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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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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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계 9:1-21


세계기상기구는 기후와 환경변화 등으로 사막 메뚜기 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온도 상승, 잦은 비로 인한 습한 상황, 강한 바람이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사막 메뚜기의 특징을 보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동성 해충이다, 그들은 메뚜기 종 중에서 가장 파괴적이다, 그들은 떼로 움직이고 하루에 150km를 이동한다, 그들은 하루에 그들의 무게에 이를 만큼의 식량을 먹어치운다, 작은 무리의 사막 메뚜기 떼는 3만 오천명이 하루에 먹는 식량을 먹을 수 있다 등입니다. 식량농업기구는 최근 새로운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동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사막 메뚜기 떼가 최근 인도-파키스탄 국경에 있는 여름 번식지로 이동하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현재 일어나고 있는 메뚜기 재앙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재앙이 장차 있을 것을 계시록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8장의 네 나팔 재앙이 지나갔습니다. 9장에는 다섯째 나팔 재앙과 여섯째 나팔 재앙이 나옵니다. 8장에서 네 재앙을 간략하게 다룬 것에 비해 9장에서는 집중적으로 두 재앙만을 다루는 것으로 보아, 두 재앙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네 개의 재앙은 자연계를 심판하는데, 다섯째 재앙은 황충을 통해, 여섯째 재앙에서는 마병대를 통해 불신자들을 심판합니다. 그러나 어린양을 따르는 무리, 즉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은 재앙이 비껴갑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악의 세력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악의 세력에 의해 핍박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리들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역사의 현장은 죽음의 아우성 소리, 전쟁과 분쟁, 갖가지 질병과 중독, 굶주림과 헐벗음, 슬픔과 좌절, 그리고 허무에 굴복하는 삶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지저분한 역사가 주는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고통도 잠시일 뿐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의 자녀 몫임을 기억하고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나팔 재앙
- 무저갱의 열쇠(1-2절)
다섯째 나팔이 울리자 요한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를 보게 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신적 대리자로 계시록 20:1의 천사로 보는 것입니다. 거기서 천사는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것을 단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것으로 봅니다. 둘째, 그 별을 사탄으로 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18에서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계시록 12:8-9에서는 사탄을 ‘땅으로 쫓겨난 옛 뱀’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 천사의 정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서 무저갱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받았다’로 번역된 동사는 신적 수동형이므로 그의 활동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무저갱은 ‘밑창이 없는, 길이를 알 수 없는’이란 뜻의 형용사가 명사로 쓰여서 ‘심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저갱은 신약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데, 악한 귀신을 가두는 감옥(눅 8:31; 벧후 2:4; 유 1:6)이나 땅끝(롬 10:7)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계시록에서 ‘무저갱’은 짐승과 사탄이 영원한 불 못에 떨어지기 전에 최후의 심판 때까지 갇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11:7; 17:8; 20:1-3). 군대 귀신이 예수님께 무저갱으로 들어가도록 명하지 말아 달라고 간구한 것으로 보아(눅 8:31), 그곳은 고통스러운 장소일 것입니다. 천사가 무저갱을 열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를 연상시키는 큰 연기가 피어오릅니다(창 19:28). 그 연기가 얼마나 심한지, 해와 공기가 어두워질 정도입니다.
