8절)
하나님이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확증하십니다. 바벨론에게 침략을 당한 민족들이 바벨론을 풍자한 속담거리를 만들어 부를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저주의 대상은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모으는 자들입니다. 바벨론은 이웃 나라들을 침략해 빼앗은 것들을 쌓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결코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된다고 합니다. 악인이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탐욕에 이끌려 자신을 파멸로 끌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7절은 수사적 의문문을 통해 바벨론이 당할 일들을 은유적으로 묘사합니다. 바벨론이 많은 나라를 침략해서 많은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게 했고, 온 땅에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 때문에 침략당한 나라 백성들이 노략을 당했는데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홀연히 반기를 들고 일어나 도리어 바벨론을 노략할 것이라고 합니다. 정리하면, 첫째 예언은 악인은 그들이 행한 악행 때문에 반드시 무서운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화 예언(9~11절)
둘째 예언은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를 향해 저주합니다. 그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남의 소유를 빼앗고 갈취한 후에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합니다. 이 표현은 에돔과 마찬가지로(옵 1:3) 외세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높은 곳에 위치해 있거나 성을 높이 쌓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탐욕과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기심에 이끌려 많은 민족들을 멸하고 소유를 빼앗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폭력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집에 욕을 부르는 것이 되고, 그들이 탐욕을 위해 벌인 행동들은 곧 그들의 영혼에 범죄하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11절)는 구절은 생명이 없는 물체들조차 바벨론의 죄악을 고발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벨론의 성벽과 궁궐은 포로들의 피와 눈물, 약탈한 재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돌과 들보는 포로들의 피와 눈물의 증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땅속에서 부르짖는 아벨의 피를 하나님이 묵과하지 않으신 것처럼(창 4:10) 하나님은 죄인의 악을 간과하시지 않습니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1). 정리하면, 둘째 저주 신탁은 하나님이 백성을 학대하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간과하지 않으시며 가혹한 행위를 저지르는 악인들을 부끄럽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화 예언(12~14절)
셋째 예언은 웅장하게 건설된 거대 도시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그 원인은 도시를 건설하는 행위 자체 때문이 아니라 도시를 건축하는 자들이 어떻게 도시를 건설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저주의 대상은 ‘피와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입니다. 이 표현은 바벨론 사람들이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살인과 약탈을 통해 그 도시를 세웠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힘없는 약자들이 죽어 가면서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13절은 바벨론이 수많은 피정복 백성을 동원해 그들의 도시를 건설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피정복 백성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죄악의 도시를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수사적 질문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업적으로 자기의 영광을 삼으려는 바벨론의 교만을 응징하실 것입니다(겔 21:31; 렘 15:14). 하박국은 유다 왕국의 멸망이 임박한 그때에 온 땅에 가득한 불의를 목격하면서 과연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지금은 폭력과 착취로 인한 죄악이 이 땅을 덮고 있지만 그날에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덮을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넷째 화 예언(15~17절)
넷째 예언은 철저하게 타락한 바벨론 사회의 일면을 보여 줍니다. 바벨론이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술을 먹여서 취하게 만든 후 그들의 벌거벗음을 보며 즐기는 자’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동을 통해 바벨론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자신들이 이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쥐고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몹쓸 행동 때문에 그들이 ‘영광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바벨론은 이제 여호와의 오른손에 들린 잔을 마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오른손은 구원의 손이 아니라 징계를 상징하는 손입니다. 본래 이 잔은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과 열방 사람들로 하여금 마시게 하려는 진노의 잔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벨론이 그 잔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레바논에 행한 폭력과 짐승들을 살육한 행위로 인해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이 뿌린 대로 악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노의 술잔을 마셔서 수치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섯째 화 예언(18~20절)
바벨론을 향한 예언에서는 그들이 행했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18절은 우상의 무가치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수사적인 의문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본질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나 생각으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자기 편한 대로 그 신을 섬깁니다. 하지만 우상은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가 만든 우상을 섬기고 의지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상 숭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며(욥 31:24~28),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신 5:7~8).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우상은 죽어 있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보좌에 좌정하고 계시며,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 만사를 주관하십니다. 살아 계시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은 경배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에 ‘하시니라’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는 표현입니다. 또한 서두에 ‘오직’이라는 표현보다 오히려 ‘그러므로’더 적당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악인들을 심판할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세상의 악인들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되면 하나님에 의해 모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만 백성은 하나님의 초월적이며 완전한 통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이제 하박국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광대하고 완벽한 통치에 자신을 맡깁니다.
우리의 자세
-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하박국이 신앙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이겨 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이 말씀을 하나님으로 받은 것입니다. 구약에서 의인은 하나님 앞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나 능력에 관해 단순히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삶의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자세를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어떤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공의와 인자를 생각하며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유다를 징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지만 승리에 도취되어 교만한 바벨론도 징벌하십니다. 결국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드러내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란 세상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든 간에 여호와만이 세상을 주관하고 통치하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언젠가는 선하신 하나님의 의와 공평이 온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현실을 헤쳐 나갑니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2:14).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세상은 만민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정의가 통하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만민의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에 침략과 살인, 폭력과 불의로 이 세상을 지배하려 애쓰던 바벨론과 같은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에 역사의 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세운 모든 것들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벨탑을 짓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탑 사건을 언급합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사 14:13-15). 이런 바벨론의 교만을 이사야는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과 연계시킵니다.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사 13:19).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영광을 드러내려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모든 폭력과 착취가 사라지고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그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 지니라”(2:20). 우상은 나무나 돌에 금이나 은을 입힌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명이 없는 나무나 돌과는 달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천하 만민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결코 모른 척하거나 무관심한 분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함부로 말하는 자들은 입을 다물고 겸손히 그 앞에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심판과 구원이라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그 날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과 세상을 믿고 산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믿음의 삶을 산 사람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구원의 날이 임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구원의 때를 준비할 것을 선포하십니다.
나가면서
본문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무례해 보일 정도로 하나님과 논쟁하려 했던 하박국을 책망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무례함을 용납하셨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에게 엄청난 진리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기 위해 악인들도 사용하시지만, 정한 때가 되면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도 반드시 심판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식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회의적인 마음을 품었던 하박국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보다 철저하게 믿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상황이 전부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와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의인이 승리하는 길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살아가면서 때를 따라 임하는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삶을 통하여 주님과 동행하며 훌륭한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