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승리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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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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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거리 육상선수들을 보면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습니다. 가능하면 저항을 줄여서 보다 빠른 기록을 내려고 합니다. 육상선수가 정장을 하고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고 달릴 수는 있으나 좋은 기록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수영선수들은 머리에는 스윔캡을 쓰고 다리의 털까지도 깎으면서 기록을 단축하려고 합니다. 군인들도 공격과 방어에 최적화된 군복을 개발하려고 옛날부터 많은 투자를 해왔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어둠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해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사탄을 결박하시고 어둠의 세력을 무너뜨리시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순간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사탄의 세력과 계속해서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영적 전쟁은 육체적인 전쟁이 아니므로 인간의 지혜로는 능히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주안에서와 그의 강한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라고 권면하면서 성도들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비결, 즉 싸울 대상은 누구이며 어떻게 무장해야 하는지를 당시 로마 병사가 갖추던 무장에 비유해 설명합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영적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전투와 그 대상(10~13절)
이 땅의 교회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과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싸울 상대는 ‘혈과 육’, 곧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 곧 사탄과 악한 영들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힘과 지혜, 의지와 노력만으로 싸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안일함에 빠져 영적 전쟁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마귀의 간계에 걸려들어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며,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바울은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권면합니다. ‘끝으로’는 마무리 권면임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성도를 강건하게 만드는 힘은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즉 주 안에 있을 때 주어집니다. ‘그 힘의 능력’이란 표현은 1:19~20에도 나오는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1:20)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1:22) 하신 ‘그의 힘의 위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성도들에게 역사하시기에(1:19), 바울은 그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합니다. 전투가 없을 때에도 군인들이 신체를 단련하고 훈련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평상시에 영적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언제 어떻게 공격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군인이나 경찰에게 제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제복은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동까지 변화시키는 효과를 가집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영적 전투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합니다. ‘전신갑주’로 번역된 헬라어는 중무장한 로마 보병이 갖추는 전투 장비 일체를 가리킵니다.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 갑주’라고 합니다. 바울이 ‘강건하여지라’는 권면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는 목적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위한 것입니다. ‘간계’는 교활하고 음흉한 계획을 의미합니다.
대적의 실체
우리의 대적은 혈과 육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인 마귀입니다. ‘씨름한다’는 말의 어원을 보면 ‘레슬링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맞붙어 싸워야하고 마주 잡고 뒹굴어야 합니다. 싸우는 전선이 따로 없기에 이 싸움은 더욱 힘듭니다. 미국이 90년대 이라크와의 싸움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우세한 무기와 더불어 전선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6~70년대 월맹과의 전투에서 고전하였던 이유는 전선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베트콩이 주민들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공격하기 일쑤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벌인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전쟁에서도 고전했습니다. 탈레반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지만이 영적인 싸움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현장이 영적인 싸움터입니다. 가정, 학교, 사업장, 심지어 교회도 싸움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마귀의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2:2).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2:3). 우리의 적은 세상, 육체, 마귀입니다. 세상이라 함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한 곳을 가리킵니다. 육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소가 없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옛 성품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물질만능 시대에 도덕적으로 말할 수 없이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 명예, 권력, 스포츠, 쾌락 등에 열광합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보다 시간과 정성을 더 쏟도록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습니다. 성경은 마귀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계시록 12:9에 보면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4:3에서는 마귀를 ‘시험 하는 자’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8:44에서는 마귀를 ‘살인한 자’,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라고 부릅니다. 마귀는 어떤 특성이 있습니까? 욥기 1:7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사탄이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신하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경고했습니다. 마귀는 공격할 대상을 발견하면 사정없이 달려듭니다. 그리고 마귀의 조력자들이 있는데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그들은 이 땅의 인간 통치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고 이 어두움의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악한 영적 세력들을 가리킵니다. 마귀와 그 추종세력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13절에서 바울은 재차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제시됩니다.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악한 날’은 성도가 악한 영들의 공격에 직면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현세대를 가리킵니다.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다 마치고 승리한 후에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것이다’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사탄은 세상의 권력을 이용해 복음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공격은 눈에 보이지 않게 거짓 교훈과 이단 사설 등으로 교회와 성도를 미혹하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교회에 침투하는 이단과 거짓 무리는 시도 때도 없이 성도와 교회를 실족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대적 마귀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14-17절)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임하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싸움을 이미 이기셨다는 점입니다. 부활-승천-좌정하셔서 만물을 자기 발아래 복종시키셨습니다(1:20~22). 성도들은 승리하신 예수님과 연합해 그분과 함께 이 싸움에 참여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기게 하시고 하늘에 좌정시키시고 그의 발아래 만물을 복종시키신 ‘그 힘의 능력’으로 성도들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점입니다. 14~16절에 언급되는 4가지 전신 갑주의 항목은 명령형 동사 ‘서라’에 연결된 과거 분사들로 표현되며, 17절에 언급되는 다섯째와 여섯째 항목은 명령형 동사 ‘가지라’에 연결됩니다. 바울은 전신갑주를 언급하면서 이사야 59:17절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사 59:17) 데살로니가 전서 5:8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영적 전투에 출정하기 위한 대열에 ‘서라’고 명령하면서 전신갑주의 목록을 열거합니다. 