- 황충(3-12절)
앞의 네 천사들이 나팔을 불 때 땅과 바다와 강과 하늘의 1/3이 타격을 입었지만, 사람들은 그 때문에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마치 애굽 왕 바로가 끝까지 저항하다가 열 가지 재앙을 다 당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천사에게 무저갱을 열게 하셔서 거기서 큰 연기와 황충을 나오게 하십니다. 황충은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가집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전갈을 인간에게 가장 적대적인 생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광야가 인간에게 위험한 장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했습니다(신 8:15). 예수님은 원수를 제어하는 권세를 ‘뱀과 전갈을 밟는 것’(눅 10:19)이라 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2:11을 보면 “...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라고 하며 르호보암은 전갈을 괴로움의 상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요한도 심판의 고통과 극렬함을 전갈 같다고 합니다. 첫째 나팔 재앙이 땅과 수목과 푸른 풀을 태운 반면에(8:7), 황충은 풀과 수목은 해하지 않고 이마에 인침을 받지 않는 사람들만 해칩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과 애굽인을 구별했던 장자의 재앙처럼, 황충은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백성을 구분합니다. 황충이 하나님께 받은 첫 번째 명령은 ‘그들을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비를 베풀어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보응으로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너무 괴로워서 죽기를 구하지만 죽지 못하고, 죽으려 하지만 도리어 죽음이 그들을 피해갑니다. 황충이 받은 두 번째 명령은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5달은 황충의 생존기간으로 ‘짧은 기간’을 상징합니다. 결국 재앙의 수위와 기간을 조절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때로 악한 세력도 사용하십니다. 그 악한 세력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활동합니다. 생명을 주관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도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대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황충은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데, 이들이 지나갈 때는 해가 가려져 어두워지며, 지나간 자리에는 풀잎 하나도 남지 않고 나무는 껍질까지 다 벗겨집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황충은 그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황충을 묘사하는 장면이 비유적입니다. ‘무엇과 같고’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됩니다. ‘얼굴은 사람 같다’는 표현은 요엘 2:5-7에서 ‘강한 군사 같고’(2:5), ‘용사 같이’(2:7), ‘무사 같이’(2:7)라는 표현들을 반영합니다. 요엘 1:6은 황충의 이빨을 ‘사자의 이빨’에, 그 어금니를 ‘암사자의 어금니’에 비유합니다. 황충이 말들과 같이 빠른 속력으로 공격하며, 권세를 가지고 있고, 사자의 이빨과 같이 파괴력이 강하다고 합니다. 호심경은 가슴과 등에 걸쳐 칼이나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무장 중의 하나입니다. 호심경이 있다는 설명이나, 날갯소리가 전차와 말들이 달리는 소리 같다는 표현은 메뚜기 떼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반면에 메뚜기의 형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과 같고,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을 가지고 있는 황충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황충이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황충은 꼬리가 없습니다. 또한 황충은 풀을 해치는 것이 이치인데, 여기에 언급된 황충은 풀을 해하지 않고 사람들을 해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황충이 무저갱에서 나온다는 사실과 더불어 악한 세력의 초자연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황충들에게는 히브리어로 아바돈, 헬라어로는 아볼루온이라는 왕이 있는데, ‘파괴자’를 뜻합니다. 아바돈이 사탄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본문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바돈이 사탄은 아니더라도 악의 세력을 대표할 만한 강력한 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예고되었는데, 이것은 ‘화’의 시작일 뿐입니다. 아직 이후에도 두 가지 더 무서운 재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섯째 나팔 재앙
- 네 천사들(13-15절)
여섯째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 앞에 있는 금 제단의 네 뿔에서 음성이 나온다는 말은 뒤이은 사건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진행됨을 암시합니다. 제단은 앞서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피를 갚아 달라고 탄원한 곳입니다(6:9-10). 또한 금 제단은 천사가 금 향로에 많은 향을 받은 후에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하나님 앞으로 드린 곳이기도 합니다(8:3-4).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진행되는 종말의 역사에서도 성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금 제단에서 나는 음성이 유브라데 강에 묶여 있는 네 천사를 풀어 주라고 합니다. 언뜻 이 모습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7:1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7장의 천사들은 땅에 서 있는 반면에 9장의 천사들은 유브라데 강에 결박당해 있습니다. 계시록 20:2에서 천사는 사탄을 무저갱에 천 년 동안 결박했습니다. 따라서 9장의 네 천사는 악한 영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네 천사에 이어 2억 명 규모의 마병대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천사들은 마병대를 이끄는 악의 세력으로 보입니다. 지정학적인 면에서 볼 때 유브라데 강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등 외세와 이스라엘의 경계선이 되는 강입니다. 유브라데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상징되는 곳이요, 종말의 격전지를 상징합니다. 여섯째 나팔 재앙은 전쟁에 의한 참혹한 죽음의 재앙이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나팔 재앙뿐만 아니라 여섯째 나팔 재앙도 악인들에게 임합니다. 다섯째 나팔 재앙은 악인들에게 극도의 고통을 안기지만 여섯째 나팔 재앙은 악인들을 죽입니다. 네 천사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사람 3분의 1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입니다.
