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삼위 하나님이 베푸신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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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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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엡 1:1-14


금년 들어 주일 설교 시간에 느헤미야서와 룻기를 다루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열정과 리더십을 인해 낙심과 좌절에 빠졌던 유다 백성은 52일만에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였고, 아울러 개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룻, 나오미, 보아스를 중심으로 헤쎄드를 행했더니 하나님은 그들에게 헤쎄드를 행하심으로 소망이 없던 나오미의 가정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에베소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베소서는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더불어 옥중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 있었던 주후 60년대 초반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고 파르테논 신전보다 네 배나 큰 아데미(다이아나)의 신전이 있어 참배객과 관광객이 많이 모여드는 향락과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 처음 들렀고(행 18:19), 삼차 전도여행 중 다시 에베소에 들러 회당에서 석 달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전파했고(행 19:8) 두란노 서원에서는 이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며 에베소를 소아시아 선교의 전진기지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많은 전도의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사역하는 동안 기사와 이적이 많이 일어났는데,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갈 정도였습니다(행 19:12).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부요함을 누리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으로 거지와 같이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어떤 존재고, 그에 속한 자들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셨음을 선포하며 교회가 얼마나 큰 영광을 얻었는가를 노래하는 웅장한 송영으로 시작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문안 인사(1~2절)
모든 편지가 그렇듯이 에베소서도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히고 문안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편지를 보내는 자인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의 뜻’으로 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소개합니다. 변화받기 전의 바울은 율법에 대한 열심이 있던 바리새인이었고,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을 섰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했습니다. 그 회심을 계기로 바울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대리자’, ‘보냄을 받은 자’를 뜻하는 사도는 원래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함께 지내던 열두 제자에게만 국한되었던 명칭입니다(마 10:2).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도 사도로 불림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복음전파에 헌신하는 자들을 포함하여 범위가 넓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수신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께 속하게 된 ‘거룩한’자들입니다. 이 거룩함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들이며, 예수님을 믿어 순종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신실한’자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교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은혜’란 단어가 신약성경에 125번 나오는데 바울서신에만 95번 언급되고 에베소서에도 열두 번이나 언급됩니다. 은혜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히 받을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로 주어진 공짜 선물입니다. 은혜는 헬라식 인사인 ‘카레인’과 비슷한 발음의 ‘카리스’를 사용한 것이고, 유대식 인사인 ‘샬롬’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은혜’가 모든 복의 근원이라면 ‘평강’은 은혜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때 우리가 평강을 경험합니다. 바울은 은혜와 평강의 근원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죽음,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심을 통해 그리스도일 뿐 아니라 ‘주’로 선포되셨습니다. ‘주’는 만물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가진 왕으로서의 이름이고,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구원자의 뜻을 가진 개인적인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의 공적인 타이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이지만, 주님과 더 깊은 인격적 관계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은혜와 평강이 필요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이 쓴 글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된 말씀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하신 일: 선택과 예정(3-6절)
바울은 인사를 마친 후에 “찬송하리로다”라는 선언으로 영광송을 시작합니다. 3~14절에 기록된 영광송은 하나의 헬라어 문장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 언어로 가득합니다. 3~14절을 마침표 없이 계속 읽으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삼위 하나님을 통하여 베푸신 신령한 복을 감옥에서 묵상하면서 얼마나 감격해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깨달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하든지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소개한 것은 ‘복’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신령한 복’은 물질적이고 지상적인 복과 대조적으로 영에 속하고 하늘에 속한 복을 가리킵니다. 구약 시대의 복의 개념이 대체로 물질적이고 현세적이었던 데 비해,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복은 ‘영적’개념을 띱니다. ‘하늘에 속한’이라는 말은 ‘장소적’인 개념을 가진 표현으로, 복의 성격이 부활에 대한 소망, 천국과 영생에 대한 약속 등 영적인 것임을 암시합니다. 동시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덧붙여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에게 주신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약속하신 ‘복’을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거룩함’과 ‘흠 없음’을 교회가 지니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패하고 썩어 없어질 땅의 복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하늘의 복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복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은 그리스도의 존재가 창세전으로 소급되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내다보며,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아직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신분이나 행위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선택하셨다’는 동사는 문법적으로 과거 일회적인 사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하나님은 한번 선택하시면 그 선택을 취소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전’은 시간이 있기 전이므로, 창세전의 선택은 시간을 초월한 사건입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그 선택은 영원한 효력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효력을 발휘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의지나 선행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절대 주권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는 거룩하지 못했고 흠이 많았다는 말입니다. 엡 2:3에 의하면 우리도 전에는 모두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바라는 대로 행하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의식 속에 성결과 흠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모든 삶의 현장에서 믿는 사람의 구별된 모습을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일뿐만 아니라 일주일 내내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주신 두 번째 복은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예정하사 ...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는‘우리를 자기의 아들로 입양을 예정하셨으니’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롬 8:29). 하나님께서 세상에 속한 자로 마귀의 지배를 받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셨습니다. 양자는 법적인 아들이기에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 받을 법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예정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대로”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정의 교리를 잘못 이해하면 불안해지고 자칫 혼란에 빠집니다. 태초에 우리가 예정을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의 예정이 없이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우리의 믿음에만 달려 있다면 얼마나 불안합니까? 앞으로 닥쳐올 환난 속에 스스로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합니까? 겁에 질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순간에는 복음을 받아들이겠다고 내가 결심한 것 같았는데 사실 나로 하여금 믿도록 성령께서 미리 역사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정의 교리는 지금 우리가 복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믿음의 현재에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이 중간에 조금 실수한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약하여져 방황하고 죄를 짓더라도 우리를 끝까지 붙잡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때까지 우리를 지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예정의 교리는 믿는 자들에게 확신과 위안을 주는 교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이 분명히 믿어질 때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하신 일: 속량(구속)(7-12절)
7~12절은 성자 하나님,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복을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이 무려 5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 사역의 중심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말입니다. 첫 번째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 로마제국에는 약 6000만의 노예가 있었는데 이들은 마치 물건처럼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속량, 곧 구속의 의미는 노예를 돈 주고 산 후 그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종노릇 하던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사역은 “속량 곧 죄 사함”입니다. 흠 없는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속량하여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사역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9절)이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5절)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속은 인간의 의나 공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구원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신 하나님이(7~8절) 또한 자신의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8~9a절). 여기서 “그 뜻”은 3~7절의 내용, 즉 예정에 따라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양자 삼아 모든 영적 복을 주어 거룩하고 흠 없게 만들어 그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때가 찬 경륜”은 때가 되면 이루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가리킵니다. ‘경륜’으로 번역된 헬라어 ‘오이코노미아’는 ‘집안 살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온 세계를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과 관리, 조절 작업을 하나님의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이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이 비밀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이라는 단어를 “전에는 감추어졌으나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드러난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셨지만 이스라엘은 눈이 닫혀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역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으나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믿는 사람들에게 그 비밀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만세 전부터 감추어져 왔는데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계시되었고 교회를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비밀은 감추기 위함이 아니라 신비롭게 드러내기 위함이며,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창조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의 통치에 온전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구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이 회복이 되고 모든 것이 하나가 되고 완전한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구원의 완성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만물의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 앞에 꿇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임할 때까지 이 땅에 분열이 아닌 샬롬의 모습을 이뤄 가야 합니다.

