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 복종하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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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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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지금과 비추어 형편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아침기도문을 보면 남자들이 아침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내용이 있는데 이방인과 종과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헬라 사람들에게 남편과 아내가 대등한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집안일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지만 남편은 자기의 재미를 밖에서 찾았습니다. 로마시대에 이르러는 가정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세기 로마 제국에서 남자들은 아내, 자식, 종들을 소유물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그와 같은 계급사회에는 사회의 질서 유지 명목으로 권위를 가진 자들과 복종을 하는 자들 사이에 엄격한 구별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버지는 자식을, 주인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사회적 상황에서 바울은 ‘피차 복종하라’는 폭탄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기득권이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서로 섬긴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의 권면이 당시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말한 것은 아닙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각자의 맡은 역할은 감당하되 서로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창조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가정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곳일 뿐 아니라 식구들의 안식처요 인격을 형성하는 곳이요 신앙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가정이 제 역할을 다할 때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고도의 산업 사회에 들어선 지금은 상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이 확산됨에 따라 전통적 가정 개념이 크게 도전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흔들리며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기독교인 가정들에서도 현실적 삶과 신앙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다가 신앙마저 좌초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와 가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가정이 그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면 교회도 존립의 기반이 흔들리게 됩니다. 반면에 부부 관계의 회복과 치유가 일어날 때 가정이 든든히 세워지며 교회도 활력이 생깁니다. 따라서 가정과 그 구성원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피차 복종하라’는 권면을 남편과 아내에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가르침을 각자에게 적용하여 아내와 남편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 서로 섬기면서 건강한 가정, 더 나아가 건강한 교회를 함께 세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난주일 살펴보았던 5:18~21과 연결시켜 보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5:18). 빛의 자녀답게 제대로 살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19~21절에는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삶의 모습이 5개의 분사형으로 등장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19~21).
아내들을 위한 권면(22-24절)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리를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할 영역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 충만의 특징인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을 남편과 아내에게 적용합니다. 바울은 “아내들이여”라고 하며 시작합니다. 22절을 직역하면 ‘아내들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동사가 생략되었는데, 21절의 ‘복종하라’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는 아내들이 많이 계신데,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이 듭니까? 여성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에 아내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구절이라 생각할 수 있고 성경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연결시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복종의 근거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함을 입은 교회가 구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자발적으로 섬기는 사랑의 복종입니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와 영광스러운 구원계획의 원리에 기초한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방식에 대해 “주께 하듯 하라”고 말합니다. “주께 하듯”이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교회가 주님의 뜻을 따르듯이 아내가 남편의 뜻을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시고,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로 머리의 지시에 복종함으로써 온 몸이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지체가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몸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머리로 번역된 단어는 ‘근원’또는 ‘권위’의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은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해야 하는 이유로,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아담의 몸에서 갈빗대를 취해 하와를 지으신 것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남자를 위해 여자를 지으셨지, 여자를 위하여 남자를 지은 것이 아니며,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 났다는 것입니다(고전 11:8-9). 그러므로 아내들은 주님께 복종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사랑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복종을 ‘범사에’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내는 신실하고 사랑스러운 아내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가정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복종한다고 하여 남편의 하는 모든 요구를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할 때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유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교회에 대하여 그러한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럴 때에도 지혜롭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아내가 복종한다는 것은 믿는 아내들이 믿는 남편들을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배필로서 남편과 아내는 주종 관계가 아닌 서로 돕는 사랑의 관계여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고 보살피며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사랑한다면 아내들도 스스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며 따르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완전한 사랑이요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온전하게 복종하듯이 바울은 믿는 가정에서 아내들도 강압적으로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남편들을 존경하고 섬길 것을 촉구합니다.
남편들을 위한 권면(25~30절)
이어서 바울은 “남편들아”라고 부르면서 남편들을 향한 권면을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신 일을 권면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희생을 포함합니다. 26절은 목적절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당신을 주신 목적을 말합니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하시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한 물의 씻음으로 깨끗하게’하는 방법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는’것이 목적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 신자에게 적용되었음을 공적으로 알리는 세례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행하신 그 사랑을 인해 교회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거룩하게 되었기에, 교회가 그리스도 앞에 영광스럽게 서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에 대해 온전한 사랑을 실천함으로 아내를 보다 가치 있고 온전한 존재로 세워야 합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에 근거하여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를 자신과 같이 사랑할 것을 권면합니다. 예수님이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을 당신의 몸 된 교회로 만드시고 거룩하게 완성시키십니다. 따라서 남편도 한 몸을 이룬 아내를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고 보호하십니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권면을 요약하면, 바울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대해 교훈하면서 이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이 될 수 없었던 자들을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당신의 거룩한 몸으로 만들어 흠 없는 영광스러운 상태가 되기까지 돌보시는 것같이, 남편도 원래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가 한 몸이 된 아내를 자신의 몸으로 여겨 거룩하고 흠 없는 영광스러운 상태가 되도록 희생적이고 신실한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책임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며 다스림이 아니라 돌봄입니다.