- 이만 만의 마병대(16-19절)
여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을 때, 요한이 목도한 광경은 이만 만이나 되는 마병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만 만’을 직역하면 ‘만들의 이만’입니다. 문자적으로 ‘이억’을 가리킨다기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를 의미합니다. 요한은 마병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말들과 말 탄 자들은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으로 무장했습니다. 그들이 탄 말들의 머리는 사자와 같고 말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인해 사람 3분의 1이 죽임을 당합니다. 불과 유황은 소돔과 고모라가 받은 심판을 연상시킵니다(창 19:24). 계시록에서 마귀, 짐승, 거짓 선지자,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 그리고 악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습니다(14:10; 19:20; 20:10; 21:8).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는데, 뱀 같은 꼬리에는 사람을 해치는 머리가 있습니다. 말들의 입에 있는 힘은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가리킵니다. 꼬리가 뱀이라는 표현은 사탄의 역사임을 짐작케 합니다(20:2). 따라서 이들이 악마적 속성을 가진 사탄의 군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인들이 ‘이만 만의 마병대’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렸을까요? 요한이 활동했던 주후 1세기에 유브라데 강은 로마와 파르티아의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파르티아 군대는 말을 타면서 활을 쏴서 정확하게 표적을 맞추는 전쟁 기술을 갖춘 기병으로 유명했습니다. 주후 62년에 로마가 파르티아 군대에게 참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파르티아인들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정황에서 이만 만의 마병대에 대한 언급은 말을 타고 달려오는 파르티아 군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들(20-21절)
여섯째 나팔 재앙 때는 사람들 중에서 3분의 1을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 열 재앙을 당하던 바로처럼,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재앙이 일어났는데도 회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여러 귀신들과 우상들에게 절합니다. ‘손으로 행한 일’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물건인 우상을 섬기는 일을 말합니다. 그들은 또한 살인과 음행과 도둑질 같은 부도적한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복술은 마법이나 주술을 부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계속되는 하나님의 심판에도 인생들이 자신의 완악함을 돌이키지 않음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는 아무도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롬 1:18-23). 재앙과 환난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죄에서 돌이켜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뜻을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거스르는 사람에게 남은 것은 멸망의 심판뿐입니다.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서 죄와 심판의 무게를 느낀다면, 속히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
-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나팔 재앙은 우리들의 사는 세상의 운명을 분명히 보여 줌으로써, 우리가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 환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소망은 흔들리는 세상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때 초자연적 악의 세력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악의 세력은 우는 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사탄은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허용 범위 안에서 활동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그의 하수인의 활동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담대하게 악을 향해 맞서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고통이나 환난을 경험한 뒤 하나님께 돌아오기 보다는 은혜를 잊고 교만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처투성이지만 고침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 때에 불 뱀에 물려도 끝까지 놋 뱀 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민 21:4-9).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이 땅에는 죄인들을 향한 재앙과 환난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애굽에 열 재앙이 내렸으나 이스라엘에는 아무런 해가 없었던 것처럼, 의인들은 수많은 재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맛보게 됩니다. 회개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나팔 재앙은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이 정당함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정죄적인 자세의 삶을 살거나 세상에 대한 선교적 사명을 소홀히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나팔 재앙의 메시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세상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 당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세상이 오늘이라도 하나님 편으로 투항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타는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긍휼의 전달자로 서야 합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죄가 정죄되고 심판당하는 것으로만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긍휼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자의 할 일은 세상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끌어안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인내와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이 땅에 최종적인 심판이 임할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중대한 사명은 단순히 세상으로부터 자기 한 목숨 지켜 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오도록 부르짖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례함이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해도, 세상의 완고함이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해도, 하나님의 기다림으로 세상을 기다리고 주님이 보여주신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이 어린양의 보혈의 능력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우리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삶의 길을 제시해 주어야만 합니다.

나가면서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을 엽니다. 그러자 황충으로 묘사되는 악한 존재들이 ‘해칠 권세’를 받고 무저갱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어린양 예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을 황충들이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5개월만 괴롭히도록 기간을 정하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 지 사람들이 차라리 죽기를 구할 정도입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놓입니다. 그들이 이끄는 이만 만의 마병대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 3분의 1을 죽입니다. 이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들의 악행을 회개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각종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황충과 마병대 모두 초자연적이고 악마적 세력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악인들만을 괴롭히거나 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은 재앙을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기도에 응답하여 성도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이 땅에 공의를 실현하십니다. 힘들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 들으시고, 때가 되면 신실하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얼마나 많은 영혼이 인침을 받지 못해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는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침을 먼저 받은 우리들이 구원에 대한 감사와 함께 한 영혼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어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