세 번째 복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는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기 위함입니다. 입양된 자녀는 법적으로 부모의 재산을 상속할 권리를 가진 상속자가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것을 자기가 뜻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획을 따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기업을 얻습니다. 이 기업은 곧 회복된 피조 세계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일어날 새 질서 속에서 신자들이 누리게 될 장래의 조건과 소유물을 의미합니다. 이 귀한 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신 뜻에 따라 계획되고 성취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인 치심과 보증(13-14절)
성령께서는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에게 인을 치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확인합니다. 성령의 인 치심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확증하는 것이요, 온 천하에 성도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 치심은 “구원의 날까지”(4:30) 이르는 불변의 확인입니다. 바울은 구원에 관한 신학적인 교리를 현실의 상거래에 비유해 알기 쉽게 전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풍성한 영광스런 기업을 준비해 주셨고,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영광스런 기업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벧전 1:4)입니다. 성도들에게 이 기업이 주어질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것입니다. 본래 ‘보증’이란 선금이나 계약금 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계약금조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기업 받을 자가 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소유임을 도장 찍고, 더 나아가서 이 도장 찍힌 하나님의 기업인 성도에 대해 보증을 서십니다. 성령은 성도를 인칠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보증이 되십니다. 성령은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께 보증이 되십니다. 성령이 성도들 안에 내주하신다는 사실은 구원의 완성과 풍성한 삶에 대한 보증이 됩니다. 14절의 “이는”은 관계대명사로 ‘이 성령은’이라는 뜻입니다. “속량하시고”는 ‘속량하실 때까지’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주의 재림 때 이루어질 최종적인 구속을 의미합니다. 혈통과 신분에 상관없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 이들을 기업으로 삼으시고, 성령의 인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증해주십니다.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이 성취하신 구원이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성도들에게 적용됨으로써 구원의 날까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소망이 있기에 성도들은 범사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게 됩니다(롬 12:12). 소망을 주시는 성령님이시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여 방황할 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롬 8:26).

복을 주신 목적: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6절).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함이라”(12절).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이라”(14절). 개역 성경은 각 절마다 번역을 다소 다르게 해 놓았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하면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우리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님의 것이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하는 행위입니다. 성도의 선택과 예정, 구속, 인 치심과 보증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송이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택함을 받은 성도들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업, 자신의 영광을 먼저 구하는 자의 입에서는 찬양이 끊어질 것입니다.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은 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는 것, 성도들은 이미 그 복을 받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놀라운 영광과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복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어떻게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합니까? 우리에게는 특권만이 아니라, 동시에 은혜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책임과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당당하여 미래에 대하여 확신하며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삶 속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베푸신 풍성한 은혜를 인하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기쁨과 감사와 소망의 근거를 세상에 전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세월을 아끼며 때를 잘 활용하는 지혜로운 성도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아는 성도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께 기쁨의 찬송이 될 뿐 아니라 이 땅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름진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