연합의 비밀(31~33절)
바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존경하라.”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롭고 거룩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창세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그리스도가 교회를 신부로 취할 때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부가 연합하여 온전하게 한 몸을 이루었기에 남편은 전적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인용은, 남편의 아내 사랑에 대한 교훈보다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32절에서 바울이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이듯 남편과 아내의 연합은 신령하고 복된 연합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보더라도 남자와 여자의 연합은 본질적인 의미로써 관계성을 갖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감탄하는 이유는 남편과 아내의 한 몸 됨을 규정하는 창조 원리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한 몸 됨을 예시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친밀한 연합’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부부로서의 결합을 통해 한 육체가 된 것처럼 그리스도와 교회도 그런 관계 속에서 신비적 연합체가 됩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그리스도께 하듯이, 즉 교회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 자기의 남편을 경외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바울이 남편에 대해 아내가 갖추어야 할 태도를 ‘복종하다’에서 ‘존경하다’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바른 태도가 상명하복 관계에 있는 복종이 아닌, 남편의 권위에 대한 인정과 존경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희생적 헌신과 돌봄을 의미하고, ‘존경’은 복종과 섬김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라’와 ‘존경하라’는 단어는 틀리지만 그 당시 남자와 여자의 신분이 달랐던 사회적인 환경으로 볼 때 결국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법도를 따라 서로 존경하여 복종하고, 희생하며 사랑하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뿐 아니라 천국의 기쁨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관계의 기본인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부부가 되려면
- 부부가 서로 섬겨야 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서로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가정생활을 주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는 상호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서로 복종하라’는 말은 자기의 가진 특권이나 권리를 포기해야 되는 것을 의미하기에 특히 가진 자는 실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 구원의 은총을 맛본 성도는 가정에서도 철저한 자기 부인과 타인을 위한 사랑과 섬김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용서와 사랑의 치유와 회복이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펼쳐져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자발적으로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 부부생활이 신앙훈련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가부장제도 상황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간의 사랑이 노래가사처럼 자칫하면 눈물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에 부부 세미나를 했을 때 강사 목사님이 계속 경고한 말이 있었습니다. 부부 관계가 한 달 안에도 끊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결혼생활이 일시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가 되고 서로를 섬기려는 노력과 의지가 계속 필요합니다. 서로 섬기려면 때로 상대방을 위하여 자기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합니다. 혼인관계는 일평생 함께 가는 언약의 헌신이며 그 헌신을 이끄는 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부생활은 신앙훈련의 일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아끼고 서로 참고, 서로 섬기는 가운데 그리스도가 머리됨을 나타내는 신실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 부부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남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아내를 위하여 죽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내들보고 남편 위해 죽으라는 말이 없습니다. 아내들에게는 남편에게 복종만 하면 됩니다. 22절에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보다 21절의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복종하라’는 명령이 우선입니다. 또한 ‘복종하라’가 헬라 원문에는 분사로 되어 있고 본 동사는 18절에 나오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입니다. 바울의 명령이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가능하게 하는 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야 비로소 서로 섬기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서로 복종하라’는 권면에 따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결국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부부가 함께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부부에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립니다.
나가면서
교회 전체에 대한 권면을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로 마친 바울은 5:22~6:9에서 피차 복종의 원리가 구체적인 관계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권면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십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의 축소판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어 삶의 모든 면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머리로서 단순히 권위만 주장하신 분이 아니라 몸 된 교회를 위해 당신을 희생하신 구원자십니다. 그렇기에 아내는 남편을 자신의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돌볼 머리로 여기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남편에 복종해야 합니다. 반대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당신을 주신 것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핵심은 죄로 인해 멸망할 자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 죽음과 부활을 적용해 그들을 당신의 거룩한 몸으로 만드시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흠 없는 영광스러운 상태가 되기까지 빚으시고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를 당신의 몸으로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편도 아내를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창세기 2:24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을 이룬다는 것까지 예시한다는 점은 이제까지 감추어졌다가 예수님의 구원 사역으로 교회가 세워진 후에 밝히 드러난 놀라운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가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자발적인 복종으로, 교회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연합을 이루는 가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아름다운 삶을 함께 이뤄갈 때,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여 주는 통로가 됩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요구되는 것은 서로를 향한 관심과 헌신입니다. 서로 아끼고, 서로 참으면서 서로를 향하여 “나는 당신을 기꺼이 섬기겠습니다”주저하지 않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부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부부, 건강한 부부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가정, 행복한 가정,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