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바울의 감사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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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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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엡 1:15-23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누리고 있는 최고의 특권과 영광을 언급하고, 거기에 따르는 책임과 사명을 동시에 강조하기 위해 찬양(1:3~14)과 두 번의 기도(1:15~23; 3:14~21)를 기록합니다. 바울의 기도는 모든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기도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첫 번째 기도인데, 이 기도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됩니다. 지난주 말씀드린 대로 3~14절은 헬라어 원문으로는 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도 한 문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은 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 곧 죄 사함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치시고 약속의 날까지 보증하시는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복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어떻게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합니까? 바울은 성도들도 자기처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가슴이 뜨거워질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바울의 기도는 또한 오늘 우리를 향한 것입니다. 우리도 베푸신 은혜 감사할 뿐 아니라 감격 속에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에 대한 감사(15-16절)
바울은 그의 기도를 감사로 시작합니다. 그 감사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들어서 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그가 에베소 교회를 떠난 이후 이 소식을 간접적으로 접했음을 알려줍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주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믿음에 부응하는 사랑의 삶을 실천하고 있음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실천적 사랑에 의해 입증되어야 하고, 성숙한 사랑은 믿음에 근거해야 합니다. 16절을 직역하면‘나의 기도 중에 너희를 기억하며,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노라’입니다. 에베소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2:12)였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사이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가 되고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건강하고 잘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 기쁘고 결혼한 자식들이 아이들을 잘 낳아 키우며 화목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 자식을 키운 보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는 교우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사랑을 실천하며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기쁜 일이 없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면서 그들의 신앙의 진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도 세상적인 필요를 채워달라고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중보가 있어야 하고 또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함께하는 영혼들, 즉 가족이나 친구나 교우들이나 이웃을 위해 쉼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의 두 가지 기도(17~19절)
바울은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믿음의 현주소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신령한 복을 넘치도록 풍성히 주셨는데 에베소 교인들은 아직까지도 그 복을 온전히 알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에베소 성도들도 자기처럼 신앙의 정상에 올라 그들 앞에 펼쳐진 광활한 전경을 눈을 열어 보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감사에 이어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구속을 성취하게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높여 주신 바로 그 하나님,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영광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친히 ‘아바 아버지’가 되셔서(롬 8:15)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모든 좋은 것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롬 8:32). 이는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분이라는 것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제목으로 기도합니다.
1)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의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더 깊이, 더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직 성령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 합니다(요 14:17).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오직 진리와 계시의 성령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의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알면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다 보면 기록된 말씀이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변하여 우리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이미 받은 성령을 왜 다시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까? 성령의 사역이 성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구원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하기에 성령의 임재가 더욱 강력히 나타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지식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지 않으면 성경은 단순히 신화요 역사책이요 문학작품 정도로밖에 알 수 없고, 그 속에 담겨 있는 구원의 진리, 생명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피상적인 차원을 넘어 서서 친밀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2) 마음의 눈을 밝혀서 주신 복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 그들이 소유한 세 가지의 복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부르심의 소망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세상에서 소망이 없”(2:12)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전에는 사단의 지배하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소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현재 당하는 고난 속에서 전혀 다른 태도를 갖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업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 성도들은 미래가 있기에 현재의 고난을 견뎌냅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또 고생을 한다고 불평과 원망이 그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화살을 돌리다 보니 인간관계도 나빠집니다. 불 가운데 있던 금이 더 순수해지고 가치 있는 금으로 되는 것 같이 성도들은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게 되고 인내를 통하여 더욱 성숙된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영에 속한 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기에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너희도 ...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롬 1:6).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영광의 소망을 바라보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현재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구원은 현재도 확실하지만, 장래에 나타날 영광은 현재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 될 것입니다(롬 8:24-25).
-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소유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일, 교회에 대하여 하신 일, 장차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엄청난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생각할 때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모든 성도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어 장차 하나님의 풍성한 영광에 참여할 성도들이 가끔씩 교회에 얼굴을 비치며, 성령을 근심시키며 신앙 생활하면 되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슬기로운 처녀처럼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여 신랑이 예기치 않은 때에 오더라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히 4:11), “주 앞에서 점도 없이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하면서 우리 편에서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평소부터 주님께 헌신된 삶, 복종하는 삶, 경건의 훈련을 힘쓸 때 주님 오시는 날 평강 가운데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 지극히 크신 능력
성도들이 깨닫기 원하는 세 번째 것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능력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힘, 강력, 역사, 능력’등 의미가 비슷한 네 개의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도저히 한 두 단어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능력’이란 용어는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중에서 여전히 경험되고 있는 현존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성도들을 부르셔서 회개케 하는 데서 나타났고, 또 성도들을 끝까지 보존하시는 데 나타나고 있으며, 성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올려 영화롭게 하는 데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능력(20-22a절)
바울은 기도를 마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결정적으로 나타났던 예를 듭니다.
