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Author
Date
2024-09-08 22:19
Views
568
성경구절 : 엡 5:1~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마 5:14)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세상이 어둠 가운데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이 개발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여전히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과 구별되어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이사야가 말세에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는데 예수님과 그를 믿는 자들을 통하여 그 예언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예수님 자신이 빛이시기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빛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을 비춰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이나 행동, 대인관계에서 드러난 우리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예수님이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빛이 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자신의 삶에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천국백성으로서의 신앙이나 가치관이 삶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들이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합니다. 빛의 자녀 된 우리는 더 이상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신자의 정체성은 빛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온통 어둠입니다. 어둠은 언제나 빛을 물리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빛이 있는 한, 어둠은 힘을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둠 사이의 싸움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신자는 이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군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받은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빛의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 가운데 행하라(1~2절)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교회의 하나 됨을 강조하고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이루시는지 알려주었습니다. 목표는 서로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되어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신자를 ‘새사람’과 ‘옛사람’으로 대조하면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은 존재로 살도록 권면했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새사람’의 특징은 의와 사랑입니다. 5:1~2은 ‘새사람’의 두 번째 특징인 사랑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본받는 자’라는 말은 ‘모방자’를 의미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보고 닮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우리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는 의미합니다. 과거에 행했던 것처럼 사탄을 좇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둘째, 삶의 기준을 하나님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행동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 사랑 가운데 모든 것을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4:32와 5:2은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5:2). 앞의 것은 용서에 초점을, 뒤의 것은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각각 부각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서로 인자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상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용납을 배우는 데서 비롯되며, 사랑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배웁니다. 용납과 희생, 이 두 가지는 사랑의 두 얼굴입니다. 바울은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자신을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리신 사건을 모델로 제시합니다. ‘제물과 희생제물’이라는 표현은 밭의 소산과 육축의 소산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의미하며, ‘향기로운’은 예수님이 드리신 제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고 또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우리도 행하라고 합니다. 그분처럼 용서하고 불쌍히 여겨서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어둠의 행위에 대한 경고(3~7절)
바울은 성도가 해서는 안 될 행동 목록을 제시합니다.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3절), “속이지 못하게 하라”(6절),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7절). 이 세 가지 명령은 모두 부정어가 앞서 나온다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하지 말라’는 말씀이 연속된 것입니다. 경계의 목적을 뚜렷이 합니다.
-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3~5절)
신자는 성적 타락을 조심하고 언어생활에 유의해야 합니다. ‘음행’은 각종 성적 부도덕을 뜻하고, ‘온갖 더러운 것’은 모든 성적 도착, 즉 정도에서 벗어난 행위를 가리킵니다. ‘탐욕’은 문맥을 고려할 때 타인을 성적 도구로 삼고자 하는 욕망을 뜻합니다. 여기 나열된 것은 모두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바울이 이것들의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명령한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이런 문제에 자칫하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의식의 표현이고, 내뱉은 말은 다시 그 의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음행과 더러운 행실과 탐욕은 성도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누추함’은 외설적이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뜻합니다. ‘어리석은 말’은 쓸데없는 잡담을, ‘희롱의 말’은 천박하고 저질스러운 농담을 뜻하는데, 특히 성에 관한 것을 암시합니다. 바울은 이런 행동과 말 대신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바른 성적 질서 회복의 핵심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롬 1:21).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마땅한 모습입니다. 언어는 말하는 자의 인격과 생각에서 나옵니다. 언어생활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속이지 못하게 하라(6절)
바울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권합니다. 그 이유는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열매 없이도 하나님 백성 됨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거짓입니다. 진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죄를 합리화하고 거짓 위안을 주는 그릇된 신념과 거짓 교훈의 미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유대인 성도들과 함께 약속에 참여하였더라도(3:6) 불순종의 아들들의 행위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스스로 은혜와 특권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비록 ‘속이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새롭게 주었으나, 3~5절의 주제가 연속되고 있습니다. 내용으로 볼 때도,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지 못하는 것이나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이나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릇된 행동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를 반복해서 강조한 것입니다. 기업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죄의 대가가 한층 강화됩니다. 물론 이 말씀은 2:3의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옛사람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새사람이 된 성도의 마땅한 바가 아닙니다. ‘헛된 말’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진리가 담겨 있지 않은 말, 즉 속이는 말로 문맥을 고려할 때 성적으로 문란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가르침을 암시합니다. 이런 거짓 가르침이 힘을 가지는 이유는 죄를 지으려는 욕심에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르침에 사람들이 미혹되어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성적 타락에 빠지고,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합니다. 신자는 아무도 헛된 말로 자기를 속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신자는 뱀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7절)
