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곱 대접 재앙의 실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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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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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계 16:1-9


최근 20년 동안 지구촌을 위협한 바이러스들을 보면 조류독감 바이러스, AIDS, 사스, 나일 바이러스, COVID-19 등이 있습니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무서운 바이러스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평균 잡아 일 년에 하나씩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새롭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휩쓴 COVID-19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동남아 일대를 휩쓸고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덥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캐나다에 산불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 과학 기술이 발전한 21세기에도 인간은 속수무책입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인하여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1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습니다. 지구촌이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 성경에서 말세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지금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은 종말을 고합니다. 계시록은 그 종말의 상황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16장 전체가 일곱 대접 재앙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재앙인 만큼 그 재앙의 강도나 범위가 이제껏 내려진 재앙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입니다. 8:13에서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16장에 언급되고 있는 재앙이 바로 셋째 화에 해당합니다. 본문은 일곱 대접 재앙의 전반부입니다. 1-9절에서 일곱 대접 재앙의 처음 네 개가 소개되며 나머지 대접 재앙은 10-21절에 나옵니다. 네 개의 나팔 재앙으로 인해 땅, 바다, 강과 샘, 하늘에 심판이 가해집니다. 나팔 재앙의 처음 네 개의 경우와 대접 재앙의 처음 네 개의 경우 심판의 대상이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가 자연계에 대한 심판으로 머물렀던 것에 반해 대접 재앙은 자연계뿐 아니라 인간도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인간의 고통이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구체화됩니다. 인 재앙과 나팔 재앙이 여섯째와 일곱째 사이에 삽입부분을 두고 있는 데 비해 대접 재앙은 삽입부분 없이 연속적으로 쏟아집니다. 이것은 대접 재앙이 마지막 재앙으로서 철저하고도 강력하게 임할 것을 암시합니다. 대접 재앙의 범위는 이제껏 내려진 재앙들과 달리 보편적인 동시에 최종적입니다. 보편적 재앙이란 ‘모든 생물이 죽더라’(16:3),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16:20)는 말씀처럼 재앙의 범위가 세상 전체로 확대된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이 재앙은 인류의 최후를 장식하는 재앙이 됩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상황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1절)
일곱 천사가 성전에서 나온 것처럼 ‘큰 음성’도 성전에서 나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쏟으라’가 현재형입니다. 계속해서 쏟으라는 명령입니다. 15:1절과 7절에 이어 여기에서 또다시 일곱 대접이 하나님의 진노임이 재차 강조됩니다. 이로써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재앙이 마무리됩니다. 일곱 천사에게 일곱 대접을 쏟으라고 말하는 음성이 성전에서 나온다는 것은 일곱 대접 재앙이 하나님의 뜻임을 나타냅니다. 일곱 대접 재앙은 천지창조 이래 지금까지 참고, 참고 쌓여온 하나님의 분노이며, 이 분노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들려온 음성은 ‘땅’에 쏟으라고 했는데, 첫째 대접은 땅에 쏟아졌지만, 둘째 대접은 바다에, 셋째 대접은 강과 물 근원에 쏟아지는 등, 첫째 대접 외에 여섯 대접은 모두 각기 다른 곳에 쏟아졌습니다. 이는 1절에서 큰 음성이 말한 ‘땅’이 실제 땅이라기보다는 ‘하늘’과 대척점에 있는 곳, 용과 짐승이 통치하는 세계,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계를 가리키는 표현임을 알려 줍니다.

첫째 대접 재앙(2절)
첫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습니다. 여기서 ‘땅’은 1절의 ‘땅’과 다른 의미입니다. 이어지는 바다, 강과 샘, 하늘과 짝을 이루는 지역적 의미의 땅입니다. 대접을 땅에 쏟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발생합니다. ‘악하고 독한 종기’는 하나님의 언약을 어길 때 생기는 저주의 일부로, 신명기 28:35절의 ‘고치지 못할 심한 종기’와 같습니다. 첫째 대접 재앙은 사람과 짐승에게 악성 종기가 생긴 애굽의 여섯 번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가 화덕의 재를 하늘로 날렸을 때 악성 종기가 생겼습니다(출 9:10-11). 일곱 인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과는 달리, 일곱 대접 재앙은 처음부터 그 성격이 악인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이요, 땅에 집착하다가 우상의 노예로 전락한 자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자들이 이 재앙을 당하지 않습니다.