- 그리스도의 부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4:25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사건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결정적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또한 성도들에게도 역사하고 있음을 그들이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좌정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에 영광과 권능의 자리로 높아지신 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능력의 또 다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부여받아 만물의 통치자의 자리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라는 표현은 시편 8:6에 대한 암시로 하나님이 창조 때 아담에게 주신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지으셔서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듯이 예수님의 부활-승천-좌정은 창조주 하나님이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물리침으로 새 아담 그리스도(롬 5:12-21)의 발아래 만물을 복종시킨 새 창조 사건입니다(고전 15:21-22).

그리스도와 교회(22b-23절)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계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 됩니다. 여기 언급된 교회는 단지 에베소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를 암시합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만물을 다스리는 주관자일뿐더러 교회의 주관자가 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며 여섯 째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작업 중에 그리스도를 머리로 ‘교회를 그의 몸’으로 하심으로 그 절정을 이룹니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라”(3:22).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가득 찼듯이 이제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신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교회를 채우십니다. 교회는 죄로 어그러진 만물에 대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조화와 질서를 회복하여 통일을 이루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충만케 된 곳입니다. 교회가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유지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주의 통치에 잘 복종할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삶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라”(4:13)라고 바울은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일원이 되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머리로 있는 이 교회를 단순히 인간들의 모임으로 여겨서 내가 세운 교회니 내가 주도권을 가진 교회니 하며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자기를 내세우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신성모독입니다.

우리의 자세
- 우리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과정이요,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멀리 계시기에 우리와는 상관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알아야 합니다. 비록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이나 인명을 줄줄이 외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기도와 말씀과 교제와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 역사하심을 체험한다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성도의 정체성을 분명히 안다면 세상의 평가 앞에서 초라해질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것은 예수님을 초라한 분으로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장차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을 자들입니다. 고난과 좌절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는 그분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결국은 승리할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을 개발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이 얼마나 큰지 되새기며, 그 영광에 합당하게 믿음의 길을 완주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에베소서에는 ‘풍성’과 ‘충만’이란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풍성’은 영어로 ‘riches’, 즉 풍부함 또는 많음을 뜻합니다. ‘충만’은 영어로는 ‘fullness’, 즉 가득함을 뜻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풍성’은 밖에 있는 많은 것을 가리키고, ‘충만’은 밖에 있는 것이 우리 안에 들어와 가득 차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 누리지 못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거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며 하나님이 베푸신 풍성하신 사랑을 인하여 자신이 충만해진 것을 고백합니다. 바울 또한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 도다”(고후 7:4). 위로 충만, 기쁨 충만을 감사합니다. 충만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바울은 성도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9).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면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이라 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충만은 채워짐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은 외부로부터 채워짐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롬 2:4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성경은 하나님과 관련되어 말할 때 언제나‘풍성’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찬송가의 가사에도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인 예수님에게 주셨다는 의미에서 ‘충만’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지려면 우리의 것을 먼저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며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무엇으로 충만합니까? 시기, 다툼, 질투, 탐욕, 정욕으로 채워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본 받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감사 충만, 기쁨 충만, 능력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고, 마음의 눈을 밝아져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하나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나가면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주를 향한 믿음이 사랑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감격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시고 영적인 진리를 더 잘 깨달을 수 있는 영안을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밝아진 눈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르심의 소망을 알 때 이 세상에서의 성취에 연연해하지 않고,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을 알 때 우리의 소유나 업적을 인해 우쭐대지 않고 죽음을 이기신 그 능력을 알기에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바울의 기도를 본받아 바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드러내는 교회입니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영적인 질서를 가진 교회입니까? 교회가 무엇입니까?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무리입니다. 왜 부름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도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4,5). 하나님의 은혜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도 역사하여 장차 그리스도가 누리신 부활, 승천과 만물을 다스림에 참여하게 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체험하며 충만해진 것을 함께 나누시고 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