열거하는 방식은 전신 갑주를 착용하는 일반적인 순서를 따릅니다. 첫째, ‘진리의 허리띠’를 매야 합니다. 원문에는 ‘허리띠’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저 ‘진리로 허리를 동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를 의미합니다. 로마 군인들의 경우 허리를 받쳐 주는 큼직한 벨트는 든든하게 허리를 받쳐주면서 아랫배를 보호해 줍니다. 진리의 역할도 그와 같습니다. 진리가 우리의 중심을 받쳐 줄 때 거짓의 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 영적으로 기민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진리는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심령이 변화되고, 정결한 마음을 품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진리로 허리를 동여맨 사람입니다. 둘째, ‘의의 호심경’을 붙여야 합니다. ‘호심경’은 오늘날의 방탄복 같은 것으로, 병사의 주요 부위를 보호하는 놋쇠로 만든 호신용 장구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의’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를 의미합니다. 호심경으로 자기의 주요 부위를 감쌀 때 적의 공격에서 목숨을 지킬 수 있듯이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의로운 삶을 추구하면 사탄의 정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셋째,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한 신’을 신어야 합니다. 허리띠의 경우처럼 원문에는 ‘신’이 직접 언급되지 않습니다. 단지 ‘평안의 복음의 준비함을 발에 신으라’라고 말합니다. 신자가 평안의 복음을 준비하는 것은 싸움에 나가기 위해 군화를 신는 행위와 같습니다. ‘평안의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복음이 세상의 갈등과 분열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임을 알고 담대하게 나아갈 때, 악한 영이 세상에 구축한 갈등과 불의를 무너뜨리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로마 병사에게 ‘방패’는 아주 중요한 보호 장비였습니다. 여러 겹의 가죽을 대서 만든 것으로, 전투 전에 물에 흠뻑 적셔 두면 역청 기름을 흠뻑 먹인 불화살이 거기에 꽂히더라도 불이 금방 꺼지고 맙니다.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불화살은 의심, 두려움, 죄책감, 분노, 낙심, 염려 등입니다. 이런 불화살들이 날아오는 현실을 우리가 바꿀 수 없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 불길이 번지지 아니하도록 조기에 불을 끄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만이 염려에 대한 최상의 방어 효과를 가집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로마 군인이 착용했던 ‘투구’는 청동으로 만들어 머리를 보호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구원이 완성되고 영광스러운 기업을 상속받을 때를 바라보게 합니다. 성도들이 원수 앞에서 자랑스럽게 구원의 투구를 쓰고 나설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원수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성령의 검을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검’은 로마 군인들이 사용했던, 짧은 양날 칼을 말합니다. 짧은 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 말은 적들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여야 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성령의 검’이란 표현은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검이란 뜻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합니다(히 4:12). 성령께서 우리가 죄에 종노릇하지 않도록 말씀으로 육신의 행실을 죽이시고 우리 심령 골수를 쪼개시고 죄를 드러내시고 회개하게 하셔서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님도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으로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셨습니다(마 4:1~11). 주님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1:3). 성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순종함으로써 영적 싸움에서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려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 하나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했는데, ‘평안’은 ‘평화’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평화’는 주로 성도들 간의 연합과 화합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성도들에게 영적 전투를 위해 연합과 화합 가운데 함께 싸울 것을 권면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신갑주 중에 ‘방패’가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는 대로 로마 군대는 방패를 거북이 등딱지 같은 형태로 만들어 자신들을 보호하면서 대형을 전진시키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즉 방패와 방패 사이에 간격을 두지 않고 병사들이 보조를 맞춰 움직였기에 화살이 방패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한 것은 일차적으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주변에서 닥쳐오는 공격을 무력화하라는 명령인 동시에, 다른 성도들과 동일한 믿음으로 하나 되어 함께 영적 싸움을 싸우라는 명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대형을 유지하려면 함께 많은 훈련을 해야 합니다. 군사가 전투에 필요한 모든 무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하나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때에 더욱 큰 힘을 발휘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 됨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바울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라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안에 하나 됨을 깨뜨리는 요인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하면서 교회에서 비난과 비방, 싸움과 다툼, 대립과 분열이 생기는 것이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성숙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참고,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함으로서 주님께서 이루신 하나 됨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힘써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와 진리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 공동체가 함께 섬기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 됨을 깨뜨리려는 위협과 도전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1-22).
-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동기나 과정이 또한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한다면 공동체를 긴장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개개인이 아무리 실력이 있고 열정이 있을지라도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빌 2:5).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 주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 주님의 목표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영광을 포기하시고 이 세상에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교사요, 실제로 모범을 보여주는 삶의 모델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에 복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전신갑주를 열거하면서 바울이 언급한 진리, 의, 화평, 구원, 믿음, 말씀 등 이 모든 것은 예수님과 연결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으로 덧입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낮추심, 겸손, 순종, 섬김을 본받으며 영적 전투에 임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본문은 에베소서의 마지막 권면으로 현실이 영적 싸움터임을 강조하면서 이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먼저 에베소 성도들에게 강건해지라고 권면하는데, 강건해짐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고, 하나님이 강한 힘으로 붙들어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사탄은 성도를 유혹해서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게 하고 범죄에 빠지게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성도는 사탄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명합니다. 로마 병사들이 입었던 갑옷에 비유해 진리의 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악한 영들을 이기셨으니,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의 말씀이고, 그분 앞에 진실한 삶이고, 그분께 충성하는 의로운 마음이고, 그분이 주신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의 시험과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성령의 검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용감하게 싸우는 것뿐입니다. 마귀의 간계에 맞서 개개인이 힘써 싸울 뿐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믿음의 주시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싸워야 합니다. 현재 나와 교회 공동체의 영적 무장 상태는 어떠한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대장이신 예수님과 함께 영적 전투를 벌여 승리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건강한 교회를 한마음이 되어 이루어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