둘째 대접 재앙(3절)
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처럼 되고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이 죽습니다. 둘째 대접 재앙은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물고기가 죽은 애굽의 첫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출 7:20-21). 따라서 첫 번째 대접 재앙과 두 번째 대접 재앙은 모두 출애굽 사건의 주제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재앙은 출애굽 때의 재앙보다 강도가 셉니다. 가령 출애굽기 7:20-21에는 강이 피로 변해 거기 살던 물고기들이 죽었다고 하지만, 3절은 바다가 피처럼 되었고 ‘모든 생물’이 죽었다고 합니다. 둘째 나팔 재앙은 바다 피조물 가운데 삼분의 일만 당하는 제한적인 것인 반면에 둘째 대접 재앙은 바다 가운데 거하는 모든 생물에게 미칩니다. 바다가 죽은 자의 피와 같이 응고되고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상태로 변하게 되면 그 가운데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마귀가 활동하는 장소입니다. 패배한 마귀가 크게 화가 나서 땅으로 내려갔으므로 땅과 바다는 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12:12). 패배한 용은 분노해 성도들과 싸우려고 바닷가 모래 위에 서 있었습니다(12:17). 또한 용에게 권세를 받고 하나님을 모독하며 성도들을 박해하는 짐승은 바다에서 나왔습니다(13:1). 첫째 대접 재앙과 달리, 둘째 대접 재앙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곱 대접이 하나님의 진노를 담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일곱 대접 재앙이 모두 악인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대접 재앙(4-7절)
셋째 천사가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자, 물이 피가 됩니다. 둘째 대접 재앙과 셋째 대접 재앙은 성격이 비슷합니다. 둘째 대접으로 인해 바다가 피같이 변했는데, 셋째 대접으로 인해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됩니다. 둘째 대접 재앙과 마찬가지로, 셋째 대접 재앙도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물고기가 죽은 애굽의 첫 번째 재앙을 연상시킵니다. 셋째 대접 재앙에서는 천사가 부연 설명을 합니다. 이 천사는 물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자입니다. 7:1에서는 땅 사방의 바람을 통제하는 천사들이 등장했고, 14:18에서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등장했습니다. 셋째 나팔 재앙은 강과 물 근원의 1/3이 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재앙이 보다 강화되었고, 전면적입니다. 쑥이 아니라 강과 물의 근원이 피가 된 것입니다. 물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강과 물 근원을 피로 변하게 하는 셋째 재앙은 인간에게 치명적임을 시사합니다. 물을 차지한 천사는 심판이 시행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1:4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1:4)에서 ‘장차 오실 이’를 생략하고 ‘거룩하신 이’를 삽입한 것입니다. 변화를 준 까닭은 이 문맥이 하나님의 심판을 논하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더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6절은 5절의 이유를 설명하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곧 그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성도들과 선지자들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자에게 피를 마시도록 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발생한 두 대접 재앙은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이었는데 다시 ‘피’가 중심 ‘주제’로 등장하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진노의 대접이 바다, 강 그리고 물의 근원에 쏟아져 물을 피로 변하는 심판이 발생하게 된 것은, 짐승과 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 성도들을 핍박하여 피를 흘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판은 교회 공동체를 핍박하는 세상 권력에 대한 심판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절에서 요한은 제단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유사한 내용이 16:1에 기록되었습니다. 곧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가 성전에서 나온 음성을 듣고 심판을 위해 파송 받는 내용입니다. 각각 성전과 제단이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단이 성전의 가장 핵심적 부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심화됩니다. 제단에서 들려온 첫 말은 ‘그러하다’입니다. 이는 5-6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에 대한 긍정적 화답입니다. 이어 하나님을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5절에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에 대응하는 호칭입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며 완벽합니다.

