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9
아프리카를 변화시키는 21세기의 윌리엄 윌버포스
얼마 전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W에 아프리카의 빈국 말라위의 교도소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흑인들뿐인 아프리카의 한 도시의 교도소에 ‘닥터 킴’이라고 불리는 한 한국인이 재소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가난과 질병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프리카, 그 중 가장 가난한 나라 말라위. 그리고 그곳에서도 가장 천대받고 무관심한 곳이 교도소이다. 말라위의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생계형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재소자들이 대부분이다. 800명인 정원인 말라위의 한 교도소는 좁은 골방에 무려 17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생활하고 있다. 재소자들이 모두 눕기에는 너무 비좁아 교대로 누워 자고 식량이 부족해 하루 한 끼로 생명을 이어나가는, 사람답게 대우 받으며 살기 척박한 말라위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복음과 희망을 전하는 한국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용진 박사이다. 김 박사는 현재 말라위에서 교도소 재소자들의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김용진 박사는 1982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샘휴스턴대에서 범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펜실베니아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미국 한미언약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고, 국제교도선교회(Prison Felliwship International, PFI)의 사역에 동참하였다. 2001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민영교도소를 세우기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아가페에서 연구실장으로 사역하며 국내 최초의 민영 기독 교도소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이후 김 박사는 PFI를 통해 아프리카 교도소의 참혹한 실상을 접하면서 아프리카 교도선교야말로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의 교도소 현실은 정말 열악합니다. 재소자들은 해가 지기 전에 수감되고 다음 날 아침에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 장장 14시간을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방이 너무 협소하여 수감자들이 교대로 누워 잠을 자고 하루 한 끼의 옥수수 죽으로 연명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환경은 말라위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전체가 비슷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되고 느낀 바가 있어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아프리카의 교도소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자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김 박사가 교도소에서 실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외부로부터 식량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는 것이 기본 골자다. “재소자들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일과 대규모의 축산농장에 투입됩니다. 농장과 축사에서 거두어진 모든 수확물의 절반은 동료 재소자의 급식개선을 위해 다른 교도소로 보내지고 나머지 절반은 고아원이나 병원, 양로원 등에 재소자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이를 통해 재소자들은 남에게 주는 삶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지요.”
김 박사는 한 번도 남에게 베풀지 못한 삶을 살던 재소자들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이 먹을 것을 생산하고 또 절반은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에 직접 전달하게 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남에게 베푸는 삶의 기쁨을 맛보다가 복역기간이 차서 출소를 하게 되면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재소자들에게 남을 돕는 것을 가르치는 이런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효과는 아프리카 전역으로 소문이 퍼졌다.
“처음에 교도소에 지원되는 예산의 80% 이상이 식량을 구입하는 데 쓰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도소의 시설을 개선하거나 새로 건물을 증축할 예산이 항상 부족 했어요. 그래서 식량문제를 자급자족으로 해결하면 그 예산을 교도소 시설 확충에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재소자들은 생산과 나눔의 기쁨을 배우는 등 교정 효과도 큽니다. 성공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아프리카에 전역에 퍼졌는데 인근 국가인 모잠비크나 짐바브웨 같은 나라들에서 자신들의 나라에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의 무관심
김 박사에게 교도소 사역의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한번은 2005년도 즈음에 뉴욕타임즈에서 특집기사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말라위 교도소의 현실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처참한 아프리카 교도소의 상황을 담았는데, 저는 그 기사를 보면서 기사를 쓴 기자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의 반응이 없어도)‘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메일을 썼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몇 개월 후 그 기사를 쓴 뉴욕타임즈 기자의 집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가서 그동안 (기사를 보고)‘전화 한 통 없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정말 그랬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일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사람들의 무관심 입니다.”
김 박사는 교도소에 대해 지원을 해주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월드비전, 월드뱅크, 코이카 등 구제 사업을 하는 어떤 곳에서도 교도소 사역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자에게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고생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렵게 낸 후원금이 범법자들에게 쓰여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정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해 전 아프리카 교도소를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PFI의 설립자 찰스 콜슨 등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김 박사는 참석자들에게 사랑의 곡식 나눔 프로그램에 대해 발표하여 큰 공감과 지지를 얻었고 아프리카 몇 개 국가에서 실험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에 대해 동의를 얻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자고 말했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지원 해주는 곳이 없으므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얘기했습니다. 먼저 정부에서 교도소에 지급한 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동력, 그것도 통제되고 젊은 노동력이 있었으며 일사불란한 교도 행정지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일을 시작하자고 얘기했습니다.”
김 박사는 일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농기계를 구입하고 후원받는 일에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일할 기회를 달라고 참석자들에게 호소했고 지금 현재 성공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15년 동안 35개 나라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행할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소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웃을 돕는 것은 출소 이후에 하나님의 소명대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프리카 교도소 농장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선한 사역에 한국 교회의 관심을 요청합니다.”
김 박사의 사역은 마치 노예제도를 폐지했던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를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의 황무지에서 가장 낮은 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김용진 박사야 말로 21세기의 윌리엄 윌버포스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