바울은 이런 ‘헛된 말’을 가르치고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진리를 거스르며 죄를 합리화하는 사탄의 유혹을 경계하며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선언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과거에 ‘어둠’이었던 이유는 반역과 타락의 세상에 속한 이방인으로서 불순종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빛이라”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빛을 비추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빛의 자녀들의 행위(8~14절)
본문 후반부인 8~14절의 강조점은 다음의 핵심 명령어로 요약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참여하지 말고 책망하라’, ‘깨어 일어나라.’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9절)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변화된 신분을 재차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전의 삶은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의 신분 변화는 ‘전에’와 ‘이제’라는 표현과 더불어 ‘어둠’과 ‘빛’으로 대비가 됩니다. ‘주 안에서’라는 표현이 더해지는데, 이는 에베소 성도들의 변화된 신분이 누구로 인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주 안에 있는 자의 신분에 걸맞게 살아갈 것을 명합니다. 이렇게 변화된 대표적인 인물이 에베소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있었으며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고자 했을 정도로 핍박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행하던 그에게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자, 그는 눈이 멀었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습니다. 바울에게는 그 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자로 보던 육신적인 눈이 감겨지고, 구주로 보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이단의 괴수였으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니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후로 바울은 자기 목숨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복음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어둠은 복음의 진리에 대한 무지 가운데 불순종하는 삶인데, 그 결과는 죽음과 심판입니다. 반면에 빛은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순종하는 삶이며, 새창조를 통한 새로운 생명을 의미합니다. 어둠과 죄와 죽음 가운데 살던 에베소 성도들이 이제 예수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이방의 빛’이 되리라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새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불순종의 아들들과 구별되도록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고 당부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이미 빛의 자녀들이 되었으니 그에 합당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행하는 것이 빛의 자녀로서 행하는 것입니까? 바울이 앞서 3절에서 어두움의 행위를 세 가지(음행, 더러운 것, 탐욕)로 지적했습니다. 여기서는 빛의 행위를 세 가지(착함, 의로움, 진실함)로 거론하며 서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 참여하지 말고 책망하라(10~11절)
10절의 ‘시험하라’는 동사는 분사인 반면, 11절의 ‘참여하지 말라’ ‘책망하라’는 본동사입니다. ‘~을 시험하면서, ~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다 보니 세상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않으실지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당 안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삶의 현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삶이 곧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산 제물이 되는 것인데, 그때의 기준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빛의 열매를 거둘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은 어둠에 속한 자가 사는 방식(3~6절)을 말합니다. 성도는 이러한 삶에 참여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빛 가운데 들추어내 책망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바울은 이사야 60:1~2을 인용해 빛으로 말미암아 들추어질 때 환히 드러나는데 드러나는 모든 것이 빛이라고 합니다. ‘들춰내는’ 것은 정죄하는 역할이지만, ‘드러나는’ 것은 빛에 속하게 하여 빛이 되게 하는 구원적 역할입니다. 성도들이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의 부끄러운 것들을 들추어낼 때, 그들은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결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묵인하거나 동조하지 말고 과감히 우리의 빛을 비추어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게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착하고 선한 일과 정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 깨어라, 일어나라(14절)
바울은 결론적으로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1세기 세례 의식서의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어둠에서 깨어나게 하시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는 ‘죽은 자’는 외형은 유사하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잠자는 자들은 죽은 것이 아니므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실 때 어둠은 물러나고 어둠에 있던 자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그리스도의 빛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빛을 비추는 곳마다 어둠과 거짓과 불의가 드러나고, 어둠에 갇혔던 이가 빛 가운데 나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가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분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하나님을 본받는 자들이 될 것과 사랑 가운데 행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용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이 희생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 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가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품어야 하는 그 사랑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보이신 무조건적, 희생적 사랑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알게 되었고 이제 사랑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성적인 부도덕과 탐욕에 대해 경고하고 언어생활에 대해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고자 할 때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옛 성품에서 비롯한 죄악들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우상 숭배와 같기에 그것들에 빠지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과 같은 악한 행동과 말 대신 도리어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더럽고 추악한 말은 삼가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입술을 사용해야 합니다. 헛된 말에 속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헛된 말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러한 일들에 결코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합니다. 세 번째,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우리는 이제 어둠이 아닌 빛입니다. 빛에 속한 자답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행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구별된 삶을 살 때에 그리스도의 빛이 성도들을 통해 비취어 어두움 속에 살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주님을 본받아 거룩하게 살려고 힘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깨달아 빛의 자녀로서 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