넷째 대접 재앙(8-9절)
네 번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자 해가 맹렬하게 열을 내어 사람들을 태웁니다. 악인들이 받는 이 재앙은 7:16에서 성도들에게 약속된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라는 구절과 대조적입니다. 넷째 대접 재앙과 다섯째 대접 재앙은 정반대의 성격을 띱니다. 다섯째 대접 재앙이 어둠인데, 넷째 대접 재앙은 사람을 태워 버리는 불같은 열기입니다. 넷째 대접 재앙에 비할 만한 애굽의 재앙은 없어 보입니다. 이 재앙의 대상은 짐승의 표를 받고 그것을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초자연적 재앙을 목격했어도 마음을 완강하게 한 애굽왕 바로처럼 도리어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합니다. ‘비방했다’는 말은 13장에서 짐승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장면에 사용한 단어와 같습니다(13:6).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도전할 때 보였던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은 짐승이 벌이는 사역의 본질로 이미 묘사되었습니다(13:6). 따라서 이 행동을 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이 짐승에게 속한 자임을 드러낸 셈입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으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자세
- 우리 마음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출애굽 제1세대는 애굽에서 수많은 우상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에 관해 설명하시는 동안, 시내산 아래에서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금송아지가 만들어졌고 그 앞에서 번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노는 전형적인 우상 종교의 방탕한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 명령한 길에서 속히 떠났다고 하시며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부패한 것에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규정하셨고, 그들은 진멸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출 32:9-10). 모세의 부재 상황에서 그들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임하는 곳은 불의와 탐욕에 물든 땅이요, 자비와 샬롬이 무너진 땅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탐욕을 부리며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다투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향해 진노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우리의 욕심과 야망을 채우는 ‘욕망의 땅’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땅’입니까?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땅에 집착하면 우상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우상에게 돌립니다. 우리의 영혼을 상하게 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호 4:6; 요 8:32).
-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재앙은 고통을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이끄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을 받는 자들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애굽 왕 바로와 같이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끝까지 거역하면,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셔서 큰 심판을 당하게 하십니다(롬 1:28). 아직도 세상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이 어떻게 선한 하나님이냐며 비방하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기회를 충분히 주셨기에 돌이키지 않는 죄인이 영원한 심판을 당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회개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기를 주저하거나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심판의 날이 올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지금 회개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질병과 재해가 빈번히 찾아드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무뎌진 가슴을 돌이켜 회개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 때문에 주어진 시간임을 인정하고 우리 모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뜨겁게 반응해야 합니다.
-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민수기 2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호르 산에서 출발해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했습니다. 먼 길로 돌아가자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음식인 만나를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릴 만큼 비뚤어진 생각과 배은망덕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불뱀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그들 가운데 죽은 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모세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매달게 하시고,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놋뱀에 어떤 마술적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치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놋뱀이 장대 위에 달려 있어도 바라보지 않은 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가 구원과 치유의 방편입니다. 놋뱀은 자신을 죄인과 동일시하셔서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이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된 자들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겔 36:26). 마음이 부드러운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마음을 품습니다(왕하 22:19). 심판에 앞서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마음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또한 마지막 때의 심판을 믿는 성도는 이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를 세상에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이 당하는 박해와 고난이 분명히 있습니다. 반대로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 받는 종말론적 재앙도 분명히 있습니다. 전자는 짐승의 분노를 보여 주고, 후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노를 보여 줍니다. 계시록은 두 종류의 고난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어느 길을 가야할지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짐승의 박해를 받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종말론적 재앙과 영원한 벌인 불 못의 고통을 피할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박해를 피하려고 타협하거나 어린 양을 배신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종말론적 재앙을 당하고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짐승이 주는 환난도 피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도 피할 수 있다고 하며 타협을 권합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2:10).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심판주이십니다. 대접 재앙은 선지자와 성도들의 피를 흘린 악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심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1:14) 우리의 은밀한 것까지 심판하실 것입니다(롬 2:16).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마 10:26). 악한 세력의 위협에 굴하지 말고, 주의 의로운 판단을 신뢰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를 통해 불에 태워지는 재앙을 받고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회개하기는커녕 심판의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 목이 곧은 모습을 보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재앙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경고하시는데도 애써 외면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선고되었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짐승에 속한 사람들은 대접 재앙 앞에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무서운 심판을 고스란히 당합니다. 성도는 영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일곱 재앙 심판은 그 목적이 회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도래한 종말에 대한 표적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심판의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종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어있어야 합니다. 맡기신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주님의 복음을 우리의 이웃에게 